2015. 10. 31. 20:4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금강경
내가 금강경이 되려면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들이 못 알아들을만한
가르침을 법문하신 것이 없습니다.
아주 받아들이기 쉽게 근기에 맞게 하셨습니다.
경전은 본래 인도에서 성립되어
인도말로 되어 있는 경전이 중국에 옮겨와
중국 사람들이 중국말로, 말하자면 한문으로 번역을 하였고
이 한문 경전이 우리나라에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종 임금이 한글을 제정하기 전엔
한문으로 글을 읽었으며, 일반인은 이두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불교경전도 천년이 내려오며
한문 경전으로 읽었으며 요 근래까지도 그랬습니다.
30년 전에서야 동국대학교에서 번역을 해서
근래에 완간을 하여 한국 사람들
누구든지 불경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문은 열심히 배워서 능하게 아는 사람
소수 얼마를 제외하고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에게
남의 나라말이 되어서 어렵습니다.
한문으로 되어있는 경전을 어지간한
보통 사람들이 보면 "아이고, 경전이라고 해도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요."라는 선입관이 있어
"금강경은 어려워, 읽기 좋다고 해서 읽기는 읽지만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
읽긴 읽는데 잘 몰라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금강경뿐만 아니라
여러 경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왜일까요?
참선하는데 화두 들고, 염불하는데 나무아미타불,
기도하는데 관세음보살, 지장보살하고,
주력하는데 신묘장구나 옴마니반메훔을 하듯,
금강경 읽는 것을 수행의 방법으로 삼는 법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금강경을 읽기는 읽지만
우리 한글로 읽는 것처럼 쏙쏙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때 경전을 수행방법으로 알아서
그 뜻을 알고 모름을 상관하지 않고,
오직 믿는 마음으로 늘 읽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알고 모르고 할 게 없습니다.
금강경을 읽을 때 읽다 말다 하지 말고,
내가 하루에 몇 번 읽겠다 정하면 계속해서 독송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도
하루 세 끼 밥 먹는 시간과 양을 정하고 먹으니까
싫지 않고 우리 일생동안 몸을 유지하는
좋은 음식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강경은 우리 마음의 양식입니다.
여기서는 마음의 양식 금강경을 주로 예를 들었지만,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경전을 조금 읽어 내려오다가,
"힘들어, 아이고, 목이 아파, 허리 아파,
이것 밤낮 읽어서 돈이 생기냐,
밥이 생기냐?"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얼마 하다 말고, 얼마 동안 쉬었다 하게 된다면
수박 겉핥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수박을 몇 달 동안 껍질만 핥아봐야
그 맛을 알 도리가 없습니다.
음식은 먹어야 맛을 알고, 병도 낫습니다.
경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전을 자꾸 읽다 보면 처음에는 조금만 읽어도
나도 모르게 오만 생각이 왔다갔다 합니다.
지금 여러분께서는 나를 쳐다보고 법문을 듣지만
여러분의 주인공은 집에 가서 냉장고 문을 여닫고,
대형마트 가서 쇼핑을 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떤 생각이 일더라도,
그 생각을 쫓아가지 말고 '내가 딴 생각을 했구나.'
깨닫고 얼른얼른 돌려야 합니다.
여러분께서 참선을 하면 화두로 돌리고
염불을 하면 아미타불로 돌리고,
기도를 하면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로 돌리고,
경을 읽는 사람은 경을 읽는 데로 돌리고,
이를 몇백 번 몇천 번 돌려 그 읽는다는 생각을
계속되게 해야 합니다.
일생 동안 읽어도 잘 안되지만,
자꾸 열심히 생각을 돌려 그 생각이
계속 되도록 열심히 한다면, 차차 할수록 읽어지고
경을 모두 읽기 시작하여도 딴 생각을 않게 됩니다.
제가 이런 소리를 하면,
"아이고 스님, 얼마나 하면 그렇게 돼요?" 하고
물어보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것은 일생을 해도 세세생생해도 안 되지만,
일념으로 되도록 하려고 애쓰면 3일이면 됩니다.
10일을 읽어도 되고 20일을 읽어도 되고
100일을 읽어도 됩니다.
정 안 되더라도 열심히 하다보면 3년이면 됩니다.
빈 말이 아니고 3년이면 1,000일 아닙니까?
그런데 1년 정도가 되어 금강경도 주욱 읽게 되고
탁 생각을 돌려 집중을 하게 된다면,
딴 생각 천 생각 만 생각 일어나라고 해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금강경을 일념하게 되면 얼마 있어
무념(無念)에 들어갑니다.
무념이 없을 무(無), 생각 념(念)자인 데
글자 그대로 생각이 없어져서 무념이 아니라
일념(一念)이 가득한 무념이 되어야 합니다.
선풍기의 날개는 보통 3∼4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선풍기의 스위치를 누르면 날개가 안 보입니다.
이것은 선풍기의 날개가 없는 것이 아니라,
꽉 차서 하나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법과도 같습니다.
우리 공부하는 마음도 일념으로 하게 되면
일념이 가득찬 무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우리가 상대적인 세계에 살았으나,
무념에 들어가게 되면 금강경에는
나도 없고 읽을 금강경도 따로 없습니다.
"내가 바로 금강경이야.
금강경이 바로 나야." 이렇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니, 이 세상을 피해
달아나서 살 순 없지만, 인연 따라 뭐든지
생활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꾸준히 금강경이 곧고
튼튼한 기둥이 되어 준다면,
여러분들이 가면서, 오면서, 뭐하면서,
운전하면서도 금강경이 모두 다 머리에 들어
좌락좌락 돌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금강경이고 금강경이 내가 된다면
그게 바로 독경 삼매입니다.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여 그렇게 되면 화두 삼매요,
나무아미타불 열심히 불러서 그렇게 된 것은 염불삼매요,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불러서 그렇게 된 것은 기도 삼매요,
경을 읽어서 그렇게 된 것은 독경삼매요.
불교의 어떤 수행이든지 근본은 삼매에 들어야 합니다.
삼매라고 하는 것은 뭐냐?
어렵게 말하면 모두 어렵지만
아주 알기 쉽게 말하면 우리 정신,
보통 때는 자꾸 눈으로 귀로 듣고 보고 하는 대로
자꾸 밖으로만 내던 것이 금강경을
열심히 읽는 것을 통해 싹 안으로 일념으로 된다면
그게 바로 독경삼매라는 것입니다.
그때는 앉아 있으면 금강경 보살님이요,
여기 앉아 있으면 금강경이 앉아 있고
집에 간다고 걸어가면 금강경이 걸어가고
집에서 설거지하면 금강경이 설거지하고
운전하면 금강경이 운전하는 것입니다.
이때 "아이고, 그러면 위험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생각이 바로 서 있어 딱 일념으로 한다면
절대로 사고나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매일 경 읽는 것을 수행으로 합니다.
만일 그렇게 못하더라도 금강경의 뜻이라도
제대로 배워 알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금강경의 문자에 있는 위에 어떤 깊은 말을
우리에게 일러 주려고 하는가를 살필 줄 알아야 해요.
이것을 경을 공부하는 세계에선
경안(經眼)이 있다고 합니다.
이제 그렇게 되면 그것이 금강경 읽는 것이
읽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소 생활하고 행동하는 것에
다 반영이 되고 행하게 됩니다.
- 인환스님
호수 1 /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수 밖에
지눌스님의 누님
보조 지눌선사는 학문적 깊이는 물론 사람을 제도하는 방편도 뛰어났다.
선사에게 누님 한 분이 계셨는데 선사는 그 누님을 지극히 모셨다.
그 누님은 선사를 볼 때마다
"나는 부처님처럼 훌륭한 스님을 아우로 두었으니 걱정할 것이 없네.
설사 내가 도를 닦지 않는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까지 제도하는 자네가
나 하나쯤이야 지옥에 떨어지라고 놔두지는 않을터이지."하면서 염불에 게을렀다.
그럴 때마다 더욱 열심히 정진해야 한다고 했지만 누님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선사는 누님을 제도할 방편을 생각하고
누님이 산에 오시는 날을 기다려 그 시각에 공양을 들기로 했다.
누님은 아랫마을에 살면서 동생을 위해 반찬과 떡 과일등을 가져다주기 위해
주기적으로 선사가 계시는 산사를 찾았던 것이다.
누님이 식사 때를 지나 숨을 헐떡이며 아우의 방에 들어서니
선사는 마침 공양을 하고 있었으나,
흘깃 누님을 쳐다보고, "어~ 누님 오셨오, 거기 앉으세요." 하더니
꾸역꾸역 혼자만 공양을 드는 것이었다.
이미 때가 지나 배가 고픈 터에 함께 밥이라도 먹자는 말 한마디 없이
혼자만 공양드는 것을 보다 못한 누님이 말했다.
"동생, 오늘은 동생이 환장했구먼.
때가 되었어도 멀리서 온 누님에게 함께 밥이라도 먹자는
말한마디 없이 혼자만 꾸역꾸역 먹다니."
그러자 선사는, "왜요. 동생이 이렇게 배부르게 먹으면
누님도 저절로 배가 부를 것이 아닙니까?"
"이 사람아, 자네가 먹는데 왜 내가 배부르나."
지눌선사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누님께서 항상 내가 불법을 가지고 있으니
그 공덕이 누님께도 미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제야 누님은 선사의 깊은 속마음을 헤아리고
그 후로 열심히 불법을 믿어 공덕을 쌓았다고 한다.
- 태일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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