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처(12處)의 구조와 의미

2018. 4. 14. 21:5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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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처(12處)의 구조와 의미

인식주관과 인식대상의 연기적인 관계가 이 세상


일반적으로 철학을 공부하거나 종교를 접하게 되면 가장 먼저 배우거나

듣게 되는 것이 이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혹은 과연 누가 이 세상과 인간 등을 창조했는가? 라는 문제일 것이다.


일체를 신에게 귀속시키거나 요소의 집합으로 보는 시각 배격

여섯 감각과 여섯 경계가 서로 상응하며 마음과 인식이 생겨남을 역설


2500년 전 인도에서 붓다가 활동했던 그 당시에도 이러한 철학적?종교적 문제들은

많은 자유사상가나 출가사문들의 주요한 관심사였다.

하지만 초기불교에서 붓다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문제에 대해서는 대답을

거부하거나 침묵을 지키는 태도를 취하는데, 이같은 태도를 무기(無記)라고 한다.

이때 형이상학적 문제란 본질적으로 수행이나 깨달음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질문들을 의미한다.


사실 붓다는 세계와 인간의 길흉화복 등의 문제에 관해서는 매우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입장에서 교설을 펼치게 된다.

붓다 생존 그 당시에 생문이라는 바라문이 붓다를 찾아와 세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주고받은 문답은 초기불교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생문이라는 바라문이 붓다에게 질문하기를, “일체(一切)란 무엇을 말합니까?”

붓다가 대답하시길, “일체란 12처(處, ?yatana)에 포섭되는 것이니,

눈(眼)과 형색(色), 귀(耳)와 소리(聲), 코(鼻)와 냄새(香), 혀(舌)와 맛(味), 몸(身)과

촉감(觸), 마음(意)과 심리현상(法)이다.

12처 이것을 일체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12처 그것은 일체가 아니다.

나는 사문 구담(붓다)이 말하는 일체를 버리고 다른 일체를 확립하겠다.’ 라고

말을 한다면 그것은 단지 말일 뿐, 일체를 알려고 해도 알지 못하고 의혹만 더할 것이다. 왜냐하면 12처인 일체 그것은 인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잡아함경』제13권)


여기서 우선 일체(一切, sarvam)란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간이나 세계(loka)를

포함한 우주 전체를 의미한다.

붓다가 활동했던 그 당시에는 우주의 창조와 인간의 길흉화복의 문제를

초월적인 브라만에 귀속시키는 제식주의적인 바라문교를 비롯하여,

세계를 4대(지?수?화?풍) 혹은 7원소(4대와, 苦?樂?영혼) 등의 여러 요소들의

적취설로 보는 등 외도(外道)들의 다양한 사상들이 풍미했던 시대였다.


이러한 세계와 관련하여 붓다는 일체(一切)란 인간의 인식활동과 인식활동의

경계의 연기적 관계에 의해 12처에 포섭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12처는 구조적으로 인식주관과 인식대상의 두 계열이 한 쌍을 이룬다.

 ‘6내처(六內處)’ 즉 ‘6근(六根, indriya)’은 ‘인식주관’을, ‘6외처(六外處)’

즉 ‘6경(六境, vi?aya)’은 6감관에 따른 각각의 경계로서 ‘인식의 대상’을 말한다.

이는 인식과 존재의 문제가 표리일체(表裏一體)의 관계로 결합된 초기불교의

세계관을 나타낸다.

요컨대 초기불교에서 ‘일체(一切)란 12처(十二處)이다.’ 라는 말은 일체(一切)

혹은 세계(世界)란 인간의 인식주관과 인식대상의 연기적 상응관계에 의해서

 세계가 비로소 의미 있게 파악 인식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또한 12처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처(處, ?yatan?)’의 의미이다.

이 처(處)를 아비달마적으로 분석하면, 산스크리트 ‘?yatan?’는 ‘마음이

생겨나고 생장(生長)하는 문(門)’의 의미로 해석된다.

간혹 ‘6처가 일체이다.’ 라는 표현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아직 마음이

활동하지 않거나 명상 등을 통해 마음이 안정된 상황을 지칭하는 것으로도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6처나 12처는 의근(意根) 즉 마음이 주동이 되어 ‘5감관’ 혹은

‘5문’을 쫓아 외부대상(5境界)과 만나는 그 역동적 관계나 나아가 18계에서

인식이 생겨나는 토대가 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같이 12처는 붓다가 세계를 브라만 등의 어떤 초월적인 신이나 4대나

 7원소 등의 환원론적인 요소들의 적취설 등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주관과 인식경계의 그 역동적인 상응관계를 통해 연기적 세계의

일환으로 설명한 교설이다.

결국 12처는 초기불교의 존재론이나 세계관을 대표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특히 6처와 12처가 마음이 생겨나고 인식이 생겨나는 역동적인 과정을

보여주는 점에서 붓다의 그 실천적이고 실용주의적 태도를 엿보게 한다.


김재권 동국대 연구교수 marineco4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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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는것보다 더욱 힘든 일은 버릴줄 아는것이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않는것이며, 성공했다고 지나친 기쁨에 도취되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한번 속았을 땐 그 사람을 탓하라. 그러나 그사람에게 두번 속았거든 자신을 탓하라. 어진부인은 남편을 귀하게 만들고, 악한 부인은 남편을 천하게 만든다. 건강은 행복의 어머니이다. 인생은 바느질과 같아야 한다. 한바늘 한바늘씩! 입은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끼이고 말은 혀를 베는 칼이다. 그러므로 입을 막고 혀를 깊이 감추면 몸이 어느곳에 있어도 편안할 것이다. 우리는 일년 후면 다 잊어버릴 슬픔을 간직 하느라고,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버리고 있다. 소심하게 굴기에는 인생은 너무나 짧다. 생각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생기는 법이다. 천국과 지옥은 천상이나 지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 속에 있는 것이다. 세상은 약하지만 강한 것을 두렵게 하는것이 있다. 첫째, 모기는 사자에게 두려움을 준다. 둘째, 거머리는 물소에게 두려움을 준다. 세째, 파리는 전갈에게 두려움을 준다. 넷째, 거미는 매에게 두려움을 준다. 아무리 크고 힘이 강하더라도 반드시 무서운 존재라고는 할수없다. 매우 힘이 약하더라도 어떤 조건만 갖추어져 있다면 강한 것을 이길수가 있는 것이다. 서툰의사는 한번에 한사람을 해치지만 서툰 교사는 한번에 수많은 사람들을 해친다. 쓰고있는 열쇠는 항상 빛난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다. 사랑을 받는것은 행복이 아니다.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다. 재능이란 자기자신을 믿는것이고 자기의 힘을 믿는것이다. 비교는 친구를 적으로 만든다. 자식에게 물고기를 잡아 먹이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라. 얻는것보다 더욱 힘든 일은 버릴줄 아는것이다. 영원히 지닐수 없는 것에 마음을 붙이고 사는 것은 불행이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 하느냐에 좌우된다. 햇빛은 하나의 초점에 모아질 때만 불꽃을 피우는 법이다. 실패는 고통스럽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을 깨닫는 것은 몇배 더 고통스럽다. 훌륭한 인간의 두드러진 특징은 쓰라린 환경을 이겼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