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지 마라 / 숭산스님

2018. 3. 4. 11:3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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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하지 마라 / 숭산스님 


선 수행은
머릿속으로만 이해하는
개념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
학위를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선 수행은 지식이나 명석함과는 다르다.

선 수행은
직접적으로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고
우리의 본성품을 깨닫는 것이다.

선이
말이나 단어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하니
때로는 ‘반지성적’(anti-intellectual)이라고 꼬집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선이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不立文字)고 해서
말이나 단어를 아예 사용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말과 단어 이전에
먼저 ‘마음 공부’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말과 단어를
어떻게 우리의 수행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쓰느냐 하는 것이다.
즉, 어떻게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데 쓰느냐 하는 것이다.

생각이 일어나기 전
우리의 본성품을 먼저 깨달은 후에야
말과 단어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
공부를 해나가는 데에는 네 가지 방법, 즉 문(門)이 있다.
첫째는 간경문(看經門)으로
경전을 읽으면서 마음을 깨달아 가는 것,
둘째는 염불문(念佛門)으로
염불을 통해 마음을 깨달아 가는 것,
셋째는 진언문(眞言門)으로
진언을 외워 마음을 깨달아 가는 것,
넷째는 참선문(參禪門)으로
참선을 통해 마음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물론 참선이 마음공부의 지름길이긴 하지만
경전을 읽고 진언을 외우고 하는 것 모두
진리를 깨닫는 데 도움이 된다.
단지 문자에 집착하면
경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글을 보는 것이 되고
염불에 집착하면 소리와 이름, 모양에 집착하게 된다.
진언이나 참선 모두 마찬가지이다.

참선을 할 때도
참선에 집착하면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본성품을 깨닫는 것이다.

나라마다, 문화마다 먹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배가 부르냐 하는 것이다.
마치 달을 보려 하는 사람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착해
달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떤 것에도 집착해선 안 된다.

보리수나무 아래서 본성을 깨달은 부처님은
그 후에 많은 설법을 하셨다.
이 설법을 기록한 경전을
생각 이전의 마음으로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고 따지고 집착하고 원하면
경전은 곧바로 우리를 지옥으로 인도할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직 ‘수행 정진’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관념, 신념, 철학 모든 것을 벗어 내려놓아라.
심지어 부처조차도 내려놓아라.
경전에 나와 있는 말에 집착하는 것이
가장 나쁜 ‘불교병’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거울처럼 맑은 마음을 지니고
순간순간 오직 중생을 도울 뿐이다.
경전을 읽되 한 단어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

오직 수행, 수행하라.
오직 모를 뿐!
수행에는 방향과 물음이 중요하다.
진정한 선(禪)이란
몸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앉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특별한 자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일본 선방에서는
앉은 자세에서 나오는
어떤 강렬한 에너지를 얻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때는 고함을 지르게 하기도 한다.
고함소리가 약하면 수행이 약하다고 다그친다.

그런 방법은
참선에 대한 어떤 관념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참선이 아니다.
무엇이든 집착하면 문제가 생긴다.
참선은 그야말로 긴장을 푸는 것이다.
참선을 특별하게 만들지 말라.
참선 수행을 특별하게 만들면
마음에 장애를 만든다.

부처님은 살아 계실 때
오로지 법에 대해서만 말씀하셨다.
경전을 가르치지도,
특별한 진언을 가르치지도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그저 법을 듣고 집에 돌아가서 참선을 했다.
나무나 큰 바위 위에 걸터앉아 했다.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안으로 깊이깊이 들어가
자기의 본성품을 찾는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과 그의 첫 번째 제자들이
가르침을 얻어 보존하고
우리에게 전해 준 것들이다.

만약 불교 수행을 하고 싶다면
어떤 말이나 단어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어떤 기술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의 문으로 들어서는
첫 번째 단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