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14. 22:10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준비과정은 필요없다
우리의 인생에서
준비는 필요없습니다.
그 어떤 준비과정도
진리와 멀어지게 할 뿐이고,
수행과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
준비도
과정도 다 필요하지 않아요.
준비도 과정도
모두가 ‘바로 그것’이 되어야 합니다.
모두가 다 순수한 목적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참선 염불 독경 진언 절 등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참선하는 바로 그 순간이
염불하는 바로 그 순간이
이미 본래성품을 드러내는 순간이고,
부처의 순간, 깨달음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 참선수행을 하기 위해
선방이며 절에 가는 순간도
그것이 절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기 위한
준비과정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절로 가는 그 걸음 걸음의 순간 또한
그대로 본래 성품을 드러내는 순간이고,
깨달음을 위한 과정이 아닌
바로 깨닫는 그 순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주어진 일을 하고
주말에 있을 참선모임을 기다릴 필요는 없어요.
무엇하러 그 긴 시간을 기다리느라 소모해야 합니까.
기다림을 버렸을 때,
그 순간이 바로 목적이 되었을 때,
모든 순간 순간이 온전한 깨달음의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독경 수행을 하기 위해
경전을 꺼내어 들고, 펴고, 준비하는
그 모든 과정이 독경을 위한 준비과정이 되어선 안됩니다.
수행을 위한 준비는 다 필요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수행이 되어야 합니다.
절에 가는 순간,
한걸음 한걸음 걷는 순간,
차가 막혀 신호등에 걸려있는 순간,
법당에 들어서는 순간,
경전을 꺼내어들고 방석을 펴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이
경전을 독경하는 순간과 똑같은 수행의 순간인 것이란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 모든 행위가
수행을 위한 준비과정이 되었을 때,
그 때부터 괴로움은 시작됩니다.
절에 가서 1시간 수행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시간이 늦으면 괴롭고,
절에 가는 동안 차가 막히면 답답하고,
어쩌다가 절에 못 가게 되었을 때
그로인해 괴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 수행하면서,
수행이 하나의 걸림이 되어
그로인해 또다른 괴로움을 만드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일상의 모든 일들이
그 자체로써 목적이 되었을 때,
그 자체로써 수행이 되고, 깨달음의 순간이 되었을 때,
그 어떤 순간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게 됩니다.
수행하는 순간 느낄 수 있는 그 행복감과 평화로움을
매 순간 순간 함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과정은
그 자체로서 온전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 자체가 그대로 부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순간이고,
수행의 순간이며, 깨달음의 순간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깨달음의 순간이라고 말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수행은 과정이고
그 과정을 통해 깨달음이라는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고 착각합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일체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는 말은
그 말 자체가 벌써 상대성을 내포하고 있어요.
일체중생이 그대로 부처님 성품이라고 해야 합니다.
중생이 깨달아서 부처가 된다는 말도
벌써 상대성의 말입니다.
깨닫지 못한 중생이 따로 있고,
이미 깨달은 부처가 따로 있다고 나누어 놓는 말이거든요.
어리석은 '중생'이
수행이라는 '마음' 닦는 과정을 통해
깨달은 '부처'가 된다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아니 잘못된 말이라기 보다는
진리를 그대로 표현한 말이 아니라
방편으로 알아듣기 쉽게 표현한 말이라는 거지요.
중생이나 마음이나 부처나
그게 다른 것이 아닌 하나가 되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세가지는 아무런 차별이 없다.’
라고 했던 거지요.
다시말해 우리가 열심히 수행해 깨달음의 목적을 이루자
이렇게 깨달음을 먼 목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이
그대로 깨닫음의 순간이고,
부처의 순간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순간 순간이
다 소중하고,
다 본래성품을 발현하는 순간이 되는 겁니다.
그랬을 때
우리 삶의 그 어떤 순간도
우리를 괴롭게 만들지 못합니다.
모든 순간이 다 온전한 순간이고,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깨달음의 순간이라면
온전한 만족만이 있습니다.
만족은 행복을 가져옵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매 순간 순간이 그대로 깨달음의 순간이 된다는 말은,
매 순간 순간
과거도 미래도 다 놓아버리고,
오직 지금 여기에서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알아차리고, 비춰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이룰 것도 없고,
모든 순간 순간이
모든 일들이 다 깨어있는 순간이 된다는 말입니다.
절에 가는 순간 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한걸음 한걸음 걷는 순간
걷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경행수행이 되는 겁니다.
차가 막혀 신호등에 걸려있는 순간
빨리 가려는 마음이 있고,
절에 도착해서 수행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그 순간이 괴롭지만,
신호등에 걸려있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그 자체를 비춰보면
이미 그 순간이 염불하는 순간이나,
참선하는 순간과 똑같은 수행의 순간이고 깨달음의 순간이란 말입니다.
법당에 들어서는 순간 들어섰음을 알아차리고,
경전을 꺼내어들고 방석을 펴는 순간 매 순간 순간을
놓치지 말고 알아차리고 깨어있으면
수행시간과 생활시간이 따로없고,
준비따로 과정따로 목적따로가 나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매 순간 순간이 목적인데
준비가 어디있고, 과정이 어디에 있어요.
일상 생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따로 떼네어 수행의 시간을 만든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매 순간 순간이 그대로 수행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수행하는 생활을 하려 애쓰지 말고,
생활 그 자체가 수행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매 순간 순간 삶의 모습을
그대로 수행의 순간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매 순간 순간에 일어나는 일들을
온전한 삶의 목적으로 알고,
무언가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보지 않으며,
삶과 수행을 따로 떼어놓는 상대적인 생각을 버리면
지금 이 순간이
그대로 수행의 순간이 되고,
나아가 깨달음의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키울 때,
자식 잘 키워 훌륭한 사람 되길 바란다거나,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취직 잘 되길 바랄 것이 아니라,
그저 매 순간 순간 키우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매 순간 순간 자식이 자라는 것을 바라보는
그것이 자식에 대한 삶의 목적이 되어야지
무언가 바라는 바를 미래에 가져서는 안된다는 말이지요.
음식을 만들 때
음식 만들어서 자식과 남편 먹이려는 목적으로,
먹이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준비과정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음식 재료를 사기 위해서 시장으로 가는 순간,
시장에서 장을 보는 순간,
돌아와 음식을 만드는 순간
음식을 다 먹고나서 설거지 하는 순간
그 모든 순간 순간이 모두가 온전한 목적이 되고,
온전한 깨달음의 순간, 수행의 순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매 순간 깨어있는 비춤으로 관하고 있을 때
그 모든 순간은 그 자체로써 온전한 목적이 되고,
그대로 부처를 이루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음식을 만들어 먹이는 것이 목적이 되었을 때,
온갖 괴로움이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자식이 먹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렸을 때,
음식 사러 가는 것이나, 장보는 일이나
음식 만드는 일이나,
음식 다 먹고 설거지 하는 과정이
짜증스럽고 별로 소중하지 않은 과정이 되어버립니다.
그랬을 때 그 한 과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순간을 허비하는 것입니까.
얼마나 많은 순간을 버리는 거예요.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은
어느 한 순간도 더 중요하다거나, 덜 중요한 것도 아니고,
낱낱이 모든 순간이 절대의 순간인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이
내 인생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인 것입니다.
모든 순간 순간들이 낱낱이 소중하고,
모든 존재 존재가 낱낱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말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매 순간 순간이 그대로 목적이 되도록 하세요.
내가 살아가는
매 순간 순간이 그대로 수행이 되도록,
그대로 깨달음의 순간이 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밥 먹는 순간은 덜 소중하고,
수행하는 순간은 더 소중하다거나,
일터로 가는 차 안에서의 순간은 덜 소중하고,
일하는 순간은 더 소중하다거나,
어떤 순간은 보내기 아깝고,
어떤 순간은 빨리 스쳐보내길 바라고,
그런 분별을 다 놓아버려야 합니다.
수행 따로, 생활 따로,
목적 따로, 과정 따로,
그래선 안된다는 말입니다.
뭔가 어떤 것을 위한 준비는 있을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위한 과정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모든 행위가 그대로 목적이어야 하고,
똑같이 소중한 깨달음의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삶에
준비나 과정은 다 빼버리고,
오직 목적만이 있도록 하는 것,
오직 순간만이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수행이고 수행자가 가야할 길입니다.
찬불(讚佛) /소동파
稽首天中天 毫光照大千 계수천중천 호광조대천
八風吹不動 端坐寶蓮臺 팔풍취부동 단좌보련대
머리 숙여 하늘중에 하늘 부처님께 예배하니
미간에 백호광명 삼천대천 세계를 비추시네
여덞가지 세파(팔풍) 불어도 흔들림 없으시며
단정하게 보배 연꽃위에 앉으신 부처님이시여
마음은
마음은 마음은 모든 것을 만든다
나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수레바퀴가 소발자국 따르듯이
괴로움이 괴로움이 그를 따르리라
마음은 마음은 모든 것을 만든다
마음은 마음은 모든 것을 만든다.
마음은 마음은 모든 것을 만든다
맑은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그림자가 그의 생김새를 따르듯이
즐거움이 즐거움이 그를 따라 따르듯이
즐거움이 즐거움이 그를 따라 따르리라.
'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 > 발심수행장·수행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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