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라.

2015. 12. 27. 11:3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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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라.

 


자신에게 처한 괴로움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방법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마음을 몰아가보는 것은
하나의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치달을 수 있는 가장 괴로운 상황,
최악의 상황으로 가정을 하고 난 뒤
그 상황에서 하나하나 다시 시작하는 것 말입니다.

살다보면 감당키 힘든 괴로움이 몰려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짓눌린 상황에 이끌려 몸도 마음도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어떤 괴로운 상황이라도
우린 능히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린 너무 쉽게 잊고 지내는 듯 합니다.
마음만 잘 다룰 수 있다면 그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상황은 우릴 이겨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마음 내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숙한 삶의 화가이기에
화가의 손에서 자유롭게 그림이 그려져야지
그림에 따라 화가의 손이 왔다갔다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최악을 가정하는 삶은
자칫 포기하기 쉬운 괴로운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일미(一味)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진급이나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했을 때
그 괴로운 상황에 안주하여 머물고 있으면,
그 상황은 나에게 더 큰 실망감과 자괴감 등을 몰고 옵니다.

그런 괴로운 마음은 앞으로의 삶에 있어
그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을뿐더러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했을 때 오는 희망마저 빼앗아 가기 쉽습니다.

빨리 마음을 비워야 빨리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방편으로 최악을 가정해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오히려 더 괴로운 상황,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는 것입니다.

낙방 정도가 아니라 강제 퇴직을 당하여 직장을 잃고
퇴직하면서도 동료들의 야유를 받으며,
직장이 없다보니 그나마 있던 집도 팔아야 하고
자식 학비걱정에 먹고 살 일이 걱정이며,
업친데 덮친 격으로 몸까지 아파 일을 할 수 없다고
가정해 보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시첫말로 갈 때까지 갔다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 바탕위에 하나 하나 다시 시작해 보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떨어질래야 떨어질 곳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즐거운 일만 있게 됩니다.

그나마 퇴직 당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더 열심히 일해야겠고,
진급은 못 했어도 위로해 주는 동료가 있으니
야유하고 비난하지 않아 준 것에 감사하고,
따뜻한 집에 아내와 자식들 잘 크고 있음에 감사하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이 몸 건강함에 새삼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으니
이처럼 남은 것은 올라갈 일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할 일과 즐거운 일 뿐이며
이제 남은 것은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마음 다스리고 나면
다시금 시작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한 부자 사업가가 시한부인생 선고를 받았습니다.
1-2년 정도를 살고 죽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믿지 못할 괴로움의 끝까지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괴로워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가만히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겠지 하며
더욱 심한 최악의 상황을 설정해 보니 감사할 일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남들에게 미움 주지 않고
괴로움 주지 않고 고요히 눈 감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당장 내일 모레 죽지 않음에 감사하며,
남은 생을 보람되게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해 할 수 있었습니다.

남은 날 동안 그간의 벌어 놓은 돈을 널리 회향하고자
또한 일에 시달여 평생 원하던 해외여행을 해 보고 죽으려
돈을 싸들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죽음을 선고받을 때는 정말 괴롭던 마음도
죽음에 대해 받아들이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했습니다.
환한 웃음으로 해외를 떠돌며
많은 어려운 이를 만나고 도움을 주고
그렇게 몇 달 간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바로 죽을 수도 있었을텐데
이렇게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음에 감사해하며
그렇게 해외여행을 마쳤을 땐
신기하게도 이미 몸이 완쾌되어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 또한 마음으로 짓는 일입니다.
마음이 변하면 생사의 인연도 변하게 마련입니다.

상황 자체가 괴로움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그 상황에 놀아나기에
마음이 괴로운 것일 뿐입니다.

이처럼 그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집착된 괴로운 마음을 비워버리고 나면
뜻하지 못했던 상황이 우리를 반길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더 떨어질 최악의 상황이 있으니
우리 앞에 펼쳐질 그 어떤 상황이면 어떻습니까.

그렇듯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두면
앞으로 닥치는 일들이 즐겁고 감사해지며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나면
안 될 일들이 다시금 되어지는 도리가 나옵니다.
마음이 변하면 주위가 변하고 세계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괴로운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에 안절부절하는 우리의 마음이 병통인 것입니다.

 

 

글쓴이 : 법상스님

 

 

 

 

내 근심이 키우는 것이 진주였구나

언제나 벗어 던지고,

달아나고 싶은 통증과 치욕 하나쯤 없는 이 어디 있으며
가슴 속 잉걸불에 묻어둔

뜨거운 열망 하나쯤 없는 이 어디 있을 것인가?

봄날 새순은 제 가슴을 찢고 나와 피며,

손가락 잘린 솔가지는 관솔이 되고
샘물은 바위의 갈라진 상처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여,

내 근심이 키우는 것이 진주였구나
네 통증이 피우는 것이 꽃잎이었구나
- 반칠환, 시 '물결' 부분 -

* 상처 없는 것이 없고 통증 없이 되는 일도 없습니다.
생살을 찢듯 제 가슴을 아프게 비집고 나온 것들이
결국 진주가 되고,온갖 시련을 겪은 뒤에야 꽃은 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