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천국 종교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제석천 무당 오대산
하느님의 수백억 년 된 솜이불이 터진 듯 하루종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삼십년 전 어느 날 저녁, 십리 눈길을 뚫고 험한 산을 올라온 몸빼 차림의 초라한 형색의 중년여자가 오대산 꼭대기에 자리잡은 북대(北臺) 미륵암에 하루밤 묵어가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밤은 깊어 가는데 어디선가 통곡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천존님~, 천존님이 석가를 이 세상에 보내어 중생을 제도하려 했는데 세상 사람들은 천존님을 몰라보고... 엉엉엉...” 방금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선녀복으로 갈아입은, 무당이 법당에서 길게 절을 올리며 서럽게 울부짖는 소리였다.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세간짜리 오두막 절을 뒤흔들었다. 그 바람에 너와지붕이 들썩이자 두텁게 쌓인 눈이 무너지며 눈보라를 일으켰다. 감히 석가모니 부처님을 잡신의 부하로 만들다니!
그 길로, 분노한 주지스님에게 쫓겨난 무당의 운명이 지금도 궁금하다. 쏟아지는 함박눈에 달도 별도 빛을 잃은 깊은 밤, 천존님의 가호가 있었을까? 아니면, 날개옷을 입은 김에 눈바람을 타고 승천했을까? 남의 교주를 욕보이다가는 험한 꼴을 당한다. 최악의 사태는, 남의 집에서 그럴 때 일어난다.
‘힌두교 신 제석천이 부처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리는 정신 나간 소리이다. (이걸 이유로 부처님은 존경하는 것은 더 정신 나간 일이다. 부처님은 초자연적인 신들과 힘겨루기를 하는 분이 아니다. 부처님의 위대함은, 초자연적인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자비에 있다. 즉,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實相智慧)와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법칙을 보는 지혜(般若智慧)와 번뇌를 이겨내는 지혜(解脫智慧)와 모든 생명체에 대한 평등하고 무한한 자비심(無分別慈悲心)에 있다. 미개한 힌두교신을 끌어들여 부처님을 높이려 하는 것은, 오히려 부처님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김일성이 박정희 부하가 되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 소리이다. (그러다가는, 분노한 손자가 날리는, 북(北)에서 날아오는 핵폭탄에 맞는 수가 있다.) 누군가가 부처님을 높이려고 지어낸 말에 지나지 않는다. 제석천은 아직도 버젓이 힌두교에 힌두교 신으로 살아남아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힌두교는 부처님을 ‘힌두교 신 비슈누의 9번째 화신(avatar)'으로 만들어 버렸다. 서로 피장파장이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에 분노한다. 자기들 신을 기독교인들이 훔쳐가 이상한 신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하 ‘훔치다’는 ‘남의 것을,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가져다 쓰거나 자기 거라고 주장한다’는 뜻이다.) 유대교 야훼신은 유대인들의 민족신일 뿐이다. 이는, 환인(桓因)은 한민족의 신이고 단군은 우리 조상인데, 미국인들이 자기들 맘대로 ‘환단교(桓檀敎)’를 만들어 ‘환인은 우주의 신이고 단군은 모든 인류의 조상이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불교와 힌두교의 관계는 기독교와 유대교의 관계와 유사하다.
속세 학문에서는 표절·모방은 금기이다. 그런데 종교에서는 마음대로 표절·모방이 가능하다. 남의 둥지에서 건축자재를 훔쳐다 자기 둥지를 짓는 파푸아뉴기니의 텃새 바우어(bowerbird)처럼, 남의 종교 교리·신화를 훔쳐다가 자기 종교를 만든다. 그래놓고는 창작인 양 시치미를 뗀다. 파렴치하게는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으로, 자기네 걸 가져다 변형시킨 이단을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죽인다. (유대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길가메시 신화를 훔쳐다가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만들어 자기들 이야기처럼 창세기에 모셔놓았다. 기독교는, 당시 로마제국에서 가장 세력이 크던, (당시 2,000년 역사의) 미트라교(Mithraism) 교리를 훔쳐다 유대교 틀에 앉혔다. 예를 들어, 예수 탄생일 12월 25일은 미트라교 교주 미트라(Mithra, Mica)의 생일이며, 미트라가 태어나자 현자(賢者) 3명이 방문해 유황·황금·몰약을 바쳤으며, 십자가 위에서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으며, 십자가형을 받기 전날 12제자와 마지막 저녁식사를 했다. 조로아스터 교리도 훔쳐다가 선신(예수)과 악신(사탄) 사이의 대결구도를 만들었다. 플라톤철학을 빌려와 구약의 최고신 야훼(Yahweh)를 신플라톤주의의 하나님(God) 또는 일자(One)와 동일시했으며, 영혼(soul)의 개념도 빌려왔으며, 영(spirit)은 선하고 물질(matter)은 악하다는 철학도 빌려왔다.
근자에 통일교는 유교·불교 교리를 훔쳐다가 기독교 틀에 때려 넣었다: 이들은 조상에게 제사도 지내고 천도재도 지낸다. 수백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지낸다. 광산의 굴을 점점 더 깊이 파들어 가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증산교는, 티베트 본교처럼, 불교 교리와 토속신앙 교리를 훔쳤다. 교주 강증산은 아예 자기가 미륵부처라고 선언했다가 후에, 영계의 나폴레옹 황제인 양, 스스로 우주의 최고신 상제(上帝)로 등극했다. 회교는 유대교의 구약과 기독교의 신약의 일부를 훔쳐다 변조했다. 불교는 힌두교 윤회론과 우주론을 훔쳤다(윤회를 부정하는 법륜의 증언에 의하면 힌두교의 흔적이다). 절도는 멈추지 않아서, 지금은 아트만(atman)을 훔쳐다가 이름만 ‘참나’로 바꿔 팔아먹고 있다. 상기(上記) 케이스들은, 훔친 자들이 절대로 빌려왔다고 하지 않으므로, 악의적인 절도이다.)
그래도 절대로 처벌이 없다. 기껏해야, 당장 어쩌지는 못하고, 사후에 지옥에 보내는 정도다. 하지만, 종교마다 각자 하나씩 구비되어 있는 지옥들 중에서(불법적 사설감옥인 지옥의 기능은 자기 종교를 안 믿는 자들을 감금하고 고문하기 위한 것이다), 어느 지옥이 진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잘못 믿으면, 용케 자기 종교 지옥에는 안 가더라도, 남의 종교 지옥에 가는 몹시 재수 나쁜 일이 발생한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유기지옥인) 불교지옥을 면하고 (무기지옥인) 기독교지옥에 떨어지는 사태이다; 이리를 피하려다 범을 만나는 꼴이다. (종교는 표절·모방·절도의 천국이다.) 당신은, 낯선 이가 자기가 당신 아버지라 주장하며 돈을 달라고 하면 불같이 화를 내겠지만, 종교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당신은, 누가 당신의 진정한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 하며 당신의 혈육 아버지를 부정하고 폄하해도,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돈·물질·시간·마음을 바치며 순종한다. 자기 아버지를 박탈당했는데도 말이다.
종교는 표절·모방·위증의 천국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지난밤에 신과 대화를 나눴다’고 주장할 때, 혹은 자신이 ‘전생에 육조혜능이었다’고 주장할 때, 그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으면, 표절·모방·위증을 밝힐 길이 없다. 그래서 처벌과 제제가 불가능하고, 그에 따라 표절·모방·위증이 횡행(橫行)하는 것이다. 판·검사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타나토노트’에서처럼 영계로 날아가, 전생을 직접 확인하지 않는 한 무슨 수로 진위를 파악할 수 있겠는가? (제석천이 부처의 제자인가, 아니면 부처가 비슈누신의 아바타인가? 어느 쪽이 진실인지 객관적으로 가릴 길이 없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제4대 내무부장관(1950.2월~1950.7월) 백성욱 박사는 ‘자기가 전생에 육조혜능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전혀 처벌을 받지 않았다. 사자명예훼손으로 걸릴 법도 한데 지금까지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오히려 존경을 받았다. 처벌(여부와 방법)은, 법이 결정할 일이 아니라, 종교시장에서 소비자인 중생들이 결정할 일이다.
이 점에서 현대 종교시장은, 신성모독을 사형으로 다스리는 이슬람처럼 철저히 통제되는 시장도 있지만(이란 회교지도자 호메이니는 외국에 있는 외국인인 영국인 살만 루시디(Sir Ahmed Salman Rushdie)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리고 파트와(fatwa 종교적 해석에 의거한 판결)를 선포하고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에게 그를 살해할 것을 촉구하였다. 루시디가 소설 ‘악마의 시’에서, 예언자 마호메트가 알라 이외의 신인 여신을 인정하는 걸로 그리고 마호메트의 부인들을 남자들을 유혹하는 창부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를 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시장이다. (이 시장은 세속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에 의해 지탱된다. 이 자유는, 사실상 종교창설의 자유이자, 기존종교에 대한 표절·모방·절도의 자유이다. 또한 마음대로 다른 사람들을 모욕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 아무나 붙잡고 “당신, 천하의 악인이다.” “지옥에 간다.” “당신, 전생에 히틀러였다”라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내가 당신을 창조한 하나님이다” 해도 사칭죄로 기소되지 않는다. ‘하나님에게 잘 이야기해서 지옥에 떨어지는 걸 막아주고 천국에 보내주겠노라’고 접대비가 필요하다며 정기적으로 돈을 받아먹어도 알선수수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아무 규제도 없이, 영과 육 사이에 엄청난 규모의 금전적 거래가 국내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이루어진다: 개인 간 나라들 간에 아무 장벽이 없다.
내가 하나님이라 주장하면, 당신은 그게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가? 내가 어제 새벽같이 도솔천에 올라가 미륵부처님을 만났다고 주장하면, 당신은 그 진위(眞僞)를 가릴 수 있는가? '미륵부처 말이 너 다음 생에 지옥에 간다더라' 하더라도 그게 아니라는 걸 밝힐 길이 있는가?
모든 종교적 주장은 (사후세계와 신의 세계와 영계와 내세에 대한 주장은) 참·거짓을 가릴 수 없다. 그래서 표절·모방·절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다른 종교에 대한 표절·모방·절도이다.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그렇다. 그래서, 즉 자기도 지은 죄가 있으므로, 자기를 표절·모방·절도하는 신흥종교와 다른 종교를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가짜와 짝퉁들 사이에 무슨 표절·모방·절도가 있을 수 있는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진짜와 가짜 그리고 원본과 사본을 구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면, 세속 권력이 합당한 근거도 없이 자의적으로 종교의 진위를 결정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사실(fact)만으로도 살 수 없다. 대뇌신피질이 지나치게 발달한 인간은 정신의 먹이인 환망공상(幻妄空像)으로도 살아야 하기에, 환망공상의 보고인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환망공상도 아니고 표절도 아닌 위대한 사상이 있다. 부처님의 무아론(無我論)이다. 무아론은, 우주와 생명을 보는 눈을 통째로 바꾸는 위대한 패러다임인 연기론(緣起論)을 선사(膳賜)한다. ‘신이나 아트만(참나) 같은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주체가 없이도, 아무 문제없이 우주와 생명이 전개된다’는 것이 연기론이라는 패러다임이다. (연기론을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 ‘공(空 sunyata)’이다. 더 자세하게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이다. ‘색즉시공’이고 ‘공즉시색’이다. ‘식즉시공(識卽是空)’이고 ‘공즉시식(空卽是識)’이다. ‘진공묘유 묘유진공’이다.)
이 패러다임을 통해서, 지적 갈증을 해소하는 ‘우주와 생명(의 발생과 전개)에 대한 지혜’와 정신적인 고통과 형이상학적인 고통을 벗어나게 하는 ‘근본적인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현대과학과 현대심리학은 기본적으로 연기론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과학과 현대심리학을 거부하는 이들은 사실상 연기론을 거부하는 것이다: 기복과 미신에 빠진 한국불교도들은 자기들이 무얼 부정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마구 부정한다. 구경각을 얻었다는 큰스님들은 진화론과 우주론을 부정하면서, 불난 집에 기름을 붓고 부채질을 하듯, 신도들의 몽매주의를 부추긴다. 이로부터, 우리는, 이들이 불법의 근본인 연기론과 무아론을 결코 깨닫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필자가 부처님을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분이라고 찬탄하는 이유이다.
표절·모방·절도·위증이 만연한 종교의 주장(교리·일화)들을 종교경전만으로 진위(眞僞)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사기꾼들에게 자기들끼리 공정한 재판을 하라는 것과, 또는 사기꾼에게 진솔(眞率)한 자아비판을 하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어리석은 일이다. 필자가 과학의 눈으로 종교를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과학만능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명명백백한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들은, 즉 헛소리들은 종교에서 걸러내야 한다는 말이다.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건강한 부분까지 독소가 침범해, 온몸이 썩어 죽기 때문이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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