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에 통하고 사무칠뿐 / 릴라 임순희님

2015. 12. 5. 19:4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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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 통하고 사무칠뿐 / 릴라 임순희님

틈이 없다, 섞임이 없다, 머물 곳이 없다, 고요하다, 밝게 드러난다, 취함이 없다,

다름이 없다, 말할 수 없다, 두루하다, 오염이 없다 등등 법을 표현하는 말은 다양합니다.

이 각각의 말은 표기도 다르고 뜻도 다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도대체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 감감해집니다.

그러나 하나의 요체를 깨닫고 보면 이 말들이 깨달음을

다양한 각도에서 표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저러한 말을 따라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목표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오직 지금 이 눈앞의 진실에 통하면 저절로 이 표현들이 가능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 깨달음의 요체인가요? 바로 '깨달음'하는 이것입니다.

깨달음이라는 뜻을 따라가지 않고 표기를 따라가지 않는다면

'깨달음' 하고 출현하는 이 자리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통하지 못한 분이라면 그저 말의 언저리에서 왔다갔다하지 말고

몸소 실천해보시기 바랍니다.

'깨달음' 하는 여기.
그러니 사실 깨달음이라는 말에 한정시킬 수 없습니다.

틈이 없다 하든, 틈이 있다하든 모두 같은 말입니다.
틈이라 하든, 뒤섞임이라 하든 모든 말의 당처는 똑같습니다.
말뿐만 아니라 소리가 드러나는 당처도 바로 이것이고,

사물이 형형색색으로 드러나는 곳도 지금 당장 이 경험되는 자리입니다.

온 우주가 바로 우리 자신의 당처를 떠나 드러날 수 없습니다.

온갖 신비하고 신령스러운 모습이 드러나더라도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근원에서 비롯됩니다. 온 우주가 하나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수긍되어야 합니다. 나를 떠난 우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바른 견해가

반드시 서 있어야 이 당처를 자각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공부가 원만해지는 것도 우주만물이 한 점 예외없이

여기 밖에 존재하지 않음이 스스로에게서 명백해지는 일입니다.

깨달음은 이해가 아니지만 바른 이해를 바탕에 두지 않는다면

삿된 경계를 깨달음이라고 착각하여 쫓아가게 합니다.

깨달음은 우리가 쫓아갈 대상이 아니라 모든 것이 참된 자신의 품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단 한 점 티끌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자각입니다.

지금 당장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무슨 경험을 하고 있든 이 모든 경험이

바로 자기가 발딛고 선 존재의 바탕에서 나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결국 나고 사라지는 것은 독립된 자성이 없는 것이니

이 한결같은 바탕만 시간 밖의 영원이고 실재인 것입니다.

모든 우주삼라만상, 내외적 세계의 근본바탕이 바로 자신의 존재 바탕입니다.

모든 것이 이 텅빈 하나로 돌아가면 당연히 틈이 없으며, 따로 이것이다 할 게 없고,

두루하고 밝으며, 오염이 없고, 언제나 이것이 행해질 뿐입니다.

깨달아보면 온갖 가르침의 말들이 저절로 소화가 되지만,

그 말에 실체가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그러저러한 말 가운데서

길을 잃지 마시고 당장 스스로가 지금 서 있는 자리를 곧장 보십시오.

안팎으로 일어나는 경계들이 어떤 것인지 신경쓰지 마시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일어나는 것을 없애려 하지 말고, 쫓아가지도 마십시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냥 나고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지금 이렇게 온갖 생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온갖 소리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물사물이 생기롭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 이 자리에서 온갖 깨달음의 꿈과 세속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꿈일랑 헛것이니 돌아보지 마시고 이것 하나만에 나날이 사무칠 뿐입니다.


 

 

어디에도 없는[No-Where] 지금 여기[Now-Here]

지금 여기는 도달할 수 없는 장소입니다.
지금 여기는 머물 수 없는 곳입니다.

지금 여기는 붙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는 하나의 고정된 시공간 상의 좌표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는 어디에도 없지만

모든 순간과 모든 장소가 지금 여기입니다.
지금 여기가 사라지는 곳이 지금 여기입니다.

지금 여기가 생겨나는 곳이 지금 여기입니다.
지금 여기는 영원한 나입니다.

지금 여기는 있지만 없고, 없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

 

 

- 몽지릴라 밴드에서

 

 


지금 여기 !

그곳엔 부처도 갈 수 없는 곳

하지만, 나의 고향이며

영원히 잠들 수 있는 곳입니다 

진리요 빛이요 생명입니다

 



 

♥ 바위 채송화 / 백승훈

어쩌자고
저 여리디 여린 몸으로
산정의 바위 틈에 뿌리를 내렸을까

별을 사모하다
스스로 별이 되어 버린
노랑별꽃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린
오체투지의 바위채송화
내게 속삭인다

사랑은
스스로 몸을 바꾸어
상대를 닮아가는 일이라고
가만가만 향기를 풀어놓는다 

 

아석소조제악업 개유무시탐진치     아득한 과거로부터 내가 지은 모든 악업은
我昔所造諸惡業 皆有無始貪瞋癡     전부 욕심과 성냄과 무명에서 시작 되었고

 

종신구의지소생 일체아금개참회      몸과 말과 생각을 좇아서 죄업을 지었기에
從身口意之所生 一切我今皆懺悔      내가 지금 일체 죄업을 모두 참회하옵니다


정설지견시 지견구시심     당심즉지견 지견즉우금

正說知見時 知見俱是心    當心卽知見 知見卽于今  

바야흐로 보고 아는 중에 아는 것이 전부 이 마음이라.

그 마음이 바로 보고 알아 보아 아는 바로 지금이니라.


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꽃과 종자는 비록 땅에 인연하고 땅에 의하여 종자에서 꽃이 피나

만일 사람이 씨를 넣지 않았다면 꽃도 땅도 비어 나는 것이 없다네

마음 땅에서 모든 번뇌가 생기고 사물로 인해 이치가 생겨난다네.

수행이 익어 보리가 원만해지니  꽃이 피어나듯 세계가 일어나네


 


감사의 기도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있음을 감사하렵니다

밥과 몇 가지 반찬 풍성한 식탁은 아니어도

오늘 내가 허기를 달랠 수 있는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음을 감사하렵니다

누군가 나에게 경우에 맞지 않게 행동 할지라도 그 사람으로 인하여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음을 감사하렵니다

태양의 따스한 손길을 감사하고, 바람의 싱그러운 속삭임을 감사하고, 나의 마음을 풀어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음을 또한 감사하렵니다

오늘 하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났음을 축복으로 여기고, 가느다란 별빛 하나 소소한 빛방울 하나에서도 눈물겨운 감동과 환희를 느낄 수 있는

맑은 영혼의 내가 되어야겠습니다

http://cafe.daum.net/8670park/R11O/5162 

 

 

 
성종임금
어느 노인의 기막힌 지혜
성종 임금 때, 어떤 사람이 일찍이 딸 하나를 낳아 길러서 
시집보낸 후 늦게 아들을 하나 보게 되었다. 
이 사람이 나이가 많아 
죽을 때가 되었는데, 아들은 아직까지 강보에 싸여 있는
어린 아이였다. 
이 사람이 죽으면서 유언을 하여 재산을 시집 간 딸에게 
모두 물려주고, 어린 아들에게는 자기 자신의 
얼굴 모습이 그려진 족자 1개만 주었다. 
딸은 친정 재산을 모두 물려받았으니 살림은 넉넉해졌지만, 
살 길이 막막한 친정의 어린 동생이 가엾어서, 
동생을 데리고 와서 자기 자식처럼 돌보아 길렀다. 
노인의 아들은 점차 나이가 들어가자 옛날 부친이 
돌아가실 때 모든 재산을 누나에게 다 주고 자기의 
몫은 족자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국 족자를 들고 관청에 나아가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누나가 저를 자식처럼 잘 길러주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친이 무슨 뜻으로 재산을 누나에게 모두 주고, 
저에게는 이 족자 하나만 물려주었는지 그 참뜻이 궁금합니다. 
결코 누나를 원망해서가 아니라 
이 족자의 뜻을 알고 싶을 따름입니다."
이렇게 해 청원이 접수되었는데, 관장이 도저히
밝힐 수가 없어서 성종 임금에게 보고하고 그 족자를 바쳤다.
성종 임금이 족자를 펴보니 족자에는 노인이
한 사람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족자를 벽에 걸어놓고 멀리 
앉아 쳐다보니, 그림 속의 노인이 손가락으로
아래 부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임금은
문득 생각이 떠올라, 
사람을 시켜서 그 족자 끝의 축을 쪼개 보도록 했다. 
그랬더니 그 속에 종이쪽지가 들어 있었다. 
"내가 재산을 딸에게 모두 다 준 것은, 딸에게 
어린 동생을 잘 돌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아이가 자라고 
나면 내 재산을 균등하게 나누도록 하라." 
이러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성종 임금은 문서를 작성하여
재산을 남매에게 균등하게 분할해 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 재산을 어린 아들에게 물려주었다면,
누나는 재산 때문에 어린 동생을 돌보지 않고 해쳤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따라서 지금처럼 동생을 잘 거두어 기르지 않았을 것이다.
노인의 지혜가 놀랍다." 
이처럼 노인의 경우와 같이 지혜는 상대방에 대한 깊은 배려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