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실상(諸法實相)

2016. 12. 18. 22:3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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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능소(能所)가 생각만으로 있음은 어렴풋이 알겠는데

그 다음엔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합니까?



[답]어렴풋이 알지 말고 투철하게 알아야 그러한 질문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질문이란 사실을 알 수 있소.

능소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인연으로 말미암아 있는

이 가죽주머니를 ‘나’로 알면서부터 생겨난 전혀 환상이요,

그저 이름만 능(能)이니 소(所)니 할 뿐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절절하게

와 닿았다면, 그 즉시 만법이 몽땅 다 쉬어 마쳐야 하는 것 아니오?

 

능소가 다만 생각만으로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다시 어떤 놈(能)이 있어서

무슨 공부(所)를 지어 나아가야겠다는 거요?

그 방법을 일러 달라는 놈은 또 누구고? 그러니 한 마디 말이라도

그 뜻을 깊이 참구해서 완전히 그 바닥을 사무쳐야 하오.

능소가 없다는 말은 아는 자와 아는 바, 깨달은 자와 깨달은 바가 없다는

말이오. 따라서 공부하는 사람이 무언가 찾는 것이 있고 알아야 할 것이

있어서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유위의 노력을 계속한다면,

그 사람은 전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니 당나귀 해가 되어도 결코 깨달을

분수는 없는 거요. 이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오.

 

있는 그대로이면 빠르다는 말도 있듯이, 계속 세속의 습관대로 무언가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깨닫기 위해 조작을 일삼는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어렵소.

무엇보다 제법실상(諸法實相)을 철저히 밝혀야 하오.

마치 꿈속에서 아는 자도 있고 아는 바도 있지만 그것이 몽땅 제가

생각만으로 지어낸, 문자 그대로 꿈속의 일이듯이, 우리소위 현실이라고

부르는 이 세상사도 몽땅 다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쳐

그 모든 추구와 헐떡증이 쉴 수 있소.

목전의 모든 법이 전부 인연생기라 무생(無生)이요, 무상(無相)이요,

무성(無性), 무작(無作)이니, 안으로 ‘나’도 없고 밖으로 상대할 만한

티끌만한 한 법도 없는 것이 바로 제법실상이오.

 

말은 몇 마디 안 되지만, 과연 참으로 그러한가 스스로에게 물어 보시오.

굳이 말한다면 그 제법실상을 밝히는 것이 바로 공부의 시작이요,

끝이라 할 수 있소.


 

-현정선원법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