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4. 15:4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법화경·관세음보문품
개시오입 / 십여시
1
끝내 제법실상으로 돌아간다
일체 만법이 제법실상의 도리에 벗어나지 않는다.
진여(眞如)의 성품에는 여래의 한량없는 덕성(德性)을 갖추고 있다
깨쳤다고 더하거나 못깨쳤다고 덜하거나가 아니라 그냥 평등일여(平等一如)이니
이러함이 진여문이다
법부는 생멸법(生滅法)에 집착하고 성인은 적멸법(寂滅法)에 안주한다.
법부는 경계를 취하고 성인은 마음을 취한다.
법화경에서 이르시길
“일체 법이 공(空)한 것이 실상(實相)과 같음을 관할지니라.
뒤바뀌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며 물러나지 않으며 구르지도 않느니라.
허공과 같아서 성품이 있는 바가 없음이다.”
일체 말이 끊어져(一切語言道斷) 나지도 아니하고 나오지도 아니하며
일어나지도 않으며 이름도 없고 형상(形相)도 없어서 실로 있는 바가 없으며
한량없고 가이 없으며 걸림도 없고 장애도 없건마는
다만 인연으로 있으며 뒤바뀜을 좇아 나느니라.
- 안락행품에서-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도리를 여실히 설하신 내용이시다
법화경에서 구구절절이 실상의 도리를 설하시어 중생으로 하여금
불도를 이루게 하신다.
팔만 사천의 법문이 한결같이 실상으로 드는 문이다.
실상이란 말로서 분별할 성질이 아니나 부득이
십여시(十如是)와 사불지견(四佛知見)등 으로 실상을 설하신 것이다.
실상의 성질은 곧 적멸(寂滅)이다.
적멸이란 공하다는 생각마저 공한 상태이니 이를 심행처멸(心行處滅)이 한다.
그리고 일체 말길이 끊어진 상태인 것이다.
나무묘법연화경 제목을 일심으로 봉창하면 실상인 자성(自性)과 합일하게 된다.
수행자는 상념(想念)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생각을 지워 버려야 하며
생각을 지운다는 생각까지 지워야 한다.
이것이 진여(眞如)의 경지이다.
- 혜성스님
2
[우주만물의 진실한 모습과 십여시]
法華經에 十如是라는 諸法實相이 나옵니다.
相, 性, 體, 力, 作, 因, 緣, 果, 報, 本末 究竟이 다 똑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즉, 모양, 성품, 본체, 힘, 작용, 원인, 연유, 결과, 보응, 시작 끝과 구경이 모두 다
같은 모양, 즉 텅~빈 空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불교의 존재론 입니다.
信心銘에도 但能如是 何慮不畢 (단능여시 하려불필)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우주삼라만상이 단지 이와 같음을 體得하면, 마치지 못할까 뭔 염려를 하겠나.
如是, 즉 이와 같음은 눈앞 지금 여기 이 瞬間 이 자리 이대로와 같다는 말입니다.
어떤 인위적인 인공적인 유위적인 조작이 개입되지 않은 채로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 이 자리 있는 이대로가 如是, 이와 같음의
우주삼라만상의 진실한 모습, 텅~비어 空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텅~빈 虛空이지만 언제나 永遠히 存在하고 있는 지금 여기 이 瞬間 이 자리 이대로가
廓然(확연)하게 활짝 깨어있는 覺性의 空間, 性稟의 眞空場 零點場, 이 宇宙 自然 萬物,
모든 일, 모든 現象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텅~빈 空間이지만 이 텅~빈 空間 自己 스스로는
결코 어떤 영향도 간섭도 받지 않는 寂靜涅槃의 自覺의 空間이 바로 如是 , 이와 같음입니다.
如是如是是如是 如是外別無如是 世人不知是如是 右往左往覓如是
(여시여시시여시 여시외별무여시 세인부지시여시 우왕좌와멱여시)
이와 같고 이와 같음 이것이 이와 같음이네
이와 같음 이외에 이와 같음이 없는데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은 이것이 이와 같음임을 모르고
우왕좌왕 갈피를 못잡고 이와 같음을 찾아 헤매네.....
출발 전에 이미 도착해 있고 시작 전에 이미 끝마침니다
찾기 전에 이미 여기 있고 못 깨쳐도 이미 깨쳐있습니다.
이와 같은 줄, 즉 如是를 모르게 때문에 미련하고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은
밖으로는 모든 對相 境界 因緣에 사로잡혀서 휘둘림을 당하고
안으로는 內面에서 일어나는 온갖 生覺 妄想 煩惱 마음 意識 分別心
生死心 生滅心 때문에 헐떡거림이 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세상이 우주만물이 如是, 즉 이와 같은 것인 줄 알면
평생의 공부를 다해 마친 것이니 무슨 근심 걱정이 있을 것입니까.
行行本處 至至發處(행행본처 지지발처)
가도 가도 본래 그 자리 도착하고 도착해도 떠난 그 자리
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역천겁이불고 선만세이장금)
아득한 세월이 흘렀지만 옛날이 아니고
만년을 돌고 돌았지만 여전히 지금이네...
有亦無關 無亦不居 不是賢聖 了事凡夫
(유역무관 무역불거 불시현성 요사범부)
있어도 참견 않고 없어도 머물지 않는 이것은
현자도 아니고 성자도 아닌 如是를 알아버린 범부,
세상 모든 사람, 관세음보살이네...
- 장백산(원각) 2015.05.05
3
개시오입(開示悟入) 사불지견(四佛知見)
*사불지견은 범부 중생이 완전한 인간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불교의 영원한 생명(生命)입니다.
불교만이 자랑하는 *일체중생 실유불성론, 곧 <개(開) 시(示) 오(悟) 입(入)>
이라는 네 가지 덕목입니다.
필히 불성(佛性), 곧 *삼인불성을 계발하여 부처님과 범부는,
<깨달은 이(覺者)와 미혹한 이(迷者)>의 차이 뿐이라는
*범성일원론(凡聖一元論)>입니다.
여기서 <개(開) 시(示) 오(悟) 입(入)>이라는 네 가지 덕목(德目)을 말씀드립니다.
① 개(開)
→연다는 뜻입니다
비유컨대 여기에 두 개의 방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주 캄캄한 어두운 방입니다.
곧 *무명하다는 범부 중생의 방입니다.
다른 하나는 밝은 방입니다.
곧 깨달은 사람 각자(覺者)의 방입니다
이 때 두 방 사이에 문을 열어서 밝은 방의 빛이 어두운 방을 비추어 줍니다.
그것이 개(開), 곧 부처님의 지견을 연다는 개불지견(開佛知見)입니다.
② 시(示)
→보인다는 뜻입니다.
어두운 방의 범부 중생을 문쪽으로 데려와서 밝은 방, 곧 부처님의 교를
배우게 하고 깨달은 사람의 행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示), 곧 부처님의 지견을 보여 주고 너희도 성불할 수 있다는
자긍심 을 심어주는 것이 시불지견(示佛知見)입니다.
③ 오(悟)
→깨닫게 하는 것. 곧 노력하기를 권하는 것입니다.
밝은 방에 들어오고 싶거든 일어서서 한발 한발 걸어 들어와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것이 오(悟), 곧 오불지견(悟佛知見)입니다.
④ 입(入)
→들어오는 것입니다.
어두운 방에서 밝은 방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즉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홍익하는 보살행을 계속 쌓아서 중도에서
그만 두거나 힘을 늦추거나 하지 않고, 마침내 부처님이 될 때까지
노력하게 하는 것이 이른 바 부처님의 지견도(知見道)에 들여놓고자 한다는 것,
곧 입(入) 입니다.
부언하면 입불지견(入佛知見)입니다.
이와 같이 <개(開)ㆍ 시(示)ㆍ 오(悟) ㆍ입(入)>의 마음을 일으키게 해서,
마침내 어두운 방 중생을 밝은 방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오 시는 목적, 즉 일대사인연입니다.
부언하면 불완전한 인간을 완전한 인간으로서 * 갱생케 하는 것이
부처님의 사불지견입니다.
선에 들어가는
문
눈으로 사물을 보되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귀로 소리를 듣되
소리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것이 해탈이다.
눈이 본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눈이 선에 들어가는 문이 되고,
귀가 소리에 집착하지 않으면
귀가 선에 들어가는 문이 된다.
사물의 겉모습만을 보는 사람은
그 사물에 구속되지만
사물의
무상함을 깨달아 집착하지 않으면
언제나
자유롭다.
무엇엔가 얽매이지 않는 것이
바로
자유로움인 것이다.
- 달마대사
오성론(悟性論)에서..
여인숙 / 잘랄루딘 루미
인간이란 존재는 여인숙과 같아서
아침마다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우울, 야비함,
그리고 어떤 찰나의 깨달음이
예기치 않은 손님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잘 대접하라.
설령 그들이 그대의 집 안을
가구 하나 남김없이 난폭하게 휩쓸어가 버리는
한 무리의 아픔일지라도.
그럴지라도 손님 한 분 한 분을 정성껏 모셔라.
그는 어떤 새로운 기쁨을 위해
그대의 내면을 깨끗이 비우는 중일지도 모르니.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미움,
그 모두를 문 앞에서 웃음으로 맞아
안으로 모셔 들여라.
어떤 손님이 찾아오든 늘 감사하라.
그 모두는 그대를 인도하러
저 너머에서 보낸 분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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