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끄달리면 / 고통의 원인

2015. 12. 13. 12:4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육조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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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끄달리면 번뇌가 생긴다

 

도를 배우는 이는
마음을 써서 법의 뜻을 쉬도록 하라.
자기의 잘못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다른 사람에게 귄하겠는가.

미혹하여 스스로 알지 못하고
또한 경전의 법을 비방하나니,
그러므로 생각 없음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無念爲宗).

미혹한 사람은 경계 위에 생각을 두고
생각 위에 곧 삿된 견해를 일으키므로
그것을 반연하여
모든 번뇌와 망령된 생각이 이로부터 생기느니라.

 

- 육조단경에서

 

 

고통의 원인은 무엇인가?
                                       / 공파스님 유언경

그것은 허상을 실상으로 잘못 보는 데서 기인된다.
‘능가아발다라보경’에서는
열두 가지의 비유로써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연못으로 잘못 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목이 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들판을 헤매다가
저 멀리를 보니 연못이 있고,
그곳에서 김이 아른아른 올라오고 있었다.
사실 그것은 아지랑이인데도 갈증에 허덕이던 사슴의 눈에는
커다란 연못으로 보여 져 바쁘게 뛰어가는 것이다.
물을 마시기 위해 종일토록 뛰어가지만
끝내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며 죽어 간다.

둘째는,
신기루를 본다는 것이다.
탐욕에 젖어 있는 인간의 눈동자에는 언제나 허상들만 보이고,
또 그것들만 가지기를 꿈꾼다는 것이다.
고대광실 지어놓고 사랑하는 사람과
한 오백 년 살아보겠다는 그 기원이
바로 허공에 황금성을 건축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셋째는,
꿈속에서 나타난 현상을 사실로 보고 그것을 탐착한다는 것이다.
꿈속에서는 모든 것들이 현실과 같이 생생하게 나타나지만
깨고 나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
인간은 이 삶 자체가 하나의 긴 꿈인지를 모르고
오직 잠 속의 단몽만 꿈이라고 알고 있다.
이 인간의 장몽, 그 긴 꿈을 깨고 나면
바로 진실 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인간은 업연에 의해 끊임없이 그 꿈을 반복해서 꾸고만 있으니
언제나 남의 삶만 살고 있게 되는 것이다.

넷째는,
그림 속의 높낮이와도 같다고 하셨다.
그림에는 높낮이가 없다.
붓의 테크닉으로 평면 위에
높고 낮은 명함을 칠해 놓았을 뿐인데도
인간의 눈에는 그것 자체가 사실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옛날부터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환장(幻匠)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다섯째는,
눈병이 났을 때 허공에 꽃이 보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여섯째,
불 바퀴를 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불로 된 바퀴는 없다.
횃불을 들고 빠르게 돌리면 먼 곳에서 그것을 볼 때
흡사 불 바퀴가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곱째는,
물거품을 구슬로 착각하는 것이다.
비누방울이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오색이 영롱한 구슬로 보인다.
보석이 아닌 것들을 진짜의 보석으로 알고
그것을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여덟째는,
물속의 달그림자를 진짜의 달로 본다는 것이다.
달은 하늘에 있지 물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물속에 달이 있다고 여긴다.
실상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은
허상은 빛깔 좋게 도처에서 인간의 탐욕을 충동질한다.
그러다 보니 술에 취해 물속에서 달을 건지려 했던 이 태백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오늘날 우리 자신이 바로 이 태백이 아닌가.

아홉째는,
거울 속의 얼굴과 같다고 하셨다.
거울엔 절대로 실체가 없다. 거울의 실체는 비어 있음이다.
현명한 사람은 실상을 보고 어리석은 사람은 허상에 끄달린다.
현명한 사람은 미인의 체온을 직접 느끼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거울 속의 차가운 여인만을 끌어안는다.
그러다가 허상이 떠나면 배신당했다고 원통해 한다.

열째는,
풍랑의 물소리와 같다고 하셨다.
물소리는 그저 바람이 불어서 생기는 자연의 소리에 불과한데도
인간들은 여기에 자기들의 견해를 갖다 대어 미사여구로 색칠한다.
그것이 바로 시(詩)라는 것이다.

열한 번째는,
별이 파도에 비치는 현상과 같다고 하셨다.
햇빛이 잔잔한 파도에 쏟아지면
수만 개의 별들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여진다.
햇빛과 파도가 반조하여 만들어낸 이 현상 또한 실제성이 없다.
이 반짝임이 실체의 현상이라고 생각하기에
권력이 있으면 턱없는 거드름을 부리려고 한다.

열두 번째는,
주문으로 물건이 움직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주문으로 어떤 물건이 움직이는 것은 주술의 힘이다.
그 작용에는 힘을 전달하는 끈이 없다.
주문의 기력이 오묘히 전달되다 보니
사람들은 물건이 움직이는 것만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고통의 원인은 집착이다.
허상에의 집착은 무지로부터 일어난다.
무지는 지혜의 부재를 말한다.
실상을 꿰뚫어 보는 지혜가 있다면
세상은 온통 재미거리로 가득 차 있다.
세상 자체가 하나의 연극이고 놀이터다.
관전의 시간이 끝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실제의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허상을 보고 그것을 잡으려고 서로 싸우고 있다.
거기서 고통이 일어난다.
급기야는 아무것도 가지지도 못하고
자기 자신의 집까지 잃어버린다.

흡사 뼈다귀를 입에 문 어리석은 개가
물속에 비친 자기의 그림자를 보고
그것마저 뺏으려고 으르렁거리다가
실제의 자기 먹이를 놓치고 마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일을 열심히도 하고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 과정 속에 사람들이 뒤엉켜 있다.
인형극에서의 인형들의 움직임이다. 

 


 대몽(大夢)


大覺而後 知此其大覺也 (대각이후 지차기대각야)


큰 깨어남이 있어야

비로소 이 삶이 꿈이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 장자 / 몽지님의 블로그에서

 

 

 

 

    너 / 피천득, 눈보라 헤치며 날아와 눈 쌓이는 가지에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 동안 앉아 있다가 깃털 하나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 속으로 사라져 가는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