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와 마일리지

2016. 3. 12. 19:4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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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와 마일리지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얼마 전에 대한항공을 탔더니 승무원이 찾아와 "교수님, 잘 모시겠읍니다" 하며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아름다운 미인이 면전에서 단순호치(丹脣皓齒)를 드러내고 황홀한 미소를 날리며 달콤한 말을 하니, 정신이 아득하다. 승무원이 떠나자 가까스로 정신이 들고 그제서야 의문이 생긴다. "어떻게 내가 교수인 줄 알았을까? 왜 나에게만 인사할까?"

고승이 임금님의 초청을 받았다. 누더기를 걸친 남루한 모습의 고승을 대궐 문지기가 비루먹은 개를 본 듯 모질게 쫓아냈다. 다음날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무사히 대궐문을 통과한 고승에게 임금님이 산해진미를 대접했다. 고승은 음식을 먹지 않고 옷에 붓기 시작했다. 무슨 연유로 그러시느냐는 임금님의 질문에 고승이 대답했다. "궁에 들어온 것은 소승이 아니라 이 옷입니다. 따라서 음식도 소승이 아닌 이 옷이 먹어야 하지요."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는데 그 후 대한항공을 탈 때마다, 잊지 않고 승무원이 찾아와 "잘 모시겠다"고 인사를 한다. 비즈니스석도 아닌 싸구려 이코노미석에 앉은 사람에게, 그것도 세계는 고사하고 국내에서조차도 무명인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인사를 차리다니. 얼떨결에, 하지만 무척, 기분이 좋았다. 10시간이 넘는 대륙간이동이 짧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어느 날은 공항라운지 무료이용까지 제공받았다. 입구에서 라운지 직원에게 항공권을 건네는데 내 마일리지가 눈에 들어왔다. 50만 마일이었다! 보잉 747기만 한 크기의 방망이로 세차게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대한항공직원들이 인사를 한 대상은 내가 아니라 마일리지였다. 30년 동안 쌓은 마일리지! 마일리지에게 한 인사를, 내게 한 것이라고 오지게 오해하고 바보처럼 즐거워했던 것이다. 임금님에게 초청받은 고승의 일화가 내게 벌어질 줄이야! 어찌 이런 일이! 이 세상의 우화는, 그런 일이 아직 내게 벌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다 실화임이 분명하다.

백화점은 한 번 쇼핑에 수천만 원을 쓰는 부자를, 라스베이거스 같은 도박장은 한 번 베팅에 수억 원을 거는 고래(whale)를, 권력해바라기들은 한 번 손짓에 작게는 수천만 원에서 크게는 수억 수십억 수백억 수천억 원까지 이권과 자리가 날아왔다 날아갔다 하는 국회의원과 고위공무원과 거물정치인을 끔찍이도 대우한다. 또 대중은 젊고 아름다운 배우들에게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이런 대우와 찬사가 주는 황홀한 느낌에 빠지면 아편쟁이가 된다.

하지만 그들은 당신의 돈, 권력, 미모가 다하면 당신을 길가의 개뼉다구 보듯 상대도 안 한다. "당신, 그렇게 날 좋아하고 존경하던 게 바로 엊그제인데 어떻게 그렇게 돌변할 수 있느냐?"고 하소연해도 아무 소용없다. 일세를 풍미하던 가왕(歌王) 조용필의 증언에 의하면, 거짓말처럼 어느 날 갑자기 공연요청이 '딱' 끊겼다고 한다.

대중은 무섭다. 돈도 권력도 미모도 없는, 힘없는 대중의 유일한 무기는 '접기'이다. 가차없이 사랑과 존경을 접기! 속된 말로 '헹가래치고 안 받아주기'이다. 사실상 '땅에다 패대기치기'에 해당하지만, 다치지 않고 무사히 떨어지는 건 당신 책임이다. 공중에 '붕' 떠 있을 때 이미 걱정을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착지하나" 하고.

젊음도 마찬가지이다. 굴러가는 소똥에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세상이 즐거운 건 젊기 때문이고, 세상이 눈부시게 찬사를 보내도 그건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젊음에게 보내는 찬사이다. 젊음이 달아나는 순간 즐거움도 찬사도 덩달아 달아난다. 그때 저 밑바닥에서, 추락하는 당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건 힘없고 웃음기 없는 늙은(老) 병사(病死)뿐이다. 추락하는 마음이 성하려면 낙법(落法)을 익혀야 한다. 몸에는 유도가, 마음에는 불법이 최고의 낙법이다.

하지만, 젊음과 달리, 쌓은 복은 쓰지 않고 아낄 수 있다. 마일리지를 써버리는 순간 환대도 사라진다. 천국에서 하계(下界)로 추락한다.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아니 될 수 없다. 이는, 몸과 마음을 섬기고 사는 사바세계인들에게 있어서,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위 일화를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도 가능하다. 이 세상이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걸 어찌 남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 그건 도둑놈 심보다. 받고도 고마움을 모르는 것보다는, 받고 사례할 줄 아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든다. 내가 남에게 무조건적으로 베풀지 못하는 것은 반성의 대상이나, 남이 내게 하는 사례는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감사의 대상이다. 이 점에서 충실한 고객들에게 머리 숙여 사례하는 대한항공 측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생각을 뒤집는 인생사전

 

 

몇 안되는 미래형 명사

처음엔 '꾸다'라는 동사와 붙어 지내지만

꾸다, 꾸다, 꾸다 를 반복하여 주문을 외우면

어느새 '이루다' 라는 동사와 붙어있다.

 

 

천국

 

걱정이 하나도 없는 나라가 아니라

걱정보다 희망이 아주 조금 더 많은 나라,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

 

 

걱정

 

걱정을 읽을 때

걱정으로 읽어야 할 지

'걱쩡' 으로 읽어야 할 지 고민 하다가

'걱쩡' 으로 읽으면 걱정을 '걱쩡' 으로 읽는게

자음접변 인지 경음화 인지 물어 볼까봐,

걱정하고 걱정하다가 그냥 걱정으로 읽고 마는 것,

즉, 걱정의 대부분은

안 해도 되는 걱정 또는 해도 소용없는 걱정.

 

 

 

 

자신감

 

두려움, 외로움, 괴로움, 슬픔, 아픔,

절망, 낙심, 걱정, 고민, 고통, 포기,

패배, 실패, 실수, 좌절, 비관, 퇴장,

한숨, 낙오, 위기, 추락, 탈락, 눈물.....

이 모든 말들의 반대말.

 

 

눈물

 

마음 다이어트..

살을 빼면 몸이 가벼워지지만

눈물을 흘리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 생각을 뒤집는 인생사전 101 중에서...정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