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놓고 어떻게 사나?

2016. 4. 24. 11:0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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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는 [조각배]이다.



다 놓고 어떻게 사나?


"많은 법우님들께서 '방하착' '방하착' 하니
그렇게 다 놓으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많이들 궁금해 하셨습니다.
다 놓고도 일체를 다 할 수 있는 도리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

방하착, 방하착 하니
많은 이들이 의심을 가집니다.
그러면 다 놓고 나면 어떻게 하지...
아무것도 하지말고 그저 돌처럼 바위처럼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방하착(着)이란
착심(着心)을 놓으라는 것이지
아무것도 하지말고 그저 멍 하니
바보처럼 세상을 소극적으로 살아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집착하는 마음을 놓으라는 것입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 하였습니다.
마땅히 마음을 내되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내라...

마땅히 적극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일입니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게으르지 말고 살아갈 일입니다.
다만 마음을 한 쪽으로 머물러 착(着)을 두어선 안됩니다.

게으르게 사는 것은
복을 까먹는 일일 뿐입니다.
적극적으로 복을 짓고 순간 순간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 밝은 깨침의 마음으로 늘 순간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돈을 벌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벌되 돈에 대한 '집착'으로 벌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 그 자체에 마음이 머물면
많이 벌게 될 때 즐거울 수 있지만
돈을 벌지 못하게 되면 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돈에대한 집착을 놓으면
많이 벌어야 한다는 집착을 놓았기에 적게 벌어도 여여하며,
많은 돈을 벌었어도
다른 이를 위해 보시를 할 때
아깝다는 마음 없이 무주상보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돈에 대해 집착이 없으니 돈에 머물지 않는 무주상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랑을 해야지 '집착'이 되어선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을 위해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이 떠나가더라도 그 사람이 잘 된다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아닌 '집착'이라면
나와 함께 해서 괴롭더라도 붙잡고 싶어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다는 이유로
그를 증오하고 괴롭히며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가만히 살펴봅니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집착'일 뿐입니다.
'내 여자' '내 남자'라고 하는 또 다른 아상일 뿐입니다.

상대방이 '내것'이라는 생각
나 좋은 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아집(我執)'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맑고 순수하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함이 없이 하라는 도리인 것입니다.

이렇듯 집착을 놓아버리는 일이야말로
끊임없이 계속되는 욕망의 사슬을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괴로움의 연장인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순간 순간 올라오는 경계를
그저 주인공, 불성, 한마음, 본래면목, 참나라고 하는
그 지고함 속에 넣고 녹이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녹이는 것입니다.

일체의 모든 경계를 이렇듯
내 안에 밝은 자리에 놓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방하착.. 놓고 가는 이는 아름답습니다.
언제나 떳떳하고 당당합니다.

그 어디에도 걸림이 없으며,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기에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항상 여여합니다.

함이 없이 늘 묵묵히 일을 해 나갑니다.
이렇듯 함이 없이 해야합니다.
일을 하며 '내가 한다'는 생각이 끼어들면 위험합니다.
그렇기에 그 마음
'내가 한다'고 하는 그 아상, 아집을 놓고 가는 것입니다.

방하착엔
내가 한다는 마음이 없기에
설령 괴로운 경계가 닥치더라도
괴로움의 주체가 없기에 하나도 괴로울 게 없습니다.

내가 괴로워야 하는데 아상을 놓았으니
괴롭지 않은 것입니다.
아니 괴로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괴로움'이란 현상만 있을 뿐
내가 괴롭다는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됩니다.
나를 놓고 나면 이렇게 자유롭습니다.

 

★ 경주 불국사/석굴암 외....

 

현사스님이 말씀 하셨다

 

"佛道는 탁 트여 있어서 정해진 길이 없으니,

아무 방법도 쓰지 않아야 해탈에 이르는 방편이며

어떠한 마음도 내지 않아야  도인의 마음이다.

 

또한, 불법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속에 있지 않으므로 흥망성쇠가 없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라도 세웠다 하면 眞에 어긋나니

인위조작에 속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만약 이 뜻을 깨달을 수 있다면 실오라기만한

노력도 들이지 않고 선 자리에서 곧 부처가 된다.

아니 부처가 된다는 이 말에서 '된다'는 것조차 군더더기다.

 

- 몽지릴라 밴드에서

 

 

 

 

-

 

불국사 / 이정님

 

토함산에 오른 해 대웅전 내딛는다

다보탑 아래 돌계단 단숨에 뛰어 올라

향기로

피어오르는 천 년의 꿈을 본다

 

누리장 이파리에 이슬이 정갈하다

떨리는 범종소리에 법문 닫고 침묵한다

천 년의

세월 가는 소리 어디에도 없구나

 

곤룡포자락 스치는 소리에 수막새 소스라치고

곱게 핀 단청 아래 낮달이 녹을 듯 웃는데

흐르던

구름 한 점이 일주문에 머문다

 

아! 켜로 쌓인 기왓장 곁에

이끼 되어 조용히 눕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