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법/허운스님

2016. 8. 20. 18:0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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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법/허운스님


 


우리가 배우는 법은 모두 무위법(無爲法)입니다. 
무위라는 것은 '작위(作爲)가 없다'는 뜻입니다. 
즉, 한 법도 얻을 수 없고, 한 법도 지을 것이 없습니다.
만약 함이 있다면 모두 생멸이 있고,
만약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잃어버릴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능엄경에서 이르기를,
"단지 말들이 있을 뿐, 모두 실다운 뜻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경전을 외고, 예불 참회 등은 모두 유위(有爲)이며,
가르침중에서 방편적 수단에 속합니다. 
선종에서는 여러분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알아차리라고 하므로,
많은 언설이 필요 없습니다.
 
예전에 어느 학인이 남전 스님을 참례하고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하고 묻자,
말하기를 "평상심이 도다." 했습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옷 입고 밥 먹고,
나가서 일하고 들어와 쉬는 이 모든 것이
도 가운데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어디에서든 얽매이고 집착하여,
자기 마음이 부처임을 알지 못할 뿐입니다.

옛날에 대매법상 선사가 마조 대사를 처음 참례하고 묻기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如何是佛] 하니, 
"바로 그 마음이 부처다"[卽心是佛] 했습니다. 
법상 스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대오 했습니다. 
그리고 곧 마조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사명산에 옛날 매자진(梅子眞)이
은거하던 곳으로 들어가 띠집을 엮고 살았습니다.

당(唐) 정원(貞元) 연간(785~805)에 염관 선사 문하의 한 스님이
벽에 걸어두는 지팡이 나무를 구하려고
산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법상 스님 암자에 이르렀습니다.

그 스님이 법상 스님에게 묻기를,
"스님께서는 여기에 얼마나 오래 사셨습니까?" 
법상 스님이 답하기를,
"주위의 산이 푸르렀다 누르렀다 하는 것만 보았습니다." 
다시 묻기를, "산을 빠져 나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합니까?" 
법상 스님이 답하기를,
"물을 따라 가십시오." 했습니다. 
그 스님이 돌아와서 이 일을 보고하자, 염관 스님이 말하기를, 
"내가 강서(마조회상)에 있을 때 한 스님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뒤로는 소식을 모른다.
혹시 이 스님이 아닌지 모르겠다." 했습니다. 
그래서 스님을 보내어 모셔오라고 했는데,
법상스님은 게송으로 이렇게 답했습니다.

부러진 마른나무
추운 숲에 의지해 있나니
마음 변치 않고
맞이한 봄이 몇 번이더냐

나뭇꾼이 지나쳐도
거들어 보지 않거늘
대목수가 어찌
힘들게 쫓아와서 찾는가 


한 못의 연잎이면
몸 가리기 충분하고
몇 그루의 소나무
꽃이면 먹고 남는다

바야흐로 세인들에게
사는 곳 알려지면
다시 띠집을 옮겨
더 깊이 들어가리

마조가 법상스님이 띠집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한 스님을 시켜 이렇게 묻게 했습니다. 
"스님께서 마조 대사를 뵈었을 때
무엇을 얻었기에 이 산에 살고 계십니까?" 
대매법상스님이 말했습니다. 
"대사께서는 저에게
'바로 이 마음이 부처'[卽心是佛]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와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 스님이 말했습니다. 
"대사의 요즘 불법은 다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요즘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고 하십니다." 
그러자 대매스님이 말했습니다. 
"이 노장이 사람을 헷갈리게 하기를 그칠 날이 없군!
그 분이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고 하든 말든,
저는 '바로 이 마음이 부처다'[卽心是佛]만 돌보겠습니다."

그 스님이 돌아와서 마조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자 마조는,
" 매실이 익었구나" 했습니다. 
이로써 고인이 어떻게 깨쳤고,
어떻게 공부했는지 그 면모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근기가 하열하여 망상이 너무 많기 때문에
여러 조사 스님들이 하나의 화두를 참구하도록 가르치신 것인데,
이것은 부득이한 것입니다.

영가스님이 말했습니다.
"실상을 깨달으면 사람도 없고 법도 없고,
찰나에 무간지옥의 업을 소멸하네.
만약 내가 허망한 말로 중생을 속인다면,
혀를 뽑는 지옥에 떨어져 헤아릴 수 없는 겁을 보내게 될 것이다." 
고봉 원묘스님은 말씀하시기를,
"학인이 공부할 때는 기왓장 하나를 깊은 연못에 던지면
멈추지 않고 곧장 바닥으로 가라앉듯이 하는 것이 좋다." 했습니다.

우리가 화두를 볼 때에는 일구화두를 가지고
그 밑바닥까지 곧장 파고들어 이 화두를 간파할 때까지 해야 합니다. 
고봉스님은 또 발원하시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의 화두를 들어 두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칠일 안에 도를 깨치지 못한다면,
내가 영원히 발설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했습니다. 
단지 우???믿음이 실답지 못하고
수행이 견고하지 못하여 망상을 놓아 버리지 못할 뿐입니다. 
만일 생사심이 간절하다면
일구화두를 부주의 하게 놓쳐버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위산스님이 말하기를,
"만약 세세생생에 물러나지 않을 수 있으면,
부처의 경지를 틀림없이 기약 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초발심자는 아무래도 망상이 많고 다리도 아프고,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오직 생사심이 간절하여 일구화두를 물고 늘어지면
행주좌와를 가리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누구?'라는 이 한 마디를 비추어 살피기를, 
마치 맑은 물에 가을 달 비추듯 밝고도 또렷하게 비추어,
혼침이나 도거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면,
어찌 부처의 경지를 얻지 못할까 걱정하겠습니까!

만일 혼침이 오면 눈을 부릅뜨고
허리를 조금 들어 올려 주면 정신이 자연히 맑아질 것입니다. 
이때 화두를 너무 느슨하게 하거나 너무 미세하게 하면 안 됩니다.
너무 미세하면 공이나 혼침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일단 공에 떨어지면 한 조각의 청정함 밖에 알지 못하고,
깨어나면 상쾌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때, 이 일구화두를 잃어버리면 안 되고,
잃어버리지 않아야 비로소 백척간두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망(空亡)에 떨어져서 구경(究竟)을 얻지 못합니다. 
그리고 너무 느슨하면 망상이 쉽게 밀고 들어옵니다.
망상이 한 번 일어나면 도거를 조복 받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에는 거친 가운데서
세밀하게, 세밀한 가운데서 거칠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부가 힘을 얻을 수 있고,
비로소 '동정일여' 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금산사 등지에서 포선(跑禪)을 할 때
유나스님이 포선을 시작하라고 하면 두 다리가 날듯이 가뿐했습니다.

스님들은 정말 뛰었는데,
멈추라는 참판(站板)을 두드리면 마치 죽은 사람 같았습니다. 
그러니 무슨 망상이나 혼침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하는 포선 같은 것은 그때와 너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좌선할 때 절대로 이 화두를 위로 들어 올리지 말아야 합니다. 
위로 들어 올리면 곧 혼침에 빠질 것입니다. 
또한 가슴에 가로놓지도 마십시오.
가로 놓으면 가슴에 통증이 올 것입니다. 
화두를 아래로 뚫고 내려가게 하지도 마십시오. 
아래로 뚫고 내려가면 배가 부풀어
음한 경계에 떨어지고 갖가지 병이 생기게 됩니다. 
오직 마음이 평온하고 기운이 고요하게 하여 아주 또렷또렷하게
'누구인가?' 하는 한 마디를, 마치 닭이 알을 품듯이,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잘 돌이켜 비추어야 합니다. 
돌이켜 비추는 것이[觀照] 힘을 얻게 되면
명근(命根)이 저절로 문득 끊어질 것입니다. 
이 한 법은 공부에 처음 동참한 도우(道友)님들에게는
당연히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시시각각 마음을 써야 합니다.
제가 다시 비유를 들겠습니다. 
수행은 부싯돌에서 불을 얻을 때와 같이 어떤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방법을 모르면 설사 여러분이
그 돌을 다 부순다 해도 불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방법이란 한 장의 부싯깃과 하나의 부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싯깃을 부싯돌 밑에 놓고 부시로 돌을 치면 돌에서 생긴 불이
바로 부싯깃에 옮겨 붙어 이내 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일정한 방법이란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자기,
'마음이 부처'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지만,
그것을 확인 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 일구화두를 불을 일으키는 부시로 삼는 것입니다. 
옛날 세존께서 밤에 샛별을 보시고
활연히 도를 깨치신 것도 이와 같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불을 얻는 법(화두를 참구하는 법)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면전에
본래구족한 자성을 분명히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휴식 같은 하루





살랑살랑 바람의 손짓에
커피 한 잔 곁에 두고 창가에 앉아
꽃구름 피어나는 파란 하늘을 봅니다.


부담스러워 피하고 싶었던
뜨겁게 쏟아지는 태양의눈빛이
부드럽게 온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참 좋습니다.
햇살
바람
그리고
풀잎의 미소


참 행복합니다.
이 모든 것을 볼수 있고
이모든 것을 가슴으로 만질 수 있어서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참 고맙습니다.
커피 한 잔의 삶의 향기를
듬뿍 타서 마시는 휴식 같은 하루를
맛볼 수 있는 오늘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