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늠|…… 강병균 교수

2017. 3. 25. 23:0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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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늠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사진소리쟁이 사진설법쟁이


    소리쟁이는 “그 사람 오뉴월 묵은 소리 섣달그믐까지 간다지?”라는 소리를 들으면 끝장이다.

    케케묵은 소리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귀밝은 이들을 속일 수 없다.
     
    소리꾼들은 득음(得音)하기 위해 폭포수를 마주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다 목이 터지고 피가 나오면 똥물로 목을 달래가며 공부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목소리가 폭포를 뚫고 나가고, 배우지 않은 가락이 튀어나온다. 더늠이다! 스승의 가락에 자신의 가락을 첨가하여, 자신만의 노래를 창조한 것이다. 대중가수들처럼 자신만의 신곡(新曲)으로 승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구곡(舊曲)으로 승부를 하려면 더늠이 없을 수가 없다. 그래서 더늠까지 없는 사진소리쟁이는 더욱 기피대상이 되는 것이다.


    불교도 ‘사진소리쟁이’가 되면 안 된다. 자그마치 2,500년 된 구곡(舊曲)으로 승부를 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은 불변일지라도, 이해는 깊어져야 하고, 시각은 다각화되어야 하며, 설명방법은 변해야 한다. 소리쟁이가 청중 중에 ‘젊은이가 많은가 늙은이가 많은가’에 따라 사랑가를 길게 또는 효도가를 길게 부르는 것처럼, 법사도 시대와 청중(눈높이)에 맞추어 변신해야 한다. 특히 ‘전설따라 삼천리 귀신따라 삼만리’ 식의 설법은 기피대상 영순위이다.


    멀게는 2,500년 전 설법을 가깝게는 100년 전 설법을 그대로 쓴다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하품을 할 것이다. “사진설법쟁이군!” 하면서.


    무상·고·무아 삼법인을 설하더라도 발달한 과학문명을 이용하여 새로운 더늠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부단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팔만대장경에 실려 있는 논서(論書)들은, 예를 들어 유식학(唯識學)은, 그 주제·내용·논법에 있어서 당시 학문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현기증 나도록 발전한 그리고 지금도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생물학·뇌과학·물리학 등 현대과학문명을 좇아가려면, 죽도록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옛날에 중국의 어느 노장스님이 한탄한 적이 있다. ‘젊은 시절 속세에서 열반경을 읽다가 감화를 받아 열반경을 공부하려고 중이 되었건만, 그동안 열반경을 더 읽은 바가 없노라’고. 예전 스님들은 탁발하고 남은 시간은 모두 참선, 염불, 독경, 사유, 연구, 번역, 저술하는 데 바쳤다. 원효스님의 무수한 저서들을 보라. 만약 초인적인 정진이 없었다면, 과연 동쪽 끝, 외진 서라벌 구석에서 어떻게 그런 세계적 수준의 사유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현대는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자료를 손쉽게 접한다. 클릭 한 번이면, 그 즉시, 팔만대장경 속으로 들어간다. 책이 귀하고 비싸고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에는(아직 종이제조법이 전해지기 전의 서양에서는 양피지나 소가죽으로 책을 만들었다. 성경을 한 부 만들려면 송아지 30마리분의 가죽이 필요했다. 그래서 책은 천문학적으로 비쌌다. 종이를 쓴 조선조에도 책을 모으느라 가산을 탕진한 사람들이 있었다. 설사, 당시 책 마니아들의 소장기준인, 2만권이라 해도 요즘기준으로 보면 얼마 안 되는 양이었지만, 당시에는 집안을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대단한 양이었다), 보고 듣고 읽은 모든 책과 자료를 외우는 수밖에 없었고, 모르는 것은 ‘백과사전적인 지식과 기억력’을 가진 사람(전문가)에게 묻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별로 없었으므로, 그리고 때맞추어 자기 주변에 있을 리가 만무(萬無)하므로,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의문이 일어날 때마다 팔만대장경이 소장된 해인사까지 걸어갈 수도 없는 일이니, 얼마나 어려움이 컸겠는가? 요즘 같으면 클릭 한 번으로 해결될 일을, 예전에는 한 달은 소비해야 했다. 우편에 의지한다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성지순례다, 해외여행이다’ 하며, 바삐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직심시도량(直心是道場)’일진대, 성지순례만 하다 정작 도량석(道場釋)은 한 번도 못 할 수도 있다. 성지순례 중 으뜸은 자심순례이다(自心巡禮最上勝巡禮耶). ‘직심시도량(直心是道場)’이라는 육조(六祖) 혜능스님의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지금 지천에 깔린 풍부한 음식은 6척육신을 지탱하고도 남는다. 셰일석유·셰일가스 생산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락하고 있으니, 더위와 추위를 걱정할 이유도 사라진다. 예전 스님들은 한겨울을 나려면 늦가을 내내 땔감을 장만해야 했다. 그러니 이 풍족한 현대에, 묵은 걱정 일체 없이 하루종일 공부하면 그 아니 즐거울까?


    승려들 중에 과학사와 문명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 불교학 이외에도 수학·물리학·화학·생물학·언어학·심리학·경제학 등 일반 학문과 기독교(신)학 등 타종교학으로 학위를 따는 사람들이 생겨야 하고, 또 늘어야 한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거의 없다. 특히 진화론을 연구하는 스님들이 배출되어야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가톨릭은 그렇게 하고 있다: 심지어 불교학자인 신부들도 있다. 가톨릭이 진화론을 인정하는 등 전향적인 자세로 성장하는 이유이다. 이에 비해 불교는 점점 더 폐쇄(閉鎖)적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한국불교가 그렇다. 아마 그래서 가톨릭에 신자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서양에 가서 한국불교학으로 학위를 따는 일만은 삼가해야 한다. (서양에 가서 아리랑 연구로 학위를 따는 일은 없으면서, 어떻게 불교종주국이 서양에 가서 불교학위를 따오는 일이 발생하는가? 그것도 한국불교학 학위를! 게다가 생각외로 자주!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절 입장료수입은(반드시 받아야 한다면) ‘승려들의 불교공부·연구·수행’을 지원하는 데 쓰여야 한다.) 세속에서도 정부는 육사, 해사, 공사 등 군사대학 생도들을 포항공대, 서울대, 연대, 고대, 카이스트 등에 파견해 위탁교육을 시킨다. 전쟁은 종합기술 또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종교 역시 종합예술이다. 인간의 삶이 총체적으로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종교에는 35억년 인간의 사유, 고뇌, 학문, 예술이 다 녹아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도, 고등종교 대신에, 여전히 원시적인 크로마뇽인의 믿음이나 미개한 샤머니즘을 믿어야 한다.


    종교가 과거에 집착하면 더늠이 없는 사진설법쟁이가 되어 대중의 외면을 받는다. (지금 종교인구가 특히 젊은이들이 급격하게 주는 이유이다. 종교는 항상 판타지의 세상이었으므로, 기왕 판타지를 하려면, 지금은 옛날보다 ‘더 멋진’ 그리고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더 그럴듯한’ 판타지를 꾸며야 한다.) 그러느니 차라리, 자연사 박물관의 (종교)화석이 되어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게 더 낫다. 게다가 박물관 화석은 정부가 국민세금으로 다 관리해 준다. 그런데 가슴 아프게도 이미 그렇게 되었는지 모른다. 정부보조금과 문화재관람료에 의지해 삶을 영위하는 승려들은 사실상 박물관 화석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법을 배우러 절에 가는 것이 아니라, 입장료를 내고 승려들과 그들이 사는 집을 관람하러,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러 절에 간다. 마치 민속촌이나 동물원 구경을 가듯이!


    불교가 ‘펄펄’ ‘살아있는’ 가르침이 되려면 더 늦기 전에 더늠을 얻어야 하며, 더늠을 얻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 그게 바로 초기불교에서 부파불교로, 다시 부파불교에서 대승불교로, 또다시 대승불교에서 선불교로 끝없이 모습을 바꾸어온 2,500년 불교역사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유정(有情)의 고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그게 무엇이건 간에 더늠으로 쓸 수 있다.
     


      
    ▲ 강세황(1713~1791)의 태종대. 파격적인 표현이 미술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각이 종교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종교의 본질이 인류의 행복증진이라면, 종교는 흐르는 시공을 따라 같이 진화해야 한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