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 수리개표(修裏改表)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타고난 표정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화난 것 같은 표정으로 오해를 사곤 한다. 억울한 일이다. 표정이 안 좋을수록 억울함은 급증한다. 필자 주위에도 있다.
구름이 어떤 모양을 취하느냐 하는 것은 구름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자연이, 바람이 빚어낼 뿐이다.
35억년 진화의 과정을 통해 빚어진 유전자가 마구 뿌려져 나타난 것이 73억 개 몸과 얼굴이다. 얼굴표정을 결정하는 친절, 불친절, 인정, 몰인정, 관용, 불관용, 신경질, 평온함 등의 수백 개 정신적 특성과, 수십 개 안면근육과 가지가지 두부골상 등의 육체적 특성이, 결혼을 통한 무작위 섞임과 돌연변이를 통해 발현한다.
사람이 가진 얼굴과 그 얼굴 위에 나타나는 바탕표정은 우리 책임이 아니다. 그냥 무작위로 뿌려진 것이다. 구름모양처럼, 사하라 사막에, 화성표면에, 아무런 의도없이 그리고 개념없이 부는 바람이 무작위로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화성표면에 만들어진 사람 얼굴표정을 닮은 구조물로 인하여, 화성에 지적생물이 산다고 전(全) 세계가 야단난 적이 있다. 표정을 잘못 타고나면 오해를 사는 법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게 지적생물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그들이 지구로 쳐들어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해리슨 포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출연하는 영화는 두 시간 동안 숨을 멈추고 몰입하게 만든다. 에어포스 원, 도망자 등의 영화는 배우로서 치명적인 그 약점을 오히려 매력으로 만들었다. 그런 표정을 타고 난 것은 자기 책임이 아니지만, 딱딱한 표정의 한계를 극복한 것은 오로지 그의 의지와 노력이다.
전철을 타면 좌석에 앉아있는 승객들에게 눈이 간다. 가지가지 얼굴과 가지가지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교만한 표정, 겸손한 표정, 잔인한 표정, 인자한 표정, 멍청한 표정, 영민한 표정, 미소를 머금은 얼굴, 찡그린 얼굴, 다 내거야 하는 듯한 얼굴, 말만해 다 줄게 하는 듯한 얼굴, 욕심으로 더덕더덕 도배한 듯한 얼굴, 물욕을 초월한 듯한 얼굴, 누군가를 몹시 미워하는 듯한 얼굴, 누구에게든 사랑을 베풀 듯한 얼굴... 과연 저 표정들과 속마음은 서로 얼마나 일치할지 궁금하다. 실제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인(聖人)들에게 뜯어 먹히는 화형당한 송아지나 초고추장을 뒤집어쓰고 산채로 먹히는 물고기 입장에서 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가 가리라.
드러난 몸적 얼굴과 숨은 마음적 얼굴은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험상궂은 얼굴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정이 우러나는 경우도 있고, 사근사근하고 귀여운 얼굴 뒤에 표독함, 시기, 질투, 증오가 숨어있는 경우도 있다. 중국 한국 유럽의 궁중암투는 천하절색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무시무시하고 혐오스러운 괴물들의 존재를 증언한다. 누구나 아름다워지면 그리 변하는 것은 아니리라. 단지 아름다움이 그런 사악한 짓을 할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즉 인간 내면의 악한 성품을 증폭하고 발현시키는 것이다.
한 사람과 오래 알고 지내게 되면 표정 등 그 사람의 외적인 특징은 휘발성 액체처럼 증발하고, 그 밑에 감추어진 마음 깊숙이 뿌리를 내린 인성이 드러난다. 특히 생물학적인 마법에 걸린 처음 얼마간은 몸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심안엔 장막이 드리우고, 상대방의 마음의 모습은 뒷전이다. 짙은 보라빛 안개 뒤로는, 때로는 절벽이, 때로는 옥토가 펼쳐져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표정 등 몸의 모습이 아니라 마음의 모습이다. 우리는 몸의 모습은 바꿀 수 없지만 마음의 모습은 바꿀 수 있다. 다행히 우리는 수행을 통해서 타고난 바탕표정을 바꿀 수 있다. 마음이 밖으로 배어난 표정은 모두 바꿀 수 있다. 교만한 표정, 야비한 표정, 얼빠진 표정, 우둔한 표정, 찡그린 표정, 심술궂은 표정, 뿌루퉁한 표정, 몰인정한 표정 등을 바꿀 수 있다.
수행과 생활은 선천적인 우리얼굴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닥나무껍질처럼 조악하고 거칠고 울퉁불퉁한 화폭도 훌륭한 그림으로 변모시킨다. 실로 수리개표(修裏改表)가 아닐 수 없다. 차갑고 거칠고 단단한 돌을 따뜻하고 매끄럽고 부드러운 부처님과 보살들의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면, 이미 막강한 소프트웨어를, 즉 수만 년 동안 사유와 경험과 실천을 통해 개선에 개선을 거듭한 고성능 소프트웨어를, 구비한 인간의 마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사람경영을 강조하는 삼성에서는 한동안, 신규채용 시 그 명성이 하늘을 찌르던 모 역술인을 배석시켰다고 한다. 표정이 나쁜 사람들은 과연 이익을 보았을까? 아니면 손해를 보았을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관상(觀相)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심상(心相)을 당하지 못한다.
지하철을 내리면서 잠시나마, 조금이나마, 그리고 무의식적으로나마, 육안(肉眼)에만 의지해서, 표정으로 사람을 평가한 죄업을 참회한다. 휴~! 업을 짓지 않고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안(心眼)이 열리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하지만 엉터리 심안을 얻으면 큰일 난다. 한때 뉴에이지 시대를 풍미했던 힌두교의 선봉장 요가난다는 기독교를 힌두교적으로 해석해서 미국에서 크게 인기를 얻었다. 인도인들 중에는 그리스도(christ)의 어원이 크리슈나(Krishna)라고 믿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크리슈나는 3.3억 명의 인도제 신들 중에서 인도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신이다. 그의 주장은 크리슈나처럼 그리스도도 비슈누 신의 아바타 즉 화신이라는 것이다. 그는 예수가 일으켰다는 기적들도 다 인정했다. 물 위를 걷기, 물로 포도주 만들기, 질병치료, 죽은 사람 살리기, 부활 등등. 힌두교 경전에는 이런 기적들이 숱하게 나타나므로 몇 개 더 첨가한들 뭐가 대수이랴!
그가 어느 날 어떤 백인의 갓난아이를 안았는데 깜짝 놀라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다고 한다. 그 아이가 바로 히틀러의 환생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필시 망상이다. 지옥에 떨어져도 시원찮을 판에, 그런 중죄 중의 중죄를 저지른 사람이 어떻게 사람으로 환생할 수 있겠는가? 수행을 잘못하면 천안(天眼 사람들의 전생과 후생을 보는 능력)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망상안(妄想眼)이 열린다. 기괴한 교리가 망상과 결합하면 헛것을 보게 만든다. 그 결과 천진무구한 어린 아이의 마음을 늙은 악당으로 만든다. 환망공상 공장에서 생산되는 영적인 폭력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
그의 자서전 ‘어느 요기의 수기’에는 이런 괴력난신의 이야기들이 길거리 광고용 풍선좀비처럼 난무한다. 이런 예는 동서양에 무수히 존재한다. 이런 광인들을 사람들은 영적인 사람이라고 숭배한다. 실로 인간의 환망공상은 불가사의하기 그지없다.
흑초피(黑貂皮)처럼 윤기 흐르는 아름다운 긴 머리를 늘어뜨린 수려한 용모의 요가 수행자의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은 신비로운 표정이 흐르고, 그 뒤로는 불가사의한 속마음이 환망공상으로 똬리를 틀고 있다.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누구나 그렇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