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음알이가 많은 요즘 사람들

2016. 9. 3. 17:3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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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음알이가 많은 요즘 사람들

대혜(大慧) 스님이 입실했던 사람들이 물러간 후 한가하게 앉아있다 문득 말했다.
“요즘 형제들은 지견과 알음알이가 많아서 쓸데없는 말과 긴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여기에 와서 답을 하려 한다. 마치 수중에 값을 따질 수 없는 마니보주를 가지고 있다가


사람들이 ‘그대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그것을 버리고 한 개의 흙덩이를


집어 드는 것과 같다.


참으로 어리석구나! 만약 이런 식으로 참구한다면 나귀 해가 되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스님이 하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이곳에서는 사람들에게 줄 법이 없다. 다만 죄상에 따라 판결만 해 줄 뿐이다.


흡사 유리병을 가지고 와서 무엇이나 되는 듯 애지중지하면 나는 한 번 보고는 곧장


그대들을 위해 깨뜨려 버리는 것과 같다.


그대들이 또 마니주를 얻어 가지고 오면 나는 또 빼앗아 버리고,


그대들이 여여(如如)하게 오면 나는 다시 그대들의 두 손마저 잘라 버린다.
그러므로 임제 화상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며,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인다’고 말한 것이다. 너희들은 말해 보라.


이미 선지식이라 불리면서 어째서 도리어 사람을 죽이려고 한 것일까?


그것이 무슨 도리인지 너희들은 살펴보라.




요즘 형제들은 공부를 하면서 이것을 살피지 않는다.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다만 그것을 밝히려 한다면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이렇게 하지 않아도 안 되고,


이렇게 하거나 이렇게 하지 않거나 모두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너희들은 한 마디 말을 가지고 곧장 밝힐 수 있겠는가? 영원히 그것을 밝힐 수 없을 것이다. 옛사람들은 매우 단도직입적이었다. 그대들은 단도직입적인 곳으로 곧장 가려하지 않는다.


다만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오히려 얻는 것이 늦을 뿐이다.”

- 종문무고






엄양(嚴陽) 존자가 어느 날 조주(趙州) 선사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조주 선사가 말했습니다.
“놓아 버려라.”
엄양 존자가 말했습니다.
“이미 한 물건도 가지고 온 것이 없는데 무엇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까?”
그러자 조주 선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짊어지고 가거라.”

예나 지금이나 선 공부를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알음알이,


지식과 견해에 의지하는 버릇입니다. 너무나 자신의 알음알이,


지식과 견해에 중독되어 있기에, 마치 엄양 존자와 같이,


본인 스스로 알음알이에 의지해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알음알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선의 진수를 맛보기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왜 알음알이, 지식과 견해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일까요?

알음알이, 지식과 견해, 곧 뭔가를 이해하고 싶은 욕망은 그 밑바탕에


자신이 다른 것들과 별개로 독립된 존재란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무수한 개별자들 가운데서 독립된 자아가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끝없이 자기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과의 관계에


신경을 써야 되기 때문입니다. 알음알이는 자아의 욕망, 곧 자아 그 자체입니다.

선을 지도하는 사람은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가르치거나 전달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알음알이, 왜곡된 지식과 견해를 빼앗아


없애버릴 뿐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알음알이에 지나치게 집착해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방편의 가르침을


자아에 대한 공격으로 오해하거나, 심한 경우 그러한 가르침의 말을 역으로 이용해


상대를 비난하거나 공격합니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조주 선사처럼 다시 짊어지고 가게 놓아둘 뿐입니다.
선은 단도직입적입니다. 생각하고 헤아리고 따질 것이 전혀 없습니다.


즉심(卽心), 어떠한 분리가 없는 바로 이 마음이 그대로 부처입니다.


즉(卽)이란 아무런 시공간의 차이가 없다는,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어떤 알음알이, 지식과 견해, 이해가 남아있지 않을 때, 단 한 순간도 떨어진 적 없는


이 마음에 바로 통하게 됩니다.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훌륭한 선의 종장(宗匠)일수록 자질구레한 설명보다는 거친 몽둥이질과 벼락같은


고함 소리와 같은 불합리한 행위를 통해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알음알이를 끊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선의 역사 속에서 그러한 인연으로 깨침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뒤늦게 자신을 위해 설명해 주지 않은 스승의 은혜에 진정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오히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늦어질 뿐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알음알이의 집 속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 가슴 한 구석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진실은 거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같이 여전히 무언가를 더 알고 싶은 욕망이


멈추어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직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알음알이의 마른 지혜를 가지고는 절대 자기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완전히 비울 때 완전히 채워지고, 완전히 모를 때 완전히 알게 됩니다.




- 몽지 심성일님(몽지와릴라 밴드에서)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

 

-  조 순 박사님(89세)


고향이 강릉이시고봉천동에서 25년을 살고 계신다는,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학자인 조순 박사

(前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께서 쓰신 글입니다

*장자(莊子)가 말하는 습관적(習慣的)으로 저지르는 8가지 과오(過誤)

1. 자기 할 일이 아닌데 덤비는 것은 '주착(做錯)'이라 한다.
2. 상대방이 청하지도 않았는데 의견을 말하는 것은 '망령(妄靈)' 이라 한다.

3.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말하는 것을 '아첨(阿諂)'이라 한다.
4. 시비를 가리지 않고 마구 말을 하는 것을 '푼수(分數)'라고 한다.

5. 남의 단점을 말하기 좋아하는 것을 '참소(讒訴)'라 한다.
6. 남의 관계를 갈라놓는 것을 '이간(離間)질'이라 한다.

7. 나쁜 짓을 칭찬하여 사람을 타락시킴을 '간특(奸慝)'하다 한다.
8.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비위를 맞춰
상대방의 속셈을 뽑아보는 것을 '음흉( 陰凶)'하다 한다.

나는 사람의 일생은
기본적으로 즐거운 것으로 보고 있다.

‘고중유락(苦中有樂)’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생은 괴로운 가운데 즐거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 인구가 이렇게 많을 수 있겠는가?

“그럼 늙고 죽는 것도 즐겁단 말이오?”
아마 이런 반론이 있을 것이다.
글세,늙고 죽는 것이 꼭 즐거운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 의미를 잘 안다면 얼마든지 달관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장자(莊子)는 아내가 죽었을 때,
항아리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소동파(蘇東坡)의 시에
‘죽고 사는 것을 항상 보니,
이제 눈물이 없네’ 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인생을 즐겁게 보내자면,
일정한 계획과 수련이 필요하다.

중국 송(宋)나라에 주신중이라는 훌륭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인생에는 다섯 개의 계획(五計)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는 생계(生計),
둘째는 신계(身計),
셋째는 가계(家計),
넷째는 노계(老計),
다섯째 사계(死計) 가 그것이다.

生計는
내 일생을 어떤 모양으로 만드느냐에 관한 것이고,

身計는
이 몸을 어떻게 처신하느냐의 계획이며,

家計는
나의 집안, 가족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이다.

老計는
어떤 老年을 보낼 것이냐에 관한 계획이고
死計는
어떤 모양으로 죽을 것이냐의 설계를 말한다.

“당신에게도 노계(老計)가 있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있지요” 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것이 무엇이오?”라는 물음에는
'소이부답 [笑而不答] '  말을 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만, 내가 사는 집 이야기를 한다면
그 속에 나의 대답 일부분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달동네로 유명한 봉천동에 살고 있다.
25년 전 나는 관악산을 내다보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대지를 사서 집을 지었다.
당시에는 주변도 비교적 좋았고 공기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집 주위는 그때와는 전혀 딴판이 됐다.
단독주택은 거의 다 없어지고,
주변에 5층짜리 다세대주택이 밀집해 있다.
주차도 어렵고, 지하철에서 이 집까지 오자면
가파른 언덕길을 허덕이며 올라와야 한다.

처음 오는 사람 중에는
‘이 집이 정말 조순의 집이냐?
동명이인이 아니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25년을 한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이 마을에 나밖에 없다.
아이들은 날보고 이사를 가자고 한다.
좀 더 넓은 곳, 편한 곳으로 가자고 한다.
자기들이 모시겠다는 뜻인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 같다.

“여기가 어떻다고 이사를 간단 말이냐?
불편한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많다.
다소의 불편은 참고 지내야지,
사람은 너무 편해도 못 써.

어딜 가도 먹는 나이는 막을 수 없고,
인생의 황혼은 짙어지는 법.
지난 25년의 파란 많은 세월을
이 집에서 사고 없이 지냈고,
지금도 건강이 유지되고 있으니 그만하면 됐지!
내겐 이 집이 좋은 집이야.”

이 집에는 좁은 대지에 나무가 많다.
모두 내가 심은 나무들이다.
해마다 거름을 주니
나무들은 매우 잘 자라, 이제 이 집은 숲 속에 묻혀 버렸다.

감나무엔 월등히 좋은 단감이 잘 열리고,
강릉에서 가지고 온 토종 자두나무는
꽃도 열매도 고향 냄새를 풍긴다.

강릉에서 파온 대나무도 아주 무성하고,
화단은 좁지만 사계절 꽃이 핀다.

이 집과 나무, 그리고 화단은
아침저녁 내게 눈짓한다.
“당신이 이사를 간다구요?
가지 마시오!”

지난 25년의 파란이 압축된 이 애물단지!
내게 이런 것이 어디 또 있겠는가?
버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2016. 08.  /  조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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