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9. 15:05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1. 나는 수행자입니다.
2. 나는 언제나 밝은 마음입니다.
3. 나는 매일 108배를 합니다.
4. 나는 매일 기도와 수행의 시간을 가집니다.
5. 나는 일체 모든 경계를 대긍정으로 받아들입니다.
6. 나는 하루 한 가지 이상 보시를 실천합니다.
7. 나는 매 순간 집착을 놓는 공부 '방하착'으로 생활화두를 삼습니다.
8. 나는 판단하지 않고 다만 관찰합니다.
9. 나는 적게 생각하고 많이 행동합니다.
10. 나는 언제나 상대를 부처님으로 바라봅니다.
11. 나는 '관세음보살'염불로 마음공양을 올립니다.
12. 나는 일체 모든 일을 '내 일'로 붙잡지 않고 '부처님 일'로 다 맡기고 삽니다.
13. 나는 생활 속의 모든 경계를 수행의 재료로 밝게 돌려 나갑니다.
14. 나는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15. 나는 상대를 탓하지 않고 다만 나 자신을 바라봅니다.
16. 나는 조금 불편하고 부족하게 삽니다.
17. 나는 적게 말하고 많이 듣습니다.
18. 나는 홀로 고요히 숲 길을 걷는 시간을 가집니다.
19. 나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음식을 때에 맞춰 조금씩 천천히 먹습니다.
20. 나는 '누구'처럼 살려고 애쓰기 보다는 '나 자신'의 길을 나답게 살아갑니다.
21. 나는 경전, 불서, 법문, 강의, 선지식 등 지혜의 가르침들을 항상 가까이 합니다.
생활수행문이란 생활 속에서 중심을 놓치지 않고 오롯하게 마음을 닦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생활수행에 지침이 될 만 한 조항들을 가려 뽑아 놓은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많은 분들께서 불교를 공부하고, 책을 읽고, 스님들 법문을 들으면 참 좋고, 행복하고, 환희심이 나는데, 그것도 며칠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일상의 마음으로 돌아와 화도 내고, 욕심과 집착을 일으키면서 어둡게 살아가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법문을 들을 때의 그 기쁘고 행복한 마음을 항상 유지할 수 없을까 하여 문의를 해 오셨고, 하나 하나 오래 전부터 적어 오면서 몇 번의 수정과 보완을 거쳐 이렇게 21가지로 엮어 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 또한 공부를 하면서 또 생활 속에서 신도님들과, 많은 사람들과, 온갖 일들과 경계와 부딪치면서 자주 자주 평상심에서 벗어나는 마음을 보고는 이 마음을 잘 단속하고 항복받을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해 오다가 하나 하나 머리맡에 적어 오면서 틈날 때마다 읽기를 반복하면서 이렇게 21가지로 정리가 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21가지는 불교 공부하는 수행자에게 있어, 특히 생활 속에서 일과 수행을 함께 해 나가시는 신도님들에게 있어, 가까이 두고 읽으며 실천하시면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간단히 하나 하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나는 수행자입니다.
저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나는 수행자입니다'라는 이 다짐이 저를 항상 경책합니다. 수행자라는 자기중심이 딱 서 있으면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서도 수행자다운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며, 자칫 초심을 잃거나, 욕심이 생기거나, 달콤한 유혹이 생기더라도, 그러한 경계 앞에서 '수행자'라는 세 글자를 떠올리곤 하는 것입니다. 꼭 스님이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서 지혜로운 삶을 추구하시는 모든 분들은 마땅히 자신이 '수행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2. 나는 언제나 밝은 마음입니다.
환하게 웃는 밝은 마음은 수행자의 일상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환하게 웃는 미소가 수행자를 아름답게 합니다. 환하게 웃는 밝은 마음을 가진 수행자는 웃어서 내가 즐겁고 상대방에게 저절로 행복을 안겨 줍니다. 밝은마음은 괴로움과 상반되는 밝은 마음이 아닌 괴롭고 즐겁고를 다 녹일 수 있는 밝은 미소로 일상이 여여한 수행자를 말합니다. 세상 그 어떤 일이라도 고정된 ‘괴로움’이 없는 줄 알아 그 어떤 괴로운 경계라도 한바탕 환한 웃음으로 훌훌 털어 버릴 수 있는 가슴이 넓은 수행자의 밝은 마음을 이르는 것입니다. 즐거울 때 웃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괴로울 때나 우울할 때, 그 어떤 역경계에서라도 미소를 잃지 않을 수 있는 밝은 마음은 수행자가 가야할 길입니다.
3. 나는 매일 108배를 합니다.
절 수행은 모든 수행의 바탕이 됩니다. 절은 몸과 마음을 맑고 청안하게 해 줍니다. 절 수행은 모든 요가 동작의 핵심을 총 망라한 것이라고 할 만큼 절을 하면 온 몸의 모든 관절이 이완을 하고 깨어납니다. 또한 절에 맞춰 호흡을 비춰보고, 몸과 마음을 비추어 볼 때 절 수행은 그대로 참선이 되고 명상이 됩니다. 절 수행이야말로 몸 건강과 마음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수행의 든든한 기초입니다.
4. 나는 매일 기도와 수행의 시간을 가집니다.
내가 이 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하고 온전한 시간이 바로 기도와 명상, 수행의 시간입니다. 이 세상에 기도와 수행의 시간처럼
자기 내면과 또 온 우주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또 있을까요? 될 수 있다면 내가 평생 죽을 때까지라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키겠다고 다짐할 기도와 수행의 방편을 정하시기 바랍니다. 좌선, 염불, 독경, 진언, 사경, 절, 위빠싸나 그 어떤 것도 좋습니다. 이것만은 내가 매일같이 내 공부로써 닦아가겠다고 서원을 세워보시기 바랍니다.
5. 나는 일체 모든 경계를 대긍정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경계도 좋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다만 내 안에서 좋다고 나쁘다고 판단하고 분별하는 것일 뿐입니다. 일체 모든 경계는 크게 보았을 때, 부처님의 눈으로 보았을 때 긍정 아닌 것이 없고, 진리 아닌 것이 없습니다. 당장에 괴로운 듯 보이는 경계 또한 진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이 나를 돕기 위한 부처님의 자비스러운 배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체 모든 경계를 크게 긍정하면 내 마음에 긍정이 씨앗처럼 자라나 결국에는 내 삶이 전체적으로 긍정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6. 나는 하루 한 가지 이상 보시를 실천합니다.
베푸세요. 물질로든 마음으로든 아니면 작은 미소로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베푸시기 바랍니다. 베푸는 것처럼 나와 이 세상을 동시에 밝게 하며 풍요롭게 하는 것은 없지 싶습니다. 베푸는 것은 내 것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한하게 증대되어 나도 남도 더욱 풍요로워 지는 것입니다. 베푸는 보시의 법칙은 우리가 알고 있는 수치적인 수학의 법칙과는 다릅니다. 베풀면 베풀수록 내 것도 더욱 늘어나고 상대의 것도 더욱 늘어나게 되는 경이로운 법칙이 바로 보시의 가르침입니다. 투자가 부자의 원칙이 아니라 보시야말로 부자가 되는 진짜 원칙입니다.
7. 나는 매 순간 집착을 놓는 공부 '방하착'으로 생활화두를 삼습니다.
방하착(放下着)이란 집착을 놓아버리는 공부를 말합니다. 이 세상의 괴로움의 원인은 거의 대부분 집착에 있습니다. 집착을 버리면 삶은 더욱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흐릅니다. 내 삶의 어떤 문제가 생겼다면 그것은 세상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나에게 그 어떤 집착이 생겨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 순간 순간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를 관찰하고 놓는 연습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매 순간 방하착을 화두처럼 들고 살면 우리 삶은 저절로 진리의 흐름을 타게 됩니다.
8. 나는 판단하지 않고 다만 관찰합니다.
판단하지 마세요. 시비나 분별을 모두 버리시기 바랍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다고요? 그것은 내 삶에 어떤 좋거나 나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중립적인 어떤 사건에 내 스스로 좋다거나 나쁘다고 판단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일도, 사람도, 사건도 모두 중립입니다. 본래부터 좋거나 나쁘거나, 옳거나 그른 것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 생각과 판단이 그것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것일 뿐입니다. 판단과 분별을 버리고 다만 바라보기만 하면 우리의 삶에 경이로운 평화가 찾아옵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아마도 유일하고도 분명한 방법이 바로 '다만 바라보는 것'일 것입니다. 판단과 시비 분별을 모두 놓아버리고 다만 지켜보고 관찰하시기 바랍니다.
9. 나는 적게 생각하고 많이 행동합니다.
생각이 많으면 항상 행동은 위축됩니다. 첫 생각은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오는 것이기 쉽지만, 그 생각에 또 다른 수많은 생각이 개입되기 시작하면 그 생각들은 언제나 아상, 아집에 물들어 이기적인 생각으로 바뀌곤 합니다. 첫 생각의 소중한 영감을 믿고 저질러 보시기 바랍니다. 생각이 많으면 행동이 적어지지만 바로 바로 저지르면 삶이 곧바로 체험되어지고 그 체험 속에서 삶도 공부도 깊어져 갈 것입니다. 계산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조언을 듣는 것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것 보다는 내 안 깊은 곳에서 언제나 샘솟고 있는 본연의 자연스런 지혜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10. 나는 언제나 상대를 부처님으로 바라봅니다.
나와 상대의 본질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와 남, 사람과 자연, 정신과 물질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둘로 나누는 것들의 뿌리는 결국 언제나 전체로써의 하나로 귀일됩니다. 그 하나로 돌아가는 그 뿌리를 부처님, 하느님, 불성, 본성, 영성, 신성 그 무엇으로 불러도 좋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이름 짓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 의지하여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결국 일체 모든 대상은 사람이든 물질이든 자연이든 사건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 부처님 그 자체인 것입니다. 남편 부처님, 아이 부처님, 친구 부처님, 이웃 부처님을 마땅히 부처님으로 모시도록 합시다.
11. 나는 '관세음보살' 염불로 마음공양을 올립니다.
염불처럼 쉽게 언제 어디서든 행할 수 있는 수행방법이 있을까요? 마음에서 욱하고 올라오는 화든, 욕심이든, 집착이든, 괴로운 그 무슨 일이든 그것이 올라옴과 동시에 그 마음을 관찰하고 지켜보세요. 관하기 어렵다면 그 욱하고 올라오는 마음을 향해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괴로운 일, 분한 일, 성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당장에 대응을 하려 하지 말고, 우선 그 마음에 대고 관세음보살 염불을 10분이든, 30분이든, 1시간이든 하고 나서 그 다음에 대응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렇게 염불하고 난 뒤에 대응을 하게 되면 더욱 지혜롭고 객관적이며 진리의 방식대로 사건을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겨날 것입니다.
12. 나는 일체 모든 일을 '내 일'로 붙잡지 않고 '부처님 일'로 다 맡기고 삽니다.
'내 일'이라고 붙잡고 사니 내가 잘 해야 하고, 내가 돈도 벌어야 하고, 내가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등의 아상이 붙게 됩니다.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은 일체 모든 것은 비실체적인 무아(無我)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실체가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나'를 내세우려 하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일체 모든 일을 내 일이라 생각지 말고 부처님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부처님이 잘 알아서 하시리라고 굳게 믿고 맡기시기 바랍니다. 잘 되는 것도 내가 잘 되는 것이 아니니 우쭐할 것도 없고, 잘 안 되는 것이라도 내가 잘 안 되는 것이 아니니 괴롭거나 열등감을 느낄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진리의 일이요, 법신부처님의 일이니 괴롭거나 즐거울 '나'가 없습니다. 부처님 일이라고 믿고 맡기는 자유롭고 평안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13. 나는 생활 속의 모든 경계를 수행의 재료로 밝게 돌려 나갑니다.
생활 속에서 만나는 모든 경계, 사건, 인연들은 모두가 수행의 재료입니다. 우리 삶의 공부재료요, 나를 성숙토록 이끄는 지혜로운 자비의 손길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그 모든 것은 내 수행을 위해, 삶의 공부를 위해 진리의 법계에서 보내 준 감사한 수행의 파트너요 도반일 뿐입니다. 좋은 일이라고 너무 집착해 붙잡지도 말고, 나쁜 일이라고 너무 미워해 버리려 애쓰지도 말고 다만 그 모두가 공부의 재료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 양 극단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부로 휴가를 내어 산사의 수련회를 떠나도 좋지만,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모든 경계와 일을 수행의 재료로 밝게 돌려 생활이 곧 수행이 되도록 하세요.
14. 나는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으로 옳은 '내 생각'은 없습니다. 그 어떤 옳은 생각일지라도 내가 '전적으로 옳다'고 고집하는 순간 그것은 진리와는 저만치 멀어지고 맙니다. 하물며 그 생각이 옳다고 집착하여 그 생각을 상대방에게 강요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상대방에게는 또 다른 상대방 나름대로의 옳은 판단이 있습니다. 내 생각에 고집하는 아집과 치우친 아견이야말로 삶에도 수행에도 큰 방해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점을 수용하면서, 상대방에게, 다른 가르침에서, 다른 종교에서도 배울 점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에 대한 강요야말로 폭력이요 아만이며 어리석음의 끝입니다.
15. 나는 상대를 탓하지 않고 다만 나 자신을 바라봅니다.
남을 탓하고, 가족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며, 운명을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와 나에게 벌어지는 그 모든 인연들은 모두가 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일 뿐입니다. 오랜 생을 살아오면서 지어왔던 수많은 업과 인연의 에너지가 현재에 인연따라 생겨나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서 어떤 단점을 보았다면 그 단점은 곧 내 단점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탓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곧 상대방에게 비춰진 나를 탓해야 하는 것입니다. 분명 상대는 내 업의 생생한 나툼이요 비춤입니다. 내 업이 풀리면 상대와의 인연도 풀리고, 내가 변하면 상대방도 변하게 마련입니다. 상대방에게 탓할 것이 있다면, 먼저 나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스스로를 경책할 일입니다.
16. 나는 조금 불편하고 부족하게 삽니다.
불편하게 조금 부족하게 사는 것의 즐거움을 누려본 적 있으신가요? 알뜰하게 절약하며 아껴 쓰고 부족한 듯 불편한 듯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을 더욱 직접적이며 체험적이고 지혜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펑펑 쓰면서 사는 삶은 정신적인 가난을 가져 오며, 또한 우리 안의 복의 그릇에 구멍을 뚫어 놓게 될 것입니다.
불편하고 부족했을 때 비로소 우리 내면에는 성성하게 깨어있는 정신이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내 스스로 불편과 부족을 선택하여 사는 것이야말로 지혜롭고 용기 있는 인류의 수많은 성현들이 걸은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17. 나는 적게 말하고 많이 듣습니다.
말이 많으면 내면은 텅 비게 됩니다. 많은 말을 내뱉고 난 뒤에 오는 공허감과 허탈감은 때로 곤혹스럽기까지 합니다. 말이 많아지면 내 칭찬과 남을 헐뜯는 말들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아상이 개입된 말의 특징이 자기 자신에 대한 자화자찬과 상대방을 헐뜯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말이 많아지면 저절로 허물이 늘어난다고 하였습니다. 말이 적어지면 저절로 대화중에 자신과 타인의 입을 관찰하게 됩니다. 말을 관해보면 바람직한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저절로 알게 됩니다.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침묵과 관찰과 들어줌에 있습니다.
18. 나는 홀로 고요히 숲길을 걷는 시간을 가집니다.
홀로 있는 시간, 그리고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숲길을 걷는 시간을 가지세요. 홀로 있는 시간은 그 자체가 명상이요 수행의 순간이며, 외롭고 고독한 그 느낌이야말로 수행자의 소중한 길벗이 되어줍니다. 숲길을 걸으면 우리는 그대로 숲의 평화에 깃들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은 숲의 영혼과 어렵지 않게 일치를 보게 됩니다. 홀로 조용한 숲길을 거니는 것이야말로 깨달음의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바쁠 때일수록, 사람들과의 부대낌이 많아질수록, 욕심과 집착이 많아질수록 더욱 홀로 고요히 숲길을 걷는 시간을 많이 가질 일입니다. 숲이야말로, 고독이야말로 모든 수행자의 영원한 길동무입니다.
19. 나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음식을 때에 맞춰 조금씩 천천히 먹습니다.
인위적으로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먹을거리를 먹을 일입니다. 우리가 먹는 것이 그대로 내 몸이 되고 내 정신의 밑바탕이 됩니다. 자연 그대로의 음식은 우리 몸과 마음을 조화롭고 자연스럽게 만들어 줍니다. 인위적이고 가공된 음식이야말로 건강을 해치고, 성격을 난폭하게 만들며 정서적으로도 불안하게 함으로써 우리 삶의 조화를 파괴하고 맙니다. 자연의 음식을 먹을 때도 될 수 있는 한 아무 때나 먹지 말고 때에 맞춰 먹으며, 폭식하지 말고 조금씩 소식하며, 천천히 씹는 것을 관하면서 여유 있게 먹도록 합니다.
20. 나는 '누구'처럼 살려고 애쓰기 보다는 '나 자신'의 길을 나답게 살아갑니다.
위인처럼, 존경하는 스님처럼, 부처님처럼 살려고 애쓴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는 아주 바람직한 삶이라고 여겨지겠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채 또 다른 누구를 꿈꾸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랬을 때 지금의 나는 만족스럽지 못하고, 항상 부족할 뿐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을 100% 살지 못하고 미래의 또 다른 모습을 꿈꿀 뿐입니다. 나라는 존재야말로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진리의 표현입니다. 그렇기에 누구처럼 사는 것은 억지스럽지만 나답게 나의 길을 걷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자기답게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진리의 목적을 이뤄내는 것입니다.
21. 나는 경전, 불서, 법문, 강의, 선지식 등 지혜의 가르침들을 항상 가까이 합니다.
지혜의 가르침을 항상 가까이 하며 살아갑시다. 경전이나 불서를 가까이 하며 자주 독송하고 독서한다는 것은 그만큼 부처님의 진리의 품 안에서 깃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어도단이라고 선에서 글이나 책을 멀리하라는 것은 우리의 근기에서 이야기하고 논할 상황은 분명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항상 법이 서 있는 선지식을 가까이 하고, 선지식의 법문을 가까이 함으로써 지혜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따르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지혜의 가르침들을 가까이 하고 살면 내 정신이 저절로 그것을 닮아갑니다.
이상에서의 21가지 생활 속 수행문들은 때때로 읽어보면서 내 공부가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지침이 되기도 할 것이고, 좋은 도반처럼 곁에 둔다면 도반의 따뜻한 경책이 되기도 할 것이며, 혹은 스승의 따끔한 장군죽비가 되어 주기도 하면서 우리의 삶의 일깨워주는 작은 몫을 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혹은 집에서나 절에서 개인 기도와 수행을 할 때
기도의 시작 혹은 끝 부분에 발원문을 봉독하듯이 이 21가지 생활수행문을 독송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 21가지 생활수행문이 나에게 조금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고정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 상황과 인연에 맞게 조금씩 수정을 가하여 나만의 생활수행문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관세음보살 염불 대신, 금강경 독송이나 다라니 독송도 좋고, 매일 절 수행을 300배, 500배씩 한다고 바꾸어도 좋으며, 매일 기도 시간을 1시간, 2시간을 가진다고 구체적으로 바꾸어도 좋습니다. 물론 혹은 이 21가지 중에 자신의 마음과 계합되는 몇 가지 조항만을 선정하여 그것만을 집중적으로 닦아가려고 노력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이 수행문이 평소 수행하시는 법우님들에게 하나의 작은 공부의 바탕이 되고 씨앗이 되어 생활 속에서 자신을 다스리고 경책하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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