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제 스님의 기이한 생물관과 우주관/강병균교수

2016. 2. 6. 19:0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728x90

 


진제 스님의 기이한 생물관과 우주관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 진실은 빛과 같이 눈을 어둡게 하지만,
  거짓은 반대로 아름다운 저녁노을처럼 모든 것을 멋지게 보이게 만든다 <알베르트 까뮈>

 

- 깨달음은 누구나 가능할지 모르나 과학은 아무나 이해할 수 없다
  필자 같은 범인의 머리로 연구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믿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과학적 지식은 그렇지 않다
  스포츠나 정치에 대해서는 누구나 떠들어댈 수 있으나 과학은 그렇지 않다

                                                

얼마 전에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조계종 현 종정 진제스님에 대한 것이다. 진제스님은 ‘남진제 북송담’으로 유명한 한국선불교의 양대 산맥이다. 진제 스님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경천동지할 내용을 실어놓으시고 있다. 사이트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www.jinje.kr/03_teachings/03.php 법문 Q&A 48, 49항을 보시기 바란다.
 
필자는 신랄하게 비판할 것이다. 그 이유는 조계종 종정스님의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초대 종정 한암 스님 이래로 종정을 지내신 만암 동산 금오 석우 효봉 서옹 성철 서암 월하 혜암 법전 스님 등, 평생을 목숨을 걸고 수행하신, 기라성 같은 선사(禪師)들의 위상은 한국불교계에서 중국 당송시대의 조사(祖師)들과 맞먹는 위상을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I. 진제스님의 ‘진화론과 우주론’ 부정

 

2013.7.1~2 양일간에 등록된 진제 스님과 시자 사이의 문답이다. 시자는 합리적인 질문을 하였지만, 스승이 제자를 무지(無知)·무명(無明)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시자는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해서 어느 것이 맞는지, 그리고 빅뱅을 거론하며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합리적인 질문을 했지만 스승은 진화론(evolution)과 우주론(cosmology)을 전면 부인했다. 이는 가톨릭이 근 2,000년 동안 지동설을 부인한 것과 맞먹는 일이다. 기가 막힌 일이다. 창조주를 믿는 유신론자들인 기독교인들과 회교도들만 부인하는 줄 알았더니, 등잔밑이 어둡다고 불교인도 부인하고 있었다. 그것도 종정스님이! 가장 도가 높다는 분이!
 
이와 유사한, 괴이하고 통탄할 현상과 사상이 불교계에 만연하고 있다. 한마음선원 창시자 대행 스님은 ‘한마음 요전’에서 수성, 금성, 화성, 목성에 외계인이 살고 있다고 주장하고, 진화는 마음이 설계해서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동물이 스스로 날개가 생기라고 마음을 내자 날개가 생겼고, 꼬리가 없어져라 마음을 내자 꼬리가 없어졌다고 주장한다. 흉측하게 생긴 생물(공룡)이 사라진 이유는 ‘(공룡의) 마음이 밝아져서’라고 주장한다. 그럼, 몸이 흉측한 생물(공룡)은 마음이 밝아져 스스로 멸종을 선택한 것이고, 뒤에 나온 다른 생물들은 마음이 밝은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어두워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인가? 이런 기괴한 사상을, 추종자들은 스승의 사상이라고 죽기 살기로 애지중지하고 광적으로 맹신한다. 그리고 이런 주장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일치한다고, ‘적반하장 무분수’(賊反荷杖 無分數) 격으로, 주장한다.


대행스님 이외에도 ‘외계인 지구인창조설’을 가르치는 스님들도 있다. 이미 사기로 밝혀진 아담스의 ‘금성인에 의한 지구인창조설’을 믿는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불교인들이 ‘깨달음을 얻으면 뭐든지 다 알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최소한 생명과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 알게 된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조계종 제13대 종정, 진제스님의 발언을 소개한다.
 
“사람은 본시 사람 모양이다. 유인원이 진화해서 사람이 됐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만물은 원래 각자의 모양으로 존재해 왔다. 말은 본시 말이었고, 개는 본시 개였다.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현대 과학자들의 빅뱅이론은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현대과학의 수준이 아직 그 까지는 안 된다. 우주는 원래 처음부터 이런 상태였다.”

 

진제 종정과 시자 사이의 질문·대답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49. 진화론과 창조론은 어느 것이 맞습니까?

 

[시자] 종정예하, 과학계에서는 생명체가 진화해서 지금의 모양을 갖췄다는 진화론과, 누군가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는 창조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종정예하] (웃으시면서) 형형색색아이가. 본시부터 사람은 사람 모양이었다. 유인원이 진화해서 사람이 됐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시자] 그럼 모든 만물은 원래 각자의 모양으로 존재해 왔습니까?

[종정예하] 그렇지, 형형색색이다. 말은 본시 말이었고, 개는 본시 개였느니라. 물속의 수 많은 만물들도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다 본시 각자의 모습으로 존재해 왔다. (나무를 가리키시며) 나무도 겉모습은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분명히 다 각자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느냐.

[시자] 그럼 누군가 우주만물을 창조했다는 게 맞습니까?

[종정예하] (고개를 저으시며) 그것도 안 맞는 말이다. 누군가 만들었다는 것은 말짱 거짓말이다.

[시자] 그럼 우주만물은 누가 만든 게 아니라 스스로 원래부터 이렇게 각자의 모습으로 존재해 왔습니까?

[종정예하] 그렇다. 형형색색 아니가.

 

48. 외계인이 있습니까? 우주는 빅뱅으로 생겼습니까?

 

[시자] 종정예하, 외계인이 있습니까?

[종정예하] 있지.

[시자] 종정예하께서 중생은 무한한 전생이 있다고 하셨는데, 무한한 전생이 지구 생명체에 한정된 것입니까, 아니면 전우주 생명체까지 포함한 것입니까?

[종정예하] 불가설 불가설이니라. 지구만이 지구가 아니라 우주에 무한한 지구가 있고, 지구 안에 무한한 우주가 있다.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시며) 별 중에 지구 아닌 별이 어디 있더냐?

[시자] 현대 과학자들은 빅뱅이론이라고 해서 큰 별이 폭발함으로써 그로 인해 우주가 생겼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종정예하] 아니다. 그건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현대과학의 수준이 아직 그 까지는 안 된다.

[시자] 그러면 우주는 처음에 어떻게 생겼습니까?

[종정예하] 일체유심조 아니가.

[시자] 그러면 우주는 원래 처음부터 이런 상태였나요?

[종정예하] 처음부터 이 상태였느니라.

 

 

  

▲ 미국 라마(Lamar)에 있는 반(反) 과학, 기독교 대형 광고. “빅뱅이라고? 농담이 분명해“,  ”하나님으로부터“.

미국에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줄 알았더니 한국에도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광고는 돈이 든다. 무료가 아니다

II. 깨달음은 근본주의적 무지로부터 자유로운가

 

사람들은 종교에서 ‘생명과 우주의 기원’, 즉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에 대한 답을 얻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진화론과 현대우주론을 부인하는 종정스님의 대답은, “도대체 깨달음이란 것이 무엇인가?”, “도대체 깨달았다는 사람은 무엇을 깨달은 것인가?” 하고, 근본적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어처구니없고 황당무계한 내용들이다. 수십억 년 전에도 사람과 생물들이 지금 모습대로 존재했다니, 그럼 지구가 생긴 후 “요이, 땅!“ 하고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생물들이 무(無)에서 유(有)로 생겼다는 말인가? 그럼, 지금도 어느 날 갑자기 ‘까마귀너구리’ 같은 ‘듣보종’(듣도 보도 못한 신종 생물)이 나타나야할 것이 아닌가?

도대체 종정예하 이분은 과연 합리적인 생각이 있는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선방을 덥히는 귀뚜라미보일러는 누가 만든 것인가? 머리를 써서 만든 것이지 신통력으로 만든 것이 아니지 않은가? 승려들이 산에서 망상을 피우고 있는 동안, 속인들은 거친 자연과 싸워가며 머리를 쥐어짜내서 우주·자연의 비밀을 알아내어, 중생의 삶을 편안하게 하며, 중생들을 과거의 무지와 망상으로부터 끌어낸다. 그런데 일부 몰지각한 승려들은 이런 중생들을 무지와 미신의 어마어마한 무명중력(無明重力)으로 잡아끌어 주저앉힌다. 동굴귀신처럼 칠흑 같은 동굴 속으로, 알타미라 동굴 속으로! 중생을 무명(無明)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무명 속으로 빠뜨린다. 이들은 세속과 담을 쌓고 살아, 세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전혀 모른다. 생명과 우주에 대해서 속인들이 어떤 놀라운 발견을 하는지, 또 패러다임을 바꾸게 하는 경천동지할 발견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여기엔 속인들의 책임도 크다. 큰스님들을 신격화해서 큰스님들에게 새로운 바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비주의에 빠진 게 이유일 수도 있다.)

바둑고수 이야기가 있다. 어느 겨울날 개량한복에 긴 머리를 동여맨 중년의 남자가 도심지 기원에 나타났다. 주인이 대국상대를 붙여주려고 따뜻한 오차를 대접하며 물었다. “혹시 기력이 어느 정도나 되시는지요?” “암말 말고 제일 센 사람을 붙여주세요!” 기세에 눌린 기원주인이 직접 상대해 보니 10급인 자기한테도 5점은 붙여야 하는 하수였다. 난타에 연패를 당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손님이, “기다리라”고 하더니, 며칠 후에 눈이 펑펑 나리는 날 수염이 허연 노인을 동반하고 나타났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센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기원주인이 바둑판 앞에 엄숙히 정좌하고 겨뤄보니 중년남자보다는 나았지만, 거기가 거기인 몇 점 하수였다. 대마가 무자비하게 학살당한 노인이 한다는 말이 “허~참! 악령에 씌운 것인가? 아수라를 만난 것인가? 도깨비에 홀린 것인가? 도시는 정말 머물 곳이 못 되는 구나! 얘야, 어서 산으로 돌아가자”이었다. 둘은 심산에서 도를 닦는 사제지간이었다. 둘이 한가할 때 바둑을 둔 것이 벌써 수십 년이었다. 제자는 스승의 행마와 묘수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둘은 세계 1, 2위의, 아니 우주 1, 2위의 고수였다. 그들에게는 자기들 둘만이 바둑의 비밀을 다 아는 일체종지(一切種知)자였다. 바로 종교인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우주의 일체 비밀을 다 아는 일체종지(一切種知)자! 자기 성에 갇혀서 산속 토굴에 살면 십중팔구 이런 병에 걸리며, 이미 걸려있다면 병세가 더욱 심해진다. 몹시 조심할 일이다.

생각 외로 많은 스님들이 진제 스님처럼, ‘인간은 처음부터 인간으로 존재했다’고 믿는다. 84,000경 분량의 방대한 분자생물학·유전자학·천문학·물리학·화학·화석학·고고학·뇌과학·생물학·발생학·인류학·지질학·우주학 등의 과학적 증거가 산처럼 쌓여있는,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의 주장처럼 진화론이 거짓이어서 인간이 ‘단세포생물’ 아메바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은 처음부터 인간이었다면, 지구상 최초의 인간은 갓난아이였을까, 아니면 어른이었을까? 대체, 몇 살짜리였을까? 인간은, 갑자기 모년모월모시에 ‘뿅!’ 하고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 나타난 것일까? 마찬가지로 일관되게, 스님들은 ‘말은 말 모양으로’ ‘개는 개 모양으로’ 처음부터 그리 생겼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개가 “뿅” 저기서 말이 “쁑”, 소 돼지 닭이 “뿅! 뿅! 뿅!” 나타나느라 정신없었겠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은, 지금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말 이상하다! 만약 모든 생물이 일시에 “뿅” 하고 생겼다면, 이것은 창조주만 없다 뿐이지, 기독교 창조설과 정확히 같다.) 태고 이래로 전혀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완벽한 정태우주론(靜態宇宙 steady-state cosmology 定常宇宙論)이다!

 

만약 이게 아니라면 지구는 거의 무한한 세월동안 존재해왔다. 그동안, 적어도 46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사람은 계속해서 사람을 낳고, 개도 말도 계속 존재해서 새끼를 낳아온 것이다. 이게 바로 진제스님이 말한 ‘우주는 처음부터 이런 모양이다’라는 뜻이다. 생물의 진화와 우주의 빅뱅은 없었다는 말이다. (가톨릭은 크게 회심悔心하여 이제는 진화를 인정하고 빅뱅도 인정하는데 불교는 부인한다. 한쪽은 무식에서 유식으로 비상하고, 다른 쪽은 유식에서 무식으로 추락한다. 가톨릭 교세가 커지고 불교가 축소되는 이유가 짐작이 간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은 살아있는 청동기시대의 화석이다! 그러니 불경에 나오는 “아난이 과거 오백생 동안 바라문이었다”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문자 그대로’ 믿는다. 족히 (한 세대를 30년으로 치면) 최소한(!) 15,000년 동안이나 바라문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때는 인간이 크로마뇽인처럼 혈거(穴居)하는 원시인이었는데, 농경도 시작이 되지 않았는데, 그리고 아직 아리아인들이 인도로 쳐내려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바라문 계급이 존재하는가? 쑥대 같은 머리에 손에는 돌도끼를 들고 몸에는 가죽옷을 걸치고 동굴에 사는 바라문이, 상상이 가는가? 성경을 축자적으로, 문자 그대로 믿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니 이들이 주장하는 무한 윤회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들은 끓는 물에 집어넣어 사람을 고문하는 야만적인 지옥으로의 환생을 믿고, 디즈니 캐릭터 같은 아귀로의 환생을 믿고, 아바타 등의 영화에 등장하는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괴물 같은 아수라로의 환생을 믿는다. 사실 이들은 우리 뇌가 만들어낸 ‘생체 컴퓨터그래픽 이미지’(bio-CG image)이다. 심지어 외계인은 불경에 등장하는 하늘나라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이 사람은 ‘목성에 외계인이 산다고 주장하는 대행 스님’의 제자이다. 그럼 사람이 죽도록 선행을 쌓으면, 수천도 고온의 화탕지옥 같은 목성에 가서 태어나는가? 대행 스님의 주장에 의하면 한 생각만 내면 목성같이 초고온으로 뜨거운 곳에서도 끄떡없이 잘 살 수 있단다. 그렇다면 왜 자신은 한 생각을 내어 치통을 이기지 않고 치과치료를 받았는가? 수천도 고온의 화탕(火湯)지옥에 사는 것과 치통을 참는 것, 이 둘 중 어느 쪽이 더 쉽겠는가? 독자 여러분이라면 어느 쪽을 택하시겠는가? 이들은, 불교상자에 집어넣고 신비주의로 포장을 한 기괴한 망상으로, 순수한 중생들의 마음을 오염시킨다.

이게 다 “깨달음을 얻으면, ‘우주와 생명의 기원’ 등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망상 때문이다. 교주도 그리 믿고 신도들도 그리 믿는다. 소위 일체종지(一切種知)인데, ‘대지도론’, ‘구사론’, ‘밀린다팡하’ 등의 경전에 기원을 둔다. 

우리 눈앞에 드러난 명명백백한 사실을, 즉 진화론과 우주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부인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런 사람들의 말을 맹신(盲信 blind faith)할까? 정보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 때문이다. 지식은 항상 비밀이다. 감추어져서 비밀이 아니라 다 드러나 있지만, 자신의 의식수준과 지적수준이 못 미쳐서 못 볼 뿐이다. 비밀지식은 존재한다. 단, 다른 사람이 감추어서 비밀이 아니라, 다 드러나 있으나 자신이 못 봐, 비밀일 뿐이다. 우주, 자연, 인생, 생명체, 몸, 마음 등 모든 것이 그렇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연도 말한다. 부처님은 “나는 숨기고 안 가르쳐준 것이 없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을 다 가르쳤다”고 말씀하셨고, 자연은 “나는 숨기고 안 보여주는 것이 없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다 보여준다“고 말한다. 어느 경우나, 눈이 있고 마음이 있는 자는, 눈을 열고 마음을 뜨고 보면 될 일이다. 그런데 지성이 마비된 종교에서는, 특히 사이비 종교에서는 아는 사람은 교주뿐이고, 신도들은 교주가 하는 말은, 면밀히 검토해 보지 않고, 무엇이든지 무조건 맹신한다. 

이런 사람들은 심지어, 아직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믿지 않고 평평하다고 믿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한번, 직접 만나, 물어보고 싶다. 종종 단순한 질문은 엄청난 비밀을 밝히기 때문이다. 스님들을 국가고시로 선발해야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소정의 지식을 갖춘 사람들만을 엄선해서 승려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조선시대 명종조에 실시된 승과고시를 통해서 배출된 분이 그 유명한 사명대사이다. 그러므로 천인사(天人師 하늘과 사람의 스승)가 되려면 최소한 그 시대의 보편적인 교양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눈부시게 과학과 학문이 발달한 지금 이 시대에, 겨우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나 신라시대 정도의 교양만 갖춘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III. 망상통(妄想通)과 망상통(妄想桶)

 

절집의 텔레비전이 고장 나면 전파상을 부르고, 컴퓨터가 고장 나면 기술자를 부르며, 귀뚜라미보일러가 고장 나면 대리점을 부르지, 절대로 진제스님 같은 큰스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절집사람들도, 심지어 전법제자들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진화론과 우주론에 대해서는 진제스님의 말을 믿는가? 혹시 진제스님은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 것은 아닌가? 남들은 임금님이 벌거벗은 줄 아는데, 본인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벌거벗은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임금님! 다른 사람들은 (속으로는) 진제 스님의 ‘진화론과 우주론’에 대한 견해를 비웃는데, 진제 스님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 말을 믿는 줄 아는’ 벌거벗은 종정님. 그리고 진제스님은, 왜, 자신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배울 생각을 안 하시는가? 우주 최대의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가장 큰 신통력은 천안통이 아니라 ‘망상통(妄想通)’이다, 소위 ‘환망공상통(幻妄空想通)’이다. 진실을 모두 거짓으로 물들이거나 바꿔놓는, 신비하기 이를 데 없는 능력이다. 종교를 잘못 믿으면 제일먼저 망상통을 얻는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다른 신통력획득은 포기하고, 이 망상통을 마구 휘둘러 대서 중생을 망상으로 이끌어,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이 세상을 초특대형(ultra super size) 망상통(妄想)으로 만든다.

 

종교지도자들이 솔직히 양심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우리도 잘 몰라요. 사실은 전혀 몰라요. 배운 게 있어야지요. 좀 아는 건, 어떻게 하면 마음의 번뇌를 가라앉혀 고통을 없애는지, 그 방법이지요. 그 외에 우주·생명의 기원은 모릅니다. 우리 스승이신 부처님도 대답하지 않으신 일인데, 저희가 감히 이러쿵저러쿵 답을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라고 말하면 필자도 할 말이 없다.


기원원장에게 열심히 바둑을 배우듯이, 골프코치에게 열심히 골프를 배우듯, 스님들에게 번뇌를 없애는 법을 배우면 될 일이다. 그분들로부터 거룩한 행을 본받아 배우면 된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이 전혀 문외한(門外漢)인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들보다 더 잘 안다고 주장하니, 그리고 자신의 지식에 대한 ‘무오류성’(無誤謬性 infallibility)을 주장하니 한마디 비판을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걱정되는 일이 있다. 만약 종정스님의 ‘불교관과 깨달음’이라는 근본사상을 지탱하는 것이, ‘반(反)진화론과 반(反)과학’이라면 그땐 어떻게 할 것인가? “무너지는 사상누각(沙上樓閣 a house of cards)을 과연 누가 지탱할 것인가? 지금까지 아늑하게 살아온 집이 허물어지는 것을, 누군가 막을 수 있을까?” 아마 이런 원초적이고도 근본적인 불안과 두려움이, 성속(聖俗)을 불문하고, 불교인들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종교인들의 마음속에도 있을 것이다. 

 

 

IV. 진제스님은 사과하시라: 종교인은 면죄부를 받았는가

 

세속의 최고직위인 대통령도 잘못하면 대국민 사과를 한다. 수하 국무총리 이하 장차관들도 그리하고; 국민들로부터 철새라고, 거짓말쟁이라고, 그리고 파렴치한 인간들이라고 비웃음을 받는 전과자가 수십 프로를 차지하는 국회의원들도 그리하며; 심지어 (수십 년 전만 해도 ‘딴따라’라고 비하받던) 연예인들조차도 잘못된 행위를 하면, 또 음주운전 등 천 만이 넘는 애주가들 눈에는 별거 아닌 것 같은 행위를 해도, "공인(?)으로서 차마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고 참회반성의 징표로 활동을 중단한다. (벌거벗고 그 짓을 하는 것을 대형스크린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다. 장관과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들은 다 빠져나가고 연예인들만 벌 받는다는 얘기다.) 돈만 아는 장사꾼이라고, 탐욕의 화신이라고, 비난받는 재벌들도 잘못하면 석고대죄를 하듯 국민들에게 사과한다.

 

그런데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의, 즉 모든 중생의 영적인 건강과 마음의 행복을 책임지는 불교계 최고의 영적수장인 종정(宗正)이 인류과학문명의 금자탑(金字塔 pyramid)인 '진화론과 우주론'을 부인하는 발언을 했다면, 그래서 (올바른 지식추구를 막아) 사람들의 영적인 건강을 해치고 (불법을 지극히 합리적인 가르침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면, 즉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는 것이 마땅하다.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이 크며, 공인(公人)에게는 사실상 언론의 자유가, 즉 함부로 무책임하게 말할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허튼 소리를 하고도 무사할 공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이한 일은 우리 사회에서 잘못을 하고도 사과와 참회를 하지 않는 (그리고 세금도 내지 않는) 유일한 자들이 바로 종교인들이라는 점이다. 누가 당신들에게 그런 '면죄부‘(免罪符 indulgence)를 주었단 말인가?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게 있다. 평소 ‘참나’를 찾자고 선양하시는 진제 스님의 ‘진화론과 우주론’ 부인 발언은 ‘참나’가 한 것인가? 만약 아니라면, 누가 한 것인가? 진제 스님은 자신이, 구경각을 얻어 오도송을 읊은, 부처님으로부터 끊어지지 않고 내려온 정법을 이은 제79조(祖)라고 하니 분명 참나를 찾았고 어묵동정 중에 항상 참나만 현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위험하다. 특히 지고의 지위에 오르면 위태롭기 그지없다. 말하려하고 가르치려들지, 들으려하지 않고 배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명은 마음이 없는 나무보다 짧고, 몸집은 소·말·당나귀 같은 가축보다 작은 인간이 망상과 과대망상은 우주크기이다! “우주와 하나가 되고,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주장한다. (당신은, 설사 바퀴벌레가 깨달음을 얻어서 우주와 하나가 되었다고 주장해도, 그러거나 말거나 발로 밟아 죽이리라.) 인류를 집단적으로 보면, 의식이 발달할수록 깨달음의 질과 양이 향상되고 커지지지만, 동시에 망상 역시 질과 양이 향상되고(? 정교해지며 복잡해지고) 커진다.  

 

천동설을 부인하며 지동설을 주장하던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에 걸어 고문을 하겠다고 겁을 주며 의견을 번복하라고 협박하고(결국 성공했다), 살해당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조르다노 부르노의 혀에 못을 박아 (십자가에 고정시켜) 지동설주장을 막고 화형을 시킨 중세 기독교의 '광신과 무지'가 21세기 한반도에 부활하면 안 된다. 설사 밖으로 드러난 고문과 화형이라는 종교재판의 외형적인 독(毒)이 없어도, 안 된다. 종교의 종류를 막론하고 안 된다. ‘광신과 무지’는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겨자씨처럼 작은 광신과 무지도 수미산같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중세 기독교암흑기로 돌아간다.) 그런데 ‘진화론과 우주론’의 부정은 인류 등정사(登頂史)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망상의) 크기가 이미 히말라야 고봉수준이다.  

 

그러므로, 진화론과 우주론을 부인하는, 진제 종정은 참회하고 사과하시라!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시라.

특히, 과학입국의 정신으로 진리를 찾아 불철주야 연구에 몰입하는 과학자들과, 진화론과 우주론이 출제될지 모를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즉시 사과하시라.

 

대한민국에 유아론(有我論 atmanism)적 사이비 불교가 판치는 데는, 유아론(有我論)에 경도된 조계종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 수백 개 불교 종단 중에 수십 개가 이름에 '조계종'을 집어넣을 정도로, 조계종은 불교 최대종단이자 종가(宗家)이기 때문이다.

 

 

V. 망상중죄 금일참회(妄想重罪 今日懺悔)

 

유한한 인간인 우리는 혹시라도 망상에 빠지지 않나 항상 삼가 경계해야 하며, 자신의 망상이 드러나면 그 즉시 참회해야 한다. 실로 ‘망상중죄 금일참회’(妄想重罪 今日懺悔)가 아닐 수 없다! (필자 역시 매일매일 자신의 망상을 목격하고 참회하며 산다. 그런데 망상을 알아차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만 돌아보면 알아차릴 수 있는 단순한 망상이 아닌, 자신의 지식과 지혜와 통찰력을 넘어가는 대형 망상은 ‘외부의 충격’, 즉 ‘충격적인 경험과 충격적인 정보유입’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인류 과학·문명·종교·역사를 공부하면, 망상의 양과 질(정도)을 상당히 줄이고 낮출 수 있다. 종교만 공부하면 지극히 위험하다. 여러 분야를 동시에 공부해야 한다. 종교는 인류문화 중 가장 완고하고 수구적이고 보수적이며, 세계는 연기적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
두 눈이 있어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두 귀가 있어 
감미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두 손이 있어 
부드러움을 만질 수 있으며 
두 발이 있어 
자유스럽게 가고픈 곳 어디든 갈 수 있고, 
가슴이 있어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있으며,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하루하루의 삶의 여정에서 
돌아오면 내 한 몸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날 반겨주는 
소중한 이들이 기다린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내가 누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아침에 보는 
햇살에 기분 맑게 하며 
사랑의 인사로 하루를 시작하며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에서 마음이 밝아질 수 있으니 
길을 걷다가도 
향기로운 꽃들에 내 눈 반짝이며 
한 줄의 글귀에 감명받으며 
우연히 듣는 음악에 
지난 추억을 회상할 수 있으며 
위로의 한 마디에 
우울한 기분 가벼이 할 수 있으며 
보여주는 마음에 
내 마음도 설레일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누리는 행복을 생각합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건강한 모습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이 아름다운 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오늘도 감사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