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론과 단멸론|…… 강병균 교수

2016. 6. 4. 16:3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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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론과 단멸론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태어나기 전에 수십억 년 동안이나 죽은 상태였는데,
 그 당시 눈곱만큼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마크 트웨인>


-나는 윤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태어나기 전에 무한한 세월 동안 윤회했지만,
 지금 그때 일로 괴로운 건 하나도 없다. 전생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생에 언젠가 모든 과거 생을 기억하게 되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다.
 그 정도 경지라면 이미, 고통이 없는 열반에 가까이 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생에 대한 기억으로 별로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이다. <어느 윤회론자>



I. 통속적인 윤회론이 진짜 단멸론이다

단멸론(斷滅論)은 가장 넓은 의미로는 연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중간으로는 인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좁게는 개인의 정체성의 (통속적인) 연속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현재에서 미래로 흐르는 선형(線形) 시간적인, 여러 몸을 통한, 개인의 정체성의 연속을 통속적인 윤회라 부릅니다. 그래서 통속적인 윤회론자들은 비통속적인 윤회론자들을 단멸론자라 부릅니다. (이하, 윤회는 통속적인 윤회를 뜻합니다. 대표적인 통속적인 윤회론으로는 동물이 지옥·아귀·축생·인간·아수라·천인 등으로 윤회한다는 6도윤회론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단멸론은 "윤회가 없으면 인과법이 무너진다"는 생각입니다. 윤회 이외의 인과론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윤회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윤리·도덕의 유지를 듭니다. 하지만 이는 작게는 지구를, 크게는 우주를, 자기 맘대로 죄와 벌,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는 행위이지요. 단멸론을 글머리에 언급한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의미인 '연기와 인과'로 크게 보지 못하고, 세 번째의 좁은 의미인 '윤회'로 해석한 결과입니다. 단멸론은 개체적인 수준과 관점보다는, 전체적인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현생의 인과는 상당부분 개체적인 관점이 옳을 수 있으나, ‘다생(多生)에 걸치는 통시적(通時的)인 인과’는 전체적인 관점이 옳습니다. 뒤에 더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

옛날에는 인과론 대신 귀신이나 신이 모든 일의, 즉 생사·질병·승패·성패·구애·자연재해 등의 원인이라는 엉터리 인과론을 발명했지요, 즉 망상을 했지요. 홍수 가뭄 등은 자연법칙의 인과에 따라 발생하지 신이나 귀신의 개입은 없지요: 유신론이, 회개하고, 이런 관점으로 거듭나면 이신론(理神論 deism)이라 불리지요. (자연계의 법칙일 뿐이지,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며 인간사에 시시콜콜 개입하지 않는 신을 이신(理神)이라 하지요. 달리 얘기하자면 이신은 헌법 또는 입헌군주이지요. 군림은 하나 통치는 하지 않는 군주 말입니다.)
자연적인 현상은 윤회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동남아시아에 들이닥쳐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쓰나미가 ‘목사들이 주장하듯이 그 사람들이 기독교 하나님을 안 믿어서 받은 벌’이 아니라면, 지진·해일·화산폭발·대형유성충돌 등은 누구의 업(業 karma)도 아닙니다. 전생의 악업을 지니고 환생한 사람들에게 닥치는 벌(果報)이 아닙니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는 피해자의 업과는 무관합니다. 그냥 자연현상일 뿐입니다. 자연현상은, 그 자체로서는,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습니다. 비가 오면 아이스크림 장사에게는 나쁠지 모르나, 개구리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호오(好惡)는 우리 의식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개념입니다.

우리 의식은 자기 기준으로 옳고그름(是非正邪)을 만들어, 이 옳고그름이 유지되려면, 개체가 정체성을 유지하며 윤회해야 한다고 망상을 피웁니다.



II. 자연과 식물은 윤회가 없이도 잘 유지된다

자연이 윤회를 안 해도 자체 법칙으로 잘 운행되듯이, 생명계도 그리고 사회도 잘 유지됩니다. 식물계는 (불교에 따르면) 의식도 없고 따라서 윤회도 안 하지만, 시집장가가고, 짝짓기하고, 새끼를 낳아 번성하며 잘만 삽니다. (포유류 동물이 특히 인간이 없다면 이 지구는 식물들의 천국일 겁니다.) (지구상의 동물계에서, 무게로 따지자면, 곤충의 무게총량이 가장 큽니다. 곤충은 150만 종이 있으며, 곤충 수는 인간 수의 수십만 배에 달할 겁니다.) (곤충은 동물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종류와 수가 가장 많은 동물이고, 몸은 머리·가슴·배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고, 3쌍의 다리와 2쌍의 날개, 2개의 겹눈과 3개의 홑눈, 1쌍의 더듬이를 지녔으며, 대표적인 곤충으로는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쇠똥구리 하루살이 깔따구 메뚜기 벼룩 빈대 개미 모기 나방 나비 여치 매미 벌 이 등이 있습니다.)

지구상에 처음으로 원시림이 형성된 3.5억 년 전 석탄기에 탄생한 곤충은, 벼룩이 속한 ‘톡토기’류로서, 겨우 수백만 년의 역사를 지닌 인간에 비해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뒤늦게 나타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한 백인들처럼 지구상의 후발주자인 인간은, 곤충들 입장에서는, DDT 같은 살충제로 지구의 원주민인 곤충들을 학살하고 농약과 경작과 산림파괴 등 환경파괴오염으로 서식지를 파괴하는 악마일 뿐입니다. 이런 악마들이 윤리와 도덕을 논하니, 또 윤리와 도덕을 유지하려면 윤회가 필요하다고 강변(强辯)을 하다니, 지나가던 지네가 100발을 구르며 가가대소(呵呵大笑)할 일입니다. 개도 소도 닭도 양도 염소도 돼지도, 오리도 기러기도 칠면조도 웃을 일입니다.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에 급우들이 엉뚱한 답을 하고 선생님에게 야무지게 생긴 반들반들 검은 색으로 빛나는 박달나무 봉으로 대갈통을 '빵'하고 얻어맞을 때마다, 교정의 칠면조가 따라서 큰소리로 요란하게 비웃었습니다. "코커두둘두~! 코코두들두~~!"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자기도 저 꼴 날까 공포에 떨며 선생님 눈에 띨세라 자세를 낮추고 숨을 죽이던, 교실은 여기저기서 "킥킥킥, 큭큭큭, 흐흐흐, 하하하" 웃음바다로 변했습니다. 그 순간 "코카두들두~~~" 칠면조가 다시 울고, 그럼 박달나무 선생님도 웃고 말았습니다. "야, 이놈아! 니 엉터리 대답에 칠면조까지 웃는구나!" 하면서요.

사실 엉뚱한 엉터리 대답이 맞는 대답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모든 답이 정해져 있는 모범생 입장에서는, 박달나무 친구들이 어떻게 그런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발한 대답을 할 수 있는지, 그 창의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 지금은 다들 나이가 들고 흰 머리가 났겠지만, 지금도 그 창의성을 어디선가 엉뚱하게 발휘하고 있겠지요. 저승길에서 염라대왕에게 엉뚱한 답을 하고 그 벌로 모교 교정의 칠면조로 환생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하하. 이보다 더 엉뚱한 짓은 자기를 닮은 아이를 낳고 손자까지 보는 일이지요. 왜냐하면 자기가 자기 자식의 자식으로 환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자기가 자기의 손자가 되는 거죠. "어떻게 그리 공부를 못하냐, 차라리 나가 죽어라"고 꾸짖던 아들에게 똑같이 꾸지람을 당하는 거죠. 하하하. 골수 통속적 윤회론자들에 의하면 이런 일이 생각보다 흔히 일어난다고 합니다.



III. 윤회론은 생물계 카스트 제도이다
    윤회를 믿는 인간이 동물보다 더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다

윤회론은 생물계 카스트 제도이자 동물계 카스트 제도입니다. (자이나교에 의하면 동물은 식물로도 윤회합니다.) 이 제도에 의하면, 축생은 저주받은 존재, 즉 카스트입니다. 이 카스트를 벗어나려면 환생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어떤 스님들은, 특히 티베트 스님들은, 뱀을 볼 때마다 어쩌다 그런 추한 모습을 한 미물로 태어났는지(환생했는지) 불쌍한 생각이 든답니다. (하지만, 그건 스님이라는 인간이 뱀이라는 동물에게 가하는 일방적인 미학적 폭력이지요. 장자 말 맞다나, 뱀의 눈에는 인간이 추하고 괴상한 동물일 겁니다.) 그래서 내생에 좋은 곳에 태어나라고 기원을 해준답니다. 또, 다른 동물들 잡아먹는 걸 삼가함으로써 복을 쌓아 인간으로 환생하라고 타이른답니다. 그런데 이 스님은 동물을 잡아먹습니다. 직접 안 잡아도 다른 사람을 시켜 잡게 합니다. 가끔 먹어주어야지, 안 그러면 허하답니다. 물론 몸과 마음이 다 허하겠지요.

인간은 매년 3,200억 마리 이상의 동물을 잡아먹습니다. 매년 200억 마리의 축생과 3억톤의 물고기를 잡아먹는데, 이는 어마어마한 남획으로서, 이에 비하면 뱀이 잡아먹는 동물의 양은 조족지혈(鳥足之血)입니다. (물고기 3억톤은 1g짜리 멸치로는 300조 마리에 달하고, 1kg짜리 고등어로도 3,000억 마리나 됩니다. 지구최대생물인 30톤짜리 향유고래로 쳐도 자그마치 1,000만 마리입니다!) 게다가 인간은 자기들끼리 한꺼번에 수십만 명을 도살하며 싸움을 벌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재미로 다른 동물들을 살해합니다. 그걸 고상하게 스포츠라 부릅니다: '사냥!' 그러면서도 윤리와 도덕을 논합니다.

인간의 윤리·도덕이라는 것은, 자기들이 하도 악을 행하니 그걸 좀 막아보자고, 자기들끼리 만든 겁니다. 즉, 조폭·강도들의 자기들끼리의 윤리·도덕에 지나지 않습니다: 동물들 입장에서는 인간은 조폭·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직접 죽인 적이 없다구요? 남이 죽인 걸 사다가 먹었을 뿐이라구요? 엄마나 부인이 해 준 걸 먹었을 뿐이라구요? 어떤 조폭이 말하기를 "앞으로는 직접 빼앗지 말고, 다른 조폭이 대신 빼앗아 나눠주는 걸로만 살아라" 하면 이자는 조폭이 아니고 또 윤리·도덕적으로 옳습니까? 선량한 시민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 조폭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이론을 '선한간접조폭 도덕론' 또는 '선한장물아비 도덕론'이라고 부릅니다.) 서양인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학살하고도 또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팔아먹고도 '그들에 대한 윤리·도덕상의 우위'를 주장했듯이 그리고 ‘그들을 창조한 것은 신의 실수’라고 주장했듯이, 윤회론은 자연계와 동물계에 온갖 악행을 자행하는, 특히 잔인한 동물실험을 자행하는, 가해자 인간들이 오히려 거꾸로 피해자 동물들에 대한 윤리·도덕적인 절대우위를 주장하는 파렴치한 이론입니다. 나쁜 짓을 하면 동물로 환생한다니, 감히 지구동물계 전체를 저주받은 세계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소위 개념이 없는 행위입니다.

인간의 사악함은 동물들에 대한 차별대우에도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동물들 중에서도 남을 잡아먹고 사는 호랑이나 사자를 ‘백수의 왕’이라고 떠받들지, 착한 타고난 평화주의자인 사슴 노루 토끼 야크 소 말 양 등은 무시하고 부려먹고 잡아먹습니다.



IV. 불법의 정수

불법의 정수는 이렇습니다: 다른 동물(축생과 인간)을 자기 뜻대로 부리려는 '탐욕'과, 그게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증오'를 (일체의 선입관이 없이) 관(觀)하라. 그 결과로, 탐욕과 증오의 주체라 생각한 내가 비어있고 없음을 즉 '무아'와 '공'이라는 것을 볼 수 있으면,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또는 마음을 정화하기 위한 선업을 쌓기 위해 수없이 윤회를 할 필요가 없다. 이런 관점과 인식의 전환이 바로 불교의 진수입니다. 단 한 번뿐인 희귀한 사건입니다.



V. 윤회론은 성악설이다

윤회론은 기본적으로 성악설(性惡說)입니다. "윤리와 도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윤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윤회론은 사실상 성악설입니다. 윤회가 없으면 사람들이 단 한 번뿐인 생이라고 제멋대로 살아도, 내생에 벌을 받지 않으니,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종류의 윤회론은, 인간의 악한 성품을 형벌과 법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법가적(法家的)인 성악설입니다. 형벌과 법의 역할을, 지옥 아귀 축생 고자 고아 빈자 대머리 장애인 추남추녀 무능력자 등으로의, 환생과 윤회가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즉 윤회론이 실제적인 성악설이라는 점에서, 윤회론은 '모든 중생이 불성이 있다'는 심지어 '모든 중생이 이미 부처'라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實有佛性) 또는 일체중생이미부처 사상과 충돌합니다. 중생이 이미 부처라면, 설사 윤회를 하지 않더라도, 이미 부처일 것입니다. 만약 이미 부처이지만 단지 그 사실을 모를 뿐이라면, 부처와 중생 사이에는, 그리고 모든 동물과 일부 인간(깨달은 인간) 사이에는, 알고 모름의 차이가 있을 뿐, 윤리·도덕상의 근본적인 차이는 없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란 윤리·도덕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걸 초월한 존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VI. 식물계는 윤회 없이 잘 돌아가고
    동물계는 윤회란 개념이 없이도 잘 돌아간다

식물계가 윤회 없이 잘 돌아간다면, 동물계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동물들이 윤회를 안 해도 생물계는 잘 돌아갑니다. 동물들은 언어도 없고, 종교도 없고, 윤회사상도 없고 따라서 (만약 윤회가 사실인 경우에) 윤회를 한다는 걸 몰라도 잘만 유지됩니다. 자기들 나름대로 윤리와 도덕을 만들어 삽니다. 하지만, "앗! 저놈이 오래 전에 내 어미를 잡아먹은 놈의 환생이로구나, 물어죽이자" 또는 "지금 저 사슴 새끼를 잡아먹으면 내생에 사슴새끼로 태어나 잡아먹힌다, 자제하자" 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침팬지에게도 코끼리에게도 그리고 늑대에게도, 윤리와 도덕이 있고 또 동시에 윤리와 도덕을 범함이 있고 그에 대한 처벌이 있습니다.) 설사 윤회가 있다 하더라도, 동물들이 윤회를 염두에 두고 (내생에 지옥에 갈까봐 혹은 아귀가 될까봐) 악행을 삼가고 선행을 해서 생물계가 유지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윤리와 도덕이 있다는 인간이 핵폭탄을 만들고, 환경을 파괴하고, 동물들을 학살하고, 자기들끼리 서로를 도살하며, 생태계와 지구존재 자체를 위협합니다.) 과거 35억 년간 5차례의 지구상 생물 대멸종은 그냥 자연환경변화로 인한 참사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이라도 대형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거나, 빙하기가 오거나, 백두산이 폭발하거나, 후지산이 폭발하는 것은,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학살당하는 것은, 인류나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들이 저지른 악행과는 전혀 관계 없습니다.



VII. 윤회를 믿는 인간들이 자연을 파괴하고 생물멸종을 초래한다

하지만 지금 지구는 인간들에 의한 환경파괴·오염과 산림파괴와 동물남획으로 인하여 6번째 대멸종 위험에 처했다는 최근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특히 바다는 거의 재앙수준입니다. (스탠포드 프린스턴 버클리 3개 대학 합동연구로서 2015.6.19일자로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에 실린 논문입니다.)

동물계, 식물계, 자연계에 큰 피해를 주는 건 신과 윤회를 믿는 인간들입니다. 인간이 없으면 지구는 훨씬 더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겁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아직 번성하지 않은 수천 년 전, 수만 년 전, 수십만 년 전, 태고의 자연을 꿈꾸고 상상하며 즐거워합니다. 그런 자연이 기적적으로 지금 되돌아온다면 가슴이, 벅차, 터져 죽을 겁니다. 지금도 오지의,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순결한 자연은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몹시 궁금한 것은 그 당시 원시인들도 자연에 대한 그런 아름다움을 느꼈는지 여부입니다. 인간은, 후행적(後行的)으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부터 잃어버리지도 않겠지요. 그래서 의식과 지성의 발달은 인간으로 하여금 뭘 잃어버렸는지 깨닫게 하고, 깨달음은 아픔을 주고, 그러면 인간은, 그 날카로운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도를 닦게 됩니다.)



VIII. 참나주의자들은 현실부정주의자들이다
     참나주의는 영적 영구기관 이론이다

(인간이 없는 태고의 자연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라면, 이는 인간이 자연을 망가뜨렸다는 말입니다. 즉 자연이 그 순수한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면 차라리 인간이 없는 게 낫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만든 무형적인 문명과 문화가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참나주의자들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일입니다. 이들은 연기세계인 자연계와 속세를 '초월한' 참나(眞我 진아, true self, true atman)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데, 참나가 과학과 예술을 할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상대세계가 없이, 즉 의식의 대상이 전혀 없이, 자체적으로 상락아정(常樂我淨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항상 번뇌 없이 즐겁게 사는 상태)에 빠져 사는 상태를 어떤 이들은 '참나'라 부르고 어떤 이들은 '열반'이라고 부릅니다. (이건 일종의 영구기관이론입니다. 들어가는 에너지가 없이 영원히 즐거움(樂 락)과 의식을 생산하는 영적 영구기관이론입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태고의 자연계에는 인간이 없는 게 나을 겁니다. 쓸데없이 망상이나 피우는 거짓나(幻我 환아, 허깨비 같은 나)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참나주의자들은 현실의 삶을 개선시키려는 데 주저하고 부정적이 됩니다. 문명발전에 극히 소극적이 되고 문명이 조금이라도 잘못된 길로 가면 냉소적으로 비판을 합니다. 그냥 한마디로 "다 쓸데없는 짓"이라는 겁니다. 그냥 참나로 돌아가면 되므로!

그래서 만사 제켜두고 참나를 찾아, 심산유곡으로, 대찰(大刹)로 숨은 도인들과 유명한 큰스님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자동차 비행기 기차 스마트폰 컴퓨터 내비게이션 등 문명의 이기(利器)란 이기는 다 사용합니다. (참고로 내비게이션에는 고등수학인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들어갑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중력장은 비유클리드 공간이며, 이 공간에 절대시간(absolute time)은 없습니다. 오직 상대시간(relative time)만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 심리적인 시간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일체유심조적(一切唯心造的)인 시간이 아니라 물리적인 시간을 말하는 겁니다. 즉 공간의 물체는 모두 서로 다른 시간을 갖습니다. 지구와 GPS 인공위성 사이의 시간차이는 0.00001초 정도로서 미세한 차이에 지나지 않지만, 그리고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차이이지만, 내비게이션을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한 차이입니다. 이 차이를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이용해 보정해야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합니다.)

자연과 생물계가 특히 식물계가 윤회 없이도 잘 유지되는데, 초파리와 토마토와 유전자가 60%나 일치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할 이유는 나변에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인간만이 영혼이 있다"는 주장처럼 인간중심적이고 독선적인 주장일 뿐입니다. 혹은 "흑인은 영혼이 없고 백인만 영혼이 있다"는 과거 서양인들의 주장처럼 종(種 species)주의적이고 독선적인 주장일 뿐입니다.



IX. 인간은 사회를 통해서 윤회한다
    정체성은 사회와 역사를 통해서 탄생하고 유지된다

사회는 정치·경제·법률·교육·복지제도 등 자체원리로 굴러가며(심지어 미물인 개미조차도 어느 정도 이런 사회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은 사라질지라도, 윤회를 하지 않아서 영원히 사라질지라도, 사회는 역사 속에 정체성을 유지하여 윤회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일본을 미워합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자들은 죽은 지 벌써 400년이 지났지만, 한국사람들은 아직도 그 일로 일본인들을 미워합니다. 당시 일본인구는 1,000만이, 그리고 한국인구는 600만이 안 되었을 것이므로, 지금 억울하다고 항의하는 7,300만 남북한 한국사람들이나 가해자인 13,000만 일본인들이나 거의 대부분이 (전생에 그 당시 한국과 일본에 살던) 당사자들이 아닙니다. 억울하다고 화를 내는 사람이나 오리발을 내미는 가해자들이나, 양쪽 다 옛날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이 아닙니다. 심지어 당시 가해자 일본인들은 지금 한국인들로, 그리고 당시 피해자 한국인들은 지금 일본인들로, 환생했을지도 모릅니다. (감히 아니라고 할 자신이 있습니까? 확신이 있습니까? 이름만 대면 누구나 기억할, 지금은 돌아가신 지 여러 해인, 무소유로 유명한 큰스님 한 분은 “가해자 일본인은 가난한 한국에 환생해 6.25를 당하며 고생하고, 피해자 한국인은 부유한 일본에 환생해 잘산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윤회는 공평하다는 겁니다.)
어느 경우든지, 그리고 설사 윤회가 없다 하더라도,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일본놈들은 나쁜 놈들이라 비난하고 일본인들은 한결같이 한국인들을 경멸할 겁니다. 이 사실은 (설사 윤회가 없다 하더라도) 변함이 없을 겁니다. 자기들이 임진왜란 당시의 당사자들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이것은 정체성 유지에 있어서, 역사를 통해서 사회와 국가가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지, 개인이 (윤회를 통해서)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또한 개인의 감정조차도, 윤회를 통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를 통해서 유지됨을 보여줍니다. 이걸 리차드 도킨스는 문화유전자, 밈(meme)이라고 부릅니다. (일본사람이 한국 갓난아이를 입양해 키우면 그 아이는 100% 일본사람의 정체성을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필경 한국인을 경멸할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 한 말입니다. 거꾸로 한국인이 일본 갓난아이를 입양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환생사상이 가진 이론적인 한계를 잘 드러냅니다.)

이 점에서 개인의 환생은 매우 협소한 의미의 인과율입니다.



X. 작은 자기에 집착하지 않으면 윤회는 필요 없다
   윤회를 하는 것은 개체가 아니라 집단이다

자기라는 걸 자기 육신에 한정시킬 때 개인의 환생이라는 개념이 필요하지, 자기를 가문, 문중, 국가, 인류, 동물계, 생물계, 우주생물계, 우주의식계로 크게 확장하면 환생이 필요없습니다. (유학자들은 윤회를 믿지 않았으나, 자신을 가문과 동일시함으로써 존재를 이어갔습니다. 그래서 (좁은 의미로서의 자기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후손이 살아남으면 자기가 살아남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윤회환생이란 개념은, 감기의 일종에 불과한 메르스(mers) 균에게도 속절없이 당하고 공황(panic)에 빠지는 인간이라는 하찮은 생명체가, 자신을 좁은 몸(육체) 속으로 반복해서 밀어 넣음으로써, 그 좁은 정체성을 영원히 유지하겠다는 욕망과 집착이 만들어낸 사상입니다. (윤회는, 욕계신이건 색계신이건 무색계신이건 몸을 가지고 환생을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몸에 대한 집착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윤회를 통해서 유지하고자 하는 정체성은 대체 무엇입니까? 욕망 증오 무지, 이런 겁니까? 아니면 기억입니까? 불완전한 수천 가지 육체적 정신적 특성을, 윤회를 통해서, 유지하고 싶은 겁니까? 과거에 경험한 모든 일을 잊지 않고 다 기억하고 싶은 것입니까?

이런 특성은, 개인이 유지해 주지 않더라도, 사회를 통해서 유지됩니다. 역사를 통해 잊히지 않고 보존됩니다.

정자, 백혈구, 뇌세포 등이 생명체이긴 하나, 우리는 이들이 식(識 의식)을 가졌다고 인정하지 않으며, 윤회를 한다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몸의 100조 개 세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모임인 우리 인간은 윤회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세포와 몸과의 관계를 개인과 사회로 확장시키면, 동일한 논리로, ‘개인은 의식도 없고 윤회도 안 하지만, 사회는 의식도 있고 윤회도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든, 임진왜란 당시의 한국과 일본이 좋은 예입니다. 역사적으로 '한국'이라는 생명체는 여러 차례 환생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갈라지고 합치고 작아지고 커졌습니다. 단군조선이 죽고 위만조선으로 환생하고, 위만조선은 고구려·백제·신라로 분열·환생하고, 다 죽은 다음 통일신라로 환생했고, 그 후에 신라는 죽고 고려로, 고려는 조선으로, 조선은 남북한으로 분할·환생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400년 전에 수백 개 영주들로 나뉘어 싸우다가 막부 한 몸으로 통일·환생했으며, 150년 전에는 명치유신으로 막부가 죽고 근대국가로 환생했다가, 다시 태평양대전의 패배로 사망했다가, 마침내 민주주의 국가로 환생했습니다. 더 좋은 예로는 무수한 왕조가 생로병사를 거듭한 중국을 들 수 있습니다. 유럽 아프리카 중동도 마찬가지입니다.



XI. 과대망상과 존재에 대한 집착이 윤회를 통한 환생을 꿈꾼다
    윤회론은 생명과 우주의 실상으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킨다

불교에서는 윤회를 ‘촛불의 이어 붙음’으로, 열반을 ‘촛불의 꺼짐’으로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이 촛불에서 저 양초로 불이 이어 붙었지만, 두 촛불이 같은 촛불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다른 촛불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불이 이어 붙을 양초가 없어서 촛불이 다하는 걸 열반(涅槃 nirvana)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촛불은 당연히 의식(識)을 말합니다. 의식이 이어 불붙다가 마침내 의식이 다하는 걸 열반이라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의식을,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이나 집단의식이 아닌, 초롱초롱한 현재의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좁은 의미의 해석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좁은 의미의 초롱초롱한 의식을 꺼뜨리지 말고 영원히 이어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들은 힌두교, 자이나교, 한국불교에 있습니다. 아주 많이 있습니다. 잠을 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절대로 잠을 자지 않겠다고 자꾸 감기는 무거운 눈꺼풀을 버티며, 한사코 잠을 자지 않으려는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입니다. 존재(有)와 의식(識)에 대한 욕망과 집착은 이처럼 집요합니다. 그리고 무서운 광기를 생산합니다.

인간이 자기가 '우주의 주인인 참나'이거나 또는 '우주와 하나'라는 과대망상을 하는 한, 그래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욕망과 집착이 사라지지 않는 한, 즉 ‘자신의 의식을 영원히 꺼뜨리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있는 한, 통속적인 윤회론은 영원히 인기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존재(有)와 의식(識)에 대한, 탐욕은 생명의 실상으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키므로, ‘초롱초롱한 의식을 지닌 채로 영원히 살겠다’는, 집착에 기반한 윤회론은 진정한 의미의 단멸론입니다. 이런 윤회론은, 진제 종정 스님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진화론과 우주론 부정 등 과학과의 단절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단멸론이기도 합니다. 



XII. 윤회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6도윤회론이나 권선징악적(勸善懲惡的)인 윤회론 등의 통속적인 윤회론을 극복하고, 새롭게 윤회를 해석해야 합니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