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 스님의 전심법요 46. 걱정을 만드는 자 누구인가? <끝>

2018. 1. 1. 10:3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전심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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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 스님의 전심법요 46. 걱정을 만드는 자 누구인가? <끝>

자신의 분별하는 생각이 망상과 번뇌로서 고통과 고뇌를 만든다


원문:

배휴가 물었다.

“만약 무심(無心), 무분별심(無分別心)이라면, 이 도(道)를 실행해서 얻을 수 있는 겁니까?”

선사가 답했다.

“무심(無心)이 곧 도(道)를 실행하는 것이다.

다시 무엇을 더 얻고, 얻지 못한다고 분별하는가?

다만 잠깐이라도 일념(一念)을 일으키면 문득 경계에 끌려간다.

만약 일념(一念)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곧 경계도 사라진다.

망심(妄心)이 스스로 사라지면, 다시 쫓아서 구할 필요가 없다.”

배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삼계(三界 ; 욕계 색계 무색계)를 벗어나는 것입니까?”

선사가 답했다.

“선과 악이라는 분별을 모두 사량(思量)하지 않는 것이 삼계(三界)를 벗어나는 것이다.

석가모니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신 것은 삼계(三界)를 깨부수기 위함이다.

만약 이 세상 모든 것에 일체의 마음이 없다면 삼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 자체도 망상이자 번뇌

삼계는 물리적인 구분 아니고 삼계 머묾은 윤회존재 나눈 것

본래성품 활용해 분별하는 생각 망상 번뇌 여의어야


해설:

첫 번째 배휴와 황벽선사의 문답 주제가 무심(無心), 무분별심(無分別心)이다.

황벽선사는 청정심(淸淨心), 청정법신(淸淨法身)에 바탕을 두고 무심(無心),

무분별심(無分別心)을 강조하고 있다.

송대의 자각 종색은 ‘좌선의’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생각이 일어나면 바로 자각(自覺)하라,

깨달으면 그 모든 생각들의 실체가 없어진다[念起卽覺 覺之卽無].”

선사들은 ‘분별을 하는 생각’ 그 자체도 망상(妄想), 즉 번뇌(煩惱)라고 하였다.

잠깐이라도 생각은 대상 경계를 통해 밖에서 들어오는 것보다 자신이 만들어낸다. 


그래서 생각이 일어나는 그 순간을 알아채어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생각들의 실체는 사라진다. 법문하는 도중에 간혹 이런 말을 한다.

‘인간은 자기 생각으로 고통과 고뇌를 지어낸다.’,

즉 자기 마음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만든 실체가 없는 또 다른 생각으로

고통의 늪에서 허덕인다. 또 생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 발 더 나아가 패배의식·좌절감·열등감·두려움 등의 생각으로 고통을 더 가중시킨다.

그러니 선사들이 언급한 ‘그 한 생각(一念)이 망념(妄念) 망상(妄想 번뇌(煩惱;)’라고

단정하신 말이 맞는 말씀이다.     


영국의 한 의과대학의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인간이 웃음을 잃어가는 것은 쓸데없는 걱정,

즉 일념(一念), 망상, 망념 번뇌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한 연구기관을 통해서 조사한 연구내용을 밝혔다.

사람들이 하는 걱정 중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未來)의 사건에 대한 걱정이 40%,

이미 일어난 지나간 과거 사건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닌 작은 일에 대한 걱정으로 22%,

사람이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 4%이다.

결국 분별을 하는 생각들의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사실이다.

고대 로마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사람은 사물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해 분별을 하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했듯이

자신의 분별하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스스로 고통과 고뇌를 스스로 만들어는 것이다. 


원문에서 ‘삼계를 깨부수기 위함이다. 만약 일체의 마음이 없다면…’ 이하를 보자.

삼계란 욕계·색계·무색계이며, 더 세분해 나눠서 ‘25有’라고 한다.

이 삼계는 물리적으로 나눈 세계가 아니다. 여러 의미가 있는데,

삼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생과 사라는 분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윤회하는 존재를 나눈 세계이다. 


첫째로 과거 전생에 선업의 결과로 인해 태어나는 중생의 각 세계를 뜻한다.

둘째로 현재 수행할 때 선정 상태에 따라 머무는 경지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화엄경’에서 “삼계(三界)는 다만 탐욕(貪欲)으로부터 생기나니

12인연(因緣)이 마음 가운데 있는 줄 알라.

이와 같이 생과 사도 마음에서 일으킨 분별을 하는 생각, 망상 번뇌일 뿐이니

그 마음을 멸한다면 생사조차도 없다”고 하였다.

곧 삼계유심(三界唯心)이요,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는 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다.

이렇게 공간적(空間的)으로 머무는 세계는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지옥세계도 만들고, 극락세계도 만드는 것임을 시사한다. 


총무원장 설정 스님께서도 2017년 12월 18일[음 10월1일] 봉은사 법문에서

자신의 마음을 강조하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은 바깥을 향해서 바깥에서 뭐든지 찾으려고 합니다.

나의 행복과 즐거움, 편안함, 보람을, 바깥을 향하고 밖에서만 찾으려고 하는데

석가모니부처님은 바깥을 향하고 바깥에서 행복, 즐거움, 편안함,

보람을 찾으려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고통의 해답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존재합니다.

 눈과 귀로 보고 듣는 데에만 빠지지 말고 자신의 내부를 관찰해 육근

[六根 :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을 다스리는 데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무념(無念), 무심(無心), 무분별심(無分別心)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황벽의 ‘전심법요’는 조사선에 입각한 사상이다.

조사선 사상은 본래성품에 입각한 진리를 강조한다.

본래성품을 활용해 현 삶에서 분별을 하는 생각 망상 번뇌를 여의고,

행복 찾는 길을 모색해보자. 법보신문 독자님, 참 좋은 인연이었습니다.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