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원은 수행과 삶의 구분이 사라지는 공부]

2016. 10. 15. 18:3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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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행원은 수행과 삶의 구분이 사라지는 공부]

 

보현행원은 삶과 수행의 구분이 사라지는 가르침입니다.
보현행원을 하면, 삶과 수행의 구별이 없어집니다.
삶을 살면 삶이 보현행원이고,
수행을 하면 수행이 보현행원입니다.

 

우리 보현행원 할래? 하고 말하면 다들 머뭇거리십니다.
무엇이 보현행원인지 모르니까요.
혹자는  봉사활동을 보현행원인 줄로만 아시기도 합니다.
남을 도와주는 일. 이웃을 위해 내 몸을 바치는 일만 보현의 원행인 줄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현의 원행은, 그런 것만이 아닙니다.
남을 도와드리고 봉사활동하는 것만이 보현행원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시기에 보현의 삶과 수행의 삶이 그만 둘(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십니다.
보현행원, 참 좋은 것이다!
그런데 일단 먼저 수행 좀 하고 보현행원 하러 가겠다!
그리고는 좌복에 앉으시며 좌선을 하시고,
그런 연후에, 그래서 화두도 들고 절도 하고 염불, 기도도 하여 마음을 맑게 한 후에 그제서야 보현행원 하러(?)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보현행원은, 그런 것이 아닌 것을...

 

좌복에 앉으면 바로 좌복에 앉는 그것이 보현의 몸과 마음이고,
염불, 절, 기도를 하면 그 염불 일성 절 한번 기도 하나 하나가 모두 보현의 깊은 서원과 끝없는 원행인 것을 왜 모르시는지!
일체 부처님을 공양하리라! 일체 부처님을 찬탄하리라!
그 사무친 마음이 나를 부처님께 향하게 하고 나를 공부하게 하는 것을, 그리고 그 마음이 바로 보현의 마음이고 서원인 것을 왜 수행 따로 하고 보현행원을 따로 하려 드시는지,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보현행원은 삶과 수행의 구분이 없습니다.
삶을 살면 삶이 보현행원이고, 수행을 하면 수행이 보현행원입니다.
보현행원이 바로 우리의 울고 웃는 현실의 삶이며,
보현행원이 바로 우리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깊고 깊은 수행인 것입니다.
이 둘은 조금도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니 보현의 몸과 마음은 온 우주를 덮고 삼세에 가득 찬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불보살이 '우리는 모두 보현이다!'라고 화엄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보현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보현이요, 우리의 모든 삶이 보현인 것입니다. 삶이든 수행이든, 모두가 보현의 바다며 모두가 보현의 행과 원에서 출몰(出沒)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시니 보현행원이 따로 있고 수행이 따로 있고 봉사의 삶이 따로 있는, 모두가 따로 있는 '따로 국밥'의 삶, '다로 국밥'의 수행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따로 국밥'의 삶과 수행을 하시며, 보현행원을 다 알고(?) 있는 듯 착각하고 계십니다. 그 결과 보현의 원과 행은 찬탄하시지만, 보현의 원과 행을 따로 하시려 드십니다. 참선하고 보현행원 나중에 '따로' 하고, 절은 절대로 하고 보현행원 나중에 '따로' 하고, 염불, 독경, 주력, 사경 등 역시 그런 걸 따로 하고 보현행원은 나중에 또 '따로' 하고... 그렇게 그렇게 공부 지으시며 점점 보현의 원과 행에서는 멀어져 가십니다.

 


언제 수행 따로 하며 언제 보현의 원과 행을 따로 하시려 하십니까? 보현행원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소식입니다. 내가 공부를 하면 공부가 보현이요, 내가 삶을 살면 삶이 바로 보현인 것입니다. 모든 것이 보현이요 모든 삶이 보현인 세상! 사랑도 슬픔도 모두가 보현! 보현의 원과 행을 떠나 그 어떤 것도 따로 존재할 수 없는 이 숨막히도록 오직 보현의 서원과 행으로 꽉 찬 세계가 보현의 세계인 것입니다. 모두가 보현이요 모두가 절대 진리, 부처님으로 꽉 찬 세계! 그 일심, 하나의 세계! 이것이 보현의 바다에서 보현의 눈으로 보는 우주 법계의 소식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덕목은 사무친 서원, 맹세, 그리고 공경 찬탄 섬김으로 귀결됩니다. 수행을 해도 그렇고 돈을 벌어도 명성을 날려도 그렇습니다. 수행을 해도, 그리고 깨달음을 이뤘다 해도 그것이 중생에 대한 공경과 섬김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냥 나만의 공덕, 내 자랑밖에 안 됩니다. 돈을 벌어도 그렇고 이름을 날려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그런 덕목으로 만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공덕의 귀결점, 모두에게 공통되는 가장 근본적이고 종국적인 그 최고의 덕목, 최소의 근본 자리를 이름하야 화엄경에서는 <보현행원>이라 불렀습니다. 따라서 보현행원은 무슨 특별한 명칭이 아니지요. 이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든 공경, 찬탄 섬김으로 끝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이태석신부님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으로 남수단으로 달려가신 것도 남수단의 고통받는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였습니다. 현재 교황님이 만인의 찬탄을 받는 이유도 교황님 스스로가 가장 비천한 분부터 공경하고 찬탄하고 모시기 때문입니다. 온 재산을 환원한 카네기나 환원 중인 빌 게이츠 등이 존경 받는 것도, 그 많은 돈을 이웃의 섬김에 썼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위대한 이유도 당신의 공부, 당신의 깨달음을 모두 중생 공양에 바쳤기 때문이고요.
 


그렇게 최후처, 최후의 자리에서 이루는 행위---그것이 공경 찬탄 섬김, 그리고 사무친 비원입니다. 그런 최후처는 우리가 깨닫기 이전 이미 우리 모두의 자리입니다. 우리 모두가 본래 그런 자리로 꽉 찼어요. 금생에서 깨달음을 이뤘던 이루지 못했던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수행하고 안 하고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깨닫기 전에도 우리 가슴에는 사무친 원과 공경 섬김이 가득 찼었고, 깨달은 후에도 가득 합니다. 수행도 마찬가지. 수행하기 전에도 가득 했고 수행 후에도 가득 합니다. 수행했다고 더해진 것도 아니요 수행 안 했다고 덜해진 것도 아닙니다. 더하고 덜함이 없이, 조금도 차별이 없이 본래로 넘친 겁니다.
       


이런 것이 보현행원에요. 이런 자리, 이런 소식을 일러 굳이 이름을 붙여 화엄에서는 <보현>이라 이름 부른 겁니다. 그러니 제가 맨날 보현 보현 하니 무슨 특별한 게 있고 특별한 걸 강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없어요.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고, 우리 모두에게 이미 깃들어 있는,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그 무한한 자리, 무한한 지혜, 무한한 자비를 일컬어 그렇게 부른 것뿐입니다. 그러니 보현은 정말 위대합니다.
 


저는 화두 들고 온 여름 온 겨울을 선방에서 정진하는 스님이나 재가자를 보면 한편으론 존경스럽기도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또 참 딱해요. 화두를 잘 들든 못 들든 말입니다. 저렇게 세월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정말 아무 걱정없이 앉아 있는데, 도대체 저 분들 머리 또는 가슴에는 무슨 생각(?)을 하실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게 앉아들 계신가, 그리고 이 귀한 시간을 저렇게 보내는가, 하고 말입니다. 카페 불자님들은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십니까? 깨닫기 위해서! 그렇죠? 깨달으시려고 저러고 계신 거지요? 저는 그것이 딱(?)합니다.
        


수행을 내가 깨닫기 위해서 하니, 그 수행이 제대로 될 <리>가 있습니까? 그게 바로 욕심인데, 중생의 세속적 욕심과 이름만 달리 하는 道에 대한 욕심인데, 세속 욕심이나 도에 대한 욕심이나 욕심은 한 가지인데, 그렇게 욕심을 가지고 좌복에 앉고 화두를 드니 깨칠 수가 있겠습니까? 세속이나 출세간이나 욕심으로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요. 원이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욕심은 아니 이루어져요!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게 보일 뿐, 참으로 이루어지는 욕심은 없어요! 오직 <원>만 이루어집니다!
       


그러함에도 욕심 가득한 채 그 긴 겨울, 그 활기찬 여름을 이뭣고? 하면서 보내십니다. 이뭣고의 종점이 욕심인데, 욕심이 이뤄질 턱은 만무한데, 그걸 모르고 안거 기간 내내 그렇게 보내고 나선 깨달음이 안 온다, 못 깨달았다, 하고 한탄하고 눈물 짓습니다. 이거, 완전 코메디(?)죠.
       


공부는 그런 게 아닙니다. 본래 부처가 본래 부처님을 확인하는 게 공부에요. 그런데 그 확인이 참선한다고, 용맹정진한다고, 깊은 산속에서 혼자 수행해야만 오는 건 아닙니다. 부처행을 하면 누가 알지 말라 해도 알게 되요! 부처행을 해야 하는 겁니다. 내가 회장임을 알려 하면 회장이 하는 일을 해보면 압니다. 내가 대통령인지 아닌지 알려면 대통령 행세를 해보면 알아요. 국방부장관을 부르고 검찰총장을 불렀을 때 네~ 하고 대령하면 내가 대통령인 겁니다. 아니면 아무리 대통령인 것 같아도 아니고요. 행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깨달음의 내용은 미안하지만 이미 부처님이 모두~ 그것도 완전~히 밝혀 놓으셨어요. 어떤 것이 깨달음인지, 깨닫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하나도 모를 게 없습니다. 모두 말씀해 놓으셨어요. 궁국의 자리까지 부처님께서 가셔서 그 경지 그 과정을 모두 몽땅 밝혀 놓으셨어요. 따라서 우리가 깨달음이 뭔지 몰라 수행한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지식으로는 그렇게 밝혀졌는데 그게 체험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수행하는 겁니다.
 


행여냐 깨달음을 신비화 하고 뭔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분이 있으면 그 분은 가짜거나 착각하신 분으로 아시면 됩니다. 깨달음은 아무 신비한 것도 없어요. 우리가 다 아는 내용, 다 아는 세계입니다. 하나도 새로운 게 없고 하나도 특별한 분만 아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렇지 않게 말하는 분이 있으면 그냥 그런 분으로 아시면 됩니다. 거기에 혹할 필요 없어요. 비유가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기(?)행위는 무언가 신비한 거, 모르는 게 있을 것처럼 포장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한번 주위를 보세요. 우리 부처님은 그런 게 없어요.
 


지난 번 동영상을 보니 <깨치고 나서도 참선, 선정에 들어야 하나?>는 질문이 있더군요. 당연하지요! 왜냐? 그건, 부처님이 깨치고 나신 후에도 참선하셔서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본래 모습이 바로 <선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우리는 혼란스럽고 망상 투성이인 것 같지만, 우리 모두가 이미 참선을 하고 있어요! 다만 겉보기에 그렇게 보이지 않을 뿐인 겁니다. 영화 한편에서 주어진 역할, 맡은 역할이 달라 그렇게 보일 뿐인 거지요.
 


그래서 깨친 분은 깨친 분의 역할을 보입니다(이 말도 좀 어폐가 있음).그게 선정입니다. 우리 불자님들도 공부가 한 경계를 넘고 나면 가만 있을 때 할 일은 참선밖에 없어요. 그게 본래 내 모습이거든요? 누가 앉으라 소리 안해도 그냥 앉고, 누가 화두 들라 안해도 화두 듭니다. 늘 그래요.

그러나 화두를 정식 포즈를 취해 안든다고 화두를 안 드는 게 아닙니다. 무엇을 해도, 남들이 보기엔 술이 취했고 할소리 못할 소리 못 가리는 것 같지만 늘 마음은 여여히 선정 상태에 있어요. 안광이 빛난단 말입니다.
       


우리 큰스님이 <11시에 만납시다>에서, <자비>가 무엇인지 묻는 이계진 아나운서의 물음에 예의 그 해맑은 웃음을 지으시며 <내 진실 생명의 체온>이라고 답하신 것을 한번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이렇게 말씀하시는 스승님은 어디에도 아니 계세요. 궁극의 자리, 깨친 분들만이 말씀할 수 있는 활구 중의 활구입니다.
       


보현행원에서 수행을 바로 보질 못하시고 삶과 수행을 구분하는 분. 또 보현행원에서 깨달음을 바로 보시질 못하고 깨달은 이후에 보현행이라 말씀하시는 분은 모두 보현이 뭔지를 모르시는 분들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문제는, 당신은 안다고 착각하시는 것이어서 정말 문제지만...왜냐? 알면 알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거든요? 그러니 더 이상 말씀을 일러 드릴 수가 없어요. 상수불학 청전법륜 청불주세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이르는데도 말이지요.









까불지 말라



60대의 후반의
老夫婦가 자녀들을 모두 분가 시키고
단 둘이서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는 데

왕년에 한 가락하던 남편은 은퇴하여
늙은 백수 건달이 된 뒤로는

별로 할 일이 없어서 허구 헌날
집에 처 박혀 있거나
근처공원으로 산책이나 하는 것이
고작이 지만~!!



이제까지 위세 당당했던 남편그늘에서
죽어 지내던 마누라는

매일같이 교회 모임이다, 동창 모임이다
계 모임이다 하며

밖으로 나다니고 한 번 나갔다 하면,
제 세상 만난 듯이 쏘다녀서
남편은 완전히 집 지킴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마누라가 외출할 때마다
집을 나서면서 남편에게

항상 호기 있게 신신 당부하는 말이
"까불 지 말라" 다.
"까불 지 말라" 라니



이런 [싸가지] 없는 마누라가
어디 있단 말인 가..?

원 세상에 기가 막혀서...



그러나 그 내용을 알고 보면
그렇게 [싸가지] 없는 말은 아니다..


* 까-- 가스 조심하고 (가스 스위치
열어 놓고 깜빡 하기 잘하니)

* 불-- 불조심하고 (혼자 집 지키다가
불 내면 큰 일이니까)

* 지-- 지퍼 단단히 잠그고(바지 지퍼 열고
다니는 백수들이 많으니)

* 말-- 말조심하고 (친구들과 말 한 마디
때문에 다투는 일이 잦으니)

* 라-- 라면 끓여서 점심 드시라
혼자 놔 두면, 곧 잘 점심을 거르니)







남자가 육십이 넘으면 꼭 필요한 것 순위
一…… 健 (건강)
二…… 妻 (아내)
三…… 財 (재산)
四…… 事 (취미)
五…… 友 (친구)




여자가 육십이 넘으면 꼭 필요한 것 순위
一…… 財 (재산)
二…… 友 (친구)
三…… 健 (건강)
四…… 犬 (애견)
五…… 夫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