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을 버리면

2016. 5. 21. 17:3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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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을 버리면 

불교를 가리켜 공문[空門]이라고 합니다
만법은 인연을 따라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거기에는[아체[我體] 본체[本體] 실체[實體]라
할만한 것이 없으므로 공[空]이라 한 것입니다

많고 많은 사람, 과거의 부처님과 수많은 조사[祖師]들이
이 공문에서 도를 이룬 것입니다
공문은 바로 불문[佛門]과 같은 뜻입니다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번째 관문이 바로 공문입니다
큰 사찰에 들어갈 때는 먼저 문짝을 달지 않은
일주문[一柱門]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짝이 달려 있지 않기 때문에
일주문은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
죄많은 사람, 깨끗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들어 오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대로 들어 올 수 있고
나가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대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문이 일주문이요, 공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문을 통과하여
부처님의 경지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에게는
단 한가지 제약이 주어 집니다

세속의 잡된 생각을 완전히 비우고
부처를 이루겠다는 한 마음을
잘 가다듬고 이 문을 들어 서야 합니다

비록 문짝을 달지 않아 뻥 뚫려 있는 공문이지만
그 잡된 생각들이
공문을 유문[有門]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잡된 생각은
곧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삼독심[三毒心]과
재욕[財欲] 색욕[色欲] 식욕[食欲] 명예욕[名譽欲]
수면욕[睡眠欲]의 오욕락[五欲樂]등 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에 걸리고 재물에 걸리고 명예에 걸리고
감정에 휘말리게 되면 어느새
일주문의 기둥과 기둥사이에서
문짝이 생겨나와 유문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그리고 출입을 막기위해
스스로 빗장을 굳게 걸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놓아 버리고
비워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탐착심이 있으면 결코 공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흑씨 바라문에게 '버리라'고 한 말씀이야말로
공문에 들어 가는 지름길입니다

참된 해탈과 진리를 어찌 밖에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놓아 버리지도, 비워 버리지도 못한다면
그 결과는 고통뿐입니다


항상 열려있는 공문을 스스로 닫아,
고통의 세계를 옮겨 다니며
윤회하기를 되풀이할 뿐입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왜 이런 고통의 삶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배각합진[背覺合塵]하여
어리석음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배각합진'의 각[覺]은
나의 참된 마음자리를 가리킵니다
나의 본원 자성 자리가 '각'이요
내 마음의 본래 청정한 자리가 '각'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각은 곧 부처입니다
나의 자성불[自性佛]!
내 스스로에게 갖추어져 있는 자성불  
나의 공문 속에 있는 부처님의 자리를 등져 버린 채
결코 주인이 될수 없는 객진번뇌[客塵煩惱]를
쫓아 끝없이 흘러다니고 있습니다

이렇듯 참된 주인인 마음자리를 등지고
무수한 번뇌들을 주인으로 삼아 노예처럼 살고 있으니
어찌 자유가 있겠으며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놓아 버려야 합니다
비워 버려야 합니다
무수한 마음 속의 번뇌들을
칼로 줄을 베듯이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참된공문으로 들어가는 불제자가 되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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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彌陀佛在何方 (아미타불재하방)
着得心頭切莫忘 (착득심두절막망)
念到念窮無念處 (염도염궁무념처)
六門常放紫金光 (육문상방자금광)


 

아미타 부처님은 어느 곳에 계실까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말 것이니
생각 생각 이어가다 생각조차 끊긴 곳에 이르르면 

설신의 육문에서 광명이 발하게 되리라

 

- 시식(施食)할 때에

 


 

스승을 찾아 도를 배우는 데 별 다른 것 없으니
그저 소를 타고 스스로 집에 이르는 것일 뿐.
백 척 장대 끝에서 거침없이 발걸음을 뗄 수 있다면
항하사 모래수와 같은 모든 부처가 눈앞의 헛꽃이라.

- 부휴선수(浮休善修, 1543∼1615)

심사학도별무타(尋師學道別無他)
지재기우자도가(只在騎牛自到家)
백척간두능활보(百尺竿頭能闊步)
항사제불안전화(恒沙諸佛眼前花)

 


이 하나의 진실이 없는 사람이 없건마는 스승의 가르침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일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급히 스승을 찾아 배우지 않는다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게 될 것이라 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렵게 스승을 찾아 도를 물으면,

스승은 도 대신에 그저 묻고 있는 자기 자신을 곧장 가리켜 보일 뿐입니다.

인연이 있어 문득 눈앞의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너무나 가까워 미처 보지 못했고, 너무나 쉬워서

도리어 어렵게 여겼다는 사실에 실소를 금치 못합니다.

더 이상 가까이 가려야 갈 수도 없고,

더 이상 멀리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도 없는, 바로 지금 여기 이 자리입니다.

얻을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입니다.

이러한 말에도 속지 말고 당장 한 점 의혹도 없이

모든 것이 분명해져야만 할 일을 마친 것입니다.

그러할 때 눈앞의 대상 경계가 모두 꿈이나 환상 같이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것인 줄 사무쳐 깨닫게 될 것입니다.

대상 경계가 허공의 꽃처럼 헛된 것이라면

그 경계를 상대할 마음이라 할 것도 달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계도 없고 마음도 없다면,

바로 지금 여기 눈앞의 이것은 무엇입니까?

악!


- 몽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