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하는 법/성철스님
2018. 8. 11. 13:45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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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하는 법(1)/성철스님▒ 요즈음 학생들에게 불공하라고 자주 이야기하며 권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혹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용돈을 타쓰고 있는데 어떻게 불공할 수 있는가」하고. 그것도 당연히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러나 불공이란 꼭 돈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남을 도와주는 것은 모두 불공입니다. 예를 들어 버스속에서 노인이나 어린이에게 혹은 병든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것,그것도 불공입니다. 또 정신적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나 혹은 어떤 사람을 좋은 길로 인도해 주는 것,그것도 불공입니다. 걸거리에 앉아서 적선을 비는 눈 먼 사람에게 10원짜리 한닢 주는 것,그것도 불공입니다. 이처럼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남을 도와주는 것은 모두 불공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몸, 마음, 물질이 세가지로 불공을 하려고 하면 불공할 것이 꽉 찼습니다.이세상 모두가 불공거리, 불공대상입니다. 단지 우리가 게을러서 게으른 병 때문에 못할 뿐입니다. 이렇게 불공하여서야 결국에는 성불하게 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수련회때 3000배(拜)를 한 뒤 백련암에 올라와서 화두(話頭) 배워 달라고 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자, 모두 화두 배우기 전에 불공하는 방법 배워 불공부터 시작한 후 화두 배우자」 이렇게 말하면 처음에는 모두 눈이 둥그렇게 됩니다. 우린 돈도 없는데 부처님 앞에 돈 놓고 절 하라는 이야기인가 하고. 그련데 나중에 알맹이를 듣고 보면 그것이 아니고 남 도와주는 것이 참불공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끝에 가서「모두 불공합시다.」하면 「예」하고 대답하는데 진정으로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특별한 주의를 시킵니다. 그것은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을 도와주는 것은 착한 일이지만 자랑하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몸으로써, 마음으로써, 물질로써 좋은 불공을 해놓고 입으로 자랑하면 모두 부수어 버리는 것입니다. 불공을 자랑하기 위해, 자기 선전하기 위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푼이나 기부해 주고 신문에 크게 선전해 달라고 하며 또 그 재미로 돈 쓰는 사람도 많은가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공이 아닙니다. 자기 자랑할 재료 장만하는 것이지 아까운 돈으로 남 도와주고, 몸으로 남 도와주고, 마음으로 남 도와 주고서 왜 입으로 모두 부수어 버리는 것입니까? 참으로 불공이란 남을 아무리 많이 도와주었다고 해도 절대로 자랑해서는 안됩니다.말 안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근본 생각이 어디 있느냐 하면 「남 모르게 남 도와주라」이것입니다. 「남 모르게 남을 도울 것!」예수님도 이런 말 을 했습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바른손이 모르게 하라」 기막힌 소리 아닙니까! 자기 왼손으로 남을 도우면서 자기 오른손도 모르게 주라고 했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 알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즘 학생들에게 이 말이 좋게 들리는가 봅니다.펀지 자주 옵니다. 「스님 말씀하신 남 모르게 남 돕자는 그 말씀을 평생 지키고 노력하겠습니다」하고. 이제 예 하나를 들어 보겠습니다. 미국의 보이스라는 사람이 영국 런던에 가서 어느 집을 찾는데 안개가 꽉 끼어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이곳 저곳을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열 두어살 되는 소년이 나타나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누굴 찾으십니까?」 「어느 집을 찾는데 못 찾았어.」 「저는 이 동네에 사는데 혹시 제가 아는지 주소를 보여 주시겠습니까?」 신사가 주소를 보여주었더니 「이 집은 마침 제가 알고 있습니다. 이리로 오십시오」하고 소년이 인도하여 안내해준 집에 도착하니 찾아 헤매던 바로 그 집이었습니다. 하도 고마워서 돈을 주었더니 그 소년은 사양하고 결코 받지 않았습니다. 이름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게는 선생님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저는 소년단 회원인데 우리 회원은 하루에 한가지씩 남을 도와주게 되어있습니다. 저는 오늘 선생님을 도와드릴 수 있었으니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 됩니다. 참 고맙습니다.」 그리고서 소년은 달아나 버렸습니다.신사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국에 와보니 어린이도 남을 돕는 정신이 가득하여 돈도 받지않고 남을 도우면서 오히려 일과를 할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니 이런 정신을 배워야겠다.」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와서 드디어 미국에서도 소년단을 시작했는데 온 미국인은 물론 세계적으로 보급되어서 지금은 우리나라도 소년단(Boy Scout)활동을 하고있습니다. 그 뒤에 이 소년을 찾으려고 아무리 애써도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소년이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이 이름 모르는 소년을 기념하기 위해 영국의 그 마을에 큰 들소 동상을 세워주고 그 기념비에는 이렇게 새겼습니다. 『날마다 꼭 착한 일을 함으로써 소년단이라는 것을 미국에 알려준 이름 모르는 소년에게 이 동상을 바치노라』 〈타일러 가르침〉 올바르게 수행하여 화합하고 공경하며 일체중생을 이익케 하라
▒불공하는 법(2)/성철스님▒ 진리적으로 볼 때 남의 종교를 비판할 것은 아니지만, 예수교와 불교는 상대가 안됩니다. 그것은 양심있는 학자는 모두 다 말하는 것입니다. 또 개인적으로 볼 때 예수교에서 보면 불교가 아무것도 아니고 불교에서 볼 때 예수교가 별것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제 3자가 참으로 양심적인 면에서 말할 때는 예수교와 불교가 서로 상대가 안됩니다. 서양의 유명한 쇼펜하워 같은 사람은 어떻게 평했느냐하면 (예수교와 불교가 싸움을 한다고 가정하면 예수교가 불교를 공격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두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느니, (절벽을 향해 총알을 발사하는 것)과 같다고 극단적으로 말했습니다. 아니 극단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진리로 보면 그러한데 실천면에서 보면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교 사람은 참으로 종교인다운 활동을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예수교 사람 못따라 갑니다. 불교의 자비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고 남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을 차리는 것이 무슨 자비가 있는가? 참으로 자비심을 가지고 중노릇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자비란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사회적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아마 승려가 봉사정신이 가장 약할 것입니다. 사회에 봉사하는 정신이 승려에겐 없다고 본단 말입니다. 예수교 사람을 보면 참으로 봉사활동 많이 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깔멜수도원에 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정월 초하룻날 모여서 무슨 제비를 뽑는다고 합니다. 무슨 제비인지 아십니까? 그 속에는 양로원 고아원 교도소 등 어려움을 겪는 각계각층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양로원 제비를 뽑으면 1년 365일 자나깨나 양로원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기도대상 분담 제비인 것입니다. 고아원에 해당하면 일년 내내 고아원 교도소에 해당하면 내내 교도소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생활이 기도로써만 사는데 자기를 위해서는 기도 안합니다. 조금도 안합니다.1년 내내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만 기도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남을 위한 기도의 근본정신 입니다. 이것이 종교인 입니다. 아무리 남의 종교이지만 잘하는 것은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먹고 사는 것은 양계와 과자를 만들어 내팔아서 먹고 산다고 합니다. 먹고 사는 것은 자기들 노력해서 먹고 기도는 천부 남을 위해 기도하고 그런데 불교에서도 소승이니 대승이니 하는데 소승은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남이야 죽든 말든, 대승은 남만 위해 사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든 말든. 우리 불교의 근본은 대승이지 소승이 아닙니다. 원리는 이러한데 실천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쪽 사람들은 내밥 먹고 남만 위하는데 우리 불교에서는 이것이 아주 없다면 안되겠지만 아마99%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내 계산이 틀렸는지 모르지만. 우리 불교 하는 사람들은, 더구나 승려들은 봉사정신이 없지 않느냐 이렇게 봅니다. 예수교를 본받아서가 아니고 불교는 자비가 근본이므로 남을 돕는 것이 근본입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불공이란 남을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활이 남을 돕는 데에 기준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 대중도 다 알겠지만 승려란 부처님 법을 배워 불공 가르쳐 주는 사람이고 절에서는 불공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불공대상은 절밖에 있습니다.불공대상은 부처님이 아닙니다. 일체중생이 불공대상입니다.이것이 불공방향이란 말입니다. 지금 우리 불교가 구태를 벗어버리고 참다운 중흥의 길 사는 길을 찾아야 할 것 아닙니까. 내가 생각할 때는 절에 사는 우리 승려들이 목탁치고 부처님 앞에서 신도들 복(福) 빌어주는 이것이 불공 아니고 남을 도와 주는 이것이 참 불공이라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이것을 참으로 실천하게 될 때, 그때 비로소 우리 불교의 새싹이 트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0 ~ 2005년도 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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