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만법유식(萬法唯識) 삼계유심(三界唯心)

2016. 1. 9. 19:2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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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만법유식(萬法唯識) 삼계유심(三界唯心)이란 말과

相通하는 의미로서 이 世上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創造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불교의 경전인 華嚴經 십지품에 보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서 사람들은 一般的으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程度로 單純하게 理解하고

있습니다만,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고 보다 오묘(奧妙)한 뜻으로

말씀하신 겁니다. 마음(心/ 意/ 識)은 그 作用이 광대무변(廣大無邊)하기도 하고 바늘귀보다도

작을 때도 있습니다. 마음을 넓게 쓰면 宇宙를 감싸고도 남는 무한한 마음이 되고,

마음을 좁게 쓰면 겨자씨도 들어가지 못하는 아주 좁은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現象이 우리의 마음이 부리는 奧妙한 作用, 昭昭靈靈한 작용입니다.

 

이에 대해서 좀더 自細히 말씀드리면, 마음이 물리적 정신적인 이 世上 모든 것을 創造하는 主體

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人間에게 있는 무엇이든지 이루어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인 '한 마음(一心)'을

말하는데 여기 '한 마음'은 衆生의 마음(衆生心), 또는 불성(佛性)이라고 하기도 하고 진여심(眞如心)

이라고도 하며, 진심(眞心), 본래심(本來心), 청정자성(淸淨自性), 淸淨心, 菩提心, 本性, 如來, 眞性 등

다양한 명칭으로 말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本來의 마음은 우리가 이미 완전하게 두루 갖추고 있는

無限한 能力에 對한 믿음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世上의 그 어떤 것도 그 可能性을

믿는 마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日常生活 속에서 무한한 마음의 힘을 어떻게

肯定的이고 創造的으로 活用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 인생, 세상, 현실이 結定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화엄경} [십지품]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佛子여! 어떤 중생이 善根을 깊이 심고, 모든 行을 잘 닦고, 道를 돕는 法을 잘 모으고,

모든 부처님께 잘 供養하고, 淸淨한 法을 잘 쌓고, 善知識의 거두어주심이 되고,

깊은 마음을 淸淨하게 하여, 廣大한 뜻을 세우고, 廣大한 智慧를 내면, 慈悲가 앞에 나타난다.

보살이 처음 이런 마음을 내고는, 곧 범부의 처지를 뛰어나와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서

如來의 집에 태어나나니, 如來의 宗性에서 결정코 위없는 보리(지혜/깨달음)을 얻는다.

보살이 이런 法에 머물면 보살의 歡喜智에 머물렀다 하나니, 動하지 않는 法과 서로 應하는

까닭이니라. 佛子여! 보살이 환희지에 머무르면 여러 가지 환희와 청정한 신심과 즐거움과 

희열과 기쁜 경사와 뛰놀음과 용맹과 투쟁없음과 고뇌없음과 성내지 않음을 成就하느니라."

 

사람은 누구나 착한 마음 바탕에 착한 마음을 심고 착한 行을 잘 닦아 廣大한 뜻을 세우면 반드시

위없는 깨달음(無上正等正覺)을 成就한다 하였습니다. 즉, 우리의 올바른 마음을 잘 닦고 쓰면

바라는 것을 成就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意味인 것입니다.

 

흔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하면 元曉스님이 의상스님과 함께 중국으로 유학을 가다가 어느 무덤

에서 하루 밤을 지새웠는데 그 날 밤에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개울에 가서 물을 마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다시 물이 마시고 싶어 어제 밤에 마신 물이 生覺나 그 곳을 바라보니 해골들이

여러 개 널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 瞬間 지난 밤에 맛있게 먹었던 물이 올라오는 듯하였다고 합니다.

그 순간 世上이 환히 밝아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즉, 한 生覺이 일어나면 온갖 萬物이 생겨나

고, 한 生覺이 滅하면 萬物이 消滅한다는 것입니다. 이 해골바가지 속의 물에 대한 일화에서 보면

똑같은 물인데, 모르고 마셨을 때는 甘露水가 되었으나, 썩은 해골바가지 물인 줄 알고 나니 속이

뒤틀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인 '마음의 무한한 능력, 創造的 힘'입니다.

 

흔히 우리는 世上을 살면서 주변 與件은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 어떤 때는 그 狀況에서 幸福함을

느끼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견딜 수 없을 만큼 苦痛스러운 느낌을 갖기도 합니다. 變함없이 언제나

똑같은 내 자식, 내 남편인데 어느 때는 사랑스럽고 어느 때는 미워지는 것도 結局은 마음의 作用인

셈입니다. 이와 같이 每瞬間 느끼게 되는 幸福과 不幸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 그 마음이

만들어 내고 있는 마음 속의 세상입니다.

 

우리는 돈이 世上을 움직이는 社會, 즉 資本主義 社會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흔히

幸福의 條件이 마치 얼마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처럼 生覺하고 있으며, 그리고

實際 物質的으로 풍부하고 편리한 생활을 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狀況들은 絶對的인 것이

아닌 끊임없이 變해 가는 것들입니다. 비록 現在가 苦痛스럽다 할지라도 마음을 비워 自身이 處한

現實을 바로 보고 거기서 希望을 찾아낼 수 있는 智慧로운 마음만 있다면 언제나 幸福은 우리들

가까이에 우리 마음 속에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하찮아 보일지라도 自己가 現在 가지고 있는 것, 지금까지 이루어 온 것에 對해 自己 스스로 

自己 등을 두드려 주어 칭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自信感을 주고 自己를 强하게 해주며

成功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면 더 큰 成功을 이끌어내는 成就의 氣運을 일으키는 上昇作用을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成就를 부러워하기보다는 自身이 處한 與件 속에서 自己의 成就를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幸福한 삶으로 가는 길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祈禱는 바로 創造的

이고 無限한 能力을 갖추고 있는 本來 우리의 마음에 갖추어진 無限한 可能性의 힘을 强化하기 위한

行爲이며, 그 創造的 마음의 無限한 힘을 한 곳에 集中하여 쓰는 일인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은 生覺하는 것을 무엇이든 이루게 하는 根本 바탕이며 宇宙적 힘입니다.

마음의 힘이란 單純한 觀念이 아닙니다. 信念을 가진 生覺은 놀라운 힘을 發輝하여 創造力을 가집니다.

恒常 좋은 生覺, 좋은 感情만을 갖도록 해서 肯定的이고 열린 마음으로 우리 人生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합시다. 이제부터 生活 속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原理를 積極 活用함으로써 創造的이고 主體的

인 삶을 잘 살아 自己 삶의 眞情한 主人으로 사는 人間이 됩시다. 五感에 휘둘리는 삶이 아니라 本來

밝고 맑은 神靈한 마음의 創造性을 삶에서 發輝하도록 합시다.

 

이에 관해서 {80화엄경} [보살설계품]에서는 다음과 같은 4구의 게송을 설하고 있습니다.

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만일 어떤 사람이 過去, 現在, 未來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法界의

본성(本性)을 관찰(觀察)하여 이 세상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유명한 화엄경의 사구게(四句偈)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관(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一切를 만들어낸다는

事實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卽 마음이 極樂을 만들면 極樂이 만들어지고, 마음이 地獄을 만들면

地獄이 만들어지며, 마음이 幸福을 만들면 幸福이 이루어지고, 마음이 不幸을 自招하면 不幸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부처님의 마음도 있고, 악마의 마음도 있으며, 중생의 마음도 있고, 창조자

의 마음도 있고, 굴종하는 노예가 되려는 마음도 있습니다. 주인의 마음도 있고, 종의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들은 하나로 定해져 있는 마음이 아니라 本來로 텅~텅~ 빈 마음(虛空心)인 것입니다.

이것 虛空心이 이 세상 모든 것, 宇宙萬物을 創造하는 本來의 마음인 것입니다.

 


글쓴이 : 덕산스님

 

누가 세월을 유수와 같다 했나요

번개불에 콩볶아 먹듯
번쩍번쩍 지나가고
지나온 날을 뒤돌아보면 아쉬움만 남고
앞을 바라보면 안타 까움만이 가득하다,

흘러만 가는 강물같은 세월
붙잡을 수 없고

이제 인생을 조금 알만 하고 느낄만 하고,

인생을 바라볼 수 있을만 하니
이마엔

깊은 주름이 깊게 새겨져 있다.

한 조각 두 조각 퍼즐 같은 삶
어떻게 맞추나 걱정하다
허 세월만 보내고 퍼즐같은 삶 다 맞추어 갈만하니

너무도 빠르게 흐른다,

세월이 좀더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좀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좀더 성숙한 삶을 살았을텐데
아쉽고 안타깝지만 좀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좀더 성숙한 삶을 살았을텐데

아쉽고 안타깝지만
마지막가는 그날까지
멋지게 완성 시키며 살아야겠다.

정처없이 흘러가는 강물같은 세월이지만
살아있음으로 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루하루 주어진 오늘이라는 삶을

결코 한점 헛되지않게
가슴 깊이 느끼며

 열심히 살아가야 하겠다.

-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