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⑴새롭게 태어남|******@불교의생명관@

2017. 12. 10. 11:36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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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五蘊을 超越한 生命觀

佛敎와 自然科學 / 朴淳達·吳亨根·曺勇吉·金成九 共著 集文堂 1992. 8. 30

4.1 새롭게 태어남
무량수경(無量壽經) 하권에 횡초(橫超)라는 말이 있다
'횡'이란 원래 '가로'이다. 즉 퍼짐으로서의 '공간'을 말하고 이는 종(縱)에 대한 말이다. '세로'인 '종(縱)'은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불교는 이 종과 횡 두 말로 원인과 결과의 연쇄하는 두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인과(因果)의 관계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말로써 할 수밖에 없다.
'종'을 시간적인 연결로 표현하고, '횡'을 '공간적 관계'로 나타내는 것이 적합하며, 따라서 이 두 말은 인과의 연결을 나타내는 표현인 것이다.
분명히 고타마 부처님의 불교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원리에 기초를 둔 가르침이다.
즉 업인업과(業因業果)를 말한다.
여기에서의 인과관계를 오직 자기의 주체를 중심으로 '종' 즉 '시간적 연결'로서 생각하였다.
다만 여기에 동시인과(同時因果), 즉 시간의 간격 없이 결과되는 것과 이시인과(異時因果)의 구별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죄악 (즉 三毒心=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이 깊고 번뇌가 끝없이 타올라 '어떤 행에도 이르기 어려움'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 자의 서글픔과 안타까움이 있다.
'악 외에는 선이라는 이름도 없는 어둠의 자식인 중생' 자업자득의 종적인 인과의 연결에 비추어 보면 "아무리 해도 지옥밖에 갈 데가 없는 무리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같은 근기 즉 주체의 자각으로부터, 새롭게 불교 속에 열린 것이 염불왕생(念佛往生)의 길이며, 자기 해탈에 정진하는 자력성도(自力聖道)의 길이며, 미타(彌陀)의 서원에 의지하는 타력(他力)의 길이 넓게 열려 안심하고 구제자비의 큰배에 타도록 가르치고 있다.
'큰돌은 물에 뜨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큰돌도 큰배에 실음으로서 물에 뜰 수 있다.
"백척 돌도 배에 실리면 만리의 대해를 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미 자업자득의 원리가 극복되었고, 주체의 인과필연의 원칙이 절단되었고,
그 대신 이른바 회향(廻向)의 길이 새로이 크게 열린 것이다.
회향이란 되돌린다는 것, 즉 자신이 닦은 공덕을 되돌려 바라는 곳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즉 미타는 그 서원공덕을 되돌려 염불하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것이고, 중생은 번뇌가 타는 몸 그대로 미타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타고 왕생(往生)하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업자득의 원칙이 이미 극복된 것이다.

 

장사익 돌아가는 삼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