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여! 나와 같이 3

2016. 5. 8. 21:2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728x90







화두여! 나와 같이 3


 


사람들은 누구나 다 화두자話頭者가 되어야 한다.


화두참구자話頭參究者가 되어야 한다.


신분이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화두자話頭者가 되어야 한다.


화두참구자話頭參究者가 되어야 한다.


본래지本來知 진리를 직접 체험하는 참구자가 됨으로써


결정신자決定信者가 된다.


결정신자가 됨으로서 무유공포자無有恐怖者가 된다.


무가애자無罣碍者가 된다.


백천만겁에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 만나서


무유공포 무가애자가 되고자,


간절하게 발원하는 불퇴보리심자不退菩提心者


꼭 되고자 함이 구도자求道者가 가는 길이다.


구도자가 된 것을 자부自負하고 자부해야 한다.


 


화두동반자話頭同伴者, 자비慈悲의 꽃은


불변不變의 꽃이다. 불멸不滅의 꽃이다.


무량無量한 꽃이다. 다함이 없는 꽃이다.


끝이 없고 끝이 없는 꽃이다.


세세생생世世生生토록 영원한 꽃이다.


아무 조건이 없는 꽃이다.


아무 상처가 없는 꽃이다.


아무 후회가 없는 꽃이다.


아무 대가對價가 없는 꽃이다.


과 사를 지혜롭게 바로 판단할 수 있는 꽃이다.


 


새벽길을 걸어가면 새벽이슬이 옷에 젖어든다.


차츰차츰 옷이 눅눅해진다. 옷이 젖어든다.


더 깊게 눅눅하고 젖은 옷이 된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송화두誦話頭 간절한 신심信心도 이와 같이


에 시동始動이 꺼지지 않듯이


계속, 계속 화두동반話頭同伴이 끊어지지 않으면


몸과 마음, 육신 전체, 얼굴 두상頭上에까지


관세음보살 화두, 자비慈悲의 꽃이


피고 피어 쓰며들게 된다.


멀고 먼 날에는 관세음보살, 자비의 얼굴자가 된다.


 


거듭 예를 들면


생선 파는 생선가게를 지나가면


생선의 비린내가 자연스럽게 옷에 스며들어


자기 옷에 생선 비린내가 나게 되듯이


향 피운 법당에 오래 앉아 기도하면


어느덧 자기 옷에 향내음이 스며들듯이


자기 마음으로 직접 모시고 섬기고 하는


본인들 얼굴에 자비의 꽃이 어찌 피지 않으리.


 


백 살 넘게 사는 장수시대長壽時代


변하지 않는 동반자는


화두공부 동반자 외에는 있을 수 없다.


백 살 인생에 동반자는 꼭 있어야 한다.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된다. 꼭 있어야 한다.


백 살 화두동반자의 얼굴에는 건강미健康美가 넘친다.


생기生氣가 넘쳐흐른다.


항상 환희심歡喜心이 가득하다.


독거유희락獨居遊戱樂의 얼굴이다.


 


화두참구동반話頭參究同伴이 없는 백세는


항상 고독한 마음을 벗어나지 못한다.


늘 허전한 마음, 쓸쓸한 마음,


가난하고 가난한 마음, 지옥에서의 삶이다.


가슴에 가득한 불만不滿을 털어버리지 못함이다.


화두동반백세자話頭同伴百歲者가 되도록


항상 시간을 아끼면서 수행하고 수행하며


터를 닦고 닦아야 한다.


 


부처님 법 가운데 제일 큰 발원發願


자기제도自己濟度를 위한


절박감切迫感과 분발심奮發心이다.


앉으나 서거나 자기제도自己濟度를 위한 분발심으로 삶이


구도자의 일과日課이다.


구도자의 일과는


자기제도를 위한 절박감과 분발심이지


다른 것 아니다.


다른 것으로 사는 일과는


모두가 어리석고 어리석은 일과이다.


 


은행 직원이 하루 종일 늦도록


많고 많은 돈을 계산하고 계산한다 해도


끝에 가서는 남의 돈이지 자기 돈은 아니다.


일생토록 남의 돈만 세고 또 세고 있음과 같이


세속 오욕락五慾樂이 많고 많다 해도


자기제도와는 거리가 멀 뿐이다.


끝에 가서는 대비극大悲劇에 비극, 상처로


자기에게 남는 것은


두텁고 두터운 업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화두동반이 아니고는


자기제도를 위한 스승은 세상에 없다.


자기제도를 위해 동반하는 것이 없다.


자기제도를 위한 밝은 지혜가 될 만한 것이 없으니……


 


화두, 화두하지만 화두는


아무 모양도 없고, 어떤 형태도 없고, 색깔도 없다.


모양과 형태, 색깔이 없지만


을 만나고 연이 닿으면


작은 모양, 큰 모양, 작은 형태, 큰 형태,


가지가지 색깔, 변화 형태에도


능히 아무 부족함 없이 즉응에 자재함이


화두의 신통력神通力이다.


 


자기제도를 위한 절박감,


자기제도를 위한 분발심,


자기제도를 위한 대신심大信心의 시동始動


항상 끊어지지 않음이 송화두誦話頭이다.


화두話頭는 응연무애應緣無碍의 큰 힘이다.


어떤 연을 만나도 연에 걸리지 않고


능히 자유자재自由自在하게 수습할 수 있는 힘이


응연무애법문應緣無碍法門이다.


 


화두 위신력威神力의 힘이 아니고는


삼세업장三世業障과 끝없이 끝없이 발생하고 발생하는


무량한 번뇌煩惱를 뿌리 뽑아 없앨 수 없다.


탐진치貪嗔癡를 녹여낼 수 없다.


새벽이슬에 옷이 젖듯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송화두도


계속하고 계속하는 위신력자威神力者만 되면


삼세업장을 녹여내고, 끝없는 번뇌망상을 뿌리 뽑아내는


대안식자大安息者가 될 수 있다.


항상 끊어지지 않는 환희장자歡喜藏가 된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송화두 수행도


성숙해지고 성숙해지면


관세음보살 화두동반의 맛이


일미一味의 맛이 된다.


감로甘露의 맛이 된다.


일미의 맛, 감로의 맛이 나는 음식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수행력修行力의 힘으로 느껴지는 맛이


일미의 맛이고 감로의 맛이 된다.


 


자기의 몸과 마음이


가을 하늘에 뭉게뭉게 떠있는 흰구름 속을


살픈살픈 가볍게 앉아 있는 것 같은


환희스러운 기분이 유지된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술을 맛나게 마시고 거나한 기분이


늘 유지되는 것과 같다.


자기 수행의 힘으로 일미의 맛,


감로의 맛이 있으니


구도자가 끊이지 않고,


출가자가 끊어지지 않는 불법佛法이다.


 


세속 오욕락에는 일미의 맛, 감로의 맛이 없다.


오직 불법佛法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이다.


 


일미의 맛, 감로의 맛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은


하루빨리 출가해야 한다.


구도자가 되어야 한다.


 


지극한 신심, 간절한 신심, 한결같은 신심으로


수행修行하고 예경禮敬하는 현재의 행


바로 자기의 소망성취所望成就이지


현재 예경하고 있는 성취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별도의 성취를 바라는 것은


지혜로운 판단이 아니다.


현재 예경禮敬 신심행信心行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생각에 허탈심虛脫心이 생기고,


허탈병虛脫病이 발생한다.


자기가 소망하는 발원이 있다 해도


현재 하고 있는 예경행이 바로


성취 중에 성취임을 알아야 한다.


 


자기 소망 성취를 바로 판단하는 밝은 지혜가


꼭 있어야 한다.


예경하고 싶은 신심이 있다 해도


자기의 건강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예경할 수 없으니


현재 예경할 수 있는 신행信行


고맙지 않을 수 없지 않는가.


 


화두참구 동반은 하늘같은 복지福祉이다.


화두동반 찬탄의 법문.


생시적적불수생 生時的的不隨生


사거당당불수사 死去當當不隨死


태어나고 태어난다 해도 오욕락五慾樂에 떨어지지 않고


죽어가고 죽어간다 해도


죽음 앞에서 불안不安 공포恐怖에 빠지지 않고


하늘땅 이전 본래本來부터인 본래지법本來知法


당당하고 힘차게 외치고 외치는 기상氣像


화두동반자의 위신력威神力, 환희장歡喜藏이다.


 


세상에 태어나고 태어난 대중大衆들이여!


본래지법 위신력, 묘법妙法에는


본래부터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없고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없고


윤회고輪廻苦가 없으니 우리 모두 모두가


본래지법을 참구하는 화두참구 동반자,


화두참구 동반자가 되어 이고득락離苦得樂합시다.





게송


 


자기제도 화두동반은


세세생생世世生生 동반이다.


다함이 없는 동반이다.


무한無限의 동반이다.


불변不變의 동반이다.


불멸不滅의 동반이다.


우리 모두 모두는 자기제도 동반에


발심하고 발심합시다.


 


金井山人 佛國正觀 心


[인도] 갠지스강


갠지스 강

이룻:이정님

태고의 강은 어두운 눈을 가졌다

삶과 주검을 넘나드는

히말리아 체액(體液)이

갠지스 강을 쓰다듬으니

강은 기쁨으로 넘치고

슬픔으로 쓸쓸하다

산다는 것은 죽기 위함

죽음은 살기 위함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그 어디에

눈 감은 강물은 어둡고 슬프다

멀리서 무언가를 터득한 듯

뿔이 굵은 소 한 마리

오가는 세월을

눈으로 헤아리고 있다

갠지스 강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