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외혼: 정신적 유전자의 혼합 |…… 강병균 교수

2016. 6. 12. 16:0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728x90





족외혼: 정신적 유전자의 혼합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인간은 육체적으로는 결정되어있지만, 정신적으로는 결정되어있지 않다.



I. 육체적 족외혼

육체적 특징은 두 사람이 성교를 함으로써 혼합이 가능하다. 즉, 두 사람의 육체적 특징을 혼합한 아이를 만든다. (중학교 시절 친한 친구 집에 갔다가 서로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게 생긴 친구부모와 형제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마치 어설픈 복제품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모두 거실에 앉아있다 들어서는 내 쪽으로 동시에 얼굴을 돌리는데 참으로 묘한 기분이었다. 다들 내 친구와 얼굴이 비슷했지만, 각각 나름대로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적 특징은 성교를 통해서는 혼합이 불가능하다. 즉, 두 사람의 정신적 특징을 혼합한 아이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혼합이 되더라도, 그 정도와 결과가 최소한 육체적인 것보다는 훨씬 못하다.

연쇄살인범 둘이 결혼한다고, 그 자식들이 연쇄살인범이 될 리는 만무하다. 연쇄살인범의 성향을 가지고 있을 리도 없다. 이 둘이 4쌍둥이를 낳자마자 사형을 당한 경우, 이들을 따로따로 평범한 가정에 입양을 시키면 과연 모두 연쇄살인범으로 성장할까? 절대 그렇지 않으리라.

푸른 눈과 검은 눈이 결혼을 하는 경우 자식의 눈 색깔은 정확히 멘델의 법칙을 따르지만,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결혼하는 경우 자식의 성품은 멘델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정신은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두 개의 뇌(마음)가 있다. 하나는 육체 안 뇌에 있고, 다른 하나는 육체 밖 사회에 있다. 즉, 하나는 개별 마음에 있고, 다른 하나는 집단적 마음에 있다. 후자는, 소위 문화유전자라 불리는 '밈(meme)'이다. (이 점에서 사회는 하나의 뇌를 가진 군집생물이다.) 개별 인간은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아 정신적인 특성이 완성된다. 인간은 태어날 때 육체적인 특성은 이미 완성된 상태이지만, 정신적인 상태는 미완(未完)이다.

그래서 사회란 일종의 정신적 인큐베이터이며, 인간은, 그 안에서 끝없이 성장하는, 영원한 정신적 미숙아이다.

이 미완의 상태를 교육, 훈화, 감화, 경험을 통해서, 그리고 타인과의 교류와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하나의 고유한 정신으로 완성해간다. (물론 여기서 완성이란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정신이 육체에 비해 후기에 나타났다는 증거이다.

인간의 육체적 특징은 확정되어 있지만 정신적 특성은 그렇지 않다. 엄청난 가소성을 지니고 있다. 검은 눈이 푸른 눈으로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또 검은 피부가 하얀 피부로 바뀌는 것 역시 불가능하지만, 악인이 선인으로 바뀌는 것은 가능하다. 불교에는 앙구리마라가 있으며, 기독교에는 바울이 있다. 둘 다 살인마에서 성자로 변신했다.

(전자는 직접살인을 했고, 후자는 간접살인을 했다. 어느 경우나 갓난아이 시절부터 살인의지를 지녔을 리는 만무하므로 환경의 영향이 지대함을 알 수 있다. 유명한 금언이 있다. 선인은 종교가 없어도 착한 일을 하겠지만, 선인이 악행을 하게 하는 것이 종교이다.)

겁쟁이를 용감한 전사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극적인 예가 있다: 아마존 밀림의 석기시대 원시인 아이들을 문명세계로 데려오면, 그들의 육체적인 특징은 조금도 변하지 않지만, 그들의 정신은 문명인의 정신으로 완전히 뒤바뀐다. 환경의 무서운 영향력과 정신의 가소성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례이다. 

이런 예들은 인류역사에 여기저기 남아있다. 하지만 기존의 육체적인 특징들은, (그 생명체가 살아있는 한) 시공(時空)을 통해서, 불변이다. 이들을 바꾸려면, 즉 새로운 조합의 특징들을 얻으려면, 짝짓기를 통하는 수밖에 없다. 족외혼(族外婚)을 하는 이유이다. 인구가 희박한 북극지방의 에스키모나 열대우림에 사는 원시인들은 외지에서 온 손님에게 여자를 제공하는 풍습이 있다. 새로운 유전자를 얻으려는 이유에서이다.

족외혼은 우수한 유전자를 받아 면역력을 강화한다. (정신적으로 용감한 전사는 문화로 만들 수 있지만, 생리적으로 전투력이 강한 병사인, 면역체는 문화로는 불가능하다.) 근친상간을 금하는 이유는 기형아출산과 면역력약화 등으로 종(種 부족 가문)이 멸종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로 유명한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는 만연蔓延한 근친상간으로 무수히 기형아를 생산했다.)

심지어 미개한 동물들에게도 금기이다. 지금 살아남은 종들은 다 근친상간을 금기시한 생물들이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있는 ‘강원도 정도 크기의 거대한 분화구’ 응고롱고로에 사는 사자들이, 어느 해 흡혈파리가 옮긴 질병으로 급감했다. 이 분화구는 고산지대에 위치하여 외부 동물들과 유리되어 있다. 그래서 살아남은 사자들은 작은 개체수로 인하여 근친상간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사자들은 면역력 약화로 인하여 수명이 짧아지며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자기 부인을 타인에게 빌려주는 것 역시 부도덕하게 보이지만, 종의 멸종위기 앞에서는 지극히 작은 문제일 뿐이다. 건강한 아이들이 없으면, 짧게는 그 집단의 노후가 불안해진다. 부인의 입장에서는 기형아를 낳는 것과 정상아를 낳는 것 중 어느 쪽을 택할까? 즉, 부인은 남편 이외의 타인과 성관계를 갖는 것을, 즉 일시적인 족외혼을 거부할까 아니면 허락할까?

남편의 입장에서는 그 아이가 (유전적으로) 100% 자기 아이가 아니지만, 부인의 입장에서는 100% 자기 아이이다. 과연 빌려주는 자가 더 괴로울까? 아니면 빌려지는 자가 더 괴로울까? 아니면 둘 다 행복할까? 다음이 참고가 될지 모르겠다. 남편이, 자기 부인과 밤을 보내고 떠난 손님을 좇아가 활로 쏘아 죽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씨받이나 씨줄이나 서러운 운명이기는 마찬가지이다.



II. 정신적 족외혼

정신의 족외혼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새로운 사상이다. 여기서 사상이란 인문적인 것과 자연과학적인 것을 모두 아우른다. 다른 말로는 정보이다. 또는 지식이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받아들임으로써 정신적으로 면역력이 강해지고 건강해진다. 즉, 정신적인 기형아의 출산을 막을 수 있다. 기괴한 사상은 자체적으로 극복이 힘들다. 자기 집단 내에서 마구 돌아다니며, 자가 증폭하고 근친상간하여 더 괴이한 기형사상을 낳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수천 년 유교전통을 지닌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홍수전과 문선명의 상제교(태평천국교)와 통일교는, 유교와 기독교가 기이하게 결합한 예이다. 이 사이비종교들은 그들의 기독교에 대한 무지로 발생했다. 그래서 과학, 정치, 경제, 교육, 종교 등 거대 단위분야 간의 (수평적인) 지식과 정보의 이동이 중요하다. 기괴한 사상의 제거는, 외부로부터 신사상의 유입이라는 외과적인 수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난한 일이다.

또한, 한 집단에 지식이 많을수록 그리고 다양할수록, 다른 집단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 줄어든다. 가장 간단한 예로 석기제자기술과 야금술을 들 수 있다. 석기제작기술을 모르던 집단은 아는 집단의 노예가 되었다. 석기는 청동기로, 청동기는 다시 철기로 진화했으며, 이를 좇아가지 못한 집단은 앞선 집단에 다 잡아먹혔다. 원자력에 무지하던 일본은 핵폭탄세례를 맞고 항복했다. 그런 일본이 노벨상수상자를 24명(과학 21명, 문화 2명, 평화 1명)이나 배출하며 경제·과학·문화대국이 된 것은 일찍이 문호(門戶)를 열고 서양 과학문명을 받아들인 공이며, 한국이 아직도 일본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은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근 조선후기의 쇄국정책의 탓이다. 항상 앞서가던 한국이 일본에 뒤처지게 된 것은 새로운 지식·사상·패러다임의 유입이라는 ‘정신적인 족외혼’의 부재가 그 원인이다. 또, 과학이 인간과 자연과 우주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법칙·원리에 대한 탐구라는 측면에서는, ‘형이상학적인 족외혼’의 부재로 볼 수도 있다. 

현대는 신기술개발에 기반을 둔 국제무역에 의지하는 지식·정보 시대이다. 정신의 힘이 육체의 힘을 압도하는 시대이다.

아직도 청동기시대의 미신이 힘을 발휘한다면 그 사회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이런 사회에는 사이비종교와 (정규종교 내에서도) 사이비교리가 창궐하게 되며, 그로 인하여 사회의 에너지를 지식·정보의 생성에 쓰지 못하고 낭비하여, 야만으로 치닫다가 선진 지식·정보를 지닌 사회의 노예로 전락한다. 이런 사회는 기존의 무지로 새로운 무지를 생산하며, 이를 환망공상의 악순환(vicious cycle of fanllusination)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한 일은 이들이 이 환망공상을 참다운 지식이라 간주한다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전 세대가 뱉어낸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양의 환망공상을 공부하느라 평생을 허비한다.

자유주의가 위대한 것은, 정신의 세계에 제약없는 혼합을 유도하여, 건강한 정신을 만들기 때문이다. 유구한 인류역사라는 실험과 검증의 장에서, 수많은 사상들 틈에서 치열한 상호경쟁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 사상은 진정 위대한 사상이다. 말로만 될 일이 아니다. 속된말로, 붙어봐야 어느 놈이 더 센 놈인지 알 수 있는 법이다. 사상의 통과의례에는 끝이 없다. 무한한 절차와 단계가 시공간에 무한히 펼쳐진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자연과학과 인문과학)과 다른 사상과 남의 종교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깊이 사유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광신과 근본주의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자기 종교만 옳다거나 경전의 말은 한 구절도 빠짐없이 문자 그대로 모두 옳다는 망상에 걸리지 않으며, 이미 걸렸다면 깨어날 수 있다. 거룩한 모습을 한 종교인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의 마음은, 사실상, 황량한 바람이 마른 땅을 훑으며 모래를 퍼 올려 기괴한 소리를 내며 울부짖는 환망공상의 사막이다. 인간은 누구나 삼장법사 현장스님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건너간, 악령이 들끓는, 고비사막을 통과해야 한다. 지밀(至密)한 인간의 마음속에는 어떤 괴물이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당사자도 모른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훈련이 위대한 이유이다.  
 
친구 집에서 받은 충격은, 친구가족들이 (사실은 인간들이) 서로 비슷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극과 극으로 다를 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인식에 기인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외모는 비슷하지만, 마음은 섬뜩할 정도로 다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외모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