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11. 16:07ㆍ일반/금융·경제·사회
부처님과 하느님 누구를 믿어도 좋다
부처님과
하느님이 둘이 아니십니다.
불교 신자와
천주교 신자와
기독교 신자가
참으로 둘이 아닙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실천과
하느님 가르침의 실천이 둘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자성부처님
굳게 믿어
일체 모든 것을 맡기고 놓고 가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실천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굳게 믿어
일체 모든 것을 맡기고 놓고 가는 것이
삼위일체 하느님 가르침의 실천인 것이지요.
하느님을 내밖에 그 어떤
동떨어진 대상으로 설정해 놓고
밖을 향해 믿음을 일으키지만 않으면
하느님과 부처님은 이름만 다를 뿐 '하나'가 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고 일체를 당신께 맡기고 가야 합니다.
내 안에 충만한 성령이
그대로가 성부이며 성자인 것이지
그 셋을 어찌 서로 다르다 할 수 있겠어요.
성부와 성자 또한
성령으로써 내 안에 항상 충만한 것이며,
이 우주 법계에 아니 계신 곳 없이
모든 생명 모든 사람에게 항상 빛을 놓고 계십니다.
법신과 보신과 화신 삼신 부처님 또한
서로 다른 부처님이 아닌
내 안의 자성부처님으로서 '하나'인 것입니다.
'참 나'의 이름을
부처님이라고 부르면 어떻고,
또 하느님이라고 부르면 어떠할 것이며,
알라신이라고 부른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결국
부처님 하느님 알라신이란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진리의 몸(法身)인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인데
현자들은 여러 가지로 말한다'고 합니다.
다만 여러 가지로 말할 뿐
근본이 흔들리는 법은 없는 것이지요.
현자들이 여러 가지로 말한 것을 가지고
어리석은 우리들의 좁은 소견으로
분별하고 나누어 놓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러니
니 종교니 내 종교니 하면서
싸울 것도 없고,
내 가르침이 더 깊이가 있다고 고집할 것도 없으며,
내 가르침만이 나를 천당으로 가게 할 수 있고,
내 가르침만이 진리라고 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진리란
고집하지 않음입니다.
어느 한 쪽을 고집하게 되면
벌써 진리에서 한참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좋고 싫고, 옳고 그르다는 등의
일체 분별을 다 여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종교를 믿는 이유가
'불교이기 때문에'
'천주교, 기독교 이기 때문에'
믿는다고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진리이기 때문에' 믿어야지요.
그 말은
불교를 믿고 있지만,
천주교를 기독교를 믿고 있지만,
또 다른 참진리를 만난다면
당연히 그 참진리 또한 버려서는 안 된 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아가 더 밝은 진리를 만난다면
기존 종교에 대한 모든 집착을 버리고
새로운 밝은 진리를 따를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야 참 진리를 찾는 구도자이며,
수행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고집이 아닌 맑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종교만이 옳다'는 고집을 가지고
'참된 믿음'이라 착각을 하지는 마세요.
참된 믿음이란
억척스러운 고집이 아니라
텅 비어 어느 것이라도 담을 수 있는
맑고 향기로운 열린 믿음일 것입니다.
마음이 어느 한 쪽에 머물러 고집스레 집착을 하게 되면,
다른 그 어떤 가르침도 들어오지를 못합니다.
진리란 어떤 방법으로든 설해질 수 있다는 것을
왜 알지 못하는 것인지요.
활짝 열린 탁 트인 마음이
모든 수행자의, 모든 구도자의 참마음일 것입니다.
수도자란 모름지기 그래야 합니다.
텅 비어 있기에 도리어 꽉 찬 그런 훤칠하게 트인 길로 가야지,
좁은 한 길만 고집하는 옹졸한 마음으로
어찌 만중생을, 숯한 어린 양들을 구할 것입니까.
불교 신자, 수행자 법우님들과,
기독교 천주교 신자, 수도자 형제 자매님들
참으로 우리 모두는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는 참 진리의 길을 걷는 '좋은 도반'입니다.
세계일화
세계는 한 송이 꽃으로 언제나 맑고 향기롭습니다.
'내 종교'라는 울타리에 갖혀
불교다, 기독교다, 천주교다 하고 금긋고 살았지만,
실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인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같은 진리의 길을 걷는 도반이었음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이제
'나'도 놓아버리고,
'내 종교'도 놓아버리고,
'내 알음알이 진리'도 놓아 버리고,
대신
그 자리에
본래자리 밝으신 '자성부처님' '한마음 부처님'을 모시고,
그 자리에
내면의 참된 '삼위일체 하느님'을 모실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리석은 중생으로,
어린 양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자성부처님'께 모든 것을 믿고 맡기면서,
'삼위일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믿고 맡기면서
당당하고 시원스레 살아갑시다.
부처님으로 살아가고,
하느님으로 살아갑시다.
내가 산다고 생각지 마세요.
자꾸 아상을 키우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부처님과 하느님 누구를 믿어도 좋다
'나'라는 아상 대신에,
'자성부처님'께서,
그리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살아가시도록 온전히 믿고 맡기시면 됩니다.
그렇게만 되면
세상 모든 이가 부처님이고 하느님이십니다.
그 믿음에서 '자비'가 나오고 '사랑'이 나오는 것이지요.
그 믿음 안에서
부처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사랑은
세계일화의 맑고 향기로운 빛을 놓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우린 모두 '하나'이며 '참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욕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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