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결론|******@불교의생명관@

2018. 1. 1. 09:32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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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結 論

佛敎와 自然科學 / 朴淳達·吳亨根·曺勇吉·金成九 共著 集文堂 1992. 8. 30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우주와 만물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 끝과 시작은 있는 것일까?
통칭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은 어떤 것인가 하는 등의 물음은 인류의 생래(生來)적 물음이며 의문사항이기도 하다.
여기에, 불교(佛敎)의 생명관(生命觀)에서는 현대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엄두도 못내던 사항들을 부처님이라는 성자의 전 가르침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부분들을 인용하여 앞에서의 물음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의문들을 풀어주고 있으며 제시하고 있어 풀지 못한 현대과학에 커다란 힌트들을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정의를 통해 또는 예시를 통해 심오하고 깊은 사상의 근원을 우리들에게 깨우치게 하고 있다.
일찍이 그 누구도 풀 수 없었던 생명(生命)의 신비에 대한 구사론과 유식론의 사상 전개는 윤회전생(輪廻轉生)하는 모든 존재(存在)의 리얼리티한 부처님의 깊은 깨우침으로 인간 사회의 모든 윤리 도덕적 선도의 역할을 견인하는 자의지(自意志)의 자연스러운 발로(發露)이다.
모든 생명은 숙명적으로 운명적으로 결정된 바도 없으며 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 적도 없고 결정될 수도 없는 것이며 그렇다고 우연적으로 나타나 결정되는 것도 아닌 존재 자체의 호(好: 좋아함)와 불호(不好: 싫어함)의 의지(意志)의 선택일 뿐이다.
이러한 의지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업(業: karma)이라고 하는 각자의 행위(行爲)의 문제이기에 우주만물과 수억 겁의 시간과 공간의 창조주(創造主)는 신이나 조물주가 아니고 인간 자신이며, 모든 존재 자체일 뿐 만들어진 것도 없고 만드는 존재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우치게 된다.
다만 모든 존재는 의식(意識)이 있어 존재하고 무의식(無意識)이면 무존재일 뿐이다.
업(業)이 식(識)으로 전환되어 윤회전생(輪廻轉生)의 주체(主體)가 되어 겁윤회(劫輪廻)를 계속할 뿐이다(緣生緣滅).
이러한 고통과 불안의 현실고(現實苦) 및 인생의 끝없는 윤회의 바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불교생명관의 정관(正觀)의 목적이다. 해탈열반(解脫涅槃).
삼세(前生, 今生, 來生)의 헤매임은 물론이거니와 현세의 헤매임의 근본 원인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또한 부처님의 목표한 바와 같다.
모든 존재는 어느 것이나 연생연멸(緣生緣滅)일 뿐이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생명관은 해탈열반의 깨달음이다.
쉽게 말하면 얽히고 얽힌 생의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서 가는 것이다.
다 풀고 나면 다만 남는 것은 청정하고 맑은 빈 공간일 뿐 거기에는 미(美). 추(醜)도
장(長). 단(短)도 없으며 순수본질이라는 순수자아와 대우주 자아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은 시(時). 공(空)을 초월한 생명관의 형성이 몸소 내면에서 용솟음쳐 올 때 우리는 대우주자아에 나의 자아가 합일(合一)되는 것이다.
좀더 쉽게 이해하기 좋은 글로 엮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앞으로 보충. 보완하기로 약속하며 많은 성원을 바라는 바이며 끝없는 생명은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닌 영원한 나의 것으로 모든 생명에 대한 가치의 재평가가 이룩되어야 하며 불교에서 왜 자비(慈悲)로서 살생(殺生)을 금하는가를 유의해야 할 것이다.

人   生 



人   生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군고. 

 출세 하기 싫은 사람 누군고.
시기 질투 없는 사람 누군고. 

 흉 허물 없는 사람 어디 있겠소.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 말고
못 배웠다 주눅 들지 마소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 외다.

 

 

가진 것 많다 유세 떨지 말고,

건강 하다 큰소리 치지 말고
명예 얻었다 목에 힘 주지 마소

 세상엔 영원한 것은 없 더 이다.

잠시 잠깐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고 편 가르지 말고,
얼기 설기 어우러져 살다 나 가세. 
 

다 바람같은 거라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 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 바람이고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

일 뿐이오.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돈 다오.
다 바람이라오.
버릴 것은 버려야지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 하리요.

줄게 있으면 줘야지 가지고 있으면 뭐하겠소.
내 것도 아닌데......
삶도 내 것이라고 하지마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뿐인데 묶어 둔다고
그냥 있겠오. 흐르는 세월 붙잡는 다고 아니 가겠소.

 

 

그저 부질없는 욕심일 뿐.
삶에 억눌려 허리 한 번 못피고 인생 계급장 이마에 붙이고 뭐그리

잘 났다고
남의 것 탐내시오.

 

훤한 대낮이 있으면 까만 밤 하늘도 있지 않소.
낮과 밤이 바뀐다고 뭐 다른게 있소.
살다보면 기쁜일도 슬픈일도 있다만은
잠시 대역 연기 하는 것일 뿐,

 

 

 

슬픈 표정 짓는다 하여 뭐 달라지는게 있오.
기쁜 표정 짓는다 하여 모든게 기쁜 것만은 아니오
내 인생 뭐 별거랍니까......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고 불다 보면 멈추기도 하지 않소,

 

그렇게 사는 겁니다.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 남이오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서산대사께서 입적하기직전 읊은 해탈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