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자비 /식심명(息心銘)

2018. 8. 25. 17:0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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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의 수행과 평생의 종교적인 귀의 등을 통한

깨달음을 얻고 나서도 희노애락, 생로병사가 있는 것은,

깨달음이 그 어떤 완벽한 벗어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완벽한 벗어남을 잠시나마

체험하는 순간에는 언어와 표현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오직 '그 모든 것의 근원'에 대한 인식이 있을 뿐이지요.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의 경계가 없어진다, 라고 얘기들 합니다.


또한 고통은 남아있으나, 그 의미가 틀립니다.

그래서 그 누군가는

‘완전히 깨달은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했지만

이 또한 틀린 말입니다.

 

더 깨달은 자의 밝음과

덜 깨달은 자의 무명, 어두움은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완전한 깨달음에 대한 관념은 접고, 돕는 행동부터 하라는 말입니다.


완벽한 깨달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가는 것,

집착과 괴로움에서 헤매이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우는 인생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주는 인생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

그래서 결국 깨달음은 사랑입니다.


해탈한 자의 가장 큰 두드러짐은 그래서,

남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당신의 어머니나 아버지, 스승,

매일 내 힘이 되어주는  친구가

바로 '깨달은 순간에 존재하는 분'들입니다.

주변에서 그러한 분들을 보면 여러분의 스승으로 삼으십시오. 따라 하십시오.


그 이외의 법열, 니르바나, 무욕해탈,

엑스터시의 경험, 신과의 합일감 등등은,

순간순간, 에너지의 확장과 의식의 상승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고,

아무도 지속적으로 1년 365일 내내 그러한 상태로 지속되지 않으며

지속된다고 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세상에는 아직 많은 이들이 고통 받고, 무지로 인한 죄를 지으며,

그러한 세상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사는 것이 나라는 존재입니다.


혼자 절정의 경험은, 홀로 간직하십시오.

세상에 들어가 타인의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하는 가난한 분,

깨달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려운 경전과 교리에 일자무식하지만,

힘든 이들에게 봉사하는 이름 없는 분들이 진정 '깨달음을 성취해가는' 분들입니다.


오늘 당신이 환해 보인다는 말 한마디를

진심으로 해주는 그 순간이 깨달은 순간입니다.

 

그러니 깨달음을 지속시키고 싶으시면

남을 위해, 말 한마디를 하시든,

옷깃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주시든, 진심으로 하십시오.

 

그 순간들이 많아지면

깨달음의 입자들이 점점 밀도 짙어지는 것이며,

생기 에너지가 점차 상승하여, 삶이 영속적으로 나아지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엔 당신은 깨달음의 이름을 쫓던 자가 아니고,

깨달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어느 깨달은 사람의 글에서....

 
강촌사람들 통기타 리메이크 포크송

식심명(息心銘)

  

법계에 자재로운 보배 사람 있으니

오랫동안 그 몸 묶고, 명심하여 이르되 


"옛적에 마음을 거두어 잡은 사람이다" 하니

 경계하고 또 경계할지니라.

 

 생각을 많이 말고 많이 알려하지 마라.

 아는 것이 많으면 일 또한 많나니 

 마음을 쉬는 것만 못하고,

 생각이 많으면 잃음 또한 많나니 

 하나를 지키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생각이 많아지면 뜻이 흩어지고 

 아는 것이 많으면 마음이 산란해지며

 마음이 어지러우면 번뇌가 나고 

 뜻이 흩어지면 도가 막히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감히 상할까보냐"고 말하지 말지니 

 그 고통만 더욱 길어질 뿐이요.

"무엇이 두려울꼬" 말하지 말지니 

 그 화가 솥 속에 끓는 물과 같으니라.

 

 방울 물 일지라도 끝없이 이어지면 

 마침내 四海(사해)에 가득 채워지리니.

 작은 티끌 털어내지 아니하면 

 장차 五嶽(오악)을 이루게 되느니라.

 

 끝맺음을 잘하려면 근본을 다스려야 하나니.

 비록 처음은 적을 지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눈. 귀. 코. 입. 일곱 구멍을 막고 

 六情(육정)을 닫아서 색을 엿보지도 말고 

 소리를 듣지도 말지니. 

 소리를 듣는 것은 귀머거리 같이 하고

 색을 보는 것은 장님과 같이 할지니라.

 

 한 가지 학문과 한 가지 기예가 

 허공 가운데의 작은 모기요.

 한 가지 기술과 한 가지 재능이 

 햇빛 아래의 외로운 등불과 같도다.

 

 영특하고 현명하고 재주 있고 뛰어남이 

 오히려 어리석음을 기르나니.

 순박함을 버리고 화려한 데 빠져들면 

 識馬(식마)가 쉽게 날뛰어

 마음 원숭이를 제어하기 어렵도다.  

 

 정신이 피로하면 

 몸이 반드시 상하여 쓰러지게 되고. 

 미혹하여 삿된 길로 빠져들면 

 수도의 길이 영원히 막히게 되느니라.

 

 英賢才能(영현재능)을 일컬어

 마음의 혼미함이라 하는 것은 

 서툰 것을 자랑하고 교묘한 것을 부러워하여 

 그 덕이 크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명성만 높고 행이 엷으면 

 높은 명성이 빨리 무너지고.

 융성할 때 펴고 힘들 때 그만두면 

 그 씀이 한결같지 못함이며.

  안으로 교만과 자랑하는 마음을 품으면 

 밖으로 부터 원망과 증오를 받게 되느니라.

 

 혹 입으로 말하고 

 혹 손으로 글을 써서 

 사람들로부터의 명예를 구한다면 

 또한 심히 더러운 것일세. 

 

 범부는 그것을 길하다고 하지만, 

 성인은 그것을 허물이라 이르노니.

 고 즐거운 것은 잠깐이요, 

 슬픔과 근심은 장구하니라.

 

 림자와 발자취를 두려워하여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더하리니. 

 단정히 나무 그늘 아래 앉아라.

 자취도 그림자도 없어질 것이다.

 

 생을 싫어하고 늙는 것을 근심하는 

 생각과 조작들이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마음에 만일 생각이 없어지면 

 생사가 길이 끊어지느니라.

 

 한 도가 비고 고요하여 

 만물이 평등해지는 경지에 이르면 

 무엇이 빼어나고 무엇이 열등하며. 

 엇이 무겁고 무엇이 가벼우며.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천하며.

 무엇이 욕되고 무엇이 영화로우랴. 

 

 맑은 하늘은 깨끗한 것을 부끄러워 하고 

 밝은 해는 빛을 부끄러워 하나니.

 태산보다 편안히 하고 金城(금성)보다 견고하여라.

 

공경히 

 현철들에게 비결을 물려주노니.

 이 도는 이롭고 곧은 것이니라.

 

 

 ※ 중국 남북조시대  주나라(557~580)에 살았던

승려가 지은 글. 법명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