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5. 21:0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사리를 자기 몸안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음을 자기 마음속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유럽은 1,600년 동안 천동설을 지지하는 무수한 논문을 생산했지만 동양은 3,000년 동안 윤회설을 지지하는 무수한 경전을 만들었지만
죽으면 끝이라는 주장은 유전자를 모르던 원시시대의 주장입니다. 생명과 문화는 유전자, 즉 생체유전자와 문화유전자에 의해서 이어지므로 절대 끊어질 수 없읍니다. 유전자는 생명체가 존재하는 한 세세생생 이어집니다. 당신이 부처가 되어 무여열반에 들더라도, 당신을 닮은 후손은 길이길이 이어집니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후손이 없더라도, 형제나 친척의 후손을 통해서 이어집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유전자도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네팔사람은 부처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큽니다. 한국사람도 그럴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부처님의 ‘생사리’를 지니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유전자라는 생사리! 통도사 금강계단에 있는 부처님 진신사리는 부처님 몸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따름입니다. 그리고 거기엔 유전자도 없습니다.) 예전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죽은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단멸론도 주장이 가능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동물이 식물과 같은 조상을 가진 형제지간이라는 사실과, 같은 구조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습니다. 동물은 식물과 16억 년 전에 갈라섰습니다. 만약 누가 전생을 다 기억할 수 있다면, 당연히 16억 년 전 식물이었던 시절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힌두교도나 불교도 중 어느 누구도 식물전생을 기억하는 이는 없습니다. 힌두교경전에도 불교경전에도 그런 사례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설사 윤회가 참이더라도) 식물이 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억을 담당하는 기관(器官 organ)이 없기 때문입니다. 눈 귀 코 혀가 없으니 들어오는 정보도 별로 없습니다. 아마 그래서 뇌가 없고 기억도 필요 없을지 모릅니다. 그에 비해 동물은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므로 새로운 주변환경에 맞추어 생존하려면, 즉 낯선 먹이가 안전한지와 다른 동물이 포식자인지 먹이인지를 판단하려면, 많은 정보가 필요해서 눈·귀·코·혀가 발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참나(眞我 아트만)가 한 일이 아닙니다. 같은 참나가, 왜 어떤 놈은 독초나 독버섯이 되고 어떤 놈은 약초나 식용버섯이 되며, 왜 또 어떤 놈은 누에나 지렁이가 되고 어떤 놈은 전갈이나 거머리가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식(識)의 상속(相續)·전변(轉變)·차별(差別)을 주장하는 유식학은 영혼을 지지합니다. 이게 엉뚱한 곳으로 잘못 나가면 참나(眞我 true atman)가 됩니다. 그런데 유전자는 상속이고 전변이고 차별입니다. 유전자는 종자(種子)이고 집지(執持)이고 이숙(異熟)이기도 합니다. 유전자의 집합인 게놈(genome)은, 유전자라는 종자를 보존하는, 창고(藏)입니다. 유전자의 이러한 특성은 생체적으로도 그렇고 문화적으로도 그렇읍니다. 식의 상속·전변·차별을 주장하는 유식학은 반밖에 보지 못했읍니다, 즉 문화유전자(밈 meme)만 보았읍니다. 나머지 반인 생체유전자(DNA)는 보지 못했읍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수십 억 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100년도 살기 힘든 인간이 명상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지혜를 명상으로 한정시키면 유전자나 진화론은 죽었다 깨도, 천불이 탄생해도 발견하기 불가능한 일입니다. 종(種)의 생성과 소멸은 누가 결정하는지에 대한 어려운 질문이 있읍니다. 예를 들어 공룡이 사라진 것은 누구의 업 때문입니까? 모든 공룡들이 특정한 업을 지어서 그 벌로 사라진 것입니까?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공룡이 사라진 이유는 6,500만 년 전에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유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나쁜 짓을 하면 동물로 태어난다’는 이론은 비윤리적인 이론입니다. 동물들을 벌 받은 존재로 보는 것은 동물들을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은 동물을 잡아먹는데, 그럼 벌 받은 전생의 인간을 잡아먹는 것입니까? 인간은 동물을 잡아먹는 것도 모자라 나쁜 존재로 간주하기까지 하면서 동물에게 이중으로 고통을 줍니다. 사악한 건 동물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제멋대로 자연계를 오염시키고 함부로 동물을 죽여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것은 바로 인간들입니다. 인간의 동물 학대와 비하는,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인 학대와 비하와 근본적으로 동일한 일입니다. “똥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바로 이 “동물은 저주받은 존재”라는 사악한 주장입니다. (동물들은 거의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초식동물들이 특히 그러하며, 육식동물인 사자 호랑이 늑대조차도 인간의 악행에 비하면 천사들입니다; 육식동물은 그 수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염소, 사슴, 소, 말, 양, 토끼, 참새, 벌새, 지렁이가 무슨 악행을 저지른다는 말입니까? 특히 햇빛도 안 드는 땅속에서 흙이나 먹고 사는 지렁이는 너무 억울합니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이 불쌍한 지렁이에게 “지렁이”라는 제목의 한 줄짜리 시를 헌정했읍니다: “도대체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인간은,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다른 인간에게 고해를 하면 죄가 없어진다는, 교활한 제도까지 만들어 낼 정도로 몹시 사악합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나쁜 짓을 하고, 다시 고해하면 그만입니다.) 태평양에는 인간이 버린 오물이 모여 한반도 크기의 거대한 ‘쓰레기 섬’을 만들어 떠다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무시무시한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 자기들끼리 죽일 뿐만 아니라, 코끼리 코뿔소 버팔로 호랑이 늑대 고래 등, 인간이 마구 죽여대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 어디 하나둘입니까? 이렇듯 환경오염과 생물살생 등 인간이 저지르는 만행(蠻行)은, ‘사람이 죄를 지으면 동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물이 죄를 지으면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해야 옳을 정도입니다. III. 근본주의적인 육도윤회론의 문제점 이런 점들을 생각해보면 육도윤회론(六道輪回論)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최소한 지금형태로는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진화론과 우주론을 모르던 원시적인 시대에 만들어진 이론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인들이 별생각 없이 육도윤회론을 문자 그대로 수용하는 이유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100년 안짝이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없어진다 해도 50억년 후의 일이니 그 까마득한 세월 뒤를 근거로 현재를 생각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스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믿기 힘들더라도 스님이 믿는 바를 믿어주어야 하는 점도 있을 것입니다.) IV. 균형있는 사고의 실종 석가모니 부처님도 이질, 요통, 두통, 등창 등으로 몸이 불편하면 의사 기바(Jiva)에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육체적인 질병의 치료법에 대해서는, 최소한 기바보다는, 잘 모르는 것이 분명합니다. 부처님이 암, 에이즈, 광우병 등 난치·불치병의 치료법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처님을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진실을 진실이라 하고 거짓을 거짓이라 하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정신적 고통치료의 독보적인 일인자, 즉 심의왕(心醫王)이었을 뿐입니다. 다른 과학적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과학적 진리가 종교경전에 들어있다면, 종교경전에 언급되지 않은 것은 진리도 아니고 발견되지도 말아야 합니다. 수혈, 기차, 전화, TV, 라디오, 냉장고, 자동차, 내연기관, 인공위성, 스마트폰, 수력발전, 원자력발전, 내비게이션, 사물인터넷, 자기부상열차, 장기이식수술, 마이크로웨이브 등은 어느 종교경전에도 언급이 없습니다. V. 연기법은 불교도들을 편애하는 인격신 같은 법칙이 아니다 서양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한 것은 동양종교와 마찬가지로 물질적인 것과 물질적인 부를 경멸하던 기독교 신학을 극복한 점에 있습니다. (그들은 생각을 바꿨습니다. 이 우주는 신의 창조물이므로, 우주를 연구하는 것이 신의 영광과 섭리를 깨닫는 길이라고. 즉, 신이 헛수고를 해서 우주를 만들었을 리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 물질세계와 자본주의를 발달시켜 동양을 넘어서게 된 것입니다. VI. 진화론 등 과학을 부정하는 자들이 진짜 단멸론자 윤회 근본주의자들은, 누가 윤회론을 비판하면 단멸론자(斷滅論者)라고 공격을 합니다. 예를 들어 “윤회론 중에 지옥윤회는 문제가 있다. 수정되어야 한다” 하면, 단멸론이라고 비난을 합니다. 육도윤회는 ‘일점일획(一點一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단멸론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단멸론이란 ‘인과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단멸론이란 인간 행위가 인(因 cause)이 되어 과(果 effect)를 초래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가장 쉽게는, 선한 행위에 따른 선과와 악한 행동에 따른 악과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구 함부로 살아도 좋다고 주장합니다. 이걸 단멸론이라고 합니다. 문자 그대로의 통속적인 윤회론을 안 믿더라도, ‘선한 인간이 선한 결과를 악한 인간이 악한 결과를 얻는 사회’를 만들어간다면, 그것이 진정한 인과론의 구현일 것입니다. 소위 ‘정의구현’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자유·평등·박애의 구현입니다. 기억과 의식이 있는 인간이 “윤회가 있다, 없다; 없다고 하면 단멸론이다, 아니다”라고 떠들 뿐이지, 우주는 무심합니다. 묵묵히 인과법과 연기법을 실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35억년 동안 한 마디 말이 없는 우주의 침묵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전처럼 앞으로도, 일반사면이나 특별사면이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보이지 않는 승차권 하나 손에 쥐고 떠나는 기차여행과 같다합니다.
가다보면~ 어둠으로 찬 추운터널과 눈보라가 휘날리는 매서운 길이며 때로는 뜨겁게 숨막힐듯한 험한길을 지나갈 때를 맛보기도 합니다. 고통과 막막함이 느껴지는 곳을 지난다고 해서 우리의 손에 쥐어진 승차권을 내팽개쳐 버리거나 찢어버릴수는 없는거겠지요. 목적지에도 채 도착하기전에 승차권을 찢어 버리고 중도하차 하려는 인생은 어리석다 하겠지요. 인내하며 가야겠지요.
인간이 이세상에 태어나 인생을 살아 갈수 있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 한번 궁굼한 마음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하루 24 시간 중에 3분의1은 수면을 취해야 하고 ,3분의 1은 삶을
영위 하기 위하여 자신을 잊어 버려야 할때 나머지 3분의 1, 즉 8시간
이 인생을 즐길수 있는 시간 이라고 보았을때,
과연 한평생 얼마의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을까요 ?
인간의 수명을 통계치 기준에 의하면 남자 72세,여자78세 기준으로
하였을때,이세상에 태어나 유년기 시절의 철모르는 시절 18년을 제외
하고 노년기의 65세 이후의 삶을 잊어 버린다고 하였을때 한 인간의
인생을 즐길수 있는 기간은 47년 이란 세월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보면, 이중에서 3분의 2를 제외 하고 나머지 3분의1을 즐긴다고 보았
을때 15.6년 이란 길지도 않은 인생 이라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전부가 아니라 살아 가면서 희,노,애,락의 시간을 제외 한
다면 불과 10년 이내 일 것입니다,
일수로는 3,650일,시간으로는 8,670시간으로서 지금 이글을 읽고 있는
이순간도 삶의 일부분 으로서 지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이것은 전체의 시간이고 , 우리의 현재 모습에서 보았을때
과연 얼마의 시간이 주어져 있을까요?
여러분 궁굼 하지 않으 십니까?
만약 50대 이라면 과연 얼마의 시간이 주어져 있을까요,?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격언을 새삼 느껴 보면서,,,,,,
길지도 않는 인생을 살아 가면서,서로 반목 하고 미워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이 모두가 부질 없다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습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을 자주 듣고는 합니다 마는 과연 이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모르고 살아 왔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가면서 혼자서는 살아 갈수 없도록 되어 있어 언제나 상
대성이 있기에 서로의 이해 관계로 부딪치다 보면 마음이 상하게 되고
감정을 느끼다 보면, 상대를 미워하고 싫어 지기도 하고 심지어 원한이
사무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생겼을때 우리의 삶이란 무엇 인가를 생각 하면서
마음을 비울수 있다면 그사람이 바로 성인(聖人)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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