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털지말고 닦아라 / 우룡스님
나는 1946년에 절 집안으로 들어와서 소위 근래의 도인스님
이라는 어른들을 거의 다 모시고 살았습니다. 이 어른들을
모시고 있을 때 참으로 고약하게도 공부보다도 이분들의
끄트머리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한 석 달을
지내고 나면 이 어른들의 생활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내가 모신 어른들 중에서는 금봉(錦峰) 노스님이 가장 거룩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의 앞에서나 뒤에서의 생활이
다르다는 것은 아직 공부가 덜 되었다는 증거인데 이 어른은
일상생활에 있어 안과 밖이 없었습니다. 신도들 앞이건 스님네
앞이건, 남자 앞이건 여자 앞이건 꾸밈이라는 것이 조금도 없었
습니다.
설사 진리를 깨쳤다고 하고 도를 깨쳤다고 해도 원인과 결과,
곧 인과(因果)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면 꾸밈이 붙게 됩니다.
인과의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버린 도인이라야 안팎의 꾸밈이
없어져 버리고 '나'를 가리는 커튼이 모두 없어져, 생사일여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움직이거나 말을 할 때도 공부가 끊어지지 않고, 심지어 잠을 잘
때에도 이 공부가 끊어지지 않을 만큼 된다는 어른들까지도
인과의 테두리를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원인과 결과의 도리라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마지막에 이 몸뚱어리를 시원스럽게 벗어버리고 자신있게 새로운
몸뚱어리 덮어쓰는 법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누구나 집은
비워줘야 됩니다. 이 육신은 언젠가 벗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내가
늘 불자들에게 '예금 부지런히 해 놓으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내 자신에게도 벌써부터 '집 비워내라'는 독촉장이 살살 오고 있습
니다. 그런데 지금의 전셋집을 비워주고 다음에 지금보다도
더 좋은 집을 얻어 갈지 어떨지는 나도 자신이 없습니다. 지금은
젊다고 하시는 분들도 언젠가는 집을 비워줘야 됩니다. 다음에
들어갈 집이 지금보다 더 좋은 집이 될지 네 발로 기는 집으로
들어갈런지는 아무도 자신을 못합니다.
자신을 하려면 마지막 단계인 생사일여의 고비를 넘겨야만 됩니다.
잠자고 일어나는 속에서도 공부가 안 끊어질 만큼 몰아 붙여서,
마지막 이 몸뚱어리 벗을 때에 안 끊어지면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힘이 듭니다. 하지만 몰아 붙여 보십시오. 틀림없이
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공부 쪽을 하다 보면 생활인으로서의 책임이
빠져 버리고 반대로 생활에서의 책임을 다하다 보면 공부가 완전히
달아나버리는 두 갈래 길에서 허우적허우적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몰아 붙이면 됩니다. 생각은 한 쪽 것만 하는 것 같은데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다른 쪽이 습관적으로 됩니다. 불교 문중에
발을 들여 놓은 우리 불자들의 다음 집은 지금의 집보다 더 좋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힘이 들어도 자기가 하고 있는 공부를 몰아
붙여야 합니다. 절대로 남을 건너다보지 말고, 내 공부 내가 하십시오.
남이 내 일을 해주지 않습니다. 가슴을 쥐어 짜든 말든, 심장이
파닥파닥 뛰든 말든, 통곡을 하든 말든, 내 일은 내가 해야 합니다.
아무도 내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배고플 때에 곁의
사람이 밥을 먹는다고 내 배가 불러집니까?
내가 화장실 가고 싶을 때 대신 가 줄 사람이 있습니까? 수명이
다했을 대 이 몸뚱어리 바꾸는 일을 어느 누가 대신 해 줄 수
있습니까? 내가 뿌린 씨앗은 내가 거두어야 합니다. 좀 힘이
들더라도 부지런히 부지런히 공부를 해서, 절에 다녔다는 인연
으로 다음 집을 얻을 때에는 지금의 집보다 좋아져야 됩니다.
20여년 전 양산 내원사의 석불노전에 계셨던 노스님께서 고양이가
죽은 뒤 49재를 지내주고 난 다음에 영단 쪽의 고양이 위패를
쳐다보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복이 없어도 좋으니까 인간으로 오너라. 인간으로 오면 복을
지을 기회라도 있고 참회할 기회라도 있지만 네 발 가진 나라에
가버리고 나면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다. 복이 없어도 좋으니까
인간으로 오너라. 네 발 가진 나라로는 가지 말아라."
비록 복이 모자랄지라도 인간으로 다시 와야지, 인간의 집을
잊어버리고 네 발 가진 나라로 가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좀 더 부지런히 부지런히 업장 참회를 하건 염불을 하건
기도를 하건 봉사를 하건, 자꾸자꾸 복을 닦아야 합니다.
복을 닦지 않으면 뜻과같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남을
건너다보면 복도 닦지 못하고 내 공부도 못 합니다. 남을 믿거나
남을 의지하거나 남을 쳐다보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까이 해서 부지런히 부지런히 정진할 뿐 건너다보지
마십시오. 우리는 근기가 약하기 때문에 자꾸 건너다보게 됩니다.
자꾸 건너다보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그에따라 업을 짓게
됩니다. 늘 약은 꾀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올 한없는 복과 지혜는 영원히 멀어지고 맙니다.
아주 사소한 일 하나하나로 복을 깎아내리기도 하고 복을 쌓기도
합니다. 늘 몸{身}과 말{口}과 뜻{意}의 삼업(三業)을 조심하여
일상생활에서 복을 털지 말고 복을 닦아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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