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 라마나 마하리쉬

2016. 11. 13. 22:4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꿈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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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라마나 마하리쉬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이 몸은 내가 아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등의 다섯가지 감각기관은 내가 아니다. 
말하고, 움직이고, 붙잡고,
배설하고, 생식하는 다섯가지 운동기관은 내가 아니다.
호흡 등의 다섯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프라나 등의 다섯 가지 기는 내가 아니다. 
생각하는 마음도 내가 아니다.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도 내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아니다"라고 부정하고 나면
그것들을 지켜보는 각성 만이 남는다. 
그것이 바로 나다.

각성의 본질은 실재, 의식, 지복이다. 
현상계가 실재한다는 인식이 사라질 때 진아를 깨달을 수 있다. 
현상계가 실재한다는 인식과 참나에 대한
깨달음과의 관계는 뱀과 밧줄과의 관계와 마찬가지이다. 
그 뱀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밧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생길 수 없다. 
마찬가지로 현상계가 실재한다는
그릇된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참나를 깨달을 수 없다. 

마음이란
참나 안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힘이다. 
그것은 모든 생각을 일으킨다. 
생각과는 별개의 독립된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꿈이 없는 깊은 잠을 잘때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다. 
따라서 현상계도 없다.

그러나 깨어 있을 때나 꿈꿀 때에는 생각이 있으며 따라서 현상계도 있다. 
거미가 몸 밖으로 거미줄을 뽑아냈다가 다시 안으로 거두어 들이듯이, 
마음도 바깥으로 현상계를 투사했다가 다시 안으로 거두어들인다. 
마음이 참나 밖으로 나올때 현상계가 나타난다. 
따라서 현상계가 나나날 때 참나는 나타나지 않으며
참나가 나타날 때 현상계는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의 본질을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마음은 참나를 떠나서 사라져 버린다.

참나가 바로 아트만이다. 
마음은 항상 무엇엔가 의존하고 있으며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흔히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도 역시 마음이다. 
참나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고
계속 탐구해 들어감으로써 가능하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생각을 계속하면 다른 생각들은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생각이
마치 다른 장작들을 다 태운 뒤
스스로도 타버리는 불쏘시개 장작 처럼 사라지는 때가 온다. 
그러면 그때 깨달음이 드러난다. 
다른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을 따라가지 말고
'이 생각이 누구에게서 일어났는가?' 라고 물어야한다. 
아무리 많은 생각이 일어나도 마찬가지다. 
한 생각이 일어날 때 마다 놓치지 말고
'이 생각이 누구에게서 일어났는가?' 라고 물어야한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나에게가 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 '나는 누구인가?' 라고 묻는다. 
이렇게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계속하면
마음은 점점 그 근원으로 향하게 되고
생각은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REP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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