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론적 불교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연기법은 석가모니 부처가 출세하기 전부터 존재한다 연기법은 신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이런 연기법에 인격을 부여해 신으로 만든 게 참나이다 이는 인류문명 발전의 흐름을 역행하는 후퇴이다 인격신에서 자연법칙 발견으로의 진화를 거꾸로 간다
기독교는 인격신에서 이신(理神)으로 발전한다. 소박한 시골사람들이 아니라 문명의 세례를 받은 도시인들 중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현대과학에 정통한 사람들이 더욱 그렇다. 동물의 세계에 만연한 '잔인한 폭력과 불합리한 고통'을 목격하면, 이 현상은 심화된다.
인격신은 인격을 가진 신이다. 그리스 신들처럼 울고 웃고 화내고 질투하고 복수하고 살인한다. 유대교 또는 기독교 구약의 신 야훼 하나님이 바로 이렇다. 회교의 알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기 맘에 안 드는 자는 모조리 지옥에 보내 불고문·물고문을 가한다. 우주가 없어질 때까지 영원히. (당신은 항상 고문이 자행되는, 그래서 끊임없이 비명소리가 새어 나오는, 거대한 고문실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겠는가? 기독교 신과 회교 신이 만든 우주가 바로 그런 집이다.)
이신(理神)은, 이런 잔인하고 못된 인격(다른 말로 성질)이 없는 신이다.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화도 안 내고, 시기도 안 하고, 복수도 하지 않는 신이다. 문자 그대로 일체의 감정이 없는 신이다. 의지도 없다. 상황에 따라 자유의지를 발동해, 이 일을 선택하거나 저 일을 선택하지 않는다.
우주의 모든 일은 법칙에 따라 일어날 뿐이다. 벌(위궤양·간경화·치매)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일은, 선행(先行)한 다른 일(폭음·과음·술중독)이 초래한 '자연법칙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창조주 신은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까마득한 과거에 우주를 창조하고 뒤로 물러났다. (아마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우주를 만드느라 바빠서, 우리 우주에는 더 이상 신경 쓸 여유가 없을지 모른다. 이번에는 신경을 써서 잘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자기를 배반하는 일이 또 벌어져서는 안 될 것 아닌가?)
우주에 '자연법칙'이라는 집사를 임명하고 우주사에 일체 간여(干與)를 안 한다. 이 집사를, 즉 이법(理法)을 신격화하여 이신(理神)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결국 있으나 마나 한 신이다. 알코올 중독성 간경화로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이 마시는 알코올 없는 맥주나, 불면증 등 부작용으로 커피를 못 마시게 된 사람이 마시는 디카페인 커피나,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사람이 혼자 치는 고스톱에 해당하는 신이다. 없애긴 해야 하지만 아쉬움이 남아, 엉뚱한 데다 신이라 이름을 붙이고 아쉬움을 달랜다.
그리고 그런 신에게, 즉 이신(理神)에게 기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력(gravitation)이나 전자기력(electro-magnetic force)에게 기도하지 않는 한, 이런 신에게 기도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중력이시여, 제게 은혜를 베푸사, 당신의 위대한 힘으로 저 잣나무 위에 높이 달린 토실토실한 잣 열매를 땅으로 떨어지게 하소서’.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럼에도 이신(理神)에게 기도하는 것은, 인격신에게 기도하던 오래된 습관이 배어나온 흔적(痕迹)기도의식이다.
불교에도 이신(理神)이 있다. 무슨 말이냐고요? 불교에는 본시 신이 없는데 이신이라니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요?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불교에도 신이 존재한다. 창조신이 존재한다. 마음이다. 마음은 허공을 창조하고 우주를 창조한다: 원각경의 사상이자 청담의 사상이다. 이 마음은, 울고 웃고 분노하고 기뻐하는 신이다. (혹자는 기뻐하기만 한다고 주장하고, 혹자는 다 한다고 주장한다.) 이걸 진제, 서옹, 서암 등 한국 선불교 선사들은 참나(眞我 true atman) 또는 주인공이라고 부른다.
참나 주인공은 기독교 하나님처럼 소원을 들어주고 병을 고쳐준다. '이게 불교의 근본사상인 무아론에 위배된다'는 비판을 못 견디고, '참나는 인과법·연기법을 인격화해서 부르는 상징어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면, 참나는 이법(理法)이 된다. '나'를 없애긴 없애야 하는데 아쉬움에 차마 없애지 못해, '엉뚱한 데'(처음부터 ‘나’가 없는 자연의 이법인 연기법과 인과법)에 참나라고 이름을 붙이고 아쉬움을 달래는 것이다. 신에게서 인격을 박탈하였지만 여전히 신이라는 이름을 붙여 '이신(理神)'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술을 끊으려면 아주 끊어야지, 무(無)알코올 알코올은 또 뭔가?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는 한 아직은 (정신적으로는) 술을 못 끊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게 뭐가 됐든지 그걸 이신(理神)이나 참나라고 부르는 한, 신도 나도 극복하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연기법과 인과법은, 울고 웃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지 않는다. 벌을 주는 일도 없고 상을 주는 일도 없다. 이게 진실이다. 조금도 더하고 뺄게 없는 진실이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생명은 탄생하고 소멸한다. '나'라는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고.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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