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침묵으로 관하라.

2016. 1. 9. 18:3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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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침묵으로 관하라.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외로움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철저한 고독과 마주한다는 것은,

한 편 바깥 세상에 대한
모든 기대와 관심을 다 놓아버리고
혼자서 걷는다는 말도 되지만,

또 한 편 그 내적인 의미는
내적인 고독, 내적인 침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는
수많은 생각과 기억, 고정관념, 편견, 판단을 비롯한
수없이 많은 것들이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혼자서 가만히 있는다고
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예요.
다 혼자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머릿 속에서 온갖 생각과 기억들이 춤을 춘다면
그 사람은 결코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갖 과거로부터 온 생각과 기억 판단들과
함께 있는 것이지요.

혼자 있는다는 것은,
내면적으로 완전히 침묵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내적으로 침묵한다는 말은
과거로부터 배워왔거나 익혀왔거나 들어왔던
수많은 기억, 판단, 편견, 이미지, 사상, 고정관념, 생각들을
온전히 비워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생각 생각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이미 과거의 일들입니다.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던 수많은 복잡한 것들에
얽매여 있다면
결코 침묵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말 없는 것이 침묵이 아니예요.
내적인 침묵이 참된 침묵입니다.

과거의 기억을 들추어 내지 말고,
그 어떤 가르침이나 사상, 이데올로기도 따르지 말고,
누군가에게 혹은 어디에선가 배워온 것을 쫒지 말고,
지금 이 순간
고요 속의 즉각적인 통찰만을 따르면 됩니다.
온전히 내가 되라는 말입니다.

지금의 나를 돌이켜 보면,
만들어진 나, 교육되어진 나, 훈습되어진 나일 뿐
지금 이대로의 텅 빈 나가 되지 못합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지금까지 가져오지 마세요.
그랬을 때 우리는 온전히 내가 될 수 있습니다.
내적으로 완전히 침묵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배운 것, 익혀온 것을 바탕으로
지금을 판단하지 말고
아무런 판단이나 기억도 일으키지 말고
오직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뿐'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완전한 내적 침묵 속을
거닐음도 없이 거닐고 있음입니다.
그것만이
내 안의 온갖 기억들을 비워낼 수 있는 길입니다.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지 말고,
깨달음을 찾아 나서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찾는다는 것은
이미 또다른 색안경이며 기억, 앎을 만드는 것일 뿐이고,
또다시 '교육되어진 나'를 만드는 일이 될 뿐입니다.

내 안에는 너무 많은 생각, 사상, 기억, 앎들이 있어요.
그로인해 우리는 침묵하지 못합니다.
그로인해 속 뜰의 나 자신을 마주하지 못합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어요.

참나를 찾기 위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또다른 스승을 찾아 나서고,
또다른 성전을 찾아 나선다고 하면
그것은 이미 또다른 사상을 배우고자 하는 것일 뿐이고,
내 안에 또다른 관념을 주입시키는 것밖에 되지 못합니다.

불교는 쌓는 공부가 아니라 비우는 공부입니다.
다만 방편으로 비우기 위해 쌓는 것을 가르칠 뿐이예요.
그동안 제가 한 말이
'비우기 위해 쌓는 것'을 말했다면
지금 제가 하는 말은
'비움' 그 자체를 말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온전한 비움을 위해
내적인 완전한 침묵을 위해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애써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아무런 분별도 없이,
아무런 판단도 없이,
과거를 떠올리거나 미래를 계획함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마음 모아 알아차리면 됩니다.

아무런 판단 분별 없이
'알아차림'만이 있을 수 있다면
바로 그 순간
알아차리는 나도 없고 알아차려지는 대상도 없습니다.

관하는 나가 없는 이유는
'나'라는 것은 과거의 산물이기 때문이고,
그 과거의 기억으로 걸러진 판단 분별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관할 때 '관하는 나'도 없고, '관하여지는 대상'도 없습니다.

다른 것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체 모든 생각이며 느낌을 있는 그대로 관하되,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그 어떤 분별도 일으키지 말고,
다만 관하면서 그것과 하나되어 흐르기만 하세요.

이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궁극의 수행이며,
수행 아닌 수행인 것입니다.

 

 

글쓴이 : 법상스님

 

 

고통은 찻잔 속의 폭풍과도 같다

찻잔 안을 들여다볼 때는
그 고통에 숨이 막힐 거 같지만
눈을 들어 찻잔을 보면
고통은 찻잔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동에 지나지 않는다

찻잔 그 자체는
그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평화로울 뿐이다

 - 틱낫한 스님

 

 

못난 사과 

어느 마을 길 모퉁이에 한 과일 행상이 있었답니다.
손을 다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리어카를 마련해 자기 마을 어귀에서

과일행상을 하게 되었답니다.
장사를 하던 어느날 한 손님이 다가와 묻더래요.

 

"이 사과 어떻게 하지요 ?"
"예! 천원에 두개 드립니다."


그사람은 삼천원을 내고 사과를 고르는데..

작고 모나고 상처가 있는 사과만

 여섯개를 골라서 봉투에 담아 가더랍니다.

며칠후 그 사람이 또 와서는 똑같이 그렇게 사과를
작고 모나고 상처난 것만 골라 담더랍니다.
그 사람이 세번째 오던날 행상이 말했답니다.
"손님 이왕이면 좋은 걸로 좀 고르시지요.."

 

손님은 행상이 하는 말을 듣고도

 그저 웃는 얼굴로 여전히 작고 시들고 모나고

못생긴 사과만 골라 담으며 말하더래요

 

"그래야 남은 사과 하나라도 더 파시지요.."
"저도 어렵게 사는데 댁은 더 어려워 보이세요."


"힘을 내세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행상은 숨이 멈춰지더랍니다.
그리곤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답니다.
'아직은 세상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렇게 있구나..'

사과 봉지를 들고 돌아서 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수가 없더랍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더이상 부끄러워 하지않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용기가 불끈 생겼답니다.
작은배려가 누군가에게는 큰힘이되고

새로운삶을 끌어가는데 원동력이됩니다.


지금에 그자리가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