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4. 20:40ㆍ일반/생물·과학과생각
<78>대오와 대발견
구텐베르그 금속활자 만들듯
수행자도 과학자도
전심전력하면 창조의 문 열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의 님이 봄이라면 맛치니의 님은 이탈리아다.
- 한용운 詩 ‘군말’ 中에서 -
길은 다르더라도 전심전력을 다하는 대상은 모두 님이 될 수 있다. 이 논리대로라면 수학자의 님은 수학이 될 것이고 불자의 큰 깨우침은 수학자에게 있어서는 대발견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큰 깨우침, 큰 발견의 대상은 내적, 외적이라는 차이는 있을망정 한결같이 자신의 세계를 새로이 열어가는 창조의 작업이며, 한용운 스님의 어법을 빌어 말한다면 ‘님’을 찾는 일이라는 점에서 공통이다. 따라서 수학자(넓은 뜻에서의 과학자)의 대발견의 길은 마치 불자에 있어서의 대오의 길과도 같을 것이다. 옛부터 과학자들 사이에는 큰 발견의 방법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그것이 직관 또는 치밀한 합리적 사고 중 어느 쪽에 중점을 두는지에 관한 견해 차이이다. 이처럼 엇갈리는 논의들은 불교계의 돈점(頓漸) 논쟁에서도 볼 수 있다. 불교에 있어서의 돈오(頓悟)는 수행의 단계를 밟지 않고 직관적으로 깨우침을 얻는 것을 말하고 한편 점오(漸悟)는 순서를 밟아 점진적으로 오랜 수행을 겪은 후에 깨우침을 얻는 것을 말한다.
과학상의 대발명이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름으로써 얻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면밀한 논리추구의 결과로써 얻어지는 것일까.
왕의 명령으로 왕관이 순금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밝히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던 아르키메데스는 잠시 모든 것을 잊고자 목욕탕에 들어갔다. 이때 탕 밖으로 넘쳐 흐르는 물을 보고 아르키메데스는 ‘물체를 물에 넣으면 그 물체와 같은 부피의 물의 양만큼 가벼워진다’는 유명한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것이다.
인류문명사상 최대의 발명은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정보화혁명 역시 그것으로 인해 이루어졌다. 금속활자의 발명은 과학서적의 대량인쇄를 가능케 했으며, 그것이 과학혁명, 기술혁명에 이어지면서 산업혁명이 가능했고, 그 연장선상에 전자통신, 정보화 문명이 개화되었다는 것이다. 구텐베르그의 시대에도 이미 누구나 글을 새긴 나무토막에 잉크를 바르고 종이에 누르면 그 글씨가 종이에 그대로 찍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방법으로 수백 페이지나 되는 성서를 인쇄하는 일은 현실성이 없었다. 또한 동전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글씨가 새겨진 금속판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무토막을 새기는 일과 동전을 만드는 일, 이 두 가지의 지식만으로 금속활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하나가 부족하다. 구텐베르그는 이 답을 엉뚱한 곳에서 얻었다.
어느날 포도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던 구텐베르그는 붉은 포도주가 통에서 콸콸콸 흘러 나오는 것을 보고 ‘포도주가 나온다는 것은 그 이전에 어떤 원인이 있다는 것인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에서 그는 현상에 관한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따지면서 새삼 압착기의 엄청난 힘을 알아차리고 그 압력을 이용해서 동전 또는 도장을 만들기 쉬운 소재가 납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여 활자를 생각해 낸 것이다. 일단 활자만 만들어 내면 간단히 그것들을 배열시켜 종이에 대고 누르면 인쇄가 되는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에 넘쳐 흐르는 물에서, 구텐베르그는 포도주통에서 흘러 나오는 포도주에서 대발견의 계기를 얻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액체의 흐름이다. 역동적인 액체의 흐름이 무의식의 흐름에 자극을 준 것일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움직이는 대상이 정지상태에 있는 것보다 자극적인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요컨대 과학자의 대발견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대상들이 자신의 무의식에 작용하여 연관성을 갖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선의 화두는 이를테면 ‘물 속에 나르는 새를 잡아라’와 같이 비현실적이며 논리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화두와 씨름하는 일, 또는 참선에 몰두하는 등 길은 많다. 이들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님과 연관의 고리를 찾는다. 돈, 점, 어느 길을 걸어도 전심전력하는 가운데 이 한줄기 빛이 창조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유태인 어머니의 편지
유대인 어머니들은 결혼을 앞둔 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꼭 보낸다.
사랑하는 딸아 네가 남편을 왕처럼 섬긴다면 너는 여왕이 될 것이다
만약 남편을 돈이나 벌어오는 하인으로 여긴다면 너도 하녀가 될 뿐이다.
네가 지나친 자존심과 고집으로 남편을 무시하면 그는 폭력으로 너를 다스릴 것이다.
만일 남편의 친구나 가족이 방문하거든 밝은 표정으로 정성껏 대접하라. 그러면 남편이 너를 소중한 보석으로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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