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진번뇌 法塵煩惱

2017. 1. 30. 19:5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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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진번뇌 法塵煩惱


나는, 집을 짓는 자의 정체(正體)를 찾아 구하면서

수많은 생()과 사()의 윤회(輪廻)를 맴돌아왔다.

생사를 되풀이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집을 짓는 자여! 마침내 너는 간파(看破)된 것이다.

너는 두 번 다시 집을 짓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너의 대들보()는 부러지고, 지붕은 무너져버렸다.

마음은 자기를 형성하는 작용을 벗어나고,

갈애(渴愛)는 완전히 제거(除去)되버렸다. - 담마?파타

설마 초견성의 체험으로 이러한 집을 짓는 작용들이 없어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거의 없겠지만, 노파심에서 설명을 드린다.

보는 놈이 남아 있는 한, 집은 지어질 수밖에 없다.

체험 전에는 욕망과 어리석음으로 모래성을 쌓지만,

체험 후에는 법()으로 집을 지으니 이것이 법진번뇌(法塵煩惱)이.

비록 체험으로 집의 많은 부분이 무너져 내리지만,

보는 놈이 여전히 있는 한, 집짓기는 멈추지 않는다.

()과 소(), 즉 주체와 객체가 사라져야 집짓기를 멈추지만,

소지장(所知障)을 넘지 못한다면, 능소(能所)는 사라지지 않는다.

능과 소가 사라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얼음이 물에 녹아 물과 하나가 된 것이고,

당나귀가 우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물이 당나귀를 보는 것이다.

때문에 초견성도 마찬가지지만, 이 경험은 체험하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벙어리가 꿀을 먹은 것과 같이 맛을 본 사람은 알지만, 설명할 수는 없다.

하루 종일 걸어도 한 걸음도 걸은 바가 없고,

평생 말을 해도 한 마디도 한 바가 없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도덕경에 나오는 위무위 즉무불치(爲無爲 卽無不治)

, “함이 없이 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라는 말이 무슨 뜻이겠는가?

양변(兩邊)을 떠나지 못하면 능소(能所)가 있고, 생각이 있고, 집을 짓게 마련이지만,

양변(兩邊)을 여위면 능소(能所)가 사라지고, 집을 짓는 자가 없으니, 이것이 마음이다.

 

양변(兩邊)을 여윈다는 말은 공부를 하는 이라면, 자주 접하는 말이지만

비록 체험을 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바르게 체득하기가 어려운 말이다.

이 양변(兩邊)의 소거(消去)에 관한 문답을 두 가지 소개하겠다.

먼저, 위산과 앙산의 대화이다.

제자 앙산이 스승에게 물었다.

어떠한 것이 참 부처가 머무는 곳입니까?“

위산선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생각 있음과 생각 없음의 묘한 화합으로써

신령스런 지혜의 불꽃이 그 무궁함을 되돌려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가게 되면

()과 상()이 상주하고 이()와 사()

둘이 아니니 참 부처님이 여여하다.“

이 구절은 선문염송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문으로 쓰여 있다보니 그 해석도 조금 어렵게 여겨지겠지만

요점만 정리하자면, 생각 있음과 생각 없음의 묘한 화합으로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간다라는 내용이다.

또 다른 문답은 대혜종고 스님과 원오극근스님사이에서 일어난다.

먼저 제자 대혜 스님이 스승 원오스님에게

유구(有句)와 무구(無句)에 대한 질문을 청하니, 원오스님이 말한다.

"내가 오조께 '유구(有句) 무구(無句)가 마치 등나무가

나무에 의지한 것과 같다 (有句無句如藤倚樹)라고 했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오조께서는 '본뜰래야 본뜰 수 없고

그릴래야 그릴 수 없다'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또 묻기를 '나무가 넘어지고 등나무가 마를 때는 어떠합니까?'

하니, 오조께서 '서로 따라오느니라(相隨來也)' 라고 하였느니라."

이 말을 듣고서 대혜 종고스님은 말후구(末後句)를 깨닫게 되었다.

스승 원오스님이 몇 번의 시험을 했으나,

결국 제자 대혜스님이 속아 넘어가지 않자,

원오스님이 이제 내가 너를 속일 수가 없구나!“라고 했다.

초견성도 마찬가지지만, 말후구도 체험이 없다면, 말로 이해할 수 없다.

체험이 있다면, 그것이 스승과의 문답으로 점차 초점이 맞아가게 된다.

성성적적(晟晟寂寂)하게 하루종일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더라도

보는 놈을 본성으로 아는 한, 도둑놈을 내 자식으로 아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능소(能所)를 떠나지 못하면, 비록 어떤 체험이 있었다 한들,

모든 것이 법진(法塵)을 희롱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아공법공(我空法空)! 내가 없는데, 법(法)인들 따로 있겠는가?

안밖이 없는 평등법계(平等法界)를 증득해야 본래면목을 봤다고 할 것이다.


 

추억의 사랑시&노래모음 - 23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