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이대로 산다

2017. 12. 10. 12:2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꿈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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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나이대로 산다는 말이 있다.


거기엔 나이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는
요구도 포함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연령대엔 거기에 걸맞는
생각과 생활양식이 있게 마련이다.
10대가 80대처럼 살 수도 없거니와
80대가 10대처럼 살 수도 없는 일이다.
 
삼뮤엘 울만은 '청춘'에서 이런 말을 했다.
‘70청년이 있는가 하면 30노인도 있다.’
그건 사실이지만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크게 보면  모두가 제 나이에 걸맞도록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나이많은 노인들은  또 그들대로의
연령에 걸맞는 일상을 살고 있다.

소설가 박경리씨는
운명하기 몇 달 전 이렇게 말했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다음은 노년의 박완서씨가 썼던 글이다.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사람이 나이를 많이 먹으면  노인이 되는 것이고
그 일상도 나이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사실 나이들어 좋은 점은 생각보다 더 많다.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세계가 그것이다.
노인이 되면  무엇보다 우선으로 크게 자유롭다.

자유는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기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사는 것이다.
 
법적용어로는, 법률의 범위안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행위를 의미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받게되는 구속감은
거의 모두가 어떤 조직에서 나온다.
 
작게는 가족관계,
그리고 학교와 직장, 군대는 물론
심지어는 동호인 모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이들어 노인이 되면 무소속이 된다.
보이는 조직들은 그대로 있지만
그 구속력은 크게 완화되거나 없어진다.

노인들의 진정한 자유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노인이 되지않고는 무소속이 되기 어렵다.

물론 노인들의 자유도
‘법적책임’ 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국가의 시민은
그 자유가 책임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를 방종으로 알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주 위험한 현상이기도 하다.
 
다음이 여유다.
유유자적(悠悠自適)이 그 말이다.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속세를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 대해 초연해 진다는 의미다.
여유는,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다.
 
따라서 시,공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다는 의미다.
나이에 걸맞게 사는 노인들이
조급하지 않은게 이 때문이다.

본인의 의도적인
노력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여유를 가지게되고 너그러워 진다.

모진 세월을 살아온 지혜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사람이 신중해 지고 부드러워진다.



젊어서는 가지기 어려운 미덕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성숙해 지는 것이기도 하다.
또하나 좋은 점은 간섭을 받지 않는 것이다.
간섭은 영향을 주려고 하거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참견이 바로 그것이다.
노인이 되면 간섭 받을 일은 줄어들고
간섭할 일은 많아지는 게 일반적이다.

이때 간섭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바로 노인들이 가져야 할 마음이다.
똑같이 쇠심줄같은 고집으로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노인들도 있다.

그래도 크게 보면 노인은
간섭 받는 일이 많지 않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 간섭은 금물이다.
또 내가 즐기고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
열중할 때 간섭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주변에서 간섭하는 사람이 줄어든다.
무관심해 지거나
노인 대접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간섭 받지 않고 산다는 것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조용한 환경에서 살수 있다는 것도
노인이 받는 혜택의 한가지다.

이 세상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욕심이 무?昰寬?,
재물이나 잇속을
도리나 분수에 벗어나게 탐하거나
차지하려고 하는 마음이다.

또는 제 분수에 넘치거나
제 능력에서 벗어나는 일을
이루려고 하는 마음이다.
 
따지고 보면
욕심없이 발전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크게
정도를 벗어나면 탐욕이 된다.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이 그것이다.

노추-老醜- 라는 말이 있다.
늙은이의 추한 모습이라는 뜻이다.
추하다는 것은 흉하다는 말이다.
노인이 탐욕적일 때 쓰는 말들이다.
 
그런데 정상적으로 나이를 먹었다면
그 욕심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욕심이 줄어들면 눈이 열리고
그동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값에서 가치로 안목이 옮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이나 종교의 세계를 알게 된다.
노인이 받는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차원이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집착에서 해방된다.
집착은, 어떤 것에 마음이 잡혀있어
떨치지 못하고 매달려 있는 것이다.
집착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 중에서도
고통과 깊은 관계가 있는 정서다.

일찍이 부처는 인간의 모든 고통과 번뇌가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가르쳤다.
집착의 결과가 고해-苦海-인 것이다.
그 무엇엔가 집착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이 집착에서 크게 해방될 수 있다.
그건 욕심이 줄어드는 것과도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집착을 버리면 훨씬 여유로와 진다.
유유자적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집착하지 않고 사는 일상은
그래서 행복할 수 있다.
그 어떤 것과도 경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도 붙잡히지 않는 인간이라면
이미 반 부처다.
 


사람이 나이들면 그렇게 살 수 있다.
객관적 이라는 것은 어떤것일까.
개인적 주관을 떠나
보편성을 가지는 것이다.
 
객관은, 자기의 직접적 관심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공정할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상대방의 입장이 될 수도 있다.
판단과 분별에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어떤 사람이라 해도
젊은 혈기로는 객관적이 되기 어렵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되면
마음이 열리고 눈이 밝아져 시시비비가 보인다.
그만큼 많은 경험과 체험을 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객관적 입장은
노인 특유의 지혜이기도 하다.

풍진세상을 오래동안 살아오며 겪었던
파란만장한 일들의 누적이
이런 지혜를 선물한 것이다.
 
그래서 노인들의 객관성은 믿을만 하다.
여기에 학문이 더해지면
그게 바로 금상첨화다.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죽게 돼 있다.
그런데 지금은 죽기도 어렵고
죽는 방법도 복잡하게 돼 있다.
 
그 하나의 예가
중환자실에서 주사바늘을 주렁주렁 달고
‘연명치료’ 하는 식물인간들이다. 
사실 그건 비참한 죽음이다.

사람이 나이들면
‘마감’ 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다.

그전에는 죽음은 불안이며 공포였지만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진다.
그래서 ‘진료의향서’를 작성,
통증 이외의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고,
제명대로 살다 가려는 노인도 많아졌다.
 
제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 앞에서
고종명-考終命- 하기를 원하게 된다.
또 그래야 옳다.


죽음도 인간에게는 일상의 연속이다.
이 무겁고 어려운 문제앞에서
오히려 담담해 지는게 노년이기도 하다.

그건 진정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섭리를 거역하면 안된다.
우리말로는 ‘돌아가셨다’ 고 한다.
왔던 곳으로 갔다는 의미다. 
그게 바로 종교의 영역이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없이 늙는다.
이 순리를 거스릴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이대로 산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나이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건
그 사람의 잘못이다.
 
사람은 그 나이에 따라 생각도 변한다.
성격도 완화되고 가치관도 달라진다.
욕심, 탐욕,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유유자적하게 된다.
 
그러니 사람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더 유연하게 일상을 사는
지혜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공자는 60세에 이르러

(BC 6세기에는 굉장히 오래산 나이다)

생각이 완숙해져서 무슨 말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되었다고 한다.
이순-耳順- 70은 從心 이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나이많으면 마음 따라 행동해도 어긋남이 없다했다.
 
다른 의미로는 어떤 말을 들어도
소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나이들면 역지사지로 이해의 폭이 깊어진다.
그렇게 큰 그릇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든다는것도 좋은점이 있는것이다


-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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