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에서 올라오는 생각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문득 바라보고는 어이없이 헛웃음을 지을 때가 있다. 생각이란 정말이지 끈질기고 지치지 않으며 하염없이 솟아오른다. 우리 안에서는 하루에 수천에서 많게는 2~3만 개 정도의 생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생각의 홍수 속에 파묻혀 길을 잃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 좀 하고 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생각이 많으면 안되니까 생각을 없애라고 말한다. 그러나 생각을 많이 하면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기 쉽고, 생각을 없애려고 하면 생각을 대상으로 한바탕 싸움을 치러야 한다.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생각을 잘 다루는 방법이라 보기 어렵다.
지눌스님의 말씀처럼 ‘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만 그 망상을 관찰’하는데 그 해답이 있다. 하루에, 매 순간순간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무의미한 생각들을 가만히 지켜보라. 그 생각들에 붙잡혀 우리 마음은 즐거웠다 괴로웠다, 우울했다 들떴다가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 생각들은 전혀 실체 없이 밑도 끝도 없이 마구잡이로 뿜어 올라오는 것들일 뿐이다.
마음을 지켜보라. 생각을 지켜보라. 그리고 감정을 지켜보라. 하루 중 우리 감정은 끊임없이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들떴다가 가라앉았다가. 그러나 그 감정의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건 생각에 에너지를 실어 주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도록 내버려 뒀기 때문에, 그 생각이 공연한 감정의 진동을 가져온 것일 뿐이다.
생각을 하지 말라. 생각을 놓아버리라. 생각에 에너지를 보태지 말라. 그러나 생각은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끊임없이 올라온다. 없애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끊어버리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생각은 더 계속해서 지속된다. 그러니 생각을 끊어 없애려 하지 말고, 다만 지켜보기만 하라.
어떤 생각이 올라오는지, 그래서 나를 어떤 상황으로 몰아가는지, 내 감정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내가 그 생각에 얼마나 휘둘리는지를 있는 그대로 잘 지켜보기만 하라. 내가 얼마나 생각에 휘둘리며, 이리로 저리로 줏대없이 끄달리고 살아왔는지를 분명히 보게 되는 순간,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전 생애를 살아왔다. 지금까지의 삶을 그렇게 허우적대며 살아왔다.
하루 중 내 마음에 내 감정에 내 느낌에 어떤 변화가 생겨났다면 바로 그 때가 내 안에 어떤 생각들이 일어났으며, 어떤 생각들에 힘을 보태줌으로써 그 생각이 활개를 치도록 만들었는가를 지켜보아야 할 아주 중요한 순간이 된다. 평상심, 고요한 파장이 급격히 진동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지켜보라. 평범했다가, 바로 그 평상심이 무너지고, 감정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는 바로 그 순간을 지켜보라. 내 삶은 내 스스로 지킬 수 있다. 외부에, 생각에 이리 저리 휘둘려 노예처럼 이끌리는 삶을 청산할 수 있다. 그 힘이 내 안에 있다. 지켜봄 안에 있다.
수행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지 말라. 다만 일어나는 생각을 지켜보라. 생각을 지켜보다 보면, 생각이 놓여진다. 무심(無心)의 순간이 깃든다. 무심이 되면, 미래도 없고 과거도 사라진다. 들뜨는 것도 가라앉는 것도 놓여진다. 행복하거나 불행한 것도 놓여진다.
오직 지금 이 순간, 평범하고도 평이하고, 평화로운 그냥 지금 이 순간을 가볍게 살아가게 된다. 전혀 무겁지 않게, 전혀 심각하지 않게, 전혀 앞일을 걱정하지 않고서도, 그냥 그냥 아주 평화롭게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그냥 저냥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 비로소 여여한 여법한 삶이 시작된다.
운학사 주지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