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이야기] 오매일여

2018. 8. 25. 17:1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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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일여 1


 선(禪)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참선하여 오매일여(寤寐一如)의 경지를 이루어야 

깨달음에 이른다고 대체로 알고 있다. 


오매일 여란 잠잘 때와 깨어 있을 때가 한결같아서 다름이 없다는 뜻 이다. 

그런데 이 말의 뜻을 잘못 이해하여 수행을 통하여 잠잘 때와 깨어 있을 때가 

한결같은 경지를 만들려고 애써는 수행 자들이 많다.


 잘 때와 깨어 있을 때가 한결같아서 다름이 없다는 말은 

본 래 <수능엄경>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수능엄경> 제10권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아난아, 저 선남자는 삼매를 닦아서 상온(想蘊)이 다 소멸한 자이다. 

이 사람은 평상시에 꿈과 생 각이 소멸하여 자나깨나 늘 한결같으니,

 깨어 있고 밝고 텅 비 고 고요하여 마치 맑게 갠 하늘과 같아서

 다시는 거치른 육진 경계의 그림자가 없다. 

세간의 모든 산하대지를 보면 마치 거 울에 밝게 비추인 듯하여 

다가와도 달라붙지 않고 지나가도 흔적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오매일여의 근거이다. 


상온이란 생각하여 분별한다는 말이다. 

생각하여 분별함이 소멸하면 평소 꿈과 생각이 사라져서 

자나깨나 늘 한결같은데, 이것은 곧 깨어 있는 마음이니 맑게 갠 하늘이나 

깨끗한 거울 처럼 밝고 텅 비고 고요하여 세속에 있는 모든 사물과 일들을 밝게 비추지만 

그것들에 끄달리지 않고 그것들의 흔적도 남지 않는다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깨달음을 통하여 밝혀지는 우리 마음의 실상을 나타내는 말씀으로서, 

보통 사람 의 분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상온, 즉 분별하는 생각이 사라지면 평소에 생각도 사라지고 

 꿈도 사라져서 자나깨나 한결같게 된다는 말을 쉽게 이해하면, 

상온이 사라진 사람은 생각도 없고 꿈도 없으니 

의식활동이 정지된 무의식 속에 머물러 있어서 잠과 깸의 구별이 없다는 말처럼 이해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가 잘못이라는 것은 그 다음 말씀을 보면 명백하다. 

이렇게 상온이 사라진 사람의 마음은 깨어 있고 밝고 텅 비고 고요하여 

마치 깨끗한 거울처럼 세간을 모두 비추고 있지만 

세간의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는 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무의식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깨달음의 지혜를 크고 원만한 거울과 같은 지혜라고 하여 대원경지(大圓鏡智)라고 하듯이, 

깨달은 마음은 흔히 거울에 비유된다. 

거울 자체는 텅 비고 깨끗하여 아무 모습도 없으나, 온갖 모습이 그 위에 나타난다. 

온갖 모습이 그 위에 나타나지 만, 거울은 언제나 텅 비어서 깨끗하다. 

텅 빈 거울과 그 위에 나타나는 모습은 언제나 함께하여 둘로 나누어질 수 없지만, 

텅 빈 거울과 나타나는 모습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즉, 텅 빈 거울과 나타나는 모습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이것을 일러 불이법(不二法)이라 한다. 

우리의 분별심은 같거나 다르 거나 하는 이분법(二分法)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불이법을 말씀하시는 부처님의 말씀을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거울에서 일여(一如)한 것, 즉 한결같이 변함없는 것은 무엇 일까? 

당연히 텅 빈 거울이다.

 그 위에 나타나는 모습은 한 순 간도 쉬지 않고 변화한다. 

거울은 원래 텅 비고 깨끗하여 언제나 한결같다. 

본래 텅 빈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거울과 같은 마음 위에 나타나는 모습에 오염되어서 

모습에 끄달리는 것이 중생의 마음이고, 

텅 빈 마음을 문득 깨달아서 모습에서 해탈 한 마음이 부처의 마음이다. 


육조혜능이 마음은 경대(鏡臺)가 아니어서 먼지가 붙을 수 없다고 했듯이, 

마음이라는 거울은 텅 빈 허공과 같아서 유리 와 같은 사물이 없으므로 

본래 더러운 때가 묻을 수 없다.


 그 러므로 깨달음은 더러운 거울을 닦아서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거울에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거울의 본래 역할이니

 거울 위의 모습을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모습을 분별하고 그 것에 집착하는 중생의 분별심을 한번 항복시켜서

 모습에서 벗 어나는 불가사의한 체험이 곧 깨달음이다.

 이 체험을 얻는 수 행방법은 없다. 


오직 참된 선지식을 만나 그 말에 귀를 기울이 고 있으면, 

어느날 문득 한 마디 말씀에 불가사의한 해탈의 체 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무심선원 


오매일여 2 


오매일여가 선(禪) 공부에서 하나의 방편으로 등장하는 것은 

간화선의 창시자인 대혜종고가 깨달음을 얻은 이야 기가 가장 유명하다. 

대혜는 운문종, 조동종 등 여러 곳 의 선사들을 찾아다니며 수행하다가

 21세에 담당문준을 만나 스승으로 삼고 공부를 이어나갔다. 


담당은 자신의 죽음이 당도하자 대혜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설법도 잘하고 선시도 잘 짓고 선문답도 잘한다. 그러나 한 가지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내가 방장에서 너에게 선을 말하면 선이 있지만 네가 방장을 나서면 

선 은 사라지고, 네가 깨어서 생각할 때에는 선이 있지만 잠 이 들면 곧 없어져 버린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삶과 죽음 을 극복하겠느냐?” 


이에 대혜는 “제가 의심하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고 자신의 문제를 고백한다. 

담당이 죽은 뒤에 대혜는 스승의 권유에 따라 원오극근을 찾아가서 이 문제를 질 문하였다. 

“제가 아직 잠이 들기 전에는 부처님이 칭찬하신 것에 의지하여 행하고 부처님이 비난하신 것은 

범하지 않으며, 이전에 공부하여 얻은 것들을 깨어 있을 때에는 전부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침상에서 잠이 들려할 때 에 벌써 주인 노릇하지 못하고, 

꿈에 보물을 보면 기뻐함 이 한이 없고 꿈에 사람이 몽둥이로 해치려 하면 

두려워 서 어쩔 줄 모릅니다.

 꿈속에서 벌써 이렇게 주인 노릇하 지 못하고 휘둘리는데, 

죽음에 임하여 어떻게 경계에 휘 둘리지 않겠습니까?”


 원오는 이 말을 듣고서 다만 이렇게 말했다. 

“네가 말하는 이런 여러 가지 망상들이 끊어질 때에, 

너는 저절로 깨어 있을 때와 잠잘 때가 늘 하나인 곳에 도달할 것이다.” 


대혜는 이 말을 듣고서 처음에는 믿지 않고 이렇게 생 각하였다.

 ‘내가 스스로 돌이켜보면 깨어 있음과 잠들어 있음이 분명히 둘이다. 

다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깨어 있음과 잠들어 있음이 늘 하나라는 말이 헛된 말이라면

 나의 이 병을 없앨 필요가 없겠지만, 

부처님의 말씀이 진실로 사 람을 속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곧 내 스스로가 아직 

깨닫 지 못한 것이다.’


 얼마 뒤 원오가 법당에 올라 설법하면서 이렇게 말했 다.

“누가 운문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이 몸을 나타내는 곳입니까?’라고 하자,

 운문은 ‘동산이 물 위로 간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이 몸을 나타내는 곳이냐? 

따뜻한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니 시원하구나.”


 대혜는 이 말을 듣자마자 앞뒤의 시간이 뚝 끊어지면서 

가슴에 걸려 있었던 것이 쑥 내려갔는데, 

마치 엉킨 실 뭉치를 칼로써 단번에 몽땅 잘라 버린 것과 같았다. 


이렇 게 가슴에 걸려 있던 것이 없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꿈꿀 때가 바로 깨어 있는 때이며 

깨어 있는 때가 바로 꿈꾸 는 때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진실임을 저절로 알았다고

 대혜는 고백하였다. 


대혜가 비록 설법도 잘하고 선시도 잘 짓고 선문답도 잘하고

 불교와 선에 대하여 잘 말할 수 있었지만 

이 모 든 것은 전부 분별의식으로 배우고 생각하여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일 뿐, 

분별의식을 벗어난 불가사의한 깨달음은 아직 얻지 못했음을 스승인 담당이 알고서 

분별의식이 작동할 수 없는 잠잘 때를 가리켜 깨어 있을 때와 같은 가 하는 질문을 하였던 것이다. 


참된 선지식은 바로 이렇게 학인이 분별의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장벽을 

앞에 가 로막아 주는 사람이다. 

대혜는 이 질문을 잠잘 때에도 깨어 있을 때와

 똑같이 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좌우하는 주인 노릇을 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원오에게 질문하였는데,

 원오는 대혜의 그러한 분별망상이 끊어지면 저절로 오매일여의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분별의식 속에서 헤매던 대혜는

 원오의 설법에서 한 마디 말을 듣는 순간 

문득 분별의식이 끊어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고,

 분별의식이 끊어지고 나니 비로소 자나 깨나 한결같다는 말의 뜻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 무심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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