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승 대승 |…… 강병균 교수

2016. 12. 24. 22:4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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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 대승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별업 공업





소승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에 무지하다. 이들은 ‘개인이 개인의 수행만으로 해탈이라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시각과 수행은 개인차원이다.

이들은 사회가 만들어내는 전체적·집단적 측면을 보지 못한다: 소승은 연기(緣起)를, 개인의식에 펼쳐지는 걸로만 보지, 집단의식에 펼쳐지는 걸로 보지는 못한다. 그들은, 개인의 의식이 모여 연기적으로 만들어 내는, 집단의식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그 집단의식이 개인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볼 수가 없다. 이 현상은, 즉 집단의식이 개인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인구가 늘어날수록,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수록, 인구밀도가 높아질수록, 그리고 구성원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많아질수록, 심화된다. 그래서 현대처럼 복잡하고 다양하고 다차원적인 상호교류가 일어나는 고밀도·대인구 사회에서, 소승은 입을 단단히 다물고 쇄국정책을 펴는 작은 조개처럼’ 답답하게 보인다. 사회는 이미 집단의식체인데, 소승은 개인의식에만 매몰되어 있으니, 그리 보일 수밖에 없다.

소승이 전적으로 자기 구원에만 매몰된 것이 아니라 타인의 구원에도 관심이 있을지라도, 자기들이 지닌 협소한 연기개념으로 인하여 본질적으로 외향적이 되지 못한다.

대승은 인간의식이 지닌 사회적·집단적 측면을 보기에, 외향적이 될 수밖에 없다. 또 개인의식이란 것이 꼭 개인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 의해서도 만들어지며 (예를 들어 당신이 김치를 좋아하는 것은, 당신의 선택이 아니라, 한국사회라는 집단의 선택이다), 그 결과 개인의식과 집단의식은 그 사이 경계가 모호하다. 그래서 연기(緣起)를 개인차원이 아닌 집단차원으로도 볼 필요가 있다. 12연기도, 개인의 전생·금생·후생에 일어나는 ‘개인차원의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로만 좁게 볼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일어나는 ‘사회적 삼세양중인과’로 크게 볼 수도 있어야 한다. 개인보다는 집단을 보면, 범인(凡人)의 직관에 반(反)하는, 무아사상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개인과 사회는, 그리고 개별 의식과 집단의식은,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관계이다.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 확고한 개인의 아(我)는, 집단의 관점에서 볼 때는 무아(無我)이다. 이는 몸과 세포의 관계와 같다. 세포의 (몸으로부터의) 독립적인 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사회로부터의) 독립적인 아도 인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당신 몸에 있는 백혈구는 아가 있는가, 없는가? 있다면, 그 아는 당신의 아와 동일한가, 다른가? 만약 당신이 참나론자라면 당신 생각에, 백혈구는 참나가 있는가, 없는가? 있다면, 그 참나는 당신의 참나와 같은가, 다른가? 이런 시각이 가능하다. 개미집단의 병정개미처럼, 화랑 관창은 신라라는 몸의 백혈구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별업(別業) 이외에 집단적인 공업(共業)이 등장한다. 공업을 인정하면, 개인이 자기가 짓지 않은 업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개체인 세포가 집단인 몸의 영향을 받는 것과 같다. 발이 산길에서 실족하면 몸이 추락사하고 모든 세포들이 동반사(同伴死)한다. 손은 아무 책임이 없지만 발을 따라 죽어야 한다. 손과 발이 속한 몸이라는 집단이 만드는 공업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개인은) 악업을 짓지 않고도 (집단이 악업을 지으면) 지옥에 갈 수 있고, 선업을 짓지 않고도 천국에 갈 수 있다. 종종 개인의 운명은 (자기 책임이 아닌) 집단의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

(과거에는 가문에 일어난 일로 개인을 처벌하는 연좌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반역자 집안의 여자는 늙은 것은 노비로 젊은 것은 첩으로 만들고, 사내는 아이들까지 죽였다. ‘과거에 연좌제로 처벌받은 사람은 그런 처벌을 받을 업을 지었지만 현대인은 그런 업을 안 짓는 것’이 아니다. 단지 ‘범죄와 처벌’에 대한 철학과 제도가 바뀐 것뿐이다. 이처럼 개인은 자기가 짓지 않은 업을 받을 수 있다. 사회의 철학과 제도는 공업이다.)

이는 소승의 시각으로는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대승의 시각으로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개인의 아(我)는 집단으로부터 분리된 독립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과 집단의 경계는 모호하다. 아(我)는 실체가 없기에 얼마든지 커질 수 있고, 또 얼마든지 작아질 수 있다. 크게 보면 대승이요 작게 보면 소승이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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