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집에서 나온 뒤에 다시 들어가는 이유 / 한탑스님

2016. 12. 18. 22:1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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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난 집에서 나온 뒤에 다시 들어가는 이유 / 한탑스님

법화경 사경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진정한 의미는,
우리들이 지금까지 진리를 모르고 내 욕심만

채우면 되는 줄 알고 살아왔는데,


결국 불에 타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 그 자체가 복이라는 뜻입니다.

욕심을 내서 살면 그 결과는 아귀가 되고,

남을 미워하며 살면 지옥에 가서 살고,

 

남을 탓하고 원망하면

축생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삼악도(三惡道)라고 합니다.


천수경에 보면 '원아영리삼악도(願我永離三惡道),
영원히 삼악도를 떠나기를 원합니다.'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삼악도라는 것은 어디에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욕심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바로 삼악도입니다.
그러니까 삼악도를 떠나겠다는 말은
'내 마음속의 탐진치를 없애겠습니다.' 와똑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원아속단탐진치(願我速斷貪瞋痴),
탐진치를 다 끊기를 원합니다.' 라고

또 한 구절이 나오게 됩니다.

탐진치를 살고 있는 세계가 바로 '불난 집' 입니다.
그 불난 집에서 나온다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이것이 바로 법화경의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이해 없이 그저 사경을 하면 복을 받는다니까
법화경을 베껴 쓰면서 소원을 비는 분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베껴 쓰면 소원 다 들어준다고

했으니 내 소원 좀 들어주세요.

 

내 소원은 여태 이 집 문간방에서 살았는데
이제는 나 좀 안방에 들어가서 살게 해 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아! 어서 거기 불난 집에서 나오라고 그랬지,
너한테 거기서 살라고 했느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니에요. 나가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니고
소원 들어 준다고 했으니 불 난 집이건 아니건
안방에 살게 해 주세요." 라고 한다면

부처님이 "그래 너 안방에서 살도록 해주마."
그래서 집에는 불이 훨훨 타고 있는데 안방에 살도록 해 주시는

그런 부처님이 계시겠습니까? 이와 같은

 

어리석은 기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법화경을 베껴 써서 받는 공덕은 그런 불난 집, 바로 중생세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나 하나만 위해서 사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대승보살이 되어서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복인 것입니다.

지장보살님은 한량없는 세월을 두고 수행을 많이 해서

무한능력을 성취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미 성불할 자격을 온전히 갖추었지만

 

'이 세상에서 죄를 짓고

괴로워하는 중생이 단 한명이라도 있으면 그 마지막 한 명까지
완전히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한 뒤에 성불하겠다.'
이런 원을 세우시고 지금도 지옥에서 중생을 구제하고 계신 분이

지장보살님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이미 부처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중생들이 관세음보살님은 중생계에서

멀리 떠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시고,

 

중생교화를 위해서
'내가 다시 중생세계로 내려가겠다.' 하고
여래의 자리를 버리고 보살이 되신 분입니다.

부처를 이루셨을 때의 이름이 '정법명왕여래(正法明王如來)' 입니다.
여래라고 하면 중생들이 느끼기에 중생세계로부터 떨어져서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되니 여래자리를 버리고 보살이 되신 분입니다.

'보살(菩薩)'은 '보리살타(菩提薩陀)' 의 줄인 말입니다.
'보리' 는 깨달음이고, '살타' 는 중생이라는 뜻입니다.
깨달음과 중생이 합쳐진 말입니다.

우리는 아직 중생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서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킨 사람들이기 때문에 보살입니다.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깨달아가고 있는 중생'
이라는 의미에서 현재진행형의 보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이나 지장보살님은 이와 반대로

이미 깨달음의 세계에 가 계신 분이지만,

 

깨달음의 세계에 혼자 안락하게 지낼 수 없다 하여,
저 괴로움 속에 허덕이고 있는 중생들을 모두 건져내서,
아무 괴로움도 없는 극락에 살도록 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중생세계로 다시 내려와 계시는 분이므로 중생은 중생입니다.

그러나 깨치신 분이어서 보리살타입니다.
보리살타는 우리와 같이 밑에서 위로 올라가고 있는

보리살타도 있고,


또 관세음보살님이나 지장보살님처럼 위에서부터
우리 중생세계로 내려와 계신 분도 계신 겁니다.

보살이 중생의 세계로 내려오시는 이유는

 '세상 사람들을 전부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고는 나의 생명의 완성은

있을 수 없다.' 는 것을
확실히 아시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고생을 하더라도 나 혼자 고요한 상태에서

아무런 괴로움도 없이

지내는 것이 궁극의 이상이 아니라는 거지요.
때문에 불난 집에서 나온 뒤에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시는 이유이며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신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이고, 지장보살님이고,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모든 보살님들이십니다.

 

원공법계제중생자타일시성불도 (),,,

너무 닮은 아름다운 꽃의 향연과 귀한 글

산다는 것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이 순간 밖에서의 삶은 없다. 지금 이 순간의 빛과 그늘, 땅과 나무 냄새, 그 안에 함께 있는 사람들을 충만하게 끌어안어라. 지금 이 순간을 '꽉'끌어안지 않으면 어떤 삶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저 밝아 오는 아침 어딘가에 기적이 숨어 있다. 새로운 하루, 새로운 시도, 또 한 번의 출발이야말로 얼마나 큰 기쁨인가!

맑은 날에도 젖은 옷을 입고 있으면 기분은 비 오는 날 처럼 칩칩하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마음의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언제나 행복할 수 없다.

언젠가 삶이 우리를 모질게 만들려고 할 때 기억해야 할 격언이 있다. '이것은 불운이다.' 가 아니라 이것을 훌륭하게 견디는 것이 행운이다.

한 곡의 노래가 순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한 자루의 촛불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고, 한 걸음이 모든 여행의 시작이고, 한 단어가 모든 기도의 시작이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희망이다. 풍년의 희망이 없다면 농부는 씨를 뿌리지 않고, 이익이라는 희망이 없다면 상인은 장사를 하지 않는다. 좋은 희망을 품는 것은 바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다.

아무리 가까운 길이라도 가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하며,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열린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열린 마음은 사람에게 가장 귀중한 재산이 된다.

정직과 성실을 그대의 벗으로 만들라. 제 아무리 친한 누구라도 그대 안의 정직과 성실만큼 그대를 돕지 못하리라.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에 세 번 도전하라. 한 번은 두려움을 이겨 내기 위해, 한 번은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마지막은 자신이 이 일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서다.;

인생의 목표를 정하기 전에 반드시 네 가지를 점검해야 한다. 자신이 정말 잘하는 것 (재능), 정말 하고 싶은 것 (열정), 사회가 원하는 것 (수요), 옳다는 확신이 드는 것 (양심)이다.

사람들은 흔히 시간이 모든 것을 바꾸어 준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무슨일이든 시작을 조심하라. 처음 한 걸음이 장차 일을 결정한다. 그리고 참아야 할 일은 처음부터 참아라. 나중에 참기란 더욱 어렵다.

재물을 스스로 만들지 않는 사람에게 쓸 권리가 없듯이 행복도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누릴 권리가 없다.

과거, 현재, 미래는 실제로 하나다. 그것들은 모두 오늘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받을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선물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세상을 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고, 하나는 모든 것을 기적으로 보는 것이다.

네 생애중 가장 빛나는 날은 성공한 날이 아니라, 비탄과 절망 속에서 생과 한번 부딪쳐 보겠다는 느낌이 솟아오른 때다.

겨울철에는 절대 나무를 자르지 말라. 힘겨운 상황에 처했을 때 부정적인 결정을 내리지 말라. 침울할 때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 기다려라. 인내하라. 폭풍은 지나갈 것이다. / 좋은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