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輪回)|…… 강병균 교수

2016. 7. 16. 21:4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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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輪回)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영원히 이어져야 하는 것은 중생의 행복이지 나의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나’라는 느낌이나 생각이 있어야만 내가 한 것인가? 반드시 내가 했다는 생각이나 느낌이 있어야만 유의미한 것인가?

보통 불교신자들은 자기들의 전생을 자각하거나 기억하지 못해도 선행을 하며 산다. 전생의 그가 현생의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각하지 못해도, 현생의 그가 선을 행함에는 조금도 문제가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자신의 어떤 행이 선함의 극(極)에 이르러, 몸의 반사행동처럼, 그 행을 의식함이 없이 하는 현상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이런 사례는 종교와 관계없이 나타난다. 인간이 지닌 본래 선한 모습의 발현이다: 벌 받을까봐 혹은 피해를 볼까 두려워 악행을 억누르고, 상을 받으려고 혹은 이익을 보려고 선행을 하는 것은 낮은 수준의 선이다; 이에 비해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선은 절대적인 선이다. 현대 진화생물학과 뇌과학의 발전은, 권선징악적인 인과론(因果論)이나 윤회론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보통의 선행과 악행을 하는 이유를 설명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가 걸어온 길을 즉 ‘왜 우리가 지금의 우리인지’를 설명해주지만, ‘우리가 갈 길’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진화에는 정해진 방향성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46억 년 전에 지구가 생긴 시점에서, 그리고 35억 년 전에 지구상에 최초의 생명이 생긴 시점에서, 지금의 인간이 생기기로 미리 정해진 바가 없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절대적인 선이다. 그런데 자연계가 지닌 놀라운 쌍대성으로 인하여, 인간이 지닌 본래 악한 모습은 전범, 흉악범, 학살범, 연쇄살인범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지극히 선한 행과 지극히 악한 행은 놀랍게도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생각보다 흔하게 나타난다. 소위 선과 악의 평범성(banality of good and evil)이다.)

내가 뿌린 선행이라는 씨앗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와 국가와 지구와 우주에 이익이 된다면 의미가 없는 것인가? 거기다 그 씨앗을, 내가 나 자신도 모르게 뿌린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의미가 없는 것인가? (내가 별생각 없이 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큰 이익이나 불행이 된 경험을 한 적은 없으신가? 그래서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당사자로부터 감사나 원망의 말을 들은 적은 없으신가? 우리 ‘신구의 삼업(身口意 三業)’은 우리가 의식함이 없어도 ‘자체의 힘’으로 작동한다. 윤회를 거듭한다. 내가 한 망어·악구·기어·양설(妄語·惡口·綺語·兩舌 거짓말·험담·꾸민말·이간질)은 상대방 입을 거쳐 변형되어 다른 사람들의 망어·악구·기어·양설로 진화하고 윤회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끝없이. 인과장(因果場)과 연기장(緣起場)의 작동원리이다.)

이 세상에 전생을 기억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야 할 정도로 극소수다. 관세음보살의 환생이라고 추앙받는 달라이라마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 설사 누가 자기 전생이 누구누구라고 주장해도 사실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정신병동이나 기도원에 가면 자신이 전생에 예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수천 명이나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수만 명에 이를 것이며 역사상 누계를 내면 수백만 명은 족히 될 것이다. 최영, 사명당, 원효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달마는 물론이고 부처였다고 고백하는 사람조차 있다: 그것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당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더운 입김을 내뿜으며 말한다. 정신이 멀쩡한 사람들 중에도 있다. 정말로 그러했는지 진실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누가 자신이 어젯밤에 하나님과 대화했다고 주장하면, 그 진위를 가릴 방법이 있는가? 필자가 “본인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주장하면, 그게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는가? 통일장이론을 증명하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나, 이 일은 불가능하다. 종교적인 주장이나 선언의 특징이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전생에 육조혜능이었다”고 주장하면 무슨 수로 사실인지 아닌지 가릴 것인가? 대한민국 제3대 내무부장관이 바로 그런 분이다. 믿어지시는가? 누가, 특히 젊잖게 생긴 수행자가, 자신이 돌아가신 당신의 증조부라고 주장하면서 금전적으로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장 집착하는 것이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점이다. 진화론에 의하면 생명이 출현한 것은 45억년도 안 되므로 지구상 윤회의 역사도 그 정도이다. 1겁에도 못 미친다. 진화초기의 생물인 단세포 생물, 다세포 생물, 삼엽충과, 지렁이, 굼벵이, 무당벌레 같은 벌레와, 송사리, 피라미, 붕어, 가물치, 모래무지, 메기, 뱀장어 등의 어류가 (지구상에서의) 전생을 기억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도롱뇽, 도마뱀, 이구아나, 뱀 등의 파충류는 어떠하고, 박쥐, 돌고래, 향유고래, 펭귄, 개, 늑대, 하이에나, 사자, 누, 물소, 치타, 안경원숭이, 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 보노보 등의 포유류와 영장류는 또 어떠한가? 중요한 것은 전생의 기억 여부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의 나의 삶, 즉 행과 말과 마음(씀씀이)이다.

내가 하는 행·말·마음씀씀이가 가족, 친지, 동료, 마을, 사회, 국가, 우주에, 한 마리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몰고 오듯이, 연쇄적으로 연기적으로 선한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이다. 내가 죽은 후, 그 결과를 내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선한 결과를 가져오면 되는 것이다. (전생의 당신은 현생의 당신의 행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현생의 당신은 미래의 당신의 행을 의식하지 못한다.) 의식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 행이 씨앗이 되어 더 많은, 수많은, 선을 낳는 것이 훨씬 더 ‘산수비유소불능급(算數比喩 所不能及)’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연기법에 의하면 내 행은 물결치는 연기장(緣起場 field of co-dependent origination)에, 선하거나 악한 혹은 무기(중립)의, 무한한 요동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칠불통계(七佛通戒)에 의하면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선한 일은 뭐든지 행하고, 악한 일은 뭐든지 행하지 말며, 자기 마음을 깨끗이 하라)'가 모든 부처님의 공통된 가르침이다. 꼭 내세가 아니더라도 과거·현재·미래의 내 모든 행은 연기장 안에서 시공을 통해서 끝없이 윤회한다. 한번 지은 행은 일파만파를 일으키며 가족, 직장, 사회, 지구, 우주에서 모습을 바꿔가며 윤회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의사와 무관하게 제 맘대로. 그리고 마침내 엉뚱한 모습으로, 갑자기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예를 들어, 내가 퍼뜨린 소문이 사람들 사이를 돌고 돌아 몹시 뒤틀리고 변형된 모습으로 다시 내게 전달될 때, 처음에는 못 알아보고 “그래요? 어떻게 그런 일이? 정말 나쁜 놈이군요!” 하고 놀라며 분개하다가 불현듯 깨닫는다. 그 소문의 진원지가 바로 자기였다는 것을! 그런데 그 소문은 이미 괴이하고 흉측하고 커다랗게 진화했고(육식공룡처럼), 소문의 대상은 이미 크게 피해를 입은 후이다(육식공룡의 먹이처럼). 그리고 통상 그런 피해는 불가역(不可逆)이다. 진화론의 무서운 면이다. 윤회 역시 불가역적이다. 현생(현재)은 내생(미래)에만 영향을 미치지 전생(과거)에는 절대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불교에 의하면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불교교리 상 시간여행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과(果)는 인(因)에 후행(後行 follow)하기 때문이다.

설사 통속적인 윤회가 없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 내 행이 가져올 밝고 행복한 내일의 또는 미래의 세상을 마음의 화면에 그려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인가(설사 그때는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당신이 교통사고로 뇌에 충격을 받고 코마에 빠졌다가 50년 만에 깨어났는데, 당신이 50년 전에 한 발명으로 인류가 그동안 엄청난 혜택을 입었다면 그동안 당신의 의식이 없었던 것이 문제가 되는가? 당신의 업적은 꼭 당신의 의식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업적은 당신이 의식을 되찾는 순간에 생기는 것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는 것이 당신의 답이라면, 즉 그 업적은 당신이 깨어나기 전에 이미 존재했다면, 당신이 영원히 코마에서 깨지 않아도, 즉 당신이 실제적으로 영원히 사라져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생을 기억하는 능력은 지금 이 자리에서 칠불통계를 실천하는 것에 비해서 ‘산수비유소불능겁’으로 하찮은 일이다. (인류의 과거는, 개인들의 전생기억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집단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윤회론이, 즉 개인의 전생기억이 고인류학, 고대역사, 지구역사, 고생물학, 진화론 등 연구에 기여한 바는 전무하다. 문자 그대로 전무하다. 무수한 리시(rishi, seer, 천리안 천안통)와 요기(yogi)를 자랑하는 인도나, 선불교 조사(祖師)들을 자랑하는 중국에도, 그런 일은 없었다. 한국 역시 대수행자들을 배출했으나 한국고대사는 오리무중이다. 그래서 온갖 괴이한 이론들이 난비(亂飛)한다. 정말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대수행자들은 한없는 과거생(過去生)을 다 기억할 수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고래(古來)로 공룡뼈를 용뼈(龍骨)인 줄 알고 가루로 만들어 복용했다. 한약방은 공룡화석의 보고였다. 도인(道人), 선사(禪師), 조사(祖師)들이 지구생명계의 비밀과 역사를 알았더라면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천지만물, 삼라만상, 우주, 삼천대천세계의 시원(始原)과 종말을 논하면서도, 한약방에 굴러다니는 큰 뼈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멀쩡히 두 눈을 뜨고도 못 본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이 면에서 고대의 수행자들과 현자들은 당달봉사였다.) 인류 경제제도·정치제도 발전과 인권향상과 과학·문명 발달은, ‘윤회를 믿지 않거나, 믿어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기억하시라. 그들은 그들의 마음의 화면에 자신들의 행이 사회와 인류에 가져올 복된 미래를 그렸기 때문이며, 자신들이 불교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칠불통계(七佛通戒)를 실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불교인들의 공 역시 크다. 서양인들이 선행만 했다는 뜻은 아니며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하게 악행을 한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대륙(북미, 중미, 남미)에서의 원주민학살,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태즈메이니아(Tasmania)인 멸종시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식민지화, 20세기의 두 차례의 세계대전 발화, 민간인에게 원자폭탄투하 등이 있다. 참으로 나쁜 짓을 많이 했다. 지난 500년간의 지구상의 인위적인 대참사는 거의 다 서양인들이 저지른 짓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선행에 대한 생각(교리)보다는, 선행 그 자체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인류역사상, 서로 다른 종교와 서로 모순되는 교리를 지닌 사람들의 선행(先行)이 낳은 선과(善果)를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렇게 부정할 자신이 있으신가?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이다. 도대체 무엇을 더 바라시는가?

부처님이라는 살아있는 무량대수()와트 등대(bio-light house)가 없는 무불(無佛)시대에도, 인간은 생사(生死)의 고해(苦海)를 헤쳐 나가며 살아야한다. 그때 인간을 받쳐주는 것은 인간이 가진 본래의 심성(心性)이다. 그러나 이 심성은 불변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끝없이 진화하는 심성이다.

종교(교리)와 관계없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原初的)인 선함의 ‘발현과 발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희망이 없다. 인류를 35억년 동안 단세포 아메바에서 100조 개 다세포 호모사피엔스로 이끈 것은, 부처님이 아니라, 바로 이 원초적인 선함의 발현·발전과 그것을 담는 그릇인 의식의 진화이다.

이런 의식의 진화를 우리 역사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오랜 유배생활 중에, 병든 아내가 보내준 시집올 때 입었던 낡은 다홍치마에, 두 아들을 위한 교훈을 써 하피첩(霞帔帖)을 만들었다. “화와 복의 이치에 대해서는 옛날 사람들도 오래도록 의심해 왔다. 충과 효를 한다고 해서 꼭 화를 면하는 것도 아니고, 방종하여 음란한 짓을 하는 사람이라고 꼭 박복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은 복을 받을 수 있는 당연한 길이므로 군자는 애써 착하게 살아갈 뿐이다.” 세상에 만연한 부조리에 짓눌리거나 잡아먹히지 않고 오히려 당당한 자세로 맞서 부조리를 때려잡으려 했던 조선말 위대한 지식인의 신산(辛酸)한 삶을 지탱한, 한겨울 눈바람 속에 서 있는 푸른 소나무 같은,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만년에 호를 사암(俟菴)이라 지었다. 먼 훗날 성인이 와서 보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학문과 수양에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었다(百世以俟聖人而不惑). “군자는 애써 착하게 살아갈 뿐이다.” 참으로 그러했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ㅡ오늘의 명언 ㅡ 운명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사람 자신이 운명을 무겁게 짊어지기도 하고 가볍게 짊어지기도 할 뿐이다. 운명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약한 것이다. 내가 약하면 운명은 그만큼 무거워 진다. 비겁한 자는 운명이란 갈퀴에 걸리고 만다. -- 세네카 --




 유머 모음 - 망사지갑외
<망사지갑> 지갑을 파는 노점상 앞에 서울 부부와 어느 경상도 부부가 나란히 서 있었다. 서울 부부의 부인이 말했다. "자기야, 겨울도 지났고 지갑이 두껍고 무거워서 그러는데 저 망사지갑 하나만 사줘~~응~~?" 그러자 남편이 "그래, 자기가 갖고 싶다는데 사야지!!.."라며 지갑을 샀다. 옆에서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던 경상도 부인, 용기를 내 어 남편에게.. "지도예, 겨울지갑이라서 무거븐데 망사지갑 하나 사주이소~~!"라며 애교까지 떨었다. 그러자 묵묵히 있던 경상도 남편 왈, "와~~아? 돈이 덥다 카드나???.. " ㅋㅋㅋ~ <장희빈과 숙종> 옛날에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시해하려다 발각되어 숙종에 게 사약을 받게 되었다. 장희빈은 억울하게 생각하고는 사약 그릇을 들고 숙종에게 달려가서 외쳤다. 장희빈(사약을 보이며) "이것이 진정 마마의 마음이시옵니까? ??" 이 말을 들은 숙종은 두 눈을 지긋이 감고 한참을 생각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은 그 사약 그릇 밑에 적어 놓았느리라 ~~!!" 한가닥의 희망을 고대하던 장희빈은 얼른 그릇 밑을 보았다. 하지만, 그 글자를 본 장희빈은 사약을 마시기도 전에 입에 거품을 물고 죽고 말았다. 사약 그릇 밑에는 이렇게 적 혀 있었다. "원샷~~!!" 흐흐~


<누님 저 왔습니다>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다 결혼한 신혼부부가 있었다.
둘은 나이도 동갑이고 결혼후에도 친구처럼 허물없이 농담도
잘하며 지내는 터였다.
하루는 시골에 있는 시아버지가 내일이면 아들네 집에 잠깐
들릴 겨를이 있을 것 같아 사전에 알려주기 위해 전화를 했다.
"나다, 애비다!!.." 시아버지와 신랑 목소리가 워낙 같았고
신랑이 가끔 장난 전화를 했기에 새댁은 신랑인줄 알았다.
"웃기지마~!.." "애비라니깐?.." "장난치지 말라니까?~ "
"허~ 그 참, 애비래두!~ " "네가 애비라면 난 네 누님이다!~"
다음 날 시아버지가 올라 왔다. 그리고 며느리에게 하는 말,
"누님!!~~ 저 왔습니다!!!" ㅋㅋㅋ~~



<본처 온다~~>

한 중년 남자가 젊고 예쁜 여자와 정사를 하다가 복상사 했다.
그런데 남자의 물건은 죽지 않고 마냥 그대로 있어 입관해야
하는데 관이 닫히지 않았다. 어떤 처방을 해도 물건이 계속 서
있어 난감했다. 그러던 중 고명하신 스님 한 분이 오셔서 불경
을 읽어드리자 남자의 물건이 살그머니 죽는게 아닌가!
입관을 마치고 하도 신기해서 스님께 불경드린 내용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스님 왈!,
"본처 온다! 본처 온다! 본처 온다!.." 흐흐흐~~

<남편을 기절시킨 부인>

45층짜리 아파트의 꼭대기 층에 사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맞벌이 부부인데 잉꼬부부라 꼭 퇴근시간을 맞추어
함께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난 것이었습니다.
부부는 하는 수 없이 걸어서 올라갔지요
하지만 45층까지 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지루함을 잊고 재미있게 걸어 올라가기 위해서 번갈아
가며 무서운 이야기를 하기로 했지요. 이야기를 하다보니
처녀귀신, 몽달귀신 등 갖가지 귀신들이 다 나왔고, 드디어
45층까지 왔습니다.
이번에는 아내가 이야기를 할 차례였지요. 아내는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하는 것이었어요.
남편을 기절시킨 그 말은, 
"여보!~ 나 수위실에서 열쇠 안 찾아왔어!!.." ㅋㅋ~~



<해수욕장에 다녀온 여자>

해수욕장을 다녀온 여인을 만나 남자가 물었다.
남자: 얼굴이 새까맣게 탔는데 몸 전체도 그렇게 탔어요?
여자: 아뇨, 한 곳만 빼놓고는 다 탔어요!
남자: 호기심이 나서 어딘데요?
여자: 보여드릴까요?
남자: 군침이 도는지 예!~
여자: 그럼 저쪽으로 가서 보여드릴께요?(호젓한 곳으로 남
자를 끌고 간다)
여자: 손가락을 움직이더니 결혼 반지를 빼면서 
"이 반지 자리요!!.."  ㅎㅎㅎ~

<벌거벗은 여자들>

커다란 그 농장은 변두리에 큰 연못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연못은 수영하기 좋게 가꿔져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남자는 연못을 둘러보고 오기로 했다. 연못에 가까이 다가
가자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 보니 젊은 여자 여럿이서 벌거벗고 헤엄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남자가 기척을 보이자, 여자들은 연못의 깊은 곳으
로 몰려갔다. 그러고는 한 여자가 남자에게 소리쳤다.
"당신이 가기 전엔 나가지 않을거예요!" 그러자 남자는 능청
을 떨면서 남자 왈!,
"난 아가씨들이 알몸으로 걸어 나오는 걸 보려고 온 게 아니
고, 악어에게 먹이를 주려고 온거란 말이예요!!"
아가씨들 "............................."



<도박의 종말>

친구끼리 도박을 하다가 큰돈을 잃은 친구가 심장마비로 그
자리에서 죽었다. 친구들은 앙칼진 그의 부인에게 알려야
겠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우선 친구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주머니, 남편이 어제
도박을 하다가 큰 돈을 몽땅 잃었습니다.!!.."
그러자 부인 왈!,
"으이구!~ 나가 뒈지라고 해요!!.."
친구: "네!~ 이미 소원대로 그렇게 됐습니다.!!" ㅋㅋ~~

<부부상태>

10대: 서로가 뭣 모르고 산다.
20대: 서로가 신나서 산다.
30대: 서로가 한 눈 팔며 산다.
40대: 서로가 마지못해 산다.
50대: 서로가 가엾어서 산다.
60대: 서로가 필요해서 산다.
70대: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



<사나이 12불(十二不)>

4不幸 1不 : 술을 보고는 그냥 지나가지를 못한다.
        2不 : 마시고는 갈 망정 들고 가지는 못한다.
		3不 : 반주 없이는 밥을 먹지 못한다.
		4不 : 술기운 없이는 잠을 자지 못한다.
4不思 5不 : 술자리에선 안주를 생각지 않는다.
        6不 : 술자리에선 주머니를 생각지 않는다.
		7不 : 술자리에선 집 생각, 회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8不 : 술자리에선 권주를 사양치 않는다.
4不在 9不 : 술 마시고 집에 안 들어간 적이 없다.
       10不 : 술 마시고 그냥 자는 법이 없다(봉사는 필히)
	   11不 : 술 마시고 늦잠 잔 적이 없다.
	   12不 : 술 마시고 해장국을 찾은 적이 없다.
<웃기는 사자성어>

01.새옹지마 : 새 처럼 옹졸하게 지(*)하지 마라.
02.발본색원 : 발기는 본래 *스의 근원이다.
03.이심전심 : 이순자 마음이 전두환 마음.
04.침소봉대 : 잠자리에서는 봉(?)이 대접을 받는다.
05.사형선고 : 사정과 형편에 따라 선택하고 고른다.
06.전라남도 : 홀딱 벗은 남자의 그림.
07.좌불안석 : 좌우지간에 불고기는 안심을 석쇠에 구워야 제맛.
08.요조숙녀 : 요강에 조용히 앉아서 잠이 든 여자.
09.변화무쌍 : 변절한 화냥(*)은 무조건(*)년 이다.



울님들께서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