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 정찬주 소설

2017. 7. 2. 15:4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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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 정찬주 소설

 인연 24


제 6장 무소의 뿔처럼

      

서울 선학원에서 『금강경』과 보조국사의 『수심결』을 법문하던 경봉이 극락암으로 내려왔다는 소식이 일타의 귀에도 들려왔다. 선학원은 광복 전부터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용성의 가풍을 이어온 도량이었는데, 조선불교를 지키는 거점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던 것이다. 일타는 반가운 마음에 강원의 수업이 끝나자마자 통도사에서 십여 리나 떨어져 있는 극락암으로 올라갔다.

                           

봄비가 내린 뒤끝이었으므로 산길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나뭇가지에는 아직도 빗방울들이 매달려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갠 하늘에는 흙을 문 제비들이 둥지를 짓느라고 부지런히 날고 있었다.

             

일타는 옆구리에 읽다만 『서장』을 끼고 걸었다. 경봉에게 묻고 싶은 의문 나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었다. 강원의 강사에게 질문할 수도 있었지만 일타는 경봉에게 해결하고 싶었다. 경봉은 예전부터 일타가 믿고 존경하는 통도사의 고승 중 한 사람이었다. 일타는 경봉의 누더기 장삼만 보아도 가슴이 상쾌해지고 설다. 경봉을 볼 때마다 ‘나도 공부하여 저런 도인이 되어야지’ 하고 신심이 일어나곤 했다.

                   

189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경봉은 어머니를 여읜 뒤 16세에 통도사로 와서 성해를 은사로 출가하고 해담 강백에게 비구계를 받았는데, 강원에서 『화엄경』을 공부하면서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도 반 푼어치의 이익이 없다(終日數他寶 自無半錢分)’는 구절에 크게 발심하여 경전 공부를 그만 두고 내원사, 해인사, 직지사, 마하연사, 석왕사 등의 선방을 돌며 참선한 당대의 대선사였다.

                 

일타 자신이 은사 고경을 시봉했던 통도사 안양암에서 경봉은 광복 전에 일찍이 동구불출의 정진을 하며 도를 깊이 닦았고, 이후 극락암으로 옮겨 화엄산림법회를 주재하면서 용맹 정진하던 중 36세 되던 1927년 12월 13일 새벽에 방안의 촛불이 파파파 하고 춤추는 것을 본 순간 홀연히 대도를 성취하였던 것이다. 그때 남긴 경봉의 오도송을 일타는 단숨에 외워 즐겨 중얼거리곤 했다.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눈앞에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네

   허허 이제 만나 의혹 없으니

   우담발화 꽃빛이 온 누리에 흐르누나.


   我是訪吾物物頭

   目前卽見主人樓

   呵呵逢着無疑惑

   優鉢花光法界流

             

일타는 극락암으로 가는 도중에 산길에서 내려오는 강원의 학인을 만났다. 강원 학인들 중에서 가장 뚱뚱했는데, 산내 비구니 암자에 속가 누나가 공양주보살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도는 학인이었다. 실제로 그는 그곳으로 올라가 떡이나 과일을 먹고 오는지 입속에서 무언가를 늘 우물거릴 때가 많았다. 그도 역시 다른 도반처럼 일타를 말뚝스님이라 불렀다.

                    

“말뚝스님, 어디 가는가.”

“극락암 경봉 큰스님을 뵈러 가는 길이지.”

“나도 가볼까.”

“오늘 큰스님의 법문이 있으니 함께 가는 것이 어떤가.”

“큰절에 있어봤자 감자밭 울력이나 하라고 부를 테니까 극락암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농번기가 된 봄날에는 일손이 부족하여 강원의 학인은 물론이고 선방의 수좌들까지 논밭으로 나가 울력에 동원되곤 했던 것이다.

           

“어찌할 텐가.”  

“큰스님께서는 법문하실 때 욕을 잘 하신다는데 육두문자나 한번 들어볼까.”

“방편으로 하신 거지" 

“방편이라, 정말일까. 조사선의(祖師禪義)를 깨닫고 나서 첫 설법을 하는 동안 보살들을 놀라게 하신 것이.”

“우리 강원의 강사스님도 들었다고 하니 사실이 아니겠나.”

“화엄경의 도리가 두 눈, 두 귀, 두 콧구멍에도 있다고 하셨다는데 난 정말 이해를 못하겠어. 그뿐인가, 좆에도 씹에도 화엄경의 도리가 있다고 하셨다는데 도통 모르겠다구. 하하하.”

                    

일타도 뚱뚱한 학인을 따라서 웃었다. 그러나 웃고 나니 밑도 끝도 없는 의혹이 마음속에서 솟았다.

‘화엄경의 도리가 정말 남녀의 생식기에도 있는 것일까.’  

                    

강원의 뚱뚱한 학인은 극락암으로 함께 갈 것 같더니 슬그머니 물러서버렸다. 일타는 극락암으로 혼자 가는 동안 내내 의혹에 잠겼다. 사실 일타는 학인이 던진 말을 처음 듣는 것은 아니었다. 지대방에서 입담이 좋은 선배 학인에게 우스갯소리로 몇 번이나 들었던 것이다. 어쨌든 경봉이 한밤중에 촛불이 춤추는 것을 보고 홀연히 오도하고 난 다음날, 화엄산림법회 중에 육두문자로 사자후를 토했던 것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일타가 극락암에 도착하자 다행스럽게도 경봉은 막 법문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경봉이 법상(法床)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는데, 밖에서 보던 모습과 사뭇 달랐다. 누더기 장삼을 입고 산길을 포행하는 경봉의 모습은 흰 구름이듯 바람이듯 걸림 없는 자유인 같은 그런 느낌을 주었는데, 법당 안에서 묵묵히 걷는 거구의 경봉은 사자처럼 위엄이 서려 있었다.

곧 입정을 알리는 죽비소리가 났고, 법당에 모인 대중들은 심연 같은 침묵의 선정 속으로 빠져들었다. 잠시 후, 경봉이 내리치는 주장자 소리가 탁탁탁 하고 세 번 나자, 그제야 대중들은 눈을 뜨고 법상을 우러러보았다. 이에 화답하듯 경봉은 미소를 한 번 짓더니 맑은 게송을 염불하듯 읊조렸다.

               

  비 개인 뒤 산빛이 새롭고

  봄이 오니 꽃이 붉다

  달이 차가운 솔가지에 걸리고

  바람은 뜨락 잣나무를 흔드네.


  雨過山靑

  春來花紅

  帶月寒松

  搖風庭栢

                   

게송을 읊조린 뒤 경봉은 바로 설법을 시작했다. 경봉의 목소리는 위압적이지 않고 오랜만에 반가운 손님을 만나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다담(茶談)을 나누듯 따뜻했다. 그러면서도 법당에 가득 들어찬 대중 때문인지 신명이 나 있었다.

                     

“비가 오기 전보다 지나간 뒤의 산빛이 더 곱고, 봄이 오니 꽃만 붉은 것이 아니라 만물이 모두 봄빛을 띠어 찬연하다. 화가의 눈에도 하루에 몇 번씩 산빛이 변하고, 바다 물빛도 몇 번이나 바뀐다고 한다. 

여러분도 바람이 잣나무를 흔들고 달이 찬 솔가지에 걸려 있는 풍광을 다 알겠지만 부처님의 진리 법문은 바로 거기에 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누웠던 주장자를 여러분에게 보이고 법상을 세 번 쳤는데, 이것이 법문이다. 이 주장자를 보아라. 죽은 송장에게 아무리 보인들 송장이 볼 수 있나. 나는 주장자로 법상을 탁! 치는 소리를 귀로 들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귀로 탁! 치는 이 소리는 헤아리지 못한다. 이 무슨 도리인가. 참선 공부를 해야 알지 그렇지 않고서는 수없이 들어도 모른다.

          

모든 상대적인 이변(二邊)을 떠나서 대자유, 대자재를 얻어 온좌(穩坐)하여 영원히 살 수 있는 진리가 분명히 있건만, 그러한 진리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우주 만물에 불법이 다 있다. 생활이 불법이요, 우리의 모든 행동이 불법이지, 불법이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공기 속의 전기와 전자는 사람에게도 통하고, 나무에게도 통하고, 돌이나 물에도 통하고, 삼라만상 어디든 통하지 않은 곳이 없는데 불법의 진리 또한 그렇다.

              

우리 일상생활 주변이 온통 진리 그대로인데 우리는 지혜가 넓지 못하고 안목이 어둡기 때문에 통찰하지 못하는 허물이 있다.

              

백천 시냇물은 모두 바다로 극(極)함을 삼는다. 삼라만상은 허공으로 극함을 삼는다. 육범사성(六凡四聖)은 부처님을 극함으로 삼는다. 명안납자(明眼衲子)는 이 주장자를 극함으로 삼는다.

                     

이 주장자가 어찌 극함이 되는가. 만약 어떠한 사람이 이 도리를 얻는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이 주장자를 분부(分付)하겠다.

                  


  한가로이 선상에나 기대고 있을 것을

  주장자를 말함은 후학에게 길을 가리키기 위이다.


  不如閑倚禪床畔

  留與兒孫指路頭

                    

예전에 중국의 복주 고령사에 신찬(神贊)이라는 분이 있었다. 처음 출가하여 고향의 대중사에서 은사를 시봉하고 있었는데, 은사스님은 늘 경전만 보았지 참선은 안 했다. 그래서 신찬은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선지식 스님을 찾기 위해 은사를 하직하고 떠났다.

행각을 하고 다니다가 대선지식인 백장 화상을 만나 도를 깨닫고 본사로 돌아오니 은사가 물었다. 

                

“너는 내 곁을 떠나서 무엇을 익히고 왔는가.”

“아무런 일도 익히지 않았습니다.”

              

이후 신찬은 대중과 함께 머물며 절의 자잘한 일을 돌보게 되었고, 은사는 여전히 예전 그대로 불경을 펴놓고 조백(糟)만 씹었다. 어느 날 은사가 목욕을 하다가 신찬에게 등을 밀라 하자, 신찬이 등을 밀면서 혼잣말로 말하였다.

             

“좋은 불전(佛殿)인데 부처가 영검하지 못하구나.”

           

은사가 고개를 돌리니 신찬이 또 중얼거렸다.

             

“부처는 영검하지 못하나 광명은 놓을 줄 아는구나.”

                        

은사가 또 창가에서 불경을 읽는데, 벌이 들어왔다가 창문에 부딪히면서 나가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신찬이 게송을 지었다.               


  문으로 나가려 않고

  봉창을 치니 크게 어리석다

  백년을 옛 종이를 뚫은들

  어느 날에 나갈 수 있겠는가.

 

  空門不肯出

  投窓也大痴

  百年鑽古紙

  何日出頭時

               

불경만 읽어서는 생사 해탈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은사는 신찬이 좀 전에 등을 밀면서 한 말과 지금 지은 게송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신찬이 필시 깨달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읽던 불경을 덮어놓고 물었다.

                 

“너는 행각하다 누구를 만났는가. 내가 아까부터 네 말을 듣자니 매우 이상하구나.”

“저는 백장 화상에게 쉴 곳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제 그분의 덕을 갚으려는 것뿐입니다.”

                    

은사는 대중에게 알려 공양을 차려 잘 대접하고 신찬에게 설법을 청했다. 그런 뒤 은사는 신찬의 설법으로 깨닫고 이렇게 말했다.

                           

“늘그막에 이런 지극한 설법을 들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나중에 신찬이 고령사로 가서 대중을 교화한지 몇 해 만에 임종이 가까워지니 삭발하고 목욕을 한 뒤 종을 쳐 대중이 모이자 말했다.

               

“그대들은 소리 없는 삼매를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대들은 조용히 들어라. 모든 생각을 비우고.”

                  

대중이 모두 신찬의 무성삼매(無聲三昧 : 열반의 법문)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신찬은 엄연히 그리고 아주 조용히 입적했다.

             

참된 성품이 물듦이 없는 것은 흡사 연꽃에다 똥물을 붓고, 온갖 색깔을 부어도 닿기는 닿지만 물들지 않거나 묻지 않는 것과 같다. 진흙에 박았다가 빼내도 조금도 흙이 묻거나 더럽혀지지 않듯이 모든 더러운 것을 묻히려 해도 우리 참된 성품에는 묻힐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망상을 피우면 피웠지 소소령령(昭昭靈靈)한 이 자리는 외외락락(巍巍落落)하여 조금도 어리댈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허망한 인연만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니라.”

                

일타는 문득 들려온 범종소리 때문에 법문 중에 한 대목을 잘 듣지는 못했지만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작년에 통도사를 떠나 복천암에서 동안거를 날 때까지 여러 고승들의 법문을 들어보았지만 경봉만큼 가슴을 뭉클하게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경봉의 법문은 달랐다. 게송이 봄비처럼 가슴을 적셨고, 고산준령을 대하듯 가슴을 압도하는 외외한 진리가 있었고, 봄바람처럼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자비가 느껴졌다. 일타는 물론 산내 암자에서 올라온 대중들도 합장한 채 한 동안 법당을 뜨지 못했다.


 소설가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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