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맡김 그리고 받아들임 / 몽지님

2018. 4. 29. 20:3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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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맡김 그리고 받아들임 / 몽지님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도록 하라.”
예수께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셔서 얼굴을 땅에 파묻고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할 수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둬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마태복음, 26:39~40)

삶의 어느 순간 불현듯 괴로움이 경험됩니다.

그 순간 ‘나는 괴롭다’라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얼마 후 이번엔 우울함이 경험됩니다.

그것을 ‘나는 우울하다’라고 판단합니다.

예상치 못한 여러 사건들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본능적으로 ‘나는 불안하다’,

‘나는 두렵다’라는 분별이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그러나 ‘나’는 ‘괴로움’이 아닙니다. ‘나’는 ‘우울함’이 아닙니다.

‘나’는 ‘불안함’이 아니며, ‘두려움’ 또한 아닙니다.

진정한 ‘나’는 그러한 느낌, 감정, 생각들이 일어나는 바탕이자

그러한 느낌, 감정, 생각들에 대한 자각 자체입니다.

참된 ‘나’는 없는 채로 있는 것입니다. 없기 때문에 진실로 있는 것입니다.

‘괴로움’, ‘우울함’, ‘불안함’과 ‘두려움’이 오고 가는 그 순간에도

언제나 늘 변함없이 그 배경으로 있는 것이 참된 ‘나’입니다.

‘나’는 그 모든 것의 유일무이한 목격자, 그 모든 것의 근원이자 귀결점입니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 발생하여 ‘나’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지금 여기 그대로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아득한 나락에 빠져 더 이상 헤어

나올 수 없을 때조차 진정한 ‘나’는 그 순간에도 스스로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한시도 ‘나’를 떠나 있지 않습니다.

특정한 느낌과 감정, 생각과 동일시되어 매몰되어 있을 때도 참된 ‘나’는

그 모든 상황을 완전한 침묵 속에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없는 ‘나’ 대신에, 없는 듯하지만 분명 있는 진정한

‘나’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십시오. 작은 ‘나’의 의지와 욕망, 분별을 좇지 말고

바로 지금 여기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스스로 분리시킨 작은 ‘나’를 유지, 보호하기 위한 수고와 갈등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 자신의 평안 속에서 쉬십시오.

‘나’는 그냥 ‘나’인 ‘나’, 스스로 있는 자, ‘나’라고 하는 자입니다.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에 그어놓은 허상의 경계선을 지우십시오.

‘나’를 ‘나 아닌 것’에 여는 것, 그것이 내맡김이자 받아들임이며 진정한

의미의 합일, 하나 됨입니다. 그 때 비로소 본래부터 있는 존재, 순수한 의식,

영원한 생명, 근원적인 평화가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