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⑵주체의 구제조건|******@불교의생명관@

2017. 12. 17. 12:57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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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主體의 救濟條件

佛敎와 自然科學 / 朴淳達·吳亨根·曺勇吉·金成九 共著 集文堂 1992. 8. 30

횡(橫)이란 초월을 의미한다.
공간개념이며 극복의 힘이다. 여래부처님의 원력을 믿기 때문에 분별이 아니며 5악취를 자연히 끊고 사상(思想)을 벗어나는 것이 횡이라고 설명되어 지고 있다.
불가사의한 서원의 작용은 바로 부처님의 자비구제인 타력인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 분수를 알고 믿고, 그리고는 부처님의 서원을 믿는 것이다.
불교의 구체적인 믿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삼보(三寶)를 믿는 것이고, 사제(四諦)와 인과의 법칙, 그리고 진여(眞如)의 법을 믿는 것이다.
이를 대승불교의 표현대로 하자면, 불성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인간 자신의 길이다.
불교란 본래 인간형성의 한 체계로서, 자기의 인간형성을 향해 자신을 가지고 매진하는 자의 길이었다.
그러나 범부중생의 구제불능의 면을 대오각성하고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지하여서 자기의 불성을 해탈시키는 것이다.
염불로써, 독경으로써, 절로써, 선정의 삼매(三昧)로써 본인 자신과 부처님의 힘과 합일(合一)시키는 것이 자기 구제의 길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타력적인 듯싶은 기도작법이나 수행(절, 염불, 독경, 선)등은 어디까지나 강력한 자력(自力)의 의식의 정화이다.
소위 업장에 뒤덮인 의식의 해탈이다.
오온(五蘊)이란 즉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다섯 개 소인(素因)의 집합으로 인간 자신을 나타내는 단 하나의 구체적 지칭이다. 
색색tort(色)이란 형체와 질량을 가지며, 변화하는 가운데 우리의 감관(感官)의 대상이 되는 시공적(時空的)인 존재, 즉 현상을 의미하고, 수(受)란 우리의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의 지각과 희노애락 등의 감정을 말하며, 상(想)이란 우리가 마음에 품는 표상
(表象). 관념. 개념 등을 말한다.
행(行)이란 우리의 행위를 야기시키는 의지의 활동을 가리키며 식(識)이란 우리의 정신작용의 근저에 있는 의식 일반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즉아(我)라는 존재는 '색'이라는 외계와 '수상행식(受想行識)'인 내계와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며 그 이외에는 독립된 아(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부처님의 오온설이다.
여기에 아의 실체는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의 회의가 일어남은 당연하다 하겠다.
불전기록 중 가장 고대에 속하는 율장건도부(建度部)<마하밧가>를 보면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법문하고 계신다.
'제자들이여, 색(色, 육체)은 아(我)가 아니다.
만약에 이 형체있는 것이 아(我)라면 우리는 형체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든가 아니면 형체는 이러저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이여, 色(육체)은 아(我)가 아니기 때문에 병에 걸리지도 않으며 형체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든가 이러저러해서는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리하여 붓다는 다시 오온 하나하나에 관하여 음미한다.
그리고 수(受)는 아(我)가 아니다. 
상(相)은 아가 아니다.
행(行)은 아가 아니다.
식(識)은 아가 아니다라는 것을 마찬가지로 증명한 뒤에 제자들과 문답을 주고받는다.
「제자들이여,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색(色)은 상주(常住)인가 무상(無常)인가?」
「세존이시여, 색은 무상입니다.」
「그렇다면 무상함은 고(苦)인가, 아니면 낙(樂)인가?」
「무상함은 고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무상하고 고이고 유위전변(有爲轉變)하는 것을 이것은 내것이다, 이것은 아(我)이다, 이것은 나의 아라고 여길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붓다는 다시 수. 상. 행. 식의 각각에 관해 제자들에게 물음을 던지고 그 어느 것도 아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 뒤에 다시 설법을 진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이여, 이 세상의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모두는 그것이 내계에 있건 외계에 있건 대소(大小). 우열(優劣). 원근(遠近)에 불구하고 내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는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예지를 가지고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한 번 이렇게 보면(인식하면) 당신들은 색을 싫어하고 수를 싫어하고 상을 싫어하고 행을 싫어하고 식도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한 번 싫어하게 되면 당신들은 탐욕을 벗어나며, 탐욕을 벗어나면 해탈에 이른다.
해탈에 이르면 「나는 해탈했다.」는 자각을 일으키고, 생멸(生滅)은 다했다.
범행(梵行)은 완성됐다.
할 일은 다했다.
다시 옛날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깨달을 것이다.
이를 들은 제자들은 집착(執着)이 없어지고 잡다한 의식의 번뇌로부터 해탈할 수가 있어 오온(五蘊)을 초월한 생명관을 터득했다고 환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오온 즉 번뇌에 휩싸인 나 자신으로부터 초월되는 생사초월이다.
그러나 여기에 생사초월관은 진정한 생명의 실상을 좀더 살펴보아야 가능하다.
다음에 결론적으로 불교의 생명관에 대한 구체적인 실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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