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두면 이대로가 진리 / 법상스님

2016. 1. 24. 19:0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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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두면 이대로가 진리 / 법상스님


 


진리는 지금 이렇게 하루하루 우리 앞에 놓여진 있는 그대로의 삶,


이것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돈도 별로 없고, 친구도 많지 않고,


성격도 마음에 들지 않아 미래도 불투명한 지금 이대로의 나 자신이 그대로


진리이고 부처다.


이 투명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아보이는 세상, 온갖 부조리와 사기꾼들


투성이처럼 보이는 세상, 돈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세상, 사실은 바로


그런 세상이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불국정토이며 깨달음의 세상이다.




그러니 지금 이대로의 나와 세상을 내버려두고 다른 곳에서 더 나은 정토세상을


찾고, 참나를 찾으려고 하니 찾아질 수가 있겠는가.


정토는 이미 완전히 이 땅 위에 구족되어 있고, 본래면목, 참나는 이렇게 드러나


있는데 어느 다른 곳을 기웃거리며 극락을 찾고 부처를 찾으니 찾아질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임제스님은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시로써 설해주고 계신다.


“시시비비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라.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어디 있느냐고 묻지 말라 다만 흰 구름 걷히면


그대로가 청산이요 청정한 정토인 것을”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어디 있느냐고 묻지만 지금 이대로의 이 땅이 그대로


청정한 정토세계다. 다만 우리가 마음 속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옳고 그름이라는


분별심으로 이곳은 더러운 땅이고 별도로 깨끗한 땅이 있으리라고 차별심을


일으켰기에 있는 그대로의 정토를 보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시비분별의 망상의 구름만 걷어낸다면 지금 이대로가 바로 청산이며 정토라는 것이다.




다만 내 마음 속에서 이것을 바라고, 저것을 바라고, 특별한 것을 원하며,


특정한 방식대로 삶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보니 바로 그 갈구하는 바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롭다고 느끼는 것일 뿐이다.


즉, 내 스스로 특정한 방식의 삶을 원하고 갈구하면서 그 방식에 집착하게 되기에


괴로움은 시작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이 우주는 이 우주법계 나름의 운율과 조화를 가지고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근원에서는 아무 일도 없지만, 다만 인연따라 우주법계 나름의


법칙성에 의해 진리답게 흐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우주법계의 장엄한 흐름과 법칙과 진리의 길에 딴지를 걸면서,


우주의 길이 아닌 내가 원하는 길로 가게 해 달라고 생떼를 쓰고 있다.




자기 스스로 규칙과 규정을 만들어 놓고, 이렇게 되야 하고 저렇게 되면 안 되고,


몇 살에는 어떻게 될거고, 내년에는 어떤 일을 할거고, 몇 년 뒤에는 진급해서


아들 딸 낳고 아파트도 한 채 사서 떳떳하게 살아야지 하는 등의 나름대로의


길을 정해놓고 있다. 그렇게 정해 놓은 자기만의 길에 집착하고 고집하면서


이 우주법계에게 내가 만든 길을 따라 뒤따라 오라고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바로 아상이고 아집이다.




우리의 모든 괴로움은 바로 이러한 아상과 아집에서 시작된다.


아상과 아집은 나를 고집하면서 이 우주법계라는 진리의 세계를 무시하면서


내 식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집착하게 만든다.


그저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세상은 세상대로 그냥 내버려두어 보라.




세상을 상대로 시시비비를 가리지 말고, 이 입처개진의 진리의 세계를 믿고


맡긴채 뒤따라 흐르기를 선택해 보라. 나를 내려놓을 때, 오히려 삶은 더욱


자연스럽고도 완전하게 제 스스로의 다르마를 따라 아름답게 흘러 가게 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그저 그 흐름에 나를 얹어 놓고 삶을 구경하면서 즐기며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해탈(Mukti)의 허실(虛實) / 마하라지


해탈이란 미래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영원히 존재 하고 있다.

진아의 체험은 지금 여기 있다.

아무도 자기 자신의 진아를 부정할 수는 없다.


실체가 행복이며 행복이 실체다. 또한 진아가 곧 자유이다.

해탈 이라는 말은 매우 혼동을 일으킨다.

왜 해탈을 추구 해야 한단 말인가?

사람들은 구속이 있고 그래서 자유를 찾는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진정 구속이란 없으며 자유만이 있을 뿐이다.


왜 억지로 이름을 만들어 내서 그 이름을 추구하고 있는가?

바로 그 무지만 없애면 된다.

해탈이란 구속으로 부터 벗어난다는 의미이며

그것은 현재 구속이 존재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나 사실 구속은 없으며 따라서 해탈도 없다.

 


 

김치와 인생

맛있는 김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배추가 다섯 번이나 죽어야 합니다.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배추통이 갈라지면서 또 죽고
소금에 절여질 때 다시 죽고
매운 고추와 짠 젓갈에 범벅돼서 또 다시 죽고,
마지막으로 장독에 담겨 땅에 묻히면서 죽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인생도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삶속에서 김치처럼
풍부하고 맛있는 숙성된 삶을 살아 가기 위해서는
'욱!'하고 솟구치는 성질을 죽여야 하고,
자기만의 외고집을 죽여야 하고
남에 대한 삐딱한 편견과 고정관념도 죽여야 합니다.

또한 자기만의 욕심을 챙기기 위해
남을 배려하지 않는 성질도 죽여야 합니다.
그래서 나 혼자가 아니라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여
서로 win-win 하며 살아가야....
서로 밝은 유대관계가 지속되고,
즐겁고 행복한 삶이 이뤄지리~라 생각합니다.

맛있는 김치가 서서히 숙성되어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고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듯
우리의 삶도 이렇게 숙성시켜
풍부한 삶의 맛으로 우러나도록 하~여
서로를 배려하며 서로 소통하는
즐거운 삶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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