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12. 14:5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세상과 하나되어 바라보라
요즈음 들어
더욱 그런 생 각이 가슴을 칩니다.
사람이며 동식물
이 산하대지 자연 삼라 만상...
풀 한 포기며, 나무 한 그루
흙 한 줌에서 볼을 스치는 바람 에 이르기까지
이 추운 날 오후 따스한 햇살 한 줄기,
저녁 나절 절 앞마당으로 고개를 숙이는 산그림자며,
저 산 너머로 수 줍은 듯 붉게 그려지는 노을
절 앞마당에서 꼬리를 흔들며 뛰어노 는 심안이 또 마음이...
이 모든 내 주위의 식구들이
나와 한 가 족, 한 몸이구나 하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의 손길이 범접 하지 않은
그냥 가만히 내 버려 둔 것들이
가장 생기 발랄하게 살아 있구 나 느낍니다.
세상의 법칙 대로
있는 그대로 내버려 진 것들에게서
그 어떤 살아있는 스승 같은 그 무엇을 느끼게 됩니 다.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은
애쓰 지 않고, 억지 부리지 않고, 자기 생각 내세우지 않고
대 자연의 순 리에 모든 것을 맡기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 는 것일 겁니다.
그러고 보면
나를 포함한 우리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아주 여법하게 잘 살고 있는
우리의 많은 자연 식구 들을
너무 못살게 굴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사람의 손길이 타게 되면
함께 사람의 욕심도 타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러움의 맛을 잃게 될 것 같습니 다.
사람들이란
자연을 대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 고 바라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있는 그대로 충분히 본다는 것은
자연을 충분히 사랑한다는 것이고
그 순간 아무런 분별 없이 자연 과 하나가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연을 바라볼 때
어떻게 써먹 을까 하는 궁리만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용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 하는...
그런 것 이외에
그냥 자연을 바라볼 수 는 없을까요.
아무런 분별도 가지지 않고
아무런 판단이나 이용가치를 따지지 않 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말입니다.
가만히 발길을 멈추고
언제나처럼 사무 실 앞을 지키고 서 있는
한 그루 작은 나무를 바라본 적이 있으신가 요?
그 나무에 등을 기대고 가슴을 기대에 본 적이 있는지 요.
한 여름에 땀을 식히려고 그늘을 찾는다거 나,
내 편리에 의해 이용하려는 마음으로 찾는 것 말고
있는 그대 로의 자연을 평화로운 마음으로 만나 보셨는지를 말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자연과 진정으로 만날 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내 이기심이나 이용가치를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만나는 것 말입니다.
그랬을 때
우린 비로소 사람과 만나는 법도,
다른 모든 세상과 만나는 법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랬 을 때
아마도 우린 비로소
모든 것들과 만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 아 닐까요?
눈귀코혀몸뜻으로 만나는
모든 감각적 인 대상을 대할 때도
그저 있는 그대로
아무런 판단이나 분별 없 이 순수하게 바라봐 주세요.
그냥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그냥 그 렇게 보는 것이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았을 때
보는 대 상과 보는 이가 따로 따로가 아니게 됩니다.
둘은 따로 나뉘지 않는 순수한 하나가 되고
또한 순수한 사랑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 다.
'바라보기'
이것은 이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가 소박하게 그러나 진지하게 실천할 수 있는
아마도 가장 소 중한 수행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세상과 하나될 수 있고,
풀 한포기 작은 자연과도 하나될 수 있으며,
딱정벌레와도 하나될 수 있고,
또한 많은 사람들과 하나될 수 있고,
진리와 하나될 수 있는...
어쩌 면 유일할 지 모를 실천행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이 바쁜 세상 속에서
바쁨 속에 내몰려 이리 저리 쫒기지만 말고,
잠시 짬이라도 내어
텅 빈 맑은 시선으 로 세상을 바라보세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전혀 다른 세상이 보일 지 모릅니다.
바쁜 걸음 잠시 멈추세요.
들고 내는 숨 을 바라보고,
걷는 걸음 걸음을 바라보고,
하루 종일 조잘 거리는 입도 한 번 바라보고,
쉴 사이 없이 움직이는 몸도 바라보고,
원숭이처럼 늘 날뛰기 만 하는 생각들도 바라보고,
예전부터 사무실 청소하시던 아주머님 도,
매일같이 출퇴근 시켜주시는 버스 기사 아저씨도,
출퇴근 길에 스치 던 이름모를 눈에 익은 많은 사람들도,
회사 앞에서, 혹은 아파트 앞에 서 항상 마주치는 경비 아저씨 하며,
이따금씩 들리는 미용실, 슈퍼 마켓 주인 아주머님 또한
어쩌면 사소하다고 생각하고
별 관심 없이 스쳐 지나쳐 온 수 많은 이웃들에 대해서...
오늘은 좀 더 마음 을 모아
따뜻한 사랑을 담은 시선으로 바라보아 주시길...
보도블럭 사이로 힘겹게 솟아난 작은 야생 풀도 바라보고
입사 때부터 있어왔지만
한 번도 관심어린 사랑으로 보지 못했 던 나무 한 그루도 보아주고,
집 뜰 곳곳에 피어오른 소박한 풀들에 서부터
저벅 저벅 뒷산으로 올라 시선 가는 곳곳 마음으로 바라보 고,
때때로 새벽 청청한 공기를 맞으며
산 위로 떠오르는 첫 햇살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퇴근길 서산위로 붉게 물든 노을도 충분히 보아주고,
사무실 한 켠에 외로이 서 있는 화분에 물도 줘 보고,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들은
또 우리 가 마음을 모아 관심 가져 주어야 할 것들은
내 눈과 마음에 밟히는 생명 있고 없는 모든 것들입니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것들이지만
그 사소함이 나 자신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바라봄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 입니다.
참으로 바라보았을 때,
바라보는 나도 없고, 바라보는 대상도 없으며
좋은 대상도 싫은 대상도 없고,
옳은 것 도 그른 것도 없고,
오직 순수한 동체대비의 사랑과 지혜로움이
우리들 뻑뻑한 속 뜰을 맑게 적셔 줄 것 같습니다.
여산(廬山)의 안개비와 절강(浙江)의
물결이여!
가보지 못했을 땐 온갖
한이 많았는데
갔다가 돌아오니
별다른 것 없더라.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일세.
-
소식(蘇軾, 1037년~1101년)
여산연우절강조(廬山煙雨浙江潮)
미도천반한불소(未到千般恨不消)
도득귀래무별사(到得歸來無別事)
여산연우절강조(廬山煙雨浙江潮)
풍문을 통해 전해들은 이상향의
소식은
언제나 조금은 과장되고 왜곡되기 마련입니다.
도(道)라든가 깨달음이라 하면 보통 사람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신비스러운 어떤 것일 거란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누추한 현실과는 달리, 일상의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훌쩍 벗어나서, 그것을 한 번 얻기만 하면
바야흐로 완전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것이라 예상합니다.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서로 다른
두 가지 상태나 세계를 상정하고, 그 가운데 하나는 버리고
다른 하나는 취하려는 의도와 노력으로 도나 깨달음을 구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도 내지 깨달음은
한 상태에서 다른 한 상태로의 변화나 전이가 아닙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착각을 돌아보지 못한 까닭에
찾아 구할수록 오히려
점점 더 헤매고 멀어지는 아이러니가
벌어집니다.
결국엔 몸소 한 번 맛보아야만 합니다.
풍문으로 듣고 상상 속에서 그렸던 사실을
직접적으로 경험해야만 합니다.
그 경험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매우 소박할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을 회상하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새롭게 얻거나 알아야 할 대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있는 이대로 아무것도 달리 얻을 것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직접 맛을 보면 별다른 것은 아닙니다.
너무 큰 기대를 했던 사람은 그만큼 실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평범함, 이 소박함이야말로 진실로
비범한 것이요, 특별한 것입니다.
눈앞을 가리고 있던 한 생각에서 벗어나고도
한동안은 이 평범함의 비범함,
소박함의 특별함을 실감하기 쉽지 않습니다.
어느새 스스로를 살펴보는 일이 멈춰지는 순간
본래의 완전무결만 남습니다.
-
몽지님(몽지릴라밴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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