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란 무엇인가 / 법륜스님

2017. 2. 11. 17:4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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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란 무엇인가 / 법륜스님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마다 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실제의 삶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행복하고 싶지만 현실은 행복하지 않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에게
제가 '무엇이 문제인가요?' 라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괴로워요',
'남편이 매일 술 마셔서 남편 때문에 괴로워요',
'직장 상사가 매일 화를 내서 괴로워요' 이런 이유들을 대답합니다. 
이렇게 자기의 괴로움을 모두 남 탓이라고 해요. 

이럴 때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아이가 내 말을 잘 들어야 하고,
남편이 술을 안 마셔야 하고,
직장 상사가 화를 안 내야 합니다. 
이 말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행복하다는 뜻이지요?

"네!" (청중)

그런데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까요?
만약 원하는 대로 되어야 행복하다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괴로울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원하는 대로 될 때는 즐거웠다가
또 원하는 대로 안 될 때는 괴로웠다가 합니다.

즉, 즐거움과 괴로움 사이를 왔다 갔다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윤회(輪廻)'라고 합니다. 
죽어서 욕심이 많으면 돼지로 태어나고,
미련하면 소로 태어나고,
독한 마음을 먹으면 독사로 태어나는 것을 윤회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욕구가 충족될 때 즐거워하고,
충족되지 않을 때 괴로워하는,
이 고와 락 둘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것을 윤회라고 하는 겁니다.

욕구를 따라가면 반드시 과보(果報)가 생깁니다.
반면 욕구를 억제하면 스트레스가 쌓여요. 
예를 들어, 화가 난다고 화를 내버리면
주변 사람이 나를 떠나는 등 그에 따른 과보가 생깁니다. 
그렇다고 화를 안 내겠다고 참으면 이번에는 내가 스트레스 받아요.
그러니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입니다. 
대개 우선 성질대로 했다가,
그래서 미움을 받게 되면 그 다음에는 참는 방향으로 갑니다. 
그런데 참는다고 해봐야 두 번밖에 못 참고 세 번째에는 터집니다.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하면서 터지거나,
'이게 한두 번도 아니고!' 하면서 터지고 맙니다. (청중 웃음) 
그래서 세 번을 잘 못 넘겨요.
마음먹은 일도 3일을 잘 못 넘긴다고 해서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렇게 두 번 참았다가 세 번째 못 참고 터뜨리고 나면
그 부작용이 크니까 '다시는 안 해야지' 하고 후회하고 다짐합니다. 
그 다짐으로 참다가 또 언젠가는 터뜨리고 후회하고,
터뜨리고 후회하고를 되풀이 하게 됩니다.

그러니
어떤 욕구가 일어날 때에는 따라가거나 참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알아차릴 뿐'이어야 해요. 

'아, 지금 나에게 이런 욕구가 일어나는 구나' 하고
그 욕구를 알아차리면,
거기에 끌려가지도 않고 억제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욕구와 마주치면
대개 따라가든지 참든지, 두 가지의 길 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가령 명상을 하다가 다리가 아프면
다리를 펴든지 참든지 둘 중 하나를 해요. 
그런데 '알아차림'이라는 것은 그렇게 다리에 통증이 생길 때
'다리에 통증이 있구나'하고 통증을 느끼고 알아차리는 거예요.
통증이 싫다고 다리를 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통증을 억제하지도 않는 거예요. 
물론 현실에서는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한 거예요.

이렇게 욕구에 끌려가지도 않고
욕구를 참지도 않는 제 3의 길이 '중도(中道)'입니다. 
욕구를 따라가는 쾌락주의도 아니고,
욕구를 억제하는 고행주의도 아닌,
이 새로운 길이 부처님께서 발견하신 '중도'예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제자들에게 하신 첫 번째 말씀도
'수행자는 쾌락의 길을 가도 안 되고,
고행의 길을 가도 안 된다.
양 극단을 버리고 중도의 길을 가라' 였습니다.

이런 중도의 길은
즐거움과 괴로움을 윤회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기분이 좋을 때 마음이 들뜨나요, 가라앉나요?

"들떠요." (청중)

화가 나도 마음이 들뜹니다.
기분이 좋을 때나 화가 날 때가 사실은 같은 거예요.
둘 다 마음이 들뜬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 둘이 계속 되풀이 되는 거예요.
반면 알아차림은 마음이 고요한 상태입니다. 
좋다고 들뜨지도 않고, 싫다고 가라앉지도 않는 상태예요.

그런데 대개 그런 경지를 체험하지 못한 채,
기분이 좋아서 들뜨는 것을 행복한 상태라고 생각하고
그 상태가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데
그런 상태는 계속 유지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면 행복한 것이다'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고(苦)와 락(樂)이 되풀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 가치관의 전환을 다른 말로 출가(出家)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집의 가치관,
즉 고와 락 중, 락만을 바라는 가치관을 버리는 것입니다. 
락만 갖기를 바라지만 락에는 필연적으로 고가 따릅니다.

그래서 괴로울 때는 집을 나갔다가
또다시 편안함을 그리워하면서 집으로 들어오고,
그렇게 나갔다가 들어오고를 반복합니다. 
이런 건 가출이라고 해요. (청중 웃음)

'고와 락의 되풀이'를 불살라 버리는 것,
그런 기존의 가치관을 집이라고 대변하여
'집을 불살라 버리는 것'을 '집을 떠난다, 출가했다'라고 표현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절에 들어와도
스님이 볼 때에는 열에 아홉은 출가가 아니라
가출을 하는 것 같아요. (청중 웃음) 
집이 싫어서 나왔다가
절에서 살기 힘들어지면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돌아갔는데 귀찮아서 못 살겠으면 다시 나옵니다.
이렇게 나왔다 들어갔다가 하는, 이런 오고 감은 '가출'입니다.

여러분들은 괴롭다고 할 때 대개 '무엇 때문에 괴롭다'라고 말하는데,
그 가치관을 붙들고 있는 한 지속가능한 행복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탓을 하기 시작하면 여름에는 더워서,
겨울에는 추워서, 봄에는 알레르기가 있는데
꽃이 펴서 괴롭다는 등 날씨부터 온갖 것을 다 탓하고 살게 됩니다.

그런데 관점이 탁 바뀌면 여름에는 수영을 할 수 있어서 좋고,
겨울에는 스키를 탈 수 있어서 좋고,
봄에는 꽃구경을 해서 좋고,
가을에는 단풍 구경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날씨에 따라 내 마음이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 긍정적으로 대응을 하게 됩니다. 
즉, 욕구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니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거예요. 
그런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 출가이지,
꼭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는 것만이 출가가 아닙니다. 
자기의 기존 가치관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의 길로 나아간다면 출가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아무래도 세속에서 살면
자꾸 옆 사람과 비교해서
시류를 따라가기 때문에 이렇게 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초심자일수록 세속으로부터 일정 기간 격리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다음에는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을 나눌 필요가 없어집니다. 
어디에 있어도 늘 알아차림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달빛 되어… / 장근배

 

사랑하는 사람아,

오늘처럼 보름달 오지게 포동포동한 밤엔

그대만을 위해 내가 숨겨둔 호수로 가자

억새풀에 얹힌 바람 향기롭고 코스모스도 좋은

인적 없는 시골길 걷다가 어둠이 들판 덮으면

우리도 절로 달빛이 되는 그곳에 가자

이루어져도 좋고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은

믿거나 말거나 빌어보는 소원 위해

주머니 탈탈 털어 꺼낸 동전도 던져보고

마주 보며 걷다가 앉았다가 앉았다가

또 일어나 걷다가 노래도 불러보고 휘파람도 불다가

던져진 동전으로 일어난 파문을 배경으로

가볍게 껴안고 서로의 눈동자를 쳐다보다가

사춘기 애들처럼 피식 웃어버리고는

절로 달빛 되어 눕는 우리만의 호수로 가자






"동소문에서 인력거를 끄는 김첨지는 근 열흘 동안 돈벌이를 못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첫 손님으로 문안에 들어가는 마나님을 전찻길까지 태우고,

학생 손님까지 만나 1원 50전이나 받았다. 정말 운수 좋은 날이다.


집에서 나올 때 아내가 몹시 아프다는 말을 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에 친구 치삼을 만나 술을 한잔 한다.
그는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에 가지만 아내의 기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소리를 버럭 지르며 방안에 들어가 누워 있는 아내를 발로 걷어차니

아내는 이미 죽어 있다.


인력거꾼에게 다가온 작은 행운이

결국 아내의 죽음이라는 불행으로 역전되는 내용이다.

끝부분의 반전, 내용을 염두에 둔 반어적 제목 등으로

비극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사회적 주제를 뚜렷이 드러낸 1924년 6월

《개벽》에 발표한 현진건의 단편소설 작품 "운수좋은날"이다


오늘은 당신에게 어떤 날인가요

회사 CEO들에게 운수 좋은날은 어떤 날일까요

기업 대표들에게 운수 좋은날은 회사제품이 많이 팔리는 날이겠지요

그러면 우리 수행자들에게 운수 좋은날은 과연 어떤날일까요...


정진합니다 / 광명스님 제공




수행자에게는 작게는 복짓는 날이요
크게는

知無生死(생사없음을 앎)하여

體無生死(생사없음을 체득)하고

用無生死(생사없음을 활용)하는 날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