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속의 연기의 가르침

2016. 4. 17. 17:4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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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속의 연기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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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표적인 대승경전인 화엄경 속에서의


연기의 가르침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합니다.





사람의 근심, 슬픔과 괴로움, 고민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결국 집착(執着)에서 생기는 것이다.


()에 집착하고, 명예와 이익에 집착하고, 즐거움에 집착하고,


자기 자신에 집착한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번뇌가 생긴다.


처음부터 이 세상에는 재난(災難)이 그치지 않으며,


그 위에 늙음(), 병고(), 죽음()은 피할 수 없으므로


슬픔과 괴로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결국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착만 끊어버리면 모든 슬픔과 괴로움은 흔적도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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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은 따져보면 사람의 마음에 있는 어리석음과 탐내어


애착하는 데서 생긴다.


어리석음(無明)은 사물을 뒤바꿔 보고, 참 이치에 눈뜨지 못하고


사리(事理)에 어두운 것을 말한다.


탐내어 애착 하는 것(애탐), 본래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눈이 어두워 쉴 사이 없이 탐()내는 욕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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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사물에 차별이 없으나 차별을 보는 것은, 이 어리석음과 탐내어


애착함이 적용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항상 그릇된 생각을 일으키고, 어리석은 생각에서


바로 볼 수 없게 되고, 자기 자신에 집착하여 그릇된 행동을 하여,


그 결과 미혹(어리석음)의 포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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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밭으로 하고, 차별을 보는 마음의 작용을 씨로 하고,


어리석음에 둘러싸여 탐내어 애착함의 빗물로 적시고,


자아(自我)의 마음으로 관개(灌漑)하여, 그릇된 생각을 키워서


미혹(迷惑)의 덩치만 커져만 간다.




그러므로 결국 근심(), 슬픔(), 괴로움(), 번뇌()의 모든 미혹의 세계를


낳는 것은 이 마음이다.




미혹의 이 세상은 단지 이 마음에서 생긴 마음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깨달음의 세계도 또한 이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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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3가지 그릇된 견해(見解)가 있다.


사람이 이러한 견해에 매달리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부정될 뿐이다.


첫째, 어떤 사람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전생의 업()에서


온다고 주장한다. (宿命論)


둘째, 어떤 사람은 그것은 모두 신()의 뜻에서 되는 것이라 한다.(神意論)


셋째,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은 우연으로 생기며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고 한다.(偶然論)


 


(1) 만약 숙명론과 같이 모든 것이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면, 이 세상에서 좋은 행위,


나쁜 행위가 모두 업()이며, 행복, 불행도 모두 업으로서 업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진보나 발전을 위한 희망과 노력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




(2) 만약 신의론과 같이 모든 것이 신()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면 신에게 복종


하는 것 이 외에는 무엇을 기대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현명하게 행동을 하고


악을 떠나 선을 행하려는 의지나 노력도 그 뜻을 잃어버리게 된다.




(3) 만약 우연론과 같이 모든 것이 맹목적으로 우연하게 이루어진다면 우리들의


노력과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은 설명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 3가지 견해는 모두 그릇된 것이다.


어떤 것도 조건에 의해서 생기고 조건()에 의해서 소멸()한다.


                                                                                                                                                          (華嚴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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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우님들


이와 같이 화엄경에도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인 연기법과 사성제가


훌륭하게 설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승 경전 공부를 해보지 않고 무조건 폄하하는 행위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석존이후 무수히 많은 대승 경전에 터 잡아온 무량한 조사와 성현들을


부정하는 일은 마치 기독교인이 자신의 성경만 공부하고 불교를 폄하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승불교는 부파불교의 어리석은 행위 때문에 태동한 것입니다.




부파불교는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아상을 내세운 나머지


수행이나 중생제도를 하지 않아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은 중도를 깨우쳤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의 주장에 집착하는 것은 편견입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먼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은 교단의 화합을 무엇보다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일부 근본불교 학자나 승려들이 대승불교를 폄하하는 주장은


교단의 화합에도 어긋나며, 중도의 길에도 먼 것입니다.


대승경전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훌륭한 불경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근본 경전이나 대승경전 모두 훌륭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나무붓다야 나무달마야 나무승가야 -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은
갖가지 번뇌 망상으로 물들어 있어
마치 파도치는 물결과 같다.

물결이 출렁일 때는
우리의 얼굴이나 모습도
일렁이고 왜곡되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물결이 고요해지면
모든 것이 제 모습을 나타낸다.
저 연못이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고 맑으면
물밑까지 훤히 보이는 것처럼...

- 화엄경중에서 

 

 

 

말해질 수 없고 보여질 수만 있는 것
- 비트겐슈타인에게 바침

그림을 그리고 있는 손을 그림으로 그리는 순간
그것은 손이 아니라 또 다른 그림일 뿐이다.

말하는 자를 말로 표현하는 순간
그것은 말하는 자가 아니라 또 다른 말에 불과하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손은
모든 그림을 통해 보여질 수만 있다.

말하는 자는 모든 말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몽지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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